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quigon.egloos.com/4817176 에 포스팅된 글을 원문 그대로 담아왔습니다. 일부 작품 내용 정리는 엠파스 백과사전을 참고하였습니다.

  Thomas Mann
(6 June 1875 – 12 August 1955)


영자료를 번역했는데 원자료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임헌영 선생님의 문학 강좌에서 사용되는 자료입니다만, 원문 대조를 해보니 위키쪽 자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부분부분 소설에 대한 백과사전 자료를 간단히 정리해 붙여 첨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생애


   1875년 6월 6일. 토마스 만은 독일인으로서, (상원의원이자 곡물 상인이었던)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과 아내 쥴리아 다 실바 브룬스의 차남으로 뤼벡에서 태어났다. (쥴리아는 부분적으로 게르만 혈통을 갖고 있는 브라질인으로 일곱 살에 독일로 이민을 왔다.)

그의 어머니는 로마 카톨릭 교도였으나, 만은 아버지 루터파 신앙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

(자서전 : 난 1875년 6월 6일 뤼벡에서 자유 도시의 상인이자 상원의원이었던 요한 하인리히 만과 쥴리아 다 실바 브룬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뤼벡 시민의 혈통이었지만, 어머니는 리오 드 자네이로에서 독일인 농장주와 포르투갈-원주민 혼혈 사이에서 딸로 태어나셨다. 어머니는 일곱 살에 독일로 건너오셨다.)


1891(16세). 만의 아버지가 별세했고 그의 무역 회사는 도산하였다.

1892(17세). 가족은 그 뒤 뮌헨으로 이주했다. 만은 뤼벡의 김나지움에서 과학반에 출석했고 그 후에는 뮌헨 대학과 뮌헨의 기술 대학에서 시간을 보내며 저널리즘 경력을 준비했다. 그는 역사와 경제, 미술사, 문학을 공부했다.

1894(19세). 토마스는 남부 독일 화재보험사에서 근무를 했다.

1896(20세). 형 하인리히와 로마. 팔레스티나 여행.

1897-99. 여러 단편소설 발표.

1900(25세). 10월, 지원병으로 바이에른 보병 친위 연대에 입대, 12월 병역 부적격자로 제대.

1901(26세).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9세기 유럽의 사실주의 전통에 입각한 소설로, 당시 대(大)부르주아 출신의 4세대에 걸친 가문의 번창과 몰락을 통해 독일 시민계급의 발전과정을 비판적으로 제시한 시대적 연대기이자 결산물이다.


1903(28세). (트리스탄),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 크뢰거) 예술가의 길을 걷는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가 마음속에 품은 정신적 자아와 무의식의 삶, 건강한 시민에 대한 동경 따위로 고민하며 인식의 깊이를 더하여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소설집 《트리스탄(Tristan)》에 수록되어 있다. 1903년에 발표하였다.

1905(30세). 전통적인 엘리트 유대 가문의 딸인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혼인 하였다. 그들은 여섯 아이를 가졌다.

(자서전 : 1905년 난 뮌헨 대학의 수학과 학장인 알프레드 프링스하임의 딸과 혼인했다. 그녀의 모친은 널리 알려진 베를린의 저널리스트 언스트와 그의 아내인 헤드윅 돔의 증손녀로 두 사람은 독일 여성 해방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하여 여섯 아이를 가졌고, 세 딸과 세 아들이 있었다. 장녀는 연극계로, 장남은 스스로 문학계에 투신했다.)

1912(37세). 1975년 만의 일기가 공개되어, 그의 성적 투쟁을 알렸고, 14세의 폴란드 소년 타지오에 대한 아센바흐의 강박을 다룬 작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12)을 통해 가장 현저히 반영되었다. 길버트 어데어의 작품 ‘진짜 타지오(The Real Tazio)’는 1911년 여름, 토마스 만이 아내, 동생과 베네치아의 Grand Hôtel des Bains에 머물며 만난 블라디스와프 모이스라는 11세 폴란드 소년의 순결한 모습에 심취했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14(39세). 9월 제1차대전 발발. 1차 세계대전동안 만은 황제 빌헬름 2세의 보수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를 비난했다.

1915(40세). <프레드릭과 위대한 동맹 Frederick and the Great Coalition (Friedrich und die große Koalition)>.

1918(43세). <<비정치적 인류에 대한 숙고 Reflections of an Unpolitical Man (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


1922(47세). <<독일 공화정 The German Republic (Von deutscher Republik)>>. 그는 또한 1922년 10월 13일에 베를린에서 베토벤홀에서 강연을 가졌고, 노발리스(독일의 시인)와 왈트 휘트먼(미국의 시인, 소설가)의 광범위한 폐쇄적 독서를 기반으로 공화정에 대한 괴벽스런 믿음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로부터 그의 정치적 관점은 차츰 좌파적 자유주의와 민주적 원칙으로 옮겨갔다.

 

1923(48세). <<독일 공화정 Von Deutscher Republik>> (1923)에서, 만은 독일의 지식인이 새로운 바이마르 공화정을 지원하도록 촉구했다.


1924(49세).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 (Der Zauberberg>>

(마의 산 : 스위스의 한 폐결핵 요양소를 무대로 하여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내적으로 열병을 앓고 있는 서구의 정신상황과 시대의 문제를 풍부한 성찰과 반어로써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연금술적·신화적 요소 등을 도입한 상징적이고 정교한 구성으로 20세기 소설 양식의 발전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발표되자마자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의학계의 비난과 소설 이론상의 이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29(54세). 주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Buddenbrooks>> (1901),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 (Der Zauberberg)>> (1924)과 여러 단편작품들의 대중적 성취를 인정받아,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엄밀히, 위원회의 개인적 취향에 영향을 받았으며, 부덴브로크가만이 명백히 언급되었다.) 만 자신의 가족에 기초한 Buddenbrooks는 삼대에 거친 뤼벡의 상인 가문의 몰락과 연관이 되어 있다.

만은 시골에 리투아니아, 크로니안 모래톱 위의 (리투아니아) 니든의 어촌에 작은 집을 지었다. 그곳은 독일 예술의 거류지였으며, 1930~32년의 여름동안 <<요셉과 그 형제들>>을 저작했다. 그 작은 집은 현재 작은 기념관으로 그에게 헌정되어 있다.


1930(55세). 만은 베를린에서 공중에게 “근거에 호소함”이라 이름지어진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강하게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을 비판했고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독려했다. 그는 이어 많은 에세이와 문학작품으로 나치를 공격했다. 동시에 그는 사회주의 이상에 대해 점차 동조하게 되었다.


1933(58세). 나치가 권력을 쥐자 만과 그의 아내는 스위스로 휴양차 떠났다. 그의 집요한 나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 클라우스는 그에게 독일로 귀국하지 말라 일렀고, 만은 스위스 취리히 인근의 퀴스나흐트로 이주했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책은 그의 동생 하인리히와 그의 아들 클라우스의 저작과는 달리, 1933년 5월 히틀러 정권에 의해 분서된 책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문학적인 소설 저작 활동이 1929년까지 이뤄졌기 때문인 듯 하다.


1936(61세). 마침내 나치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다.

1937(62세). <<자유의 문제The Problem of Freedom (Das Problem der Freiheit)>>

1938(63세). 미국으로 옮겨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하다.

<<민주주의의 승리의 도래 The Coming Victory of Democracy>>

1939(64세). <<바이마르의 로테 Lotte in Weimar>>, 만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1774)의 세계로 돌아왔다.


1942(67세). 만은 정기적으로 캘리포티아에서 반나치 방송을 제작했다. (이 방송은 BBC를 통해 독일로 전파되었다.) 각 방송은 “독일의 청취자들이여!”로 시작됐다.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대서양 연안으로 이주해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943(68세). 그의 가장 위대한 저작 <<요셉과 그 형제들 Joseph and His Brothers (Joseph und seine Brüder>> 4부작이 완성되다. tetralogy, 1933년 The Tales of Jacob 야곱의 이야기(Die Geschichten Jaakobs),  1934년 The Young Joseph 젊은 요셉 (Der junge Joseph), 1936년 Joseph in Egypt 이집트의 요셉 (Joseph in Ägypten), 1943년 Joseph the Provider 프로바이더 요셉(Joseph, der Ernährer).

히브리 성경의 창세기 27~50장과 연관된 요셉의 이야기를 풍부한 상상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첫 권은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 가족의 형성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두 번째 권은 아직 중요한 재능을 마스터하기 전의 어린 요셉이 다른 열 사람의 형의 적개심을 일깨워 이집트에 노예로 팔게 되는 이야기를. 세 번째 권은 요셉이 궁정 관리 보디발의 집사가 되었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거부해 감옥에 수감되는 이야기를. 마지막 권은 성숙한 요셉이 이집트 곡물창고의 관리자가 되고, 기근이 야곱의 아들들을 이집트로 몰아, 요셉이 기민하게 조정하여 그의 정체를 밝히고, 결국 그의 형제들의 화해와 가족의 재결합하는 모습을 그린다.

<<독일인들이여, 들으시오! Listen, Germany! (Deutsche Hörer!)>>


1944(69세). 6월 23일에, 토마스 만은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7(72세). <<닥터 파우스트 Doctor Faustus(Doktor Faustus)>>(부제 -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의 몇 년간 독일 문화의 퇴락.

1949(74세). 1949년 그의 가장 중요한 독일 방문이 있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200주년 탄신일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정치적 경계를 넘어 독일 문화의 확장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1951(76세). <>

1952(77세). 유럽으로 돌아와 스위스 취리히 인근 킬크베르크 Kilchberg에서 거주. 독일로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긴 했으나, 절대 돌아가 거주하지는 않았다.

1954(79세). <>.

1955(80세). 8.12. 밤 8시, 취리히의 병원에서 아테롬성 동맥 경화증으로 사망하고 킬크베르크에 매장되다. 많은 단체가 그의 영예를 기리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부다페스트의 토마스 만 김나지움이다.


 

국내 출간물 모음

중이미지보기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 민음사, 1998

중이미지보기 중이미지보기 『마의 산』상, 하 / 토마스 만 / 을유문화사, 2008

중이미지보기 중이미지보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1, 2권 / 토마스 만 / 민음사, 2001
중이미지보기 『선택된 인간』 / 토마스 만 / 홍신문화사, 1995

중이미지보기 『파우스트 박사』 / 토마스 만 / 필맥, 2007

중이미지보기 『요셉과 그의 형제들』1~7권 / 토마스 만 / 살림출판사, 2001 (해설서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