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영화<밀양>이 일본에 개봉했기에 보러 갔을 때, 영화에 보인 풍경은 여느 한류드라마의 풍경과는 달랐다.
<밀양>의 배경은 밀양이다.
밀양은 극중 카센터사장이 말하는 대로 '경기가 안 좋은' 쇠락해 가는 지방도시임과 동시에 맥도널드등 도시자본이 유입되는 곳이다. 즉 도시와 촌, 전통과 근대, 자연과 문명, 중심과 주변이 혼재하는 곳으로 내부에 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서울에서 신애가 아들 준과 함께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밀양은 사별한 남편의 고향으로 남편이 살아있을 때부터 이주해 오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애가 죽은 남편을 그리며 가정 내 연대의 복권을 꿈꾸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신애는 근대적 자아를 가진 개인으로, 밀양에 존재해 온 로컬커뮤니티의 가치관과는 대립한다. 옷가게에 인사하러 갔다가 인테리어를 바꾸기를 권하는 모습은 상징적인 복선이 된다. 이러한 신애에 비교해 로컬커뮤니티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인물은 카센터사장이다. 카센터사장은 신애에 대한 흑심때문인지 무슨 일이든 신애에게 신경쓰고, 편의를 봐 주려 한다. 그러나 신애는 이러한 카센터사장의 호의를 거부하며 말한다. '상관없잖아요.'라고. 그렇다. 카센터사장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오지랖넓은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내 연대를 그리워 하면서도, 로컬커뮤니티의 가치관에는 선뜻 다가서지 못 하고 있던 신애에게 결정적인 전기가 다가온다. 사별한 남편과 신애를 연결해 주던 유일한 끈인 아들 준이 유괴되어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신애와 밀양사이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과연 신애는 왜 밀양에 계속 살아야만 하는가?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고.
신애는 아들을 상실한 슬픔을 교회에 다님으로서 씻으려 한다. '교회오빠랑 사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절오빠랑 사귄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커뮤니티가 약화, 붕괴된 이후 기독교가 대체커뮤니티로 기능해 왔다. 우리 주변에서도 기독교(더 나아가서는 종교전반)이 친목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신애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려, 자신이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위선과 배제의 구조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유괴범을 면회하러 갔다가 이러한 사실에 직면한 신애는 기독교(내지는 교회)에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다짐한다.
결국 카센터사장으로 대표되는 밀양내의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 사별한 남편과 아들을 매개로 한 가정, 그리고 기독교커뮤니티 모두와도 고립된 신애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와 기독교커뮤니티는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카센터사장이 후반부에 기독교로 개종하듯이 양자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이다.) 영화 끝장면에서 근대적자아를 지키고 있던 신애는 정신병원에서 귀환함으로서 밀양의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에 수용된다. 옷가게가 신애의 조언을 받아들여 인테리어를 바꾸고, 카센터사장이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것을 도와주는 장면은 로컬커뮤니티와 신애개인과의 관계가 변화했음을 상징한다. 즉 이 영화는 신애라는 근대적자아를 가진 개인이 밀양이라는 로컬커뮤니티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신애의 아들 준이 불운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이유역시 신애가 로컬커뮤니티내부로 수용되는 과정 중 하나다. 즉 커뮤니티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방인'인 신애의 아들은 '이방인'인 유괴범에게 살해되는 희생양이 된 것이다. 준이 유괴되었을 때, 신애가 옷가게주인 밑 다른 아줌마들과 노래방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은 신애가 가정을 희생해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를 선택하기로 한 것을 암시한다.
신애와 신애의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양쪽 모두 서울/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밀양으로 온 이방인이고, 기독교라는 대체커뮤니티에 빠져들고, 정신병원/감옥이라는 커뮤니티 외부로 추방된다. 그러나 유괴범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반면, 신애가 커뮤니티내부로 귀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신애가 기독교커뮤니티대신 카센터사장이나 옷가게주인으로 상징되는 로컬커뮤니티와 화해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신애라는 개인이 로컬커뮤니티에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로컬커뮤니티가 해체되고 희생양을 통해 재생되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