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어휴.
어제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숙취가 있다. 좀 어질어질하다. 커피탄 맥주 맛이던 요상한 흑맥주가 아무래도 숙취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어제 나는 전설이다를 봤다.
원작의 소설이야 워낙 유명하거니와, 오메가 맨이라는 영화에서 원작을 제대로 망가뜨려 준 전적이 있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았다.
말이 나온 김에 오메가 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사실 아주 어린 시절 tv에서 해 주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 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감염자들의 하얗게 변한 눈도 무서웠지만, 사람이 모두 사라진 종말이후의 풍경, 악몽에서나 가끔 보던 그 쓸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가장 무서웠다.
어른이 되고도 생각이 나는 것이어서 다시 찾아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욕을 하고 말았다.
찰턴 헤스턴이 미국에서도 유명한 도라이라는데, 그 성품과 가치관이 영화에도 제대로 반영이 되었다. (오메가 맨을 찍을 당시 찰턴 헤스턴이 계속 영화의 내용에 간섭했단다.) 특히 예수에 빗대 십자가 아래서 죽으며 인류를 구원한다는 결말에는 오만하면서도 동시에 유치뽕빨인 미국의 전형적인 착각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 나는 전설이다는 어떨까?
사실 난 끝나기 5분 전까지 영화 잘 만들다싶어 매우 감탄하고 있었다. 원작의 내용을 상당히 많이 바꾸었지만, 난 좋게 보았다.
중간에 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볼거리와 서스펜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잘 조절하였으며, 특히 개, 원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개의 이야기를 무리없이 소화하였다고 본다.
영화는 시종 공포스럽고 초조한 분위기를 잘 자아내었는데, 그것에는 윌 스미스의 훌륭한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영화 초반, 감염자들의 건물에 개를 찾으러 가는 부분이 압권이어서, '야, 윌 스미스가 저렇게 연기를 잘했던가?' 하는 말을 연신 되뇌었다. 원작 주인공의 황폐한 외로움은 별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두려움이나 초조함같은 것은 오히려 원작보다 낫게 표현하였다.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비디오 가게 장면은 좀 오버였다고 본다. 물론 그건 배우가 아닌 감독의 탓이겠지만,)
그런데!!!
결말에서!!!
그는 전설이 되었다고?
도대체 이건 뭐 하자는 거야?
시종 손에 땀을 쥐고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낄낄거리게 만드는 것도 차라리 반전이라면 반전이겠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나는 전설이다'라는 그 유명한 말의 의미를 이렇게 우습게 바꾸어 놓은 감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메가 맨조차도 그 쌈마이한 결말에 '나는 전설이다'라는 말을 감히 쓰지 않는 염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야 말로 진정한 '종말 이후' 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독 또는 각본가가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급격한 '지능의 종말' 맞은 모양이다. 젠장.
게다가..
안전마을의 문을 열자마자 대뜸 보이는 성조기와 교회는 결코 우연히 넣은 것이 아니었다. 오메가 맨의 악몽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나비라는 가당치도 않는 복선이나, 시종 신을 부르짖는 여자를 보았을 때, 또 금고에 밀어 넣으며 신의 뜻 어쩌구 할 때도 난 미처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근데 그것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모두 감독 나름대로의 진지한 의도였다니... 콘스탄틴이나, 본 아이덴티티를 모두 보았지만, 감독이 도라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나는 전설이다를 찍던 즈음, 집안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인류 최후의 생존자, 인류의 운명이 그에게 달려있다!' 라는 앞 뒤가 안 맞는 광고 문구에서 어느정도 짐작을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영화를 욕해놓고 이런 말 하기는 좀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7000원 정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대신에 마지막 즈음하여, 주인공이 지하실로 도망가는 장면이 나오면 더 이상 보지 말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으면 한다. 정신 건강도 챙기고, 화장실도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으니 두 가지 이득을 동시에 얻는 셈이다. 물론 결말이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세상엔 몰라서 좋은 것, 안 봐서 나은 것도 확실히 있더라.
아, 이젠 술도 좀 깬 것 같으니 투표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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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다시 들어와 보태본다.
생각해 보니 줄거리의 무리함도 그렇게 쉽게 넘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감염 개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감염인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미 영화보던 중에도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지만, 그 것 말고도 개, 바로 개가 죽는 장면에서 말이다... (내가 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감염된 개를 죽일 필요 없이 가두어 놓고 치료약을 차츰 개발해도 되지 않나? 실험대상으로 납치해 온 감염인간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하였나?
하지만 그렇다면, 네빌은 약을 주사한 후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괜히 개를 껴안고 있다가, 죽이지 않아도 될 개를 손수 죽이고 말았다는 블랙 코미디가 되는데? 허허 이런. 어쩌면 개를 죽인 후 '아뿔싸'를 외치는 네빌의 모습이 시간관계상 편집되었을 수도 있겠다. (결국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감염자들과의 무모한 싸움에 던지는 네빌이라.. 은근히 설득력있는데?)
하지만 그런 아방가르드한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개가 변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는 것이 더 긴장감 넘치고 납득하기 쉽지 않았을까?
사실 영화는 더욱 잔인할 수 있는 부분에서 잔인해지지 못하고 물러난 부분이 많다. 고어적인 장면이 아닌, 비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난 네빌의 딸이 자꾸 나비를 말하기에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을 떠올렸다. 거기서 보면 감염자에게 나비 모양의 허상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난 네빌의 딸이나 아내가 헬리콥터 안에서 감염자로 변하여 사람들을 학살하고, 끝내 자신도 추락하는 헬리콥터 안에서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에상하였다. 감염자 검색에서 아내가 한 번 걸렸던 장면이 그런 나의 추측에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감독은 아예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관람 등급을 낮추어 받기 위해 너무 비극적인 장면은 넣지 않은 것일까?
보기는 상당히 재미있게 봤는데, 자꾸 영화를 조롱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