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재건은 구리시로 달려갔다. 퇴근시간이긴 했지만 차가 무척 막혔고 재건은 근처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이 지역 일대를 통제하고 있었다. 구리는 서울의 외곽이라 통행이 서울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한 구역을 통째로 봉쇄하는 모양이라 그 부근을 지나가는 차들은 멀리 돌아가야 했다. 물론 그곳 주민역시 들어가지 못했다.

  재건은 군인이 검문하고 있는 도로까지 간신히 다다랐다. 진입하지 못하는 차량 몇몇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고 불만인 운전사가 소리를 질러댔다.

  “세텍 사건 이후로 좀비 발생 시 경계가 더 강화됐다고 들었어요.”

  소희가 말했다.

  “한번만 더 그런 일이 생겼다가는 좀비가 발견될 때마다 계엄이 떨어지겠네요.”

  재건은 그렇게 말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들어와서는 말했다.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뚫어야겠군요.”

  “인맥이라뇨?”

  그렇게 물으면서 소희는 동시에 노기욱 국정원 요원을 떠올렸다. 한번 밖에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재건과 함께 지난 사건을 수사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재건은 기욱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기욱은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안 돼요.

  “으악! 그런 게 어딨어요!”

  -보나마나 정보를 달라는 거겠죠? 안 됩니다. 정보원은 네이버 같은 게 아니에요.

  “아, 그런 거였어요? 난 또, 얘기가 엇갈리고 있었네요.”

  기욱은 수화기 너머로 헛기침을 했다. 재건의 화법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소희만이 영문을 모른 채 마곤을 돌아볼 뿐이었다. 마곤은 어깨를 으쓱 했다.

  -다른 용무가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만 지금 바빠서요. 어쨌든 다음에 통화해야 할 듯합니다.

  “네. 통화는 나중에 하고 우리만 통제구역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면 됩니다.”

  -……벌써 와 계신 겁니까?

  “사정이 있어서요. 안에 들어가는 게 불법은 아니죠?”

  -들여보내는 건 불법입니다.

  “노쇠하신 어머니가 안에 혼자 계세요.”

  -끊습니다.

  “제, 제발!”

  재건은 다급히 외쳤다.

  “제발 한 번 만요. 진짜 큰일이 있어서 그래요. 봉일이랑 관련된 일입니다.”

  -……좀비 A가요?

  “안의 좀비는 봉일이가 개발한 좀비래요. 들여보낸다면 정보를 더 드리지요.”

  -검토해보겠습니다.

  기욱은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전화를 걸어왔다.

  -들여보내겠습니다. 지금 어디시죠?
  재건은 도로와 주변 상황을 알려줬다.

  -가까운 데군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기욱은 잠시 후 검은 차를 타고 나타났다. 다른 요원과 함께였다. 기욱은 홀로 내려 재건의 차로 다가갔다. 재건도 차에서 내렸다.

  “반가워요! 마치 오랜 친구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요!”

  재건은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말했다. 기욱은 다가오는 재건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일단 안에 들어가려는 이유나 말해 봐요.”

  재건은 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내 보였다.

  “이 자를 잡기 위해서죠. ”

  기욱은 사진을 낚아채려 했지만 재건의 손놀림에 헛손질만 하고 말았다.

  “설마……. 아니, 누굽니까, 그게.”

  “좀비죠. 팔다리가 긴.”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은 겁니까. 또 진위 여부는?”

  “아아, 한 번에 한 번씩. 들여보내 줄 거예요, 말 거예요?”

  “들여보내주는 것과 그 질문을 교환하자는 겁니까?”

  “조건부 약속도 좋아요. 내가 알아야 하는 건 요원 님 권한으로 우리를 들여보낼 수 있느냐는 거랍니다.”

  역시 약군. 하고 속으로 삼키며 기욱은 말했다.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사진의 정체를 말해 주시지요.”

  재건은 구체적인 장소를 언급하지 않고 인질이 잡혔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재건도 듣지 못한 어느 도시에 바이러스 폭탄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전했다.

  “놈들이 어째서 재건 씨한테 그런 걸 시키는 거죠?”

  “아무래도 내 추리력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욱은 쓸데없는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사진을 건네면 들여보내주도록 하지요.”

  재건은 고개를 끄덕여다.

  “그럼, 놈의 신병 말인데요.”

  “그건 알겠습니다. 인질 구출이 먼저지요.”

  “네. 좋아요. 만일 내일 아침까지 그자를 못 잡으면 직접 구출로 방향을 잡고 전적으로 협력할게요. 24시간 기한이니까요.”

  완벽한 협상이었다.

  재건은 차에 올라 구리시로 달려갔다.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군인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정부의 움직임이 빨랐다면 멀대는 아직 통제구역 안에 있을 것이다. 해가 진 뒤가 문제였다. 어둠을 틈타 놈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구리시 주변에는 인가가 뜸한 산이나 들판이 많았다. 재건은 그가 산속에서 긴 팔다리를 뻗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군인이 많네요. 진돗개 하나 정도는 나왔겠는데요?”

  마곤이 말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니 군인이 그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검문을 했고 그때마다 신원 확인을 해야 했다.

  “우린 어디로 가요? 길에 차가 없어서 좋긴 한데.”

  “그자가 있을만한 곳으로.”

  “어디로요? 어디든 저렇게 이 잡는 것처럼 뒤진다면 군인들이 알아서 찾아줄 것 같은데요.”

  “일단 목격된 곳으로 가자. 거기서 다른 데로 숨어들었으니 그곳부터 찾는 게 순서지.”

  재건은 기욱에게 전화를 걸어서 목격지점 위치를 물었다. 기욱은 말로 설명해주려 했으나 피차 지리에 어두우니 쉽게 전해지지가 않았다.

  -그럼 제 1 수사본부를 찾아보세요. 최초 목격지점에 세워놨으니.

재건은 시내로 들어가 수사본부를 찾았다. 군인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수사본부라 봤자 경찰용 봉고차가 전부였다. 재건은 무턱대고 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보기 좋게 쫓겨났군.”

  다시 그의 허름한 차로 돌아오며 재건은 말했다.

  “그럼 쫓겨나지 어서 오십쇼 하겠어요?”

  “아니, 국정원 소개 탐정이라 하면 좀 믿어줘야 될 거 아냐.”

  “보통은 절대 안 믿어요,”

  소희는 둘의 말다툼을 적절히 끊으며 말했다.

  “우린 우리대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목격자는 많을 테니까요.”

  “소희 씨. 정말로 훌륭한 아이디어네요.”

  재건이 말했다.

  “저기, 소희 씨한테는 죄송하지만 그건 아주 상식적인 생각이거든요?”

  마곤은 재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혀 방안은 제시 못하면서 이래저래 말만 많은 조수보단 훨씬 낫지.”

  “아니, 허구한 날 쓸데없는 일로 시간 끄는 게 누군데요?”

  재건은 경적을 울렸다. 마곤은 놀라 움츠리며 말했다.

  “뭐, 뭐예요?”

  “어쨌든 일을 시작하자고. 정말이지 우리 조수는 상대하기가 여간 괴로운 게 아니라니까.”

  “제발 남 얘기 하지 말아요.”

  그들은 상가나 노점들을 돌며 좀비를 목격한 사람을 찾았다. 좀비는 사람이 많은 길거리에 나타난 듯했다. 목격자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재건은 우선 놈이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알아봤다.

  한 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어요. 홍콩 영화에서 볼법한 긴 코트요. 팔이 자린 것처럼 소매를 치렁거리고 있더라고요. 아마 그 사람이 좀비였을 거예요. 키를 숨기려는 듯이 등을 구부리고 있었거든요. 얼굴도 좀 이상했고.”

  트렌치코트의 사내에 대해 한 노점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난 딱 보고 이상한 놈이란 걸 알았어. 머리가 무슨 엉덩이 만했거든. 기분 나쁘게 내 트럭을 쳐다봐서 난 곧 자리를 옮겼지만.”

  멀대가 나타난 지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이동거리는 파악할 수 있었다. 멀대는 큰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수사본부가 있는 사거리에서 정체를 들키고는 사라졌다. 다들 혼비백산하느라 그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못 보았다고 했다. 아무도. 재건은 세텍에서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또 코트에 몸을 숨기고 영문을 모른 채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숨어드는 것은 쉬웠을 것이다.

  해는 거의 다 기울고 네온사인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재건은 기욱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아니요만 반복하다가 끊었다. 마곤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기욱은 지역 주민등록원의 사진을 모두 검토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건이 제공한 사진과 구리시 주민의 모든 얼굴을 대조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럼 정부는 마음대로 주민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건가요?”

  소희가 물었다.

  “뭐, 절차가 있겠죠.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이야기가 나올 테고요.”

  그들은 차에 설치된 TV로 뉴스를 보았다. 구리시 관련 소식이 나왔지만 사진은 언급되지 않았다.

  재건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저 비상사태를 대비해 이곳저곳을 순찰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에는 군용 트럭이 수시로 오갔다. 완전히 어두워지자 도시는 적막에 잠겼다. 사람들은 B시 사건과 세텍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TV소리도 줄어든 주택가 가운데로 불길이 올랐다. 재건은 연기를 보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재건의 차는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화재를 관찰하던 재건은 여러 집이 동시에 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불길이 번질 정도로 크지는 않고 바람역시 불지 않았다. 여러 집에 불을 낸 방화가 분명했다. 여기저기서 불이야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왔다. 누군가는 집안으로 달려들려 하고 누군가는 그를 말렸다. 가느다란 사이렌 소리가 불꽃 튀는 소리에 묻힌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곳이었다. 누군가가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소방차가 못 들어와요.”

  창밖으로 지켜보던 마곤이 말했다.

  “사람이 못 빠져나온 것 같은데요?”

  소희가 말했다.

  “가봐야겠어요. 소방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마곤은 외쳤다.

  “우린 구조대가 아니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재건은 말했다.

  “사람이 안에 있다고요!”

  마곤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아직 구조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불붙은 집들은 2층짜리 다가구 주택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마곤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마곤은 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팔을 뿌리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현관문으로 들어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2층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문은 열러 있었고 연기가 굴뚝처럼 쏟아졌다. 안쪽의 방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마곤은 소매로 입을 막고 불길 사이를 지났다.

  방문은 닫혀 있었고 손잡이는 달궈져 있었다. 마곤은 발차기로 문을 부쉈다. 두 여자아이가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놨지만 2층이라 빠져나갈 수 없던 것이었다. 불길이 갑자기 거세지며 입구를 막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뚫을 수는 없을 듯했다. 마곤은 커튼을 뜯었다. 큰 아이의 몸을 커튼으로 동여 멨다. 아이를 잘 달래며 창문으로 내보냈다. 마곤과 작은 아이가 커튼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 보냈다. 길이가 짧았으나 떨어져도 안전한 높이라고 판단하고 그대로 떨어트렸다. 다른 아이는 마곤이 업었다. 옷으로 잘 묶은 뒤, 창문으로 나갔다. 파이프와 벽돌 틈새를 딛고 벽을 탈 수 있었다. 마곤은 발을 몇 번 헛디뎌가며 탈출에 성공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마곤까지 끌어안고 울었다. 밖으로 나오니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마곤의 옷 군데군데가 불타고 더러워져 있었다. 목은 칼칼했지만 화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구조대원들은 위험하니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 아이가…….”

  부모는 마곤을 놔 주지 않았다.

  “네, 네. 괜찮으면 된 거예요.”

  마곤은 뿌듯해져서 말했다.

  “너희도 뭐해. 언니한테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언니?’

  마곤은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일부러 중성적인 옷은 피하고 있었지만 옷 이곳저곳이 타고 그을려서 마곤의 몸집으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거기에 단발머리에 얼굴까지 검뎅이져 있으니 착각할 법 했다.

  마곤은 웃으며 남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다른 골목길에서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마곤은 잠시 고민하다가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옥상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불길과 연기에 입구로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들이었다. 구조대원 인력은 부족했다. 마곤은 그 집 밑으로 가보았다. 옥상에 있는 사람은 마곤에게 소리쳤다.

  “안에 사람이 있어요!”

  “몇 층이죠?”

  “2층이요! 바로 아래 있는 창문이에요!”

  마곤은 창문 구조를 살펴보았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안에 사람이 있다면 혼절해 있을 터였다. 마곤은 자기가 구할 게 아니라 구조대원을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마곤은 다시 달렸다.



  그 때 재건은 현장 근처를 계속 순찰하고 있었다. 마곤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소방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보다 재건은 범인을 찾아보려 했다. 재건의 생각에 이번 방화는 멀대의 짓일 가능성이 컸다. 멀대가 돌아다니는 비상사태에 한가롭게 불장난이나 할 자는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면 소방차를 뺏어 도망가려는 작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세택 사건에서 봉일 역시 앰뷸런스를 몰고 쫓아왔으니까.

  소방차가 도착하자 재건은 소방차의 예상 진로에 차를 세웠다. 골목이 좁아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이 방화가 좀비의 짓이 아닐 경우와 좀비의 짓이라도 재건의 예상과는 다를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설사 만일의 사태라 하더라도 정신만 바싹 차리면 된다. 어떤 순간이든 최선의 판단만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재건은 불길 사이로 무언가를 보았다. 인영이었다. 붉은 연기 사이로 인영이 일렁이고 있었다. 뭔가 비율이 맞지 않는 듯한 어색한 모습으로. 말단 비대증의 좀비였다. 그는 옥상 위에 서 있었다. 일렁이는 연기 때문에 마치 흔들흔들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재건은 급히 차를 몰았다. 소방차를 타고 탈출할 생각은 아닌 듯 했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붙잡아야 한다.

  “소희 씨. 마곤한테 전화를 해 보세요. 옥상에 있는 놈을 잘 감시하라고 해요.”

  재건은 급하게 말했다. 소희는 마곤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곤은 구조대원을 그 집으로 안내하고는 구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희의 전화를 받고 옥상 위를 올려다봤다. 그 집 옥상은 아니었다. 마곤은 다른 집을 찾아보았다.

  비명이 들러왔다. 동시에 마곤은 한 집의 옥상을 보았다. 불길 사이로 선 커다란 좀비가 사람들에게 기왓장을 던지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물을 뿌리는 정도의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곤은 재건에게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곧바로 건넛 골목으로 재건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재건과 소희는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 재건의 손에는 밧줄이 들려 있었다.

  “생포할 수 있을까요?”

  마곤이 말했다.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좀비는 돌연 소리를 지르더니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소방대원도 결국 호스를 놓친 채 도망치고 말았다. 커다란 좀비는 재건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갑작스런 성장에 일그러져 있었다. 두개골에 비해 턱이 지나치게 컸고 눈은 사팔뜨기였고 입은 쳐져 있었다.

  “이거 최홍만보다 큰 것 같은데요?”

  마곤이 말했다.

  좀비는 한 발짝 다가왔다. 재건은 소희를 향해 팔을 뻗어 가로막고 뒤로 물러섰다.

  좀비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봐. 내 키가 이렇게 커졌어!”

  “그래? 축하하는데, 나랑 어디 가지 않을래? 사탕 줄게.”

  재건은 말했다.

  멀대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내 키가 커졌어. 내 키가.”

  “아무래도 지능은 조금 떨어진 것 같죠?”

  마곤이 말했다.

  “고통은 안 느끼는 것 같고, 게다가 저 몸집에 꽤나 날렵해. 그렇다면,”

  재건은 멀대의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말했다.

  “무지 세다는 거죠?”

  마곤이 확인하듯 물었다. 재건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간, 좀비는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뛰어!”

  재건이 외쳤다.

  그들은 달렸다. 하지만 멀대는 너무 빨랐다. 한 호흡에 달려들어 마곤을 한 손으로 후려쳤다. 어깨로 거대한 손을 막은 마곤은 나뒹굴고 말았다. 그 사이 재건과 소희는 차에 올랐다. 차는 바로 출발했다.

  “마곤은요!”

  소희는 외쳤다.

  “잔소리가 많은 녀석이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조수였어요.”

  재건은 그렇게 마곤을 추억하며 페달을 밟았다.

  “하나뿐인 조수를, 버리는데, 너무 고민 없는 거 아냐?”

  창문에 마곤이 매달려 있었다. 마곤의 능력이 좀비에게도 통했기에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재건은 차를 세웠다.

  “으아악!”

  미처 문을 열기도 전에 마곤은 좀비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멀대는 마곤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집어 들었다. 발목을 부러트릴 듯한 악력이었다. 마곤은 비명을 질렀다.

  “이, 이제 진짜 안녕이지?”

  재건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제자를 버리는 게 어디 있어요!”

  뒷좌석에서 소희가 항의했다.

  “아, 에, 강하게 키운 녀석이니 어디서든 잘 적응해 살 겁니다.”

  “저, 저도 그럼 잔소리해 버릴 거예요! 어서 차 돌려요!”

  “넷? 아, 네.”

  재건은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마곤은 눈을 질끈 감고 애쓰고 있었다. 지능이 낮아진 좀비는 마곤을 손에 들고도 두리번거렸다 발견했다를 반복했다.

  “흐음. 아직 무사하죠?”

재건은 후진했다. 멀대를 위협하여 넘어트릴 계획이었다. 다가오는 차를 본 멀대는 마곤을 떨어트렸다.

  “위험해요!”

  차는 마곤을 밟기 직전에 멈춰 섰다. 좀비는 차 위로 기어올랐다. 마곤은 일어나 절뚝거리며 차에 탑승했다. 좀비는 차의 지붕을 두드렸다. 재건은 차를 다시 출발시켰고 좀비는 나가 떨어졌다.

  “오늘 일 평생 기억할 거예요.”

  마곤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흥. 다 작전이었다고.”

  재건은 얼버무렸다.

  “웃기지 마. 내가 그 진실된 얼굴을 못 알아봤을 것 같아?”

  마곤은 눈을 부라렸다.

  차는 멀대로부터 멀어졌다. 그가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생포는 힘들겠죠? 군인들이 죽이지 말아야 할 텐데요.”

  재건은 스쳐 지나가는 군 트럭들을 보며 말했다. 곧 총소리가 들리고 재건은 차를 세웠다.

  “그런데 불은 왜 지른 걸까요?”

  소희가 말했다.

  “말을 할 정도의 지능이 남아있는 걸 봐선, 뭔가 계획을 세웠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재건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 말을 하며 재건은 도망치는 한 병사를 보았다.

  “음, 군인들이 왠지 밀리는 느낌인데요.”

  “좀비가 크니까요.”

  총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렸다. 조직적인 사격에는 실패한 듯했다. 트럭 몇 대가 더 지나쳤다. 재건은 방향을 틀어 현장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군인들은 길을 막고 있었다. 재건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좀비는 어떻게 됐어요?”

  “지금 추적 중입니다. 이상은 군사 작전 중이라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군인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기, 근데 불은 마저 안 끄나요?”

  소방대원들이 도망간 바람에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군인은 연기를 한 번 돌아보고는 말했다.

  “차차 할 것 같습니다. 군사 작전이 우선이다 보니…….”

  재건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집은 잘도 타올랐다.

  그들은 조금 자리를 옮겨 차를 세우고 잠을 자기로 했다. 이제 할 일이 없어진데다 다들 몹시 피곤했다. 재건은 운전석, 마곤은 조수석에서 등받이를 살짝 기울이고 소희는 뒷좌석에 누워서 자기로 했다. 하루 종일 긴장했었기에 다들 금세 잠에 빠졌다. 바로 옆에서 군인이 지키고 있으니 그것도 나름 안심되는 일이었다.





5.



  멀대라고 불리던 좀비는, 그 이전에는 지수라는 평범한 이름을 갖고 있던 그는 산속으로 도망쳤다. 군인들은 그의 거대한 모습에 겁을 먹었고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하고 말았다. 그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육체 한계를 무시한 힘으로 군인들은 나가 떨어졌다. 군인들은 각자 총을 쐈지만 머리를 맞춘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스치기만 해도 감염된다는 사실과 그 몸집과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은 시뮬레이션만으로 극복될 수 없었다. 결국 멀대는 군인 한 명을 움켜쥐고 도망칠 수 있었다. 군인들은 퇴로조차 차단하지 못했다.

  멀대는 산을 타고 달렸다. 처음에 끈질기게 따라붙던 군인도 시간이 지나자 따라잡지 못했다. 숨이 차서 쉬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시에서 많이 벗어난 곳인 듯했다. 불빛이라고는 멀리서 드문드문 보일 뿐인 조용한 곳이었다. 멀대는 멈춰서고 이미 죽어있는 군인의 시신을 내려놓았다.

  멀대는 다른 좀비와 같이 총알과 상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총에 맞아 덜렁거리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오른팔은 영 거슬렸다. 딱지를 떼 내듯 오른팔 팔꿈치 아래를 떼어내니 그것도 영 어색했다. 다른 좀비였다면 몸 일부가 있건 없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멀대에게는 약간의 의식과 인간이었을 때의 희미한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팔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대는 먹기 위해 집어왔지만 이미 죽어버려 쓸모없어진 군인에게서 팔을 어깨채 떼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팔꿈치에 붙여보았다. 피와 살의 점성 때문에 잠시 붙어 있기는 했지만 곧 떨어져 버렸다. 멀대는 다시 붙여 보았다. 하지만 다시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멀대는 팔을 세게 눌러 보았다. 그랬더니 붙어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 멀대는 팔을 붙이려면 꼭 눌러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래서 군인의 팔을 팔꿈치에 대고 한참을 기다려 보았다. 그에게 이미 시간 관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세포는 일반 세포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증식한다. 그리고 다른 개체의 신경계로도 침입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팔로 침투했고 멀대의 세포와 팔의 세포는 결합했다. 곧, 새로운 신경계는 멀대의 제어 하에 들어왔다. 약간 제멋대로기는 했지만 멀대는 관절이 두 개인 새 팔을 얻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은 자유로워졌다.

  멀대는 기이하지만 길죽한 팔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리까지 길어진다면 키가 더 커 보이지 않을까? 키를 더 키우고 싶었다. 그가 봉일의 실험에 자원한 이유는 성장기가 끝난 사람의 키도 키울 수 있다는 광고 때문이었다. 물론 광고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없었지만. 키가 작은 편에 속하는 여자보다도 작은 그에게 키는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평생 지고 살아야 했던 짐이었고 그렇다면 그것은 운명이었다. 다른 모든 고민을 한 시간보다 키에 대한 고민을 한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서서히 이성을 상실해가면서도 오로지 키에 대한 기억만은 잊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었을 무렵 키가 큰다는 모든 비법을 시도해 보았다. 식단, 운동, 심지어 수술까지. 그런데 지금은 그저 다리를 잘라 붙이기만 하면 된다. 그는 이미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저 이 간단한 방법으로 평생 숙원이 이뤄진다는 사실에 심장이 다시 뛸 것만 같을 뿐이었다.

  멀대는 시체의 다리를 뜯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발목도 잡아 뜯었다. 두 다리를 발목 끝에 붙이고 다시 기다렸다. 죽인지 수 시간이 지난 시신이라 팔처럼 금방 붙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죽은 자를 조종하는 좀비의 신경이 새로운 다리에도 침투했다.

  너무 오래 기다린 듯했다. 멀대가 숨어있는 깊은 산중으로 군인들이 침투해왔다. 방역복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국토 전부를 뒤질 기세였다. 아직은 멀리 그림자만 비칠 정도의 거리여서 멀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물론 멀대 역시 군인들을 보지 못했다. 멀대는 일어섰다. 3미터를 훌쩍 넘어지는 몸집이 비틀거렸다. 걸을 수는 있었다. 멀대는 천천히 걸어갔다. 로봇처럼 그저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멀대는 불빛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상업 시설이 조금 모여 있는, 도시라고 부르기엔 조금 작은 곳이었다. 멀대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 한 대가 그의 다리를 피하려다가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운전자는 질겁하며 다시 차를 몰고 도망가려 했다. 멀대는 창문으로 긴 팔을 집어넣어 운전자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살아있는 그의 볼이며 목덜미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운전자는 잡아먹히다가 좀비조차 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멀대는 다시 걸었다.

  새벽을 타고 멀대가 나타났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잘못 만들어진 블록 로봇 같은 길쭉한 다리를 내딛으며 사람이 사는 땅을 밟았다. 조용한 새벽 산중에 몇 가닥 비명이 오갔다. 깨어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경적 소리와 요란한 엔진 소리와 비명 소리에 하나 둘 눈을 떴고 점차 비명줄기는 늘어났다. 멀대는 기다란 오른팔을 도망가는 사람에게 휘둘렀다. 이전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었기에 쉽사리 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몇몇 부지런한 사람들은 도망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멀대는 그런 사람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차를 타고 있던 누군가는 근방을 경비 중이던 군인들에게 달려갔다. 곧바로 군대가 움직였다. 구리시에서의 도주가 있은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국의 군인들은 언제나 비상 태세였다. 군인들은 키가 더 커진 멀대를 보고 조금 당황했지만, 다리를 쏴 쓰러트리고는 발버둥치는 그의 머리를 정확히 겨누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환희에 가득 차있던 멀대는 그렇게 죽었다.





6.


  소희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깥을 살펴보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오갔고 불은 꺼져 있었고 군인들은 길을 막지 않았다. 소희는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

  -승연 씨? 자는데 깨운 거 아니지?

  봉사대 회장의 목소리였다.

  “아, 네. 아까 일어났어요. 무슨 일이시죠?”

  소희는 시계를 보았다. 6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묻기는 했지만 소희는 아이의 일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소희는 어제 그 아이 일을 마무리 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애가 사라졌어! 아침에 일어나니 애가 안 보여!

  소희는 무심결에 네? 하고는 더듬어가며 말을 했다.

  “애가 사라지다니요. 제 발로 나간 건가요?”

  -신발까지 사라진 걸 보니 제 발로 나간 것 같아. 바깥을 무서워하던 애가 어떻게 잠금쇠를 열고…….

  “경찰에 신고는 했나요?”

  -아직 안 했어. 일단 우리 회원들한테 먼저 연락 돌리고 있는 거야. 지금 나올 수 있지?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도 모아서 일단 대책 회의를 하자고.

  통화를 듣고 마곤이 일어났다. 마곤은 소희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소희가 전화를 끊자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말했던 아이 있잖아요. 그 애가 사라졌대요.”

  “그래요? 이를 어쩌죠? 가봐야 하나요?”

  소희는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봉사 단체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봉사원 선에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적십자는 그 활동이 어쨌든 간에 다분히 정치적인 단체이다.

  마곤은 재건을 깨웠다. 그리고 소희의 일을 전해줬다. 재건은 비몽사몽해서 말했다.

  “이것 참 곤란하시게 됐네요. 양쪽 일 모두 중요한 일이잖아요.”

  소희는 고개를 숙였다. 동생 일도 봉사대 일도 어느 하나 쉬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건은 말했다.

  “소희 씨는 돌아가도록 하세요. 봉일이 일은 저희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일단 정보부터 얻지요. 우리 계획에 맞춰 소희 씨를 데려다줄지 말지 정해야 하니까요.”

  재건은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려 뉴스가 나오는 방송을 찾았지만 뉴스는 자막으로라도 나오지 않았다. 기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욱은 밤새 좀비를 사살했다고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기욱이 봉일 건을 이야기하려 하자 재건은 잠시 후에 다시 걸겠다며 끊었다.

  “장대는 죽었답니다.”

  “생포해 오랬잖아요!”

  마곤이 말했다.

  “협상을 해야지. 그러면 소희 씨를 데려다 줄 여유는 없을 것 같네요. 강남까지만 태워 드릴게요.”

  “정말, 제가 가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소희가 말했다.

  “협상 하다가 봉일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니 소희 씨가 안 계시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재건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던 멀대가 죽은 이상, 무력 진압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소희도 그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어렴풋이, 꿈속에서 안개를 보는 듯이 무의식만이 그 점을 지적할 뿐이었다. 소희는 경찰이나 군인이 무엇을 할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가슴 아픈,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타협이었다. 소희는 네. 하며 고개를 숙였다.

  재건은 다시 기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어떻게 할까요? 이제 무력진압밖에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강남 쪽에 지금 바로 타격대 돌릴 수 있지요?”

  -곧바로 가능합니다. 지금 구리시죠? 에, 아마 오시는 시간동안 배치가 가능할 것입니다.

  재건은 선예가 붙잡혀 있는 카페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문제는 다른 도시에 바이러스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말인데요.”

  -명령을 내리기 전에 신속한 진압으로 막아야지요.

  “네. 그래야겠지만, 전 아무래도 그게 허세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뒤늦게 전화로 알려준 것이 무력행사를 막기 위해 급하게 지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방법이 없지요.

  재건은 바로 출발했다.

  “소희 씨는 삼성역에 내려드릴게요.”

  재건은 속력을 냈다. 재건은 운전에 익숙지 않다. 하지만 재건은 신호나 차선까지 무시해가며 달렸다. 이번이 봉일을 붙잡을 마지막 기회인지도 몰랐다.



  세윤은 곤란해졌다. 아이는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아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실수는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에게 있었다. 못 본 사이 아이에게 자폐적인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이는 ‘국제유태자본’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 앞에서도 그런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랬을 것임이 틀림없다.

  상대가 김재건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재건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국은 여러모로 그들이 활동하기 편한 곳이었다. 한국이란 곳은 역설적으로 평화롭기 때문에 그들 같은 사람이 활동하리라고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상식에 경도되어 있고 의식 수준이 그렇게 높지 못하다. 한국에서 그들은 공식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상상하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재건은 다르다. 그들이 재건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재건이 맡은 어떤 사건에서 그들 중 일부가 연루되었던 것이었다. 재건을 접한 자는 재건의 특이한 사고를 곧바로 상부에 보고했다. 재건은 절대적인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식이나 인간에게 알려진 여타 지식 역시 신뢰하지 않는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근거 없는 직관뿐 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재건은 과감히도 상상해 낸다. 발명가나 천재적인 과학자의 상상력도 재건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적어도 기준점을 현실에 두고 있다.

  재건은 환상을 본다. 비현실적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을 모조리 인정하고는 상식으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이면을 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재건의 그 직관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점이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그들이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재건은 그들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모론을 중얼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납치된다면?

  그것이 재건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재건에게 의혹을 줘서는 안 된다. 아직 그들은 그늘에 가려져 있어야 했다. 그것이 세윤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 세윤은 불안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세윤은 아이에게 더 강한 암시를 줬다. 아이는 지금보다 더욱 불안정해지고 심하면 영원히 정신적 불구로 살게 될 것이다. 불쌍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기관에 연락하여 여러 가지 조작을 서둘러 해냈다.

  세윤은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제유태자본을 말해 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세윤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째서 이 아이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이것은 그저 그가 해야 할 일일 뿐이었다.

  세윤은 어른들에게 희생된 이 가여운 아이를 위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하지만 세윤은 이 아이에게조차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





7.


  전날, 그러니까 재건이 떠나고 난 직후의 카페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인질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테러리스트들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 봉일은 침묵에 익숙했다.

  하지만 선예는 그 정적을 참지 못했다. 어차피 24시간 이내에는 인질을 헤치지 않을 것 같았고 어떻게든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했으니 정보라도 캐낼 겸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본인이 지루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인질들은 모두 바닥에 앉아 있었고 테러범들은 소파에 앉아 있거나 교대로 문이나 창가를 지켰다. 수시로 케익이나 음료를 축내기도 했다. 봉일은 카운터 위에 올라 앉아 출입구를 보고 있었다. 눈조차 좀처럼 깜빡이지 않아 마치 전원이 나간 로봇처럼 보인다.

  “저기요.”

  선예는 봉일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봉일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부하 몇 명만이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선예는 봉일의 이름이 뭔지 떠올려보다가 이렇게 불렀다.

  “석호 씨!”

  봉일은 슬쩍 선예 쪽을 쳐다보고 말 뿐이었다.

  “아이, 참. 거기 가짜 좀비!”

  선예는 벌떡 일어났다. 부하들 역시 벌떡 일어나 총을 집어들었다. 선예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봉일에게 걸어 나갔다.

  “이봐요. 악당 아저씨.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녜요.”

  돌발적인 선예의 행동에 인질들도 당황했다. 봉일은 선예를 노려보았다. 선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수 초 후, 고개를 돌린 건 봉일이었다. 봉일은 말했다.

  “앉아라. 죽인다.”

  선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인질 사이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카페 내 모든 사람이 선예를 주목했다. 선예는 팔짱을 끼고 봉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시 적막이 흘렀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공기 속에 꽉 차 있는 듯한 불안한 적막이었다.

  선예는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하죠. 그리고 그렇게 노려봐도 안 무섭거든요? 전엔 처음이라서 놀랐지만. 나 기억하죠? 아저씨가 여기서 날 납치했던 거.”

  봉일은 카운터 위에서 선예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 년을 가둬버려. 난 이런 게 싫어.”

  부하들이 움직였다. 선예는 일으켜지며 말했다.

  “아니, 이런 거라뇨?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아무리 악당이라도.”

  봉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부하들은 선예를 카페 안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선예는 끌려가면서도 외쳤다.

  “난 알아요! 지금 무리해서 악당이 되려 한다는 걸.”

  봉일은 선예를 돌아봤다.

  “악당이 되기도 쉽지 않죠? 일부러 나쁜 짓 하고 있는 거 알아요. 당신은…….”

  “그럼.”

  봉일은 말했다. 선예를 끌고 가던 부하들은 그 말에 멈춰 섰다.

  “일부러 착한 짓을 하란 말이냐? 이, 내가 왜?”

  선예는 팔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그럴 수 있단 거 알아요. 당신은 지금 무서워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나쁜 짓이니까. 그리고,”

  선예는 손가락을 힘차게 펼쳐 봉일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의는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어 있으니까!”

  다시 적막이 드리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말들이었다. 뒤를 이을 말이 떠오르지 않자 선예는 조금 무안한 발언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뭐,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 아이, 참.”

  하며 손부채질을 한다. 곳곳에서 쿡쿡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질들의 표정은 덕분에 한결 부드러워졌다. 선예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정의가 이긴다고?”

  조금씩 들려오던 웃음소리는 봉일의 스산한 목소리에 끊기고 말았다.

  “난, 이, 네가 싫어. 너 같은 게 싫어.”

  봉일은 말한다.

  “맨날 사람들 앞에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람들은 그게 다인 줄 알아.”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 짙은 화장 틈으로 상기된 얼굴이 비친다.

  “그럼, 네가 정의냐? 너희 다수가 결정하면, 이, 그게 정의냐? 내 코가 없다고, 그렇다고 나만 악당이 되는 거냐?”

  “그게 아니죠. 나쁜 짓을 했으니까 악당인 거지……”

  “듣기 싫어! 너흰 모두 적이야. 빨리 가둬버려!”

  선예는 직원 탈의실로 끌려가 버렸다. 봉일은 씩씩대며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메뉴가 적힌 아젤을 걷어찼다.

  “좀비가 아니잖아요!”

  안쪽에서 선예가 외쳤다.

  “당신은 좀비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택을 할 수 있다고요!”

  “시끄러!”

  봉일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치며 접시를 집어던졌다. 선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봉일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머리를 감싸고 으르렁거렸다. 이를 악물고 인질을 둘러보다가 다시 접시를 집어던졌다. 그래도 성이 안 찬 봉일은 테이블을 뒤엎었다. 유리로 된 테이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리고 보 부하에게서 총을 뺏어 사방에 대고 쏘았다. 인질들은 비명을 지르고 부하들도 바닥에 엎드렸다. 주로 위에 대고 쐈기에 총을 맞은 자는 없었다.

  “너무 소란을 피우면 바깥에서 알아챌 위험이 있습니다.”

  부하 하나가 그를 말렸다. 봉일은 머뭇거리다 총을 집어 던졌다.

  봉일은 소파에 앉았다. 한참을 더 거친 호흡을 내뱉던 그는 부하를 불렀다.

  “뉴스를 검색해 봐. 멀대가 발견됐는지.”

  부하는 휴대폰으로 기사를 찾아보았다.

  “구리시에 뜬 것 같습니다. 군인이 움직였다는데요.”

  봉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뉘였다. 탐정이고 계집이고 하나같이 신경 긁는 소리만 한다. 미웠다. 모두가 미웠다. 아마 그들도 나를 미워하기에 이토록 괴롭히는 것일 것이다. 봉일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좀비는 미움 받을지언정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좀비는 그저 욕망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 욕망이 태생적이고 아무 목적도 없는 순수한 의지일 뿐이라면, 어떻게 욕망을 악이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좀비는 오히려 인간보다 선하다고 할 수 있다. 좀비에게는 증오의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좀비는 미움 받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봉일은 스스로를 좀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봉일은 좀비가 될 수 없었다.

  “아냐! 난 좀비라고!”

  봉일은 소리쳤다. 머릿속에서 재건과 선예의 말이 소용돌이쳤다.

  넌 좀비가 아니야.

  넌 좀비가 아니야.

  아니야!

  그가 살아온 삶의 기억 속에서 그는 자기 부정과 긍정을 끊임없이 오가며 혼란스러워 한다. 봉일은 재건과 선예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그렇다면 이 분노를 어디로 돌려야 하는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미워해서는 안 되는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봉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무엇으로 자기를 지탱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떨며 머릿속 가득한 열이 저절로 식을 때가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무거운 시간이 흘렀다. 봉일은 부하에게 틈틈이 뉴스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어느덧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고 인질들과 테러범들은 카페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 멀대가 사살됐다는 뉴스가 떴다. 봉일은 임무에 실패한 탐정이 무슨 짓을 꾸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인질과 교환할 수 있는 멀대가 없으니 틀림없이 무력 진압을 해올 것이다. 봉일은 카페가 인질극을 벌이기 부적절한 곳임을 알았다. 외벽이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 움직임을 읽기가 쉬운 것이다. 바이러스를 도시에 퍼트린다는 협박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재건에게 한 말은 허세였다. 바이러스는 연구소와 봉일의 품 안에만 있다. 그것은 ‘그들’이 지시한 바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빨리 이곳을 떠야 한다. 멀대가 죽은 이상 더 머물 필요도 없었다.

  봉일은 부하 하나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나머지 부하들에게는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봉일은 선예가 갇힌 부엌으로 가 보았다. 떠나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선예는 깨어 있었다. 선예는 봉일을 보더니 말했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나만 이렇게 홀로 가둬놓다니. 심심해 미치는 줄 알았다고요.”

  봉일은 여전히 선예가 미웠다. 하지만 봉일은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하지만 선예는 봉일이 미처 묻기도 전에 무언가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요! 인질들이랑 납치범들이랑 아무것도 안 먹었죠? 아니, 납치범 아저씨들은 케익 같은 거 다 집어먹었을라나? 아무튼 감금이든 뭐든 먹으면서 하자구요.”

  선예가 내민 것은 한 쟁반 가득 담긴 샌드위치였다. 밤새 부엌의 식재료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봉일은 멍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려 했다.

  그때 유리가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가 들리고 짤막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봉일은 재빨리 선예를 끌어당겼다. 선예를 붙들고 뒷문으로 달려가려 했다. 완전 무장을 한 진압 대원들은 뒷문으로도 들어왔다.

  봉일은 칼을 선예의 목에 대고 벽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는 품에서 바이러스 캡슐을 꺼내들었다.

  “이 안에는 바이러스가 들었다. 날 쏘면, 이, 모두 죽는다.”

  그러며 뚜껑을 열었다. 진압 대원들은 뒤로 물러섰다.

  봉일은 선예를 잡아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경찰의 포위는 상당히 견고했다. 하지만 캡슐을 위협하듯 흔들자 다들 길을 터줬다.

  차도로 뛰어들어 멈춰선 차에 올라탔다. 경찰차가 곧 추격해 왔다. 봉일은 운전사에게 칼을 들이대며 무작정 달리라고 말했다.

  “으앙. 샌드위치 다 버렸잖아요. 밤새 어렵게 만들었는데!”

  “시, 시끄러!”

  봉일은 인도에 나 있는 지하철 역 입구를 보았다. 운전자에게 지하철 안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

  “지하철이라니! 어쩌자는 거예욧!”

  선예가 소리쳤다. 봉일은 선예를 무시하고 재차 운전자를 협박했다. 운전자는 벌벌 떨면서 지하철 계단으로 돌진했다. 당황한 경찰은 그대로 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

  난데없는 자동차의 출현에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차는 개찰구 앞까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달려갔다. 멈춰 서자 봉일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선예를 흘끗 보더니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예도 차에서 내려섰다.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허망하게 앉아있던 운전자와 눈을 마주쳤다. 선예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돌아섰다. 카페로 돌아가기로 했다. 경찰들이 뒤늦게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경찰에게 붙들렸다가는 시간을 더 지체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선예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8.



  소희가 봉사원에 도착하니 이미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소희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회원들은 소희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이미 회의는 말다툼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소희는 불편하게 회원들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에서 말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회장님이 아이 관리를 잘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이걸 왜 내 책임으로 모는 거예요. 난 할 만큼 다 했어요, 제 발로 걸어 나간 걸 어떡해요.”

  “애를 안방에 두고 잘 자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애는 안방에 있었어요. 왜 속단하고 그래요. 밤중에 다들 자고 있는데 나간 걸 낸들 어쩌라고.”

  “문단속은 잘 했어요?”

  “당연히 했죠. 우리 집인데 설마 안 하겠어요?”

  “문 자물쇠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고장 난 게 아닌가 업체를 부르긴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문제가 있었다면 업체 잘못이니까. 그쪽에도 단단히 따져야지요.”

  “고장 난 게 아니라면 문단속을 잘못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죠.”

  “문은 잘 잠갔다니까 그래요. 업체가 와서 확인해줄 거예요.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본인이 잠갔다고 생각하더라도 기계가 잘못되거나 버튼이 다 안 눌리거나 하면 잘못될 수 있어요. 어쨌든 꼼꼼히 확인 안 한 책임은 있는 거죠.”

  “자꾸 나한테 책임 있다는 듯이 말하는데 지금 중요한 건 아이를 찾는 것 아니겠어요? 빨리 애를 찾을 방안을 모색해야죠. 이렇게 시간만 자꾸 흐르잖아요.”

  회장은 침을 튀겨가며 강변했다. 그들은 이제껏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회장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던 회의의 흐름이 잠시 끊겼다.

  소희는 그 틈에 말했다.

  “저기, 늦어서 죄송한데요. 경찰은 뭐라고 하던가요?”

  회장은 말했다.

  “아직 신고는 안 했어요. 아침에 온 동네를 회원들이 직접 찾아보다가 지금 회의를 시작한 거예요.”

  “네에? 신고를 하는 게 우선 아닌가요? 경찰에 미아가 접수됐을지도 모르잖아요.”

  “미아 확인은 해봤어. 그리고 승연 씨. 적십자가 애를 잃어버렸다고 말이 나오면 우린 몹시 피곤해져. 안 그래도 적십자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데 말야.”

  다른 누가 말했다.

  “그래도…….”

  말을 흐리자 회장이 말했다.

  “승연 씨. 늦었으면 이미 결정 난 사안에 따라 줘야 하는 것 아냐?”

  “늦은 건 죄송해요. 중요한 문제로 어디 가있던 바람에…… 하지만…….”

  회장은 말을 끊고 말했다.

  “그것만 해도 그래. 승연 씨가 어제 의사한테 물어본다고 해서 회의가 거기서 중단됐는데 승연 씨는 아무 결과도 말해주지 않고 볼일 보러 가버렸어. 따지고 보면 승연 씨 책임도 있는 거 아냐?”

  다른 회원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러겠다고 해서 모든 회의를 중단하는 게 어딨어요. 그리고 지금은 경찰에 신고하는 게 우선순위예요. 아이부터 찾고 봐야 하잖아요.”

  “말 돌리는 것 좀 봐. 승연 씨는 할 말 없는 거야. 승연 씨가 일을 확실히 마무리 지어봤어 봐.”

  소희도 딴에는 의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재건을 만나려 했던 것이다. 일이 잘못된 것은 예기치 못했을 뿐이다. 소희가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감정이 압력솥처럼 뿜어져 나오려 했다. 소희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회장은 그 모습을 그저 변명하려는 것으로만 보았다. 젊은 신참을 따끔하게 혼내기 위해서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야 하는 건 승연 씨야. 혼자 볼일 보러 가지 않았어봐. 이렇게 뒤늦게 뭐라 하진 않았을 거 아냐.”

  소희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참기만 했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줄줄 흘러내렸다.

  “아니, 왜 울고 그래?”

  사람들은 영문을 알지 못해 술렁였다.

  코를 훌쩍이고 딸꾹질 해가며 어떻게든 눈물을 막아보려 했던 소희는 결국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뭘 안다고 그래요! 나는, 지금, 동생이, 동생이 위험한데도, 그런데도 동생을 맡기고 여기로 달려왔는데, 동생은. 동생은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난 동생을, 으아앙…….”

  소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당황한 봉사대원들은 소리를 죽였다.

  소희는 눈물을 닦으며 복도에 서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번 감정이며 가슴 아픈 기억이 복받쳐 오르자 댐에 구멍이 생긴 것처럼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소희는 그저 담아두고만 있었다. 얇은 제방으로, 금가고 여기저기 간신히 기워낸 빈약한 벽으로 슬픔이나 두려움 따위를 가둬놓기만 하고 있었다. 소희는 손수건이 완전히 젖어 축 늘어질 때까지 한없이 울었다.

  소희가 훌쩍이며 눈물을 닦는 모습은 반투명한 유리벽에 비춰서 회의실 안 모두에게 보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살펴주러 나가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승연에게 동생이 있었어? 대체 무슨 일이래? 하는 등 수군대기만 할 뿐이었다.

  소희는 복도 끝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황급히 눈물을 마저 닦고 그를 지나쳐 나가려 했다. 서 있던 사내는 소희를 붙들었다. 소희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지만 바로 기억나지는 않았다. 소희는 정신이 없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사내는 소희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무슨 일 있나요? 이걸로 닦으세요.”

  소희는 고개를 끄덕 하고는 손수건을 받았다.

  “승연 씨.”

  사내는 말했다. 소희는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소희의 가명을 안다면 분명 이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소희는 여전히 그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름을 물으려 하던 소희는 그의 옷차림을 보고 알아챘다. 바로 어제 본 옷이었다.

  “아, 어제 가스점검 오셨던…….”

  “네. 기억하시는군요.”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가스 점검원, 구세윤이었다. 어제 본 얼굴을 왜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까 소희는 생각했다.

  “제가 얼굴을 아는 분이 이렇게 울고 계시면 저도 슬퍼집니다.”

  세윤은 말했다.

  “아, 사정은 알지 못하고, 또 속 푸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너무 서럽게 우셔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했습니다. 괜찮으신 건가요? 상대할 기분이 아니시라면 저는 사라지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못 볼 걸 보여드렸네요. 봉사원에 볼일이 있으신가요?”

  세윤은 자신의 뒤쪽을 향해 손을 펼쳐보였다.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소희는 아이를 보고 근거 없는 연상 작용에 의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저 아이는? 하고 물었다.

  “봉사원에서 맡아두고 있던 아이라고 들었습니다. 미아를 데리고 있다가 다시 잃어버리셨다죠?”

  그 혹시나 하는 것이었다. 소희는 눈이 동그래져서 세윤을 쳐다봤다. 세윤은 빙긋 웃으며 마저 설명해 주었다.

  “가스 점검을 하다가 오늘 아침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집을 모르는 것 같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죠.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최희자 씨가 데리고 있던 아이라고 말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 봉사 단체에서 맡고 있던 아이라는 것도요.”

  소희는 설명을 채 듣기도 전에 아이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듣던 대로 정신이 불안정한 아이인 듯 했다. 구석에 서있으면서 소희의 눈과 손을 피하고 말을 시켜도 대답하지 못했다.

  “저,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손수 데리고 와 주셔서. 아이가 없어져서 난리가 났었거든요,”

  “당연한 일인걸요. 그 아이가 맞는 거지요?”

  “아, 그건 모르겠네요. 저도 지금 처음 보는 거라. 잠시만요. 회장님한테 확인해볼게요.”

  소희는 회의실로 달려가려 했다. 세윤은 다시 소희를 붙들었다.

  “저는 바로 돌아간 걸로 해주세요. 죄송하지만 설명도 승연 씨가 해주시고요.”

  소희는 그러겠다고 했다.

  회의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언성은 더 높아졌고 사람들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나 보였다. 소희가 아이를 데려가자 회의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소희는 최대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밝아진 분위기를 타고 누군가가 소희의 상태를 물어왔다. 소희는 대답할 기분이 아니라면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세윤은 복도에 없었다.

  소희는 집에 가기 위해 봉사원 밖으로 나갔다. 정문 옆에 서있던 세윤은 지나치는 소희를 불렀다.

  “저, 다시 한 번 봉사원을 대표해서 고맙단 말을 드려요.”

  소희는 말했다.

  “다시 한 번 별 일 아니었다고 말할게요.”

  세윤은 햇살에 더욱 밝아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소희는 그 얼굴을 보고 재건을 떠올렸다. 재건의 웃는 얼굴이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라면 세윤의 얼굴은 모나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그려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소희는 그래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도…….”

  소희는 손수건을 들어 보였다.

  “손수건은 빨아서 드릴게요. 다음에 만날 기회 되면…….”

  “음, 지금 에프터 신청하는 건가요? 난 우는 여자한테 약한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 농담입니다. 손수건은, 뭐, 만날 기회가 있으면 주도록 하고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가지세요.”

  “그래도 어떻게…… 아니면 손수건 값이라도.”

  “이러시지 마세요. 모처럼 숙녀 분의 눈물을 닦아드렸는데 보답을 받는다면 그것도 곤란하죠. 다음 점검 때 꼭 제가 갈 테니 그때 주도록 해요.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소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없이 걷던 세윤은 혼잣말하듯 말했다.

  “아, 하지만 이 일을 그만 둘지도 모르겠네요.”

  “가스점검을요?”

  “가스 점검은 직장에서 하는 일중 하나고요. 그것만 직업으로 삼진 않죠.”

  소희는 멋쩍게 웃었다. 소희는 아직 약간의 흥분상태이기는 하지만 많이 진정되었음을 느꼈다.

세윤은 말했다.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거든요. 아주 흥미로운 일이에요.”

  “무슨 일인데요?”

  “그냥 재밌는 일이라고만 할게요. 사실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세윤은 소희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세윤은 바로 붙여서 말했다.

  “아이는 어디서 발견한 거죠? 어떻게 최희자 씨가 맡게 된 거에요?”

  소희는 설명했다.

  “회장님, 그러니까 최희자 씨 집 앞 재활용 쓰레기 모아둔 데에서 웅크리고 있었대요. 그땐 며칠을 굶었는지 애가 완전히 죽을 것 같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곧바로 집안으로 안고 가 밥부터 먹였대요.”

  세윤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육교가 나오자 세윤이 말했다.

  “승연 씨 집은 길 건너편이죠? 전 이쪽 길에 차를 대놨어요.”

  손가락으로 인도 쪽을 가리킨다.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시고, 또 아이도 찾아주시고.”

  소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요. 하하, 이번 주에 들을 고맙단 말을 승연 씨에게 다 듣겠네요.”

  소희도 살며시 웃었다.

  그들은 한 번 더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세윤은 천천히 걸으며 소희가 육교를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걸음에 속도를 냈다.

  세윤은 아이를 최희자 씨 집으로 데리고 갔었다. 그러나 집은 비어 있었고 이웃 사람으로부터 봉사활동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봉사원에다 맡겨만 두고 올 계획이었다. 봉사원에서는 그 아이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의실로 데려다주는 도중 소희를 만났던 것이다.

  세윤은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 나눈 대화중 곤란한 것은 없었는지, 필요한 얼굴을 보여줬는지. 차에 이를 때까지 생각하던 새윤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오늘 들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향해 짓는 웃음이었다.





9.



  마곤의 공이 컸다. 마곤이 먼저 카페 안으로 침투하여 인질들에게 작전 사항을 전달하고 테러범들 배치를 알아왔기에 즉각적인 진압을 할 수 있었다. 봉일을 놓친 것을 빼면 진압과 구출은 완벽했다. 작전은 봉일이 부엌에서 돌아오면 실행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차를 준비하러 밖으로 나왔던 부하 하나가 경찰을 발견하고 동료에게 연락을 했기에 작전을 속행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 A를 놓친 게 영 아쉽군요.”

  노기욱 요원이 말했다.

  “그래도 부하를 잡았으니 은신처를 알아낼 수 있겠죠?”

  재건이 말했다. 재건과 기욱은 연행되고 있는 범인들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곤은 재건의 차에서 자겠다고 했다. 옷 군데군데가 불타기도 해서 다닐 수 없다고 했다.

  “그리 큰 정보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지만요.”

  “잘 불지 않을 것 같단 얘긴가요?”

  기욱은 아뇨. 하고 말했다. 범인들은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제압당했다. 간단한 심문으로 그들은 평범한 용역 깡패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헬기를 동원하고 서울 시내에서 기관총을 갈겨댈 만한 단체의 조직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들고 있던 총도 봉일이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뭔가 걸려드는 것은 있겠죠. 흐음. 본체는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조종하는 조직이라는 건가요?”

  재건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다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아, 그런데 대통령은 조사해 보셨습니까?”

  “대통령 말이죠…….”

  기욱은 말끝을 흐렸다.

  “재건 씨를 지목한 이유는 그냥 아는 사람을 통해서 재건 씨가 범상치 않은 일을 맡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뒷조사로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고요.”

  “나를 아는 사람이라. 그게 누군지는 말해 주던가요?”

  “대놓고 추궁할 수 없어서, 캐묻지는 못했습니다. 대통령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고만 하고 웃고 넘어갔죠.”

  “대통령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선예가 그들 뒤로 갑자기 나타났다. 기욱은 화들짝 놀라 비틀거렸다.

  “음모의 근원에 대통령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얘기야.”

  재건이 말했다.

  “저기, 그런 말은 함부로…….”

  기욱이 만류하려 했지만 선예가 먼저 말을 끊듯이 재건에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아저씨도 대통령을 조사하는 거예요?”

  “아니. 난 귀찮아서 안 해.”

  “그래요?”

  하고 아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 알 것 같습니다.”

  재건은 느닷없이 말했다.

  “무슨 말입니까?”

  기욱은 물었다. 재건은 놈들이 타고 가려 했던 승합차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은 점차 바보가 된다는 소리를 하죠. 이를테면 계산기 덕분에 암산 능력이 쇠퇴한다는 것이죠.”

  “본론을 말하십시오.”

  “저는 그런 감성에 호소할 뿐인 영양가 없는 경구를 무척 싫어합니다. 이 말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이 바보다 됐다고요? 천만에요. 괜히 머리 아프기만 하고 번거롭기만 한 계산이나 암기를 생략한 대신 사람은 그보다 더 차원 높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네비게이션을 봅시다. 네비게이션 때문에 사람이 길치가 됐다고 하지요. 하지만 길좀 못 찾으면 어떱니까. 길 찾을 수고를 던 대신 오늘 있을 회의 안건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거 아니겠어요?”

  “알았으니까 제발 하려는 말을 해봐요.”

  기욱은 조금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비게이션에 사람이 종속됐다고요.”

  “그러니까 뭐 어쩌라고요.”

  “아하! 그 말은 네비게이션을 쓰는 사람은 네비게이션에 점차 의지하게 되는데 이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달려 있고 여기로 오는 동안 네비게이션을 썼을 것이다. 그러면 길을 찾은 지난 기록이 저기에 남아 있을 거란 말이군요!”

  선예가 말했다. 그러자 기욱이 말했다.

  “저, 저기. 그 말에서 어떻게 그렇게 도출됩니까.”

  재건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기지에서 여기로 올 때 기록을 보면 기지를 찾을 수 있단 거지. 탐정에 소질이 있는걸?”

  “그렇죠? 에헴. 날 조수로 채용하는 건 어때요? 카페가 망가져서 한동안 일 못할 것 같은데.”

  “그럴까? 낮잠만 자는 무능한 사내 녀석만 있는 것보단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화사해지겠는걸.”

  “근로기준법은 지켜 주시는 거죠?”

  둘이 떠드는 것을 기욱이 끊어주었다.

  “네비게이션부터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그들은 네비게이션을 틀었다. 일반적 네비게이션은 가장 퇴근에 찾은 길이 표시된다. 그들은 부팅이 되기를 기다렸다.

  머리 세 개를 창문 안으로 들이밀고 기다리기를 잠시. 그들은 실망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쳇. 내 추리가 틀렸잖아.”

  “아무래도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겠는데요.”

  둘이 투덜대는 새, 형사 하나가 다가왔다.

  “오선예 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사건 조서를 써야 하니 협조 좀 해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다 끝났는데 끌려가셨던 선예 씨만 아직 이라서요.”

  “얼마든지요. 그런데 그거 어디 있던 거예요?”

  선예는 형사가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가리켰다. 내용물이 범벅이 되어 볼품없었다.

  “아, 바닥에 떨어진 것 중 먹을 수 있는 걸 골라 형사들이 먹고 있는데요, 먹어도 되는 거죠?”

  “물론이요! 기껏 만든 건데 아무도 못 먹게 돼서 속상했어요. 그런데 먹어주신다니 제가 다 고맙죠. 어때요. 맛은 괜찮아요?”

  선예는 재잘재잘 떠들며 형사와 사라졌다. 기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문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겠군요.”

  “제가 할 일이 다 떨어진 것 같네요.”

  재건은 말했다.

  “그럼 우린 가 봐도 될까요? 다른 쪽으로 조사해 볼 일이 생각나서요.”

  소희 쪽 일이었다. 그쪽을 아무래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세요. 재건 씨는 원칙상 이 사건과 관련이 없으니, 음, 제가 적당히 소설을 쓰도록 하지요.”

  재건은 차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이리 좀 와 보십시오!”

  차로 가려던 재건까지 그가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다. 경찰과 국정원 요원들이 노트북 주위에 몰려 있었다. 그들은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이었다. 휴대폰으로 찍었을법한 조악한 화질로 어두침침한 화면이 비치고 있었다. 흔들리는 화면으로 간간이 희끄무레한 물체가 잡힌다.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화면에 잡느라 흔들리는 것이었다. 얼굴 윤곽은 곧 뚜렷하게 드러났다. 코가 없고 입이 찢어지고 온통 흉터투성이인, 봉일이었다.

  봉일은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자신을 비추었다. 엄지손가락이 없는 왼손을 들어 보라는 듯이 이리저리 뒤집는다. 갈라진 입 틈새로 혀가 그 틈을 메우는 듯 빨갛게 드러난다. 봉일은 음의 높낮이가 없는 그 특유의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비다. 네가 보는 내 모습은 분장이나 조작이 아니다. 나는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전국에서 발생한 좀비 사건은 모두 내가 일으킨 것이다. 이, 나는 좀비의 왕이다. 나는 위험에 빠졌다.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자들도 나를 버렸다. 이제 나는 벌을 내리겠다. 너희는, 이, 이제까지 바이러스 통제에 성공적이었다 자부하지만, 그건 운이 좋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바이러스를 무작위로 살포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이제까지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살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지하철에 바이러스를 푼다면? 상수도에 바이러스를 푼다면? 내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내 이름을 불러라. 나를 미워하라. 나를 미워하고, 나한테 총을 쏴라. 내 이름을 불러라. 나는 좀비다. 너희가 만든, 나는, 좀비다.”

  동영상은 거기에서 끊겼다. 기욱은 소리쳤다.

  “당장 지하철 운행을 정지하고 동원 가능 인력을 모두 투입해 지하철 철로를 수색해! 놈은 통로 안에 있다!”

  부하 요원들은 바로 움직였다. 재건은 말했다.

  “놈은 버림받은 걸까요? 하지만 동영상을 올려준 부하 몇은 있는 것 같네요. 아니면 이미 밖으로 나와 피시방에라도 갔든가요.”

  “지금 지하철의 CCTV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나왔다면 잡혔을 겁니다. 아직 지하철에 타고 있나 했는데 통로로 걸어 다니고 있었어요.”

  기욱은 정신없이 지시를 내렸다. 근방 지하철역을 봉쇄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언론을 차단하고 정부 각계 부처에 긴급 공문을 보내고 또 이것저것을 해야 한다.

  재건은 쉴 새 없이 명령을 하달하고 연락을 받고 이야기하는 기욱을 잠시 구경하다가 말했다.

  “바쁘신 것 같으니 일단 저는 따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재건은 대답도 듣지 못했다. 재건은 차로 돌아가 마곤을 깨웠다.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봉일은 여전히 지하철 통로에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봉일은 그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그는 버림받았음을 짐작했다. 그들에게는 봉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이 그들과 맺은 계약의 내용이었다. 사실 봉일은 이렇게 될 줄을 짐작하고 있었다. 좀비를 통제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그 사유는 되었다. 거기에 봉일은 독단으로 좀비를 써서 재건을 불러들였고 인질극을 벌였다. 그들이 말해준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봉일은 그들이 눈에 띄는 짓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서 봉일은 사전에 준비를 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무사히 사라지는 방법을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동영상은 작전의 일환이었다. 동영상이 퍼지고 그것이 경찰 손에 들어가면 경찰은 우선 지하철의 시민부터 대피시킬 것이다.

  생각대로 되었다. 성내역에서 정차한 열차의 승객들은 긴급 안내 방송을 듣고 쏟아지듯 내렸다. 역 안의 사람들은 경찰과 역무원의 안내를 받아 지상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큰 불평은 하지 않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하에 모여 있다가는 대책 없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다.

  봉일은 플랫폼으로 올랐고 텅 빈 열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인터폰을 들어 기관사에게 말했다.

  “지하 철로에 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 5초 안에 문을 닫고 출발시키지 않으면 네 발밑에 바이러스를 뿌려주겠다.”

  그러면서 기관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하나, 둘, 셋…….”

  다섯을 다 세기 전에 문이 닫혔다. 기관사는 천천히 열차를 출발시켰다. 겁에 질려 살려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속도를 내. 안 그러면 문틈으로 흘려보내겠다.”

  열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열차 안에는 객실을 점검 중이었던 역무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기관실 칸으로 달려오다가 봉일의 모습을 보고 자빠지고 말았다. 봉일은 칼을 꺼내들고 다가가 목을 그어버렸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2호선은 전 구간 지하로만 다닌다. 하지만 성내역에서 강변역으로 갈 때에는 한강을 건너야 하므로 잠시 지상으로 올라간다. 봉일이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봉일은 다시 인터폰을 들었다.

  “한강 다리 위에서 차를 멈춘다. 그리고 10분 이상 정차한다.”

  그러고 나서 봉일은 수동 레버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바람이 열차 안으로 쏟아진다. 쇳소리와 함께 속력이 주는 것을 느꼈다. 열차는 철교 중간쯤에서 멈춰 섰다.

  봉일은 부하가 준비를 마쳤는지 보았다. 다리 밑에 모터보트 한 대가 떠 있고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부하 한 명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봉일은 충격을 몸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며,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배에 올라 봉일은 타고 있던 사람을 칼로 찌르고 물에 빠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