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구게시판 모음
글 수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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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스는 흑백이 확연히 구분되는 도시였다.
빛과 어둠.
낮과 밤.
낮의 주민은 밤에 간섭하지 않았고 밤의 주민은 낮에 활동하지 않았다.
두 부류는 생활 방식이 너무 달랐다.
밤의 주민은 낮의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낮의 주민이 밤에 생활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낮에는 여느 도시와 다름 없지만 밤에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리는 도시.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도 대립하는 곳.
그 곳이 바로 그림자 도시 아게스(Ag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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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의 부모님들은 낮의 주민이었다. 잘사는 것은 아니였지만 남 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그 덕에 빌리의 어린시절은 풍요롭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졌다.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는...
빌 리는 어느덧 십대로 접어 들었고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는 항상 어머니가 출근하기 전에 옷에있던 열쇠를
훔쳤다. 빌리의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출근해버리고 말았다. 그림자 도시의 집들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
하여 이중, 삼중으로 된 안전장치들을 사용했다. 빌리가 훔친 열쇠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외출을 막는 잠
금장치의 열쇠였다.
밤이되고 부모님들이 잠에들자 빌리는 드디어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저녁 이후론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
라던 부모님들과 선생님의 당부는 그의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본 적이 없던 밤에 대한 호기심.
TV에서 무섭게만 보여주던 '밤'
'와아'
실제로 본 밤은 아름답기만 했다. 낮과는 달리 사람 한 명 없이 적막한 거리. 빌리는 자신만의 세상에 온
듯 흥분하며 밤의 거리를 달렸다..
'아름답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조화를 이루며 빛나는 별들은 아름다웠다.
밤 하늘을 감상하다 문득 암흑의 도시를 보았다. 빌리는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
다. 그가 집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잠옷차림으로 뛰어오는 부모님들이 보였다. 어머니는 빌리를 발견
하고 안도의 한숨을 냈다.
빌리는 어찌할빠 모르는 미소를 지었다가 몹시 화가 난 표정을 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오금을 찔끔 떨었다.
철썩
어머니의 손바닥이 빌리의 뺨을 후려쳤다. 빌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 물이 모여 흘러내리기 직전 빌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강하게 끌어 안는것을 느꼈다. 그러자 참고 있던 눈
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졌다. 어머니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에게 한 소리 해주
려고 했다가 그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큭큭 이거 눈물 나는데?"
빌리가 놀라 눈을 뜨자 눈물때문에 흐릿해진 그의 시야에 여러명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아버지는 제압당해 그들에게 잡혀있었고 나머지 괴한들이 빌리와 어머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잡아오자 반항을 해봤지만 열살박이 아이와 여자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국 빌리의 아
버지와 같은 꼴이 되어 잡히고 말았다.
"벗어"
괴 한의 무리 중 한 명이 나직하게 명령했다. 빌리의 어머니는 표독스런 눈으로 그를 째려보며 입고 있던
잠옷을 벗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들의 말을 듣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괴한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줌마 말고 그쪽 남편."
빌리의 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이 되더니 잠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와 같은 생각이었다.
어느새 속옷만 걸친 아버지를 보자 빌리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어? 이것 보게?"
그 괴한이 빌리의 아랫도리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결코 이런것이 아니었지만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이거 쪽만 주려고 했는데 재미있는게 생각났어, 놔 줘."
빌리를 잡고있던 괴한들이 그를 놓아주자 그는 흐느적흐느적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의 앞에 도착한 그는 멍한 표정으로 바지를 벗고, 팬티마저 벗었다. 멍한 표정이었지만 눈만은 마수
의 그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성을 잃어갔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짐작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불렀다.
"아...안 된다 빌리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서야 왜 친구들이 가져온 야시시한 사진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쓰걱
"이. 이놈들!!!"
아버지는 자신들 부자의 모습을 마치 재미있는 서커스라도 보는 듯 보는 놈들에게 소리쳤지만 그들은 낄낄
대기만 했을 뿐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빌리의 몸이 때로는 느긋한 선비처럼, 때로는 성난 황소처럼 움직였다.
마침내 빌리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아버지에게서 몸을 띠어내었다.
아버지는 얼굴을 땅에 쳐박은채 고통스럽운 표정을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역겨운 괴물을 보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래? 빌리는 자신의 부모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 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낮의 주민이 될 수 없다. 우리와 함께하자"
빌리는 그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괴한들이 칼로 자신의 부모들을 찌르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는 슬픔이란 것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빌리는 그 무리와 같이 생활했고 밤의 주민이 되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은 매우 행복했다. 그들은
본능에 충실했고, 자신은 그것이 좋았다. 그들과 생활한지 십년, 빌리는 스무살이 되었다.
"이 봐, 빌리"
친구인 홍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깨닫고 빌리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앙?"
"우리 재미있는거 하러가지 않을래?"
"...재미있는거?
친구의 말에 빌리는 잠시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때가 되면 알겠지.'란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아"
빌리가 웃으며 대답하자 홍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묘한 홍조를 띄우며 미소를 지었다. 빌리도 그것을 보았지
만 불쾌하진 않았다. 조직내에서도 자신과는 취향이 맞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럴 줄 알았어, 따라와봐"
홍이 조직아지트에서 나가려는 듯 문을 향해서 가자 빌리는 당황하며 말했다.
"홍, 우리끼리 나가면 안된다는 것을 잊었어? 너무 위험해."
나름 다부진 체격의 빌리도 혼자선 밖에 나가기 두려울 정도로 소수의 인물이 나다니기엔 아게스의 밤은 너
무나 위험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뒤를 돌아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더 재미있는거 아니겠어?"
빌리는 피식 웃으며 이미 아지트 밖으로 나간 홍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홍을 따라간 빌리는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다. 달빛을 제외하곤 빛이 없었기에 골목은 매우 어두컴컴
했다. 홍이 자신을 보며 요염한 몸짓을 하는것이 보였다. 빌리도 자신의 몸이 잔뜩 달아오른 것을 느끼며 홍
에게 다가갔다.
그 런데 원래부터 홍이 없었던 것처럼 홍의 모습이 빌리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빌리는 흠칫 놀라
며 주위를 살펴보다가 자기 발 밑에 팔이 꺾인채 거품을 물고 널부러져 있는 홍을 발견했다. 크게 놀란 빌리
는 홍을 깨우기 위해서 손길을 뻗었는데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다가오
고 있다는 것을 안 빌리는급히 손을 거두며 미지의 두려움에 한차례 몸을 떨더니 뒤로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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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솟은 빌딩 사이로 내려와 어두운 밤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달빛을 제외하곤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에
작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로 바뀌었다.
"허억, 허억"
그 숨소리의 주인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눈은 불안함으로 가득 차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고, 입에선 단내가 날 정도로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톡
달릴때마다 그의 이마에 맺혀있던 땀은 볼을타고 턱으로. 그리고 턱에서 방울 방울 맺혀 땅으로 떨어졌다.
그 는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초조한 얼굴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목이 꺾이진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고
개를 뒤로 홱 돌리자 얼굴에 맺힌 땀방울들이 밤거리에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전
신에 돋은 소름은 가라앉을줄을 몰랐다. 그는 바로 홍을 친구로 둔 밤의 주민 빌리였다.
'걸리면 뒈진다!'
빌리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달렸다. 그 때!
꽈당
빌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뒤로 돌리다 그만 균형을 잃고 거리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다 큰 남자가 달리다가
엎어지다니, 우스운 꼴이었지만 그가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얼마인지 안다면 웃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읅-"
그는 한차례 신음을 지르다 금새 입을 다물었다.
안그래도 사나워 보이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자 마치 악귀같이 보였다.
무릎은 까져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비칠비칠 일어서더니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길이 끝나고 그의 눈 앞에 주택가가 들어왔다.
그는 찰나의 지체도 없이 바로 앞의 집으로 달려갔다.
한계에 부닥친 체력때문에 균형감각조차 유지하기 힘든지 잠시 비틀거리기까지 했지만 젖먹던 힘까지 내어
서 다시 똑바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문 앞에 도착했다.
"허억....헠...도와줘!!"
그는 문 앞에 서자마자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고요한 밤거리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심지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 집의 문은 총알조차 통과하지 못 할 것 같은 두꺼운 철문이었다.
"씨발!! 이런 젠장!!
습관적으로 욕을하며 철문을 발로 차고 다른 곳 을 향해 뛰어갔다.
포기가 빠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의 주택엔 하나같이 창문이 없을 것이고 주민들이 문을 열어줄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시도해 봤을 정도로 그는 필사적이었다.
헉헉대며 달려갔지만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결국 휘청거리다 다시 한 번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이마를 바닥에 찧은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한번 슥 닥아보더니 끈적한 피가 묻어있자
속으로 욕을 한 뒤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마비된 듯 일으킬 수가 없었다.
거대한 공포가 그의 몸을 옥죄이고 있었다.
이토록 도망쳤지만 결국 달아나지 못하였다.
자신을 갖고 놀기 위해 일부러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상대는 두려움에 몸부림
치는 자신을 보며 즐거웠을까?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존재!
처음 본 것이지만 지금 그는 그 존재의 존재감을 확실히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땀으로, 피로 범벅된 얼굴에 다시 한 줄의 식은땀이 볼을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엎어진채로 천천히 고갤 들어 떨리는 눈동자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 것의 주위는 기이하게 일렁이고 있었고 그것은 검은 연기를 뿜고 있었다. 그는 이 존재에 대한 언질을 들
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수차례에 걸쳐서. 아게스의 밤에 거주하는 공포의 제왕들.
그림자의 주인. 밤의 왕. 그들을 칭하는 여러개의 칭호들.
"그림자의 주인..."
빌리의 의지완 상관없이 턱이 덜덜 떨려왔고 딸딸거리며 이와 이가 마주치는 소리가 났다.그는 엎드린채로
품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칼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순식간에 일어나서 연기를 향해 칼을 찔러넣었다.
검은 연기에서 불쑥 하나의 팔이 나오더니 칼을 쥔 그의 팔꿈치를 바깥에서 잡았다.
퍼석
연기의 손에 잡힌 순간 그의 팔은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으아악!!!!!!!!!!!"
조용하던 거리는 비명소리로 울렸다.
연기가 손을 휘두르며 잡고있던 그의 팔을 던지듯이 놓자 빌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절망감에 몸의 힘이 다빠져서 이젠 팔을 들 힘도 남지 않았다.
검은 연기는 스믈스믈 집중되더니 사람보다 거대한 검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사...살려줘...살려줘... 살려줘!!"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고슴도치를 향해 절규를 하며 사정했다.
하지만 고슴도치에게선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사자만한 크기의 검은 고슴도치라니? 가공할만큼 공포스러웠다.
고슴도치의 몸이 폭사되며 그를 향해 덮쳐갔다.
빌리는 눈을 부릅뜬채로 그 가공할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도시 아게스의 공허한 밤거리에 비명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비명이 끊어진 거리. 어느새 고슴도치는 사라지고 전신에 어둠을 두른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숨이 끊어진 빌리의 바지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한 마디를 던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변태새끼"
몽상가 사이노스 자놀(Cinos Zanol)
그는 그림자 도시 아게스의 밤을 지배하는 밤의 제왕들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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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시골
그 곳에 유일하게 존재하던 나무로 된 집이 불길에 휩싸여 타고 있었다.
화르르륵
소 년은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확실히 이 집의 주인인 그는 열 세살의 소년
이 싸우기엔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결국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 것은 상대방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뜻했
다.
흐어어억!
소년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가슴을 손으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던 고통이 아닌 차원이 다른 엄청난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고통이 이 정도일 줄 알
았다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년은 웅크린 자세로 입을 떡 벌렸으나 목에 무엇이 걸린 듯, 비명
이 나오지 않았다. 온 몸의 솜털이 단단한 가시가 되어 솓구쳤다. 아마도 무방비 상태에서의 자기방어일 것
이다. 소년은 어쩌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자 오히려 고통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그 때 백발의 노인이 소년의 곁으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천천히 걷는 것 같았는데 그는 어느새 소년의 곁에
서있었다.
"허허 일그러짐이 느껴지길래 와봤더니 쯧쯧... 강한 힘이라면 그만큼의 댓가가 필요한 법. 어찌 그리 무식
하게 힘을 썼느냐?"
소년은 노인을 쳐다보았을뿐 대답이 없었다. 아니, 목이 막혀 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소년의 몸에 난 가시는 매우 날카로워서 노인의 손을 뚫었지만 노인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의 가시는 다시 털이 되었고 목구멍이 뚫렸는지 거친 숨소리도 났다. 노인은 그제서
야 손을 떼면서 말했다.
"한 번 터진 둑은 회복하기 쉽지 않은 법이거늘. 수행을 쌓는다면 나름대도 회복할 수 있겠구나. 어떠냐 한
번 따라 와보겠느냐?"
소년은 갈 곳도,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볼 것도 없이 머리를 세차게 끄덕였다.
"내 이름은 셸컨크다. 앞으론 스승님이라 부르거라. 너의 이름은?"
노인은 주름가득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이노스. 사이노스입니다. 스승님"
소년은 스승의 손을 마주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산 뒤로 보이는 밤하늘에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
사이노스와 셸컨크는 손을잡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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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노스 자놀
그의 아버지는 퇴물 히어로였다.
아버지는 악당에게 오른쪽 팔을 잃고 은퇴한 뒤 어머니와 사이노스를 낳았다. 그는 매일 술에 쩔어 살았다.
사이노스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게 싫었다. 자신에게는 한 마디도 걸어주지 않고 무시하는게 모두 술 탓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궁금해 어머니에게 물었을때 어머니는 그저 슬픈 미소만
지었다.
사이노스가 세 살이 되던 해 농사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온 사이노스의 어머니는 그의 남편이 근처 마을
농부의 딸과 함께 자신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농부의 딸은 쾌락에 빠져 신음을 내며 사이노
스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 눈에는 미안함 따윈 한 점 없고 비웃음만이 가득했다.
순간 사이노스의 어머니는 이성을 잃었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모두 가시가 되어 사방으로 뻗었다. 어머니
가 그저 노려보고 있었을 뿐인데 농부의 딸은 반항도 못해보고 숨이 막혀 죽었다. 사이노스는 그 때 어머니
에게는 남에게 환영을 보여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밑에 깔린 여인에게서 숨가쁜 신음이 나오지 않자 사이노스의 아버지는 그제야 문 앞에 서 있는 자
신의 부인을 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를 구타했다. 그 날 부터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머니를 구타했다.
'네 년만 아니었으면.' 그의 아버지가 매일 반복하던 말이었다.
사이노스는 집 구석에 숨어서 덜덜 떨며 그 모든것을 지켜보았다.
아름답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아 피폐해져갔다. 결국 사이노스가 여덟살 때 기침이 심해지더니 숨을 거
두었다.
어느 날 사이노스는 자신에게 어머니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하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매일같이 농사일을 하며 아버지의 술을 사기 위해 방문
하는 마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그리고 열 세살이 되어 능력을 자유롭게 발동시킬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가 즐겨마시는 드라이진
(Dry gin. 주니퍼베리가 들어간 조악한 냄새가 나는 저렴한 가격의 증류주)에 마을에서 구한 수면제를 가득
부었다.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술을 따라 들이키려고 하였다. 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만큼 사이노스는 긴장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사이노스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 안의 술을 뱉어냈고 하나 남은 손을 목구
멍에 쳐박아 뱃 속의 내용물 까지 모두 게워내고 사이노스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보자 사이노스는 오금이
저렸다. 사이노스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잠들었을 때 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능력을 단련해
왔고 이제 그 능력으로만 싸워야 했다.
결심을 한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태어나게 만들어 준 남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이노스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오른팔에 깃든 귀신의 힘을 이용해 적들과
싸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잃고 결국 은퇴하지 않았던가. 나는 반드시 이겨서 이 악마를 물리칠 것이
다. 사이노스는 그렇게 다짐했다.
사이노스는 기세 싸움에서 먼저 이기기 위해 자기를 악마화 하는 환영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은 붕 떳고 아버지의 왼손에 머리가 잡혀 땅에 쳐박히고 있었다.
쾅
한 차례 폭음이 있었다. 사이노스는 골이 울리는 엄청난 충격에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가 움직이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상상하던 수준이 아니었
다. 능력이 없다고해도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모습. 사이노스는 절망에 빠졌다.
'오늘은 포기다. 목숨부터 부지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
사이노스가 그냥 다물고 있자 아버지는 상대하기도 귀찮은 듯, 별 다른 위해를 가해오지 않았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아버지는 다시 탁자에 앉아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별로 화가 나지 않은 듯 했다. 언젠간 이런날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떤 것을 보고 설마?란 생각을 가졌다.
아버지는 그대로 독한 진을 원샷하고 있었다. 사이노스의 눈은 섬뜩하게 빛났다. 저것은 아까 그 수면제를
탄 술이 아닌가?
"어?"
보통 수면제와는 차원이 다른 잠기가 쏟아질 것이다. 지금!
쿵
어이없게도 습관적으로 독하디 독한 수면제가 가득 든 술을 마신 아버지는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끼며 의자
째로 뒤로 넘어가며 대자로 퍼졌다.
어쨋든 원했던대로 되자 방에 돌아다니던 포크를 주어 손에 꽉 쥐었다. 함정이 아닐지 생각해봤지만 얻는것
도 없을 함정을 아버지가 왜 파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 어쩌면 최후의 기회일지 몰랐다. 그는 긴
장을 풀지 않으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픽
그가 힘을주며 포크를 내리꽂자 예상외로 아무 저항 없이 손 쉽게 박혔다. 포크가 꽂히자마자 손을 놓고 뒤
로 물러났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포크는 아버지의 심장에 아주 깊숙히 박혔다. 인간의 심장에 포크가 이렇게 쉽게 박히다니? 아버지가 히어
로시절 악당에게 당해 가슴뼈들이 모두 산산조각나서 다시는 붙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던 사이노스는 갖고 있
던 의혹만 더 증폭되어갔다.
그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의 몸은 한 차례 꿈틀대기만 할 뿐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뛰어가서 포크를
빼들었고 다시 찍고, 빼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아버지의 몸이 축 늘어져 숨이 끊어졌을 때.
그는 상쾌함이 아닌 허무함을 느꼈다. 하지만 슬픔이나 찝찝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사이노스는 능력을 개방해서 아버지에게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몸은 서서히 가루가 되어 공기중으
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헉.허억"
마침내 아버지란 존재가 모두 사라지자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엄청난 집중력
이 필요했다.
숨을 고르고 집을 나가기 전 집 안의 술을 모두 깬 뒤 집에다 뿌렸다. 그리고 탁자위에 있던 성냥을 집어
불을 붙인 뒤 땅에다가 던졌다.
그러고는 미련없이 발을 돌려 문을 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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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컨크가 사이노스를 데리고 간 곳엔 엄청난 숫자의 들쥐들이 들을 뒤덮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숫자의 쥐
가 나왔을까?
"넌 이 들쥐떼를 잡을 수 있겠느냐?"
셸컨크의 물음에 사이노스를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 쥐만 잡아도 이만한 숫자의 쥐를 다 잡을
순 없을 것 같았다.
"모두 잡아라."
그는 사이노스의 대답따윈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근처 나무 그늘에 가서 주저앉았다. 그런 스승의 모습을
보자 사이노스는 오히려 호승심이 끌어올랐다.
'해주마. 해주고 말겠다 영감쟁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들쥐들을 지켜본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들쥐떼는 족
히 수만마리는 넘는 것 같았다. 스승은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킨 것일까? 맨손으로 떼려잡으라고
시킨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 때 그는 굶어죽은 하나의 들쥐 시체를 두고 여러 들쥐들이 싸우면서 먹어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시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거다!'
그는 들쥐 한 마리에게 자신의 능력이 통하는지 시험해보았다. 사이노스가 노려본 들쥐는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동물에게도 자신의 능력이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혀 힘들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세시간 뒤, 사이노스는 들쥐를 발로 짜부려트렸다. 들판 위는 모두 들쥐의 시체들로 가득찼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무 그늘에서 쉬고있는 사부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를 보던 셸컨크의 눈에는 한 차례 기광이 스쳐갔다.
"그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수를 상대하는데는 내분만한 것이 없지."
사이노스는 들판 거의 모든 들쥐에게 환영을 보여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먹음직한 먹이로 보이도록.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중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착각하여 서로가 서로를 물고 싸웠다. 수만 마
리의 들쥐떼들은 순식간에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몇 마리 남지 않은 쥐들은 자신이 직접 처리했다.
"저런 것들은 으레히 숫자만 믿고 절대로 대가리를 굽히지 않는법이다. 몇 놈을 잡아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덤벼들지. 그리고 그렇게 덤벼들다보면 끝이 없게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인간이라도 그들을 쉽게 제압할 순
없을 것이다."
사이노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셸컨크가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다수를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
이노스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 사이노스에게 싸움방법, 전술, 능력의 제어 방법등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가르쳐주던
셸컨크는 자신의 명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쿨럭쿨럭
셸컨크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가래가 끓는 듯한 심한 기침과 함께 한 웅큼의 피가 같이 나와 자신의
손을 적셨다. 아직 가르쳐주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스스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으리라. 셸컨크는
이제 지친몸을 달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피가 흐르는 주먹을 굳게 쥐었다.
"사이노스야 옛날에는 사람들이 인륜을 지키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사이노스는 셸컨크의 앞에 마주앉아 스승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다 자라서 소년의 티를
벗어버렸으며 울그락 불그락했다. 셸컨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인륜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세상은 싸움과 살육이 난무하고 있다. 너는 그들을 제압하는
검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승님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투쟁과, 정복
욕, 성욕, 식욕, 번식욕 같은 인간의 본능을 왜 참아야 합니까? 이것이 신이 만들어 준 인간의 본질이 아닌
것인가요?"
셸컨크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괜히 남에게 강요해야할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만 가보거라. 앞으로 너의 인생은 너에게 달려있다."
사이노스는 스승에게 목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이제 자신의 제자는 다 자라서 세상에 나갈 것이다. 그 것이
인류에게 무엇이 될지는 스승인 자신도, 사이노스 그 자신도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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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노스는 걷고 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 앞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히어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내뱉은 나직한 중얼거림은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사이노스는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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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