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10년 후의 김기승에게.
안녕, 나는 XX고 1학년 8반의 김기승이야. 나를 김짐승이나 김저능, 야동왕이라고 부르는 녀석도 있지만 사실 나는 XX고 1학년 8반의 짱이지. 그렇다고 내가 싸움을 잘 하거나 공부를 잘 하거나 딱히 훈훈하게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튼 나는 짱이야.
지금은 수련회를 갖다 온지 얼마 안 된 국어 시간이야. 기말고사 전에 수행평가를 해야 한다고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라고 국어쌤이 시켜서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10년 후의 나야.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머리도 나쁘고 이번에는 성적도 좋지 않았는데 말이야. 아니, 그래서 10년 후에 내가 대학을 졸업 못하고 직장을 못 구한다는 뭐 그런 말은 아니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이거 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나한테는 10년 후라는 게 오지 않는 거 같거든. 사실 이 편지도 벌써 몇 번째 똑 같은 걸 쓰고 있는 것 같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건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구태여 말하자고 하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도 말할 수 있지만 시간이라는 건 하나의 흐름을 갖고 있을 때 의미를 갖는 것이지 나의 경우엔 시간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냥 어느 날이라고 하는 걸로 충분하다. 일반적인 시간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미지를 향해 뻗어가는 물길이라면 나의 시간은 탁하고 걸쭉한 액체가 그저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어이, 김기승! 너 그러다 넘어진다."
나는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시지프스의 언덕인가 삼년고개인가 하는 곳의 오르막길 저 끝에 있는 하얀 바위였다. 특별한 무슨 형상을 하고 있거나 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둥그스름하고 광택이 없는 하얀 바위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저 아래서부터 내내 멍하니 바위를 쳐다보며 걸어 오르다가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 어! 어어…….”
나는 누군가가 뒤에서 당기고 앞에서 미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지럽게 빙긍빙글거렸다. 나중에 반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고개 중턱에서 고개 아래 평지까지를 그 상태로 거의 몇 분을 굴러 내려갔다는 모양이다.
“어휴, 병쉰! 그러다 넘어진다니까.”
“여기서 넘어졌으니까 앞으로 3년 밖에 못살겠네. 하하하.”
여기저기서 놀렸다. 무지 쪽팔렸지만 그 뿐이었다. 수련회는 어떻게든 끝났고 그 뒤로도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좀 공부를 못하고 좀 멍청하고 좀 어수선한 그 상태. 딱 보통의 바보 고등학생으로 3학년이 되고 수능시험을 망쳤다. 재수냐 백수냐 하는 선택만을 남겨 놓은 채 졸업식 날이 되었다.
“준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자 나왔다며?”
“어, 날자만 나온 거지 뭐. 그러는 건수 너는 요리사 한다며?”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거지, 요리사는 무슨.”
졸업식장에 들어서니 대학에 합격했거나 취업이 결정된 녀석들은 앞쪽에 서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
나는 그런 모습들을 나와 비슷한 처지인 뒤쪽의 바보군단 사이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고 있었다. 저만치 고개 위에 하얀 바위가 보였다. 나는 또 그 바위에 사로잡혔고 또 뒤로 넘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또 고등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중이거나 지금 까지 꿈을 꾸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일을 한 열 번쯤 반복할 때 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열 번을 넘고서 부터는 수련회 산행 중에 고갯길에서 넘어지고 졸업식장에 멍하니 서있게 되기까지의 삼년을 내가 계속 반복하고 있고 그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내가 무엇을 했을까?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처음에, 아니 열한 번째쯤에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때쯤에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서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거나 폭우폭설로 지각을 해도 혼나지 않는 날을 미리 알고 늦잠을 자거나 하는 정도의 일들은 하고 있었다.
우선은 성적을 올려보기로 했다. 열 번이나 같은 시험 같은 문제를 풀었으니 이해는 못해도 대충 답을 외우는 정도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심한 녀석 취급하던 부모님의 눈빛이 바뀌고 집에서 먹는 밥의 반찬이 좋아지고 용돈이 올랐다. 수능에서는 만점 가까운 성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명문대에 합격을 해도 막상 졸업식을 넘기지 못하고 1학년 수련회 날의 언덕으로 돌아가 하얀 바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뒤로 넘어지고 나뒹굴고 다시 3년을 보내야 했다.
어차피 되풀이 할 거라면 좀 더 즐겁게 지내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를 만들어봤다. 쉽지는 안았지만 이삼십 번쯤 반복해서 대시도 하고 이벤트도 하고 스킨쉽도 하고 잠도 자보니까 요령이 생겼다. 마침내 인근 학교의 퀸카라는 애들부터 남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청순한 신임교사 그리고 몸매 쩌는 보건선생님까지, 모두 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해보기까지 했다.
아마 계속 그런 노력을 했다면 연예인들하고 사귀는 것도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뒀다. 결국 어느 누구와 데이트를 하건 침대를 뒹굴건 졸업식 날이 되면 다시 하얀 바위를 보다가 나뒹어야 하는 것에 지쳐버린 것이었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졸업식 이후의 그 세계 그 시간 속에서 내 여자들이 다른 남자와 낮에는 수줍게 데이트를 하고 밤에는 땀에 젖은 침대에서 허리를 비트는 것을 상상하고 기분이 상한 것도 이유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뭔가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다. 기왕이면 좋은 일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사고나 사건이 생길 것을 경찰서나 언론에 알리려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3년 동안 독방의 하얀 벽만 멍하니 보다가 다시 하얀 바위를 멍하니 보게 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다. 내가 직접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대단한 일은 어려웠지만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위험을 해결하는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9일에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질 친구를 위해 18일 밤에 몰래 체육창고의 축구공들 모두에 구멍을 낸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간혹 다리만 부러질 친구가 축구를 못한다고 19일에 농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죽는다던지, 20일에 싸움을 하다가 다치지 않게 해준 다리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뭐 그러나 대부분은 그럭저럭 좋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도와주려 할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도와줄 사람은 너무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저번에 구해준 사람도 이번 3년 중에 또 구해줘야 하고 다음 3년에도 구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끝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만뒀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몇 백번이고 되풀이하는 3년의 시간들에 지쳤고 지겨워졌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1학년 수련회 때의 넘어지던 순간부터 3년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내가 넘어져서 나뒹군 곳이 시지프스의 언덕이나 삼년고개라고 불리던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한번은 수련회에서 넘어지고 나서 다시 일어나 스무 번쯤 더 넘어져보기도 했다. 육십년을 쭈욱 살 수 있기를 바랐지만 소용없었다. 미친놈 소리만 잔뜩 먹고 3년이 지나자 다시 언덕으로 돌아가 흰 바위만 멍하니 보며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3년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안 그래도 나쁜 머리가 스트레스 때문인지 너무 여러 번 3년을 되풀이해서인지 점점 더 나빠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도 하고 조사도 해봤더니 다원우주의 분기 특이점이라는 것을 찾아내기는 했는데 양자니 힉스니 하는 것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참을 수 없었다. 3년만 영원히 반복하느니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죽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꽝하는 느낌 다음에는 다시 언덕길을 걸어 오르게 될 뿐이었다. 약을 먹어봐도 전철에 뛰어들어도 결국 다시 눈앞에는 하얀 바위와 언덕길이 보이고 뒤로 구르고 또 3년이 시작될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갔다. 기억이 뒤죽박죽인데다가 무얼 오래 생각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런데 정말 나만 이렇게 3년을 반복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내가 점점 기억을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 다들 나름대로의 3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꼭 3년이 아니라 사람마다 10년이나 20년이나 혹은 몇 십 년이더라도.
그렇게 된 거야, 10년 후의 나야. 이제 십 수 번만 더 반복하면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아. 여전히 이 상황에서는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고 말이야. 나는 정말 10년 후의 너를 보고 싶지만 그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그럴 수 있으면 안녕히 지내라. 영원히 닿지 않는 10년 후의 나야.
2010년 5월 21일 국어시간에.
10년 전의 기승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