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제목부터 뭔가 엽기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는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본작은 보르헤스의 오마쥬... 까지는 아니고 팬 픽션이다. 작가 본인이 보르헤스 팬 픽션이라고 주장 했으니까 그런거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약간은 발칙하고 기묘한 발상으로부터 시작한다. 포우 문학 동호회인 '이스라펠 소사이어티'의 컨퍼런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살해 당할만한 이유가 충분했던 괴팍하고 배려 없는 성격의 학자로, 살해 당할 시 몸을 V자로 굽힌 채 거울 앞으로 손가락을 맞댄 채로 죽어있다. 그의 테이블에서는 10과 킹, 그리고 눈이 뚫려 있는 잭 카드가 발견된다. 이야기는 보르헤스와 '나', 그리고 쿠에르보의 사건 추리를 따라 전개된다. 쿠에르보를 제외한 보르헤스와 '나'는 이 사건에 숨겨진 의미와 복잡한 개연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문학자였던 피해자와 사건 정황, 증거들을 이용해서 정말 쓸데 없고 말도 안돼는 음모론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사령비서](Necronomicon)은 실존하며, 에드가 앨런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공통적인 특성은 포 역시 이 책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라는 쓸데 없는 음모론은 포 동호회가 진명마법(Truename Magick)과 관련이 있으며, 포 동호회는 러브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고대존재의 이름을 발설하여 그것을 소환할 사람이 있을지 조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비밀결사라는 것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포우의 서술기법으로 독자를 골 때리게 하는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치밀한 머리싸움이 아닌 단순 낚시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황당무계한 재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본작은 시종일관 이 황당한 줄거리에서 세상사를 날카롭게 찌른다. "모든 것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말이 되어야 하네. 글로 적힌 말. 복잡하든 단순하든 모든 것이." 모든 것은 존재하기(인간의 입장에서) 위해서는 말(우리에게 인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테일러 박사의 과학적관리법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수치화되고 계량화되면서, 일반인들도 전문적인, 혹은 자신이 전혀 경험 해보지 못한 지식들을 간접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장인(Maestro)의 수십년 노하우는 과학적관리법으로 인해서 일반 노동자도 세 시간만에 취득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본작에서는 블레이드와 슬라이서의 차이를 말한다. 블레이드는 '날붙이'라는 물건 자체를 뜻한다. 식칼도, 골동품 장검도, 주머니칼도 블레이드가 된다. 반면 슬라이서는 자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물건이 된다. 깨진 유리조각도, 종이도 자르고자 하는 동기를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슬라이서가 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가진 지식은 블레이드 뿐이다. 때문에 그들의 지식은 대게가 죽은 지식이다. 작가들은 바다의 이야기를 쓴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이 듣고 읽은 것으로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바다를 쓴다. 그 바다는 작위적인 주제를 담은 죽은 바다다. 그 때문에 허물 많은 지식인들의 싸움은 이빨 없는 개들의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이빨이 아니라 짖기로 싸우는 싸움.
세계는 행동하는 지성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브람 노암 춈스키, 노먼 베쑨, 리챠드 도킨슨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세상의 부조리와 폐해를 벗겨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소위 '지성인'들은 그들의 권위와 체면을 위해서 지식을 사용한다. 그것은 죽은 지식, 블레이드일 뿐이다. 살인사건에서 쓸데 없는 문학적 추리만을 일삼으며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작중 인물들은 그것을 강하게 비꼬고 있다.
보르헤스의 [아벤하칸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에서 보르헤스는 "미스터리를 늘릴 필요는 없어. 미스터리는 단순한거야."라는 말에 이렇게 대꾸 했다. "아니, 복잡할 수도 있어. 우주를 생각해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