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얼마 전부터 고구려를 테마로 한 역사 드라마가 급증 했다. 개중에는 이러한 드라마들의 방영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 역사 편입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물론 19~20세기에 이런 드라마들은 대중의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고 일반인들의 역사 인식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역시 고구려에 대한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있어 정작 중요한 문제, "어째서 우리나라인가?"는 아직도 맹목적인 역사의식에 가려져 있는 실정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인 [깊이에의 강요]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부조리를 간단한 이야기들로 말한다. 본작은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줄거리는 [깊이에의 강요]만을 간단하게 말해볼까 한다.
깊이가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생의 깨달음이 느껴지는 것? 중후한 무게가 실려있는 것? 그럴듯한 해석은 가져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깊이를 강요 받는다. 우리조차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매 순간 요구 받고, 요구한다.
한 미모의 뛰어난 여류 화가가 있다. 그녀는 한 비평가에게서, 호의적인 주마가편으로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지만 아직은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도 그 비평을 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비평이 신문에 실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깊이에의 강요'는 그녀에게서 자신감을 앗아가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며, 결국은 광기와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다.
이러한 줄거리는 최근들어 악성 네티즌의 폭언과 코멘트에 충격을 받아 강박관념에 시달리거나 자살에 이른 사례가 잇따라 보도된 세태를 떠올리게 한다. 본작에서도 나타나고 실제 사건의 피의자들도 진술하듯, 이러한 비난들은 생각도 논리도 없이 가학적 유희로 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 사이트가 기반을 두고 있는 DCinside에서 흔히 행해지는 비속어 중에 "개념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며 어째서 대상이 개념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난 받은 인기 배우를 욕하면서도 그가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신조 유행어인 "비호감"이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세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단순히 기분 나쁘기 때문에, 혹은 남들도 싫어하니까 자기도 싫어할 뿐이면서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비호감주의'가 이미 대중에게는 납득할만한 비난의 이유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비난 근거들은 전혀 논리적 타당성을 띄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로 퍼져나가서 명백한 죄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파퓰리즘과 같이 비난 받아 마땅한 세태. 아니, 파퓰리즘 자체이다.
어쨌거나 본작에서는 이러한 부조리한 세태를 문제로서 제기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내어놓지 않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 다만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 이러한 구절을 적어놓고 있을 뿐이다. "짙은 안개를 하나의 불빛으로 물리치지 못한다면 정말 필요한 것은 수많은 작은 불빛들이 아닐까?"
p.s. 교과서 같지?
* FanGaL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12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