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타지소설의 효시로 불리우는 <바람의 마도사>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그 중, 극히 예외적인 어떤 이야기는 백만부가 팔리고 해외에까지 번역되었고, 운이 좋은 몇몇 이야기들은 대여점의 한 켠의 먼지속에 묻혀 있고, 그보다 많은 수의 이야기들이 그 완결을 보지 못 한 채 인터넷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판타지독자들의 머리 속에서 미처 빛을 보지 못한 채 그 생명을 다한 이야기들까지 치자면 이러한 이야기들의 수는 가히 헤아릴 수 없다 하겠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의 끝에 <갑각나비>가 있다.

  <갑각나비>라는 작품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겉멋은 번지르르하지만, 주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각나비>에는 뚜렷한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다. <갑각나비>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로바나 엔쥴로스가 '이야기의 왕'이라 불리는 것으로 상징되듯이 <갑각나비>는 <아라비안나이트>나 <데카메론>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그 자체를 자기목적화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갑각나비>는 단 하나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든 이야기의 끝에 위치하는 이야기중의 이야기, 로바나 엔쥴로스인 것이다.

  필자가 <갑각나비>를 읽은 것은 3년쯤 전이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상세한 줄거리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막 인터넷에서 '태엽', '사전', '괄호'와 같은 소제목들을 보고 그 내용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치 못 해도, <갑각나비>가 보여준 그 경이로운 감각은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필자의 몸에 새롭게 각인되었다. <갑각나비>는 대단한 소설이다. 그 사실이야말로, <갑각나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다.

  <갑각나비>에 대한 소문은 필자가 판타지에 입문한 2004,5년 전후에는 이미 인터넷 주변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미출판소설 중에서 <갑각나비>만큼 인구에 회자된 소설은 <투명드래곤>을 제외하면 드물 것이다. <갑각나비>가 어떤 소설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여느 출판소설보다도 개념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이 유령은 그 탄생부터 필연적으로 인터넷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판타지소설계를 소리없이 배회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갑각나비>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전설을 완성시켰다. 장기휴재로 인한 게시판삭제. 미출판작으로 드림워커라는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던 <갑각나비>는 작년 그 게시판을 잃었고, '텍본'이라고 하는 수단을 제외하면, 독자가 그 소설을 합법적으로 읽을 수 있는 수단은 없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필자는 '오트슨답다', 혹은 '갑각나비답다'라는 감상을 느꼈다. 이전부터 <갑각나비>의 연재속도는 독자들의 애간장을 달아올리다 못해, 새카맣게 태워버릴 정도로 느렸다. 단순히 느렸다, 라는 표현보다도, 극악, 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적절할 정도로. 필자가 어느정도 분량이 모인 상태에서 <갑각나비>를 읽었던 것은 실로 천운에 가까운 일로, 만약 1화부터 리얼타임으로 읽어야 했다면, 그닥 인내심이 강하지 못 하고 나름 바쁜 필자는 이 소설을 읽기를 포기했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갑각나비>가 드림워커에서 게시판을 삭제당하는 불명예스러운(어떤 의미에서는 명예로운), 최후를 맞은 것은, 그 전설의 완성으로서는 실로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퍼포먼스였다고 할 수 있다. <갑각나비>는 전설이 되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소설이었지만, 연재속도가 너무 느려서 앞으로 영영 빛을 보지 못할 비운의 명작'으로 남았다.

  사실, 일개 독자로서 <갑각나비>가 가져다 준 전율을 다시한번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갑각나비>는 그 전설로서의 의미가 더 클 지도 모른다. '뭔가 잘 모르겠지만, 대단했던 것 같아'라는 감상이야말로, <갑각나비>전설에 대한 적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렇게 갑각나비전설은 투명드래곤전설과 함께 판타지소설계에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기에.

  그리고, 또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갑각나비>의 종식과 동시에 드림워커는 장르문학커뮤니티로서 그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갑각나비>가 없는 지금, 드림워커에 '시드노벨 멀티' 이상의 의미는 없다. <갑각나비>의 작가, 오트슨이 시드노벨에서 <미얄의 추천>을 낸 것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갑각나비>, 그 이후의 판타지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