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모방범>은 누가 진범인인지에 이야기의 갈등구조를 집약시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잡아두는 종류의 미스터리소설은 아니다. 비교적 초반에 진범인이 밝혀진다. 또한 한국어역이 나온 것은 3년 전인 2006년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리뷰들들을 보면 진범인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나 앞으로 읽을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의 경우, 이하 비평문을 읽고 난 후 소설을 읽었을 때, 그 재미가 심각히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경고해 둔다.*
1. 현대의 일본을 비춘 걸작- 인텔리겐챠 계층VS노동자 계층
그간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인 작가의 소설은 의식적으로 피해 왔다. 아니, 단순히 내가 소설자체를 잘 읽지 않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소설역시 지금껏 읽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물론 미야베 미유키가 싫어서, 는 아니었다. 동시에 미야베 미유키가 좋았던 것역시 물론 아니다.
최근 아사바 미치아키(浅羽通明)라는 평론가의 <쇼와30년대주의>(昭和30年代主義)라는 책을 읽었다. 그 내용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도착해 방향성을 잃은 현재의 일본에 대한 대안으로 쇼와30년대(1955~1965무렵)의 곤란과 가능성을 사상으로서 주목해 보자는 것이다. 아사바는 그 논의의 전개과정에서 각종 소설, 영화, 드라마, 학술서들을 그 논거로 들고 있는데, <모방범>역시 그 중 하나였다.
아사바의 논의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모방범>역시 빌려 보기로 한 나는 도서관에 이 소설을 예약했다. 그리고, 이 책을 받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께에.
아. 이 소설을 완독하고 나니, 지난 5개월간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오히려 귀엽게 보인다. 1000페이지가량의 <1Q84>에 비해, <모방범>은 장장 1500페이지. 길다. 엄청나게 길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긴 것은 족히 10명은 넘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ch의 모방범 스레드에서도 이 소설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길다. 등장인물들을 가지쳐서 좀더 짧게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 그만한 분량이 없었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생한 삶이 그려 져 있다는 데 있으니까.
15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3부로 나뉜다.
오오카와 공원에서 신원불명의 여성의 오른 팔이 발견되고 나서,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으로 발전, 뜬금없이 갑툭튀한 두 명의 용의자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카즈아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발견되는 게 1부.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카즈아키의 어린 시절부터 연쇄살인 사건의 경위, 둘의 최후를 두 사람의 개인적인 시점에서 쫓는 게 2부. 둘의 사고사 직후부터 다카이 카즈아키의 사건관여여부를 두고 피해자 후루카와 마리코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요시오, 오오카와 공원에서 오른 팔의 발견자 츠카다 신이치, 저널리스트 마에하타 시게코, 다카이 카즈아키의 여동생 다카이 유미코, 구리하시와 다카이의 친구 아미카와 코이치가 갈등을 빚는 게 3부다.
아사바 미치아키가 이 소설을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꼽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소설은 현대의 일본을 여과없이 비추는 그야말로 만물상과 같은 작품이다.
아사바는 연쇄살인사건의 두 명의 범인을 현대 일본의 문제점을 반영하는 캐릭터로 본다. '자기실현', '개성', '재미'등의 신앙이 만들어 낸 비뚤어진 자의식의 괴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채, 변변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니트가 바로 둘이 상징하는 악이라고 아사바는 분석한다.
그런 두 명의 범인에 대한 영웅으로서 아사바가 주목하는 것은 피해자의 할아버지 아리마 요시오와 두 범인의 친구인 다카이 카즈아키. 둘 다 '자기실현'이나 '개성'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우직하고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우직함', '묵묵함', '평범함'을 아사바는 쇼와30년대적 가치로 평가한다.
이러한 아사바의 분석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는 두 범인이 빚어내는 개성지향의 자의식에 비판적인 서술을 함과 동시에, 그러한 가치와는 무관하게 노동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한 아리마 노인을 편든다. 소설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진범인이 어이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얼핏 스토리자체의 파탄으로 보이는 장면은 그러한 어린애같은 자의식의 붕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사바의 분석을 응용하자면 <모방범>은 인텔리겐챠 계층과 노동자계층의 대립이 주된 갈등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두 명의 범인과 아리마 노인의 사이에 있는 또 하나의 주인공, 저널리스트 마에하타 시게코의 경우는 어떨까?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 속의 마에하타라는 캐릭터에 대해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투영했다'고 말했다 한다. 마에하타는 아리마 노인보다는 두 명의 범인에 더 가까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기실현을 위해 전업주부가 아닌 저널리스트로서의 직업을 가지고 아이도 없는 현대적 여성. 오히려 그녀의 남편인 마에하타 쇼지가 묵묵하고 우직하게 일하는 평범한 사람의 전형으로 보인다. 덕분에 소설의 후반에서 이들 부부는 큰 갈등을 빚게 되는 것이다.
마에하타 부부의 갈등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서술을 보도록 하자.
2.가해자가족과 피해자가족
최근 강호순사건으로 인해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 가족의 인권에 대한 문제가 붉어졌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그려진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의 관계에 대한 묘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피해자 유가족의 대표는 츠카다 신이치와 아리마 노인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게 츠카다 신이치다. 전술한 2ch의 모방범 스레드에서는 '신이치 짜증남', '신이치=해리 포터. 자기가 세상의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 줄 착각함', '신이치 뭘 믿고 그리 잘난 척 하는 지 모르겠음', '신이치라는 등장인물자체가 필요없음'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츠카다 신이치라는 캐릭터는 <모방범>의 주제에 있어 불가결했다고 본다.
신이치는 단순히 오오카와 공원에서 시체를 발견한 고등학생이 아니다. 강도살인사건으로 인해 부모와 여동생을 잃은 피해자 가족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고뇌하고 있다. '신이치=해리 포터'라는 분석은 그리 틀린 것만도 아닌데, 신이치는 연쇄살인사건에서 함께 시체를 발견한 미즈노 히사미, 저널리스트 마에하타 시게코, 동병상련의 처지라 할 수 있는 아리마 노인과 만남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탈피해 성장한다. (<해리포터시리즈>에 억지로 대입하자면 각각 헤르미온느, 시리우스 블랙, 덤블도어교수의 역할이다.)
신이치와 아리마 노인에 대립하는 가해자 가족은 히구치 메구미와 다카이 유미코다.
히구치 메구미는 신이치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의 딸. 신이치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만나 달라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스토커같은 여고생이다. 신이치는 그녀에게 공포를 느끼고, 도망다닌다.
한편, 소설에서 꽤 흥미로운 캐릭터는 다카이 유미코다. 그녀는 사고사한 용의자 다카이 카즈아키의 여동생이다. 2부에서 자신의 오빠가 용의자로 부상하기 전의 그녀는 똑부러지고, 당당한 여성이었다. 신이치를 스토킹하고 있는 히구치 메구미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의 성격은 3부에 들어서 급변한다. 그녀는 다카이 카즈아키가 무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분명하던 그녀는, 오빠의 무죄를 응원해 주는 아미카와 코이치에게 의지해, 신이치와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자'라고 조롱당할 정도로 연약해 져 버린다. 한편으로는 2부에서 자신이 비난한 히구치 메구미와 같은 행동, 즉 피해자 가족인 아리마 노인을 찾아가 오빠의 무죄를 탄원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에서 등장인물들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시선에서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건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명백히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추론과 오해를 등장인물들은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
결국 츠카다 신이치에게도, 다카이 유미코에게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정당성은 있다.
이와 같은 대조는 피해자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가해자 가족이 느끼는 고통의 격차에 대해 논한다. 양쪽모두 아프다. 그 아픔을 미야베 미유키는 정말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실감나는 묘사는 과연 진실된 것일까? 독자인 우리는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 양쪽 모두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를 통해서다.
그리고 아리마 노인은 말한다. 결국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사건은 '남의 일'일 뿐이라고.
3.미디어의 역할 -마에하타 시게코
이 소설에서 매스미디어는 큰 역할을 한다. 아사바 미치아키에 의하면 매스미디어 비판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인들은 튀고 싶은 마음에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한다. 그리고 방송국은 시청률을 위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 결과적으로 범인들의 자의식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를 후벼 판다. 용의자들이 죽인 뒤에는 혐의가 확정되기 전에 구리하시와 다카이를 범인인 것으로 일방적인 논조로 몰고 간다. 그리고 사건이 진정된 후에는, 얼마 전까지도 떠들썩하게 다루던 것을 잊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흥미 위주의 TV보도의 방식. 나는 일본에 살면서 실제 이와 같은 사건보도를 수없이 봐 왔다. 한국에서도 강호순사건에서 용의자의 얼굴과 실명이 보도된 것으로 보아, 앞으로 더욱더 자극성있는 정보를 찾아 갈 가능성이 있다.
매스미디어의 자극성과 흥미성위주의 보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점은 주인공인 저널리스트 마에하타 시게코에게도 내포되어 있다. 아리마 노인은 마에하타의 르포를 읽고 '남의 일'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다. 당사자성의 결여. 결국 아리마는 마에하타를 신뢰할 수 없었다.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다는 식의 고만과 태만 위에서 이뤄지는 발언. TV방송국의 그것도, 마에하타 시게코의 그것도, 아미카와 코이치의 그것도, 다를 바 없다. 당사자의 아픔은 당사자에게밖에 알 수 없다. 평론가도, 작가도, 독자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소설은 심각한 물음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필요한가?
마에하타 시게코는 일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해, 남편과 이혼 위기에 처한다. 공장에서 우직하고 묵묵히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던 남편에게 그녀는 자신의 일, 르포라이터라는 직업자체를 부정당한다. 결국 그가 원하던 것은 르포라이터로서의 부인이 아닌 전업주부로서의 부인이었다. 마에하타 시게코의 르포는 과연 어느 만큼의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미디어인가?
그러나 소설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마에하타 시게코와 진범인과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에하타 시게코의 승리는 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흘러 나간다.
결국 시게코의 남편 쇼지는 이 장면을 계기로 시게코와 화해하고 그녀의 일을 인정한다. 그리고는 르포라이터로서의 일을 계속해 달라고까지 부탁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녀의, 미디어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들었는가? 그는 범인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미디어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즉 바꿔 말하면 진실이다.
진범인에 대한 마에하타 시게코의 승리. 그것은 곧, 자의식덩어리의 니트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우직함이 승리했음을 뜻한다. 현대의 '개성'을 긍정하는 '자기실현'의 이상. 그 붕괴를, <모방범>이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 상징하고 있다.
미디어, 는 결국 말그대로 매체다. '타인의 삶'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마에하타에게 블루컬러 노동자의 남편이 있음은 곧 그녀가 인텔리겐챠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미디어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에 이들 부부가 화해하는 것은 양 계층의 갈등의 해소를 의미한다.
미디어는 분명 필요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자학적인 기분으로 마에하타 시게코를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타인의 삶을, 타인의 아픔을, 타인의 이야기를, 독자인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문학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읽어보려 한다. <모방범>의 마에하타 시게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핀오프소설 <낙원>을.
4.사족- 아쉬운 점 몇가지
이하, 위의 비평과는 별개로 소설 속의 아쉬운 점을 몇가지 들어보고자 한다.
체호프의 총. 다카이 카즈아키의 녹음음성이나 아시하라 기미에의 이야기가 사건해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떡밥을 잔뜩 던져 놓고, 결국 아무 상관없었잖아! 결국 체호프의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다카이 카즈아키, 다카이 유미코 남매는 아무리 봐도 안습이다. 유미코는 그래도 시노자키 형사랑 잘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OTL....
사실 유미코가 그렇게 되어 버린 건 경찰때문이다. 거기까지 다 꽉 잡고 있었으면서 왜 진작에 안 붙잡고 있다가, 그 모양 그 꼴이 된 거니? 응......? 역시 경찰은 무능하다는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