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초청 단편
제2회 판타지갤러리 공포/추리단편대회 공포부문 우승작
이게 뭐게?
by 말종메론(윤병현)
그때 애가 뒤에서 저에게 말했어요.
'이게 뭐게?' 라고.
*
"이게 뭐야?"
하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라는 8살의 동그란 단발머리와 동글동글한 눈매를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다. 하라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에 차 물어보면 누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표정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하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자세히 살펴보고, 킁킁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지만 보자기에 싸여 있는 것의 정체를 알기는 힘든 것 같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동생이야. 자. 아리야, 인사해야지. 언니야. 언니."
아리는 하라의 동생이다. 태어난지 몇 주 안된, 신생아라지만 새끼 고양이 미유 같은 귀여운 모습은 찾기 힘들다. 발갛게 벗겨진 머리에,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피부와 이상하게 커다란 머리와 비교되는 작은 몸통.
하라는 오밀조밀 동생의 얼굴을 살펴봤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아기 때의 얼굴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뀐다지만 동생의 얼굴이 타고나지 못했다해도 어쩌겠는가.
"하라야, 동생 어떠니?"
하라는 여전히 이게 뭔지 의문스러운 눈치다. 그때, 아리가 움찔하면서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놀란 하라가 발을 헛딛으면서 바닥에 쿵 엉덩이를 찧었다. 아리는 앙앙, 울었다. 길게, 불만이 가득한 울음소리는 사이렌처럼 길고 기분 나빴다. 앙앙. 하라는 겁에 질린 표정이다.
"그거 뭐야?"
아리가 집에 온지 한달이 넘었지만 하라는 여전히 아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처음 본다지만 한 배에서 태어난 만큼 뭔가 친밀감이 들리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무리인 모양이다.
처음엔 부모의 사랑을 빼앗길까봐 질투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의 상식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종 아리가 울음을 터뜨릴 때면 도망치듯 달려가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가버렸다. 아기를 무서워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밤중에도 종종 내 품에 안겨 자던 하라가 이제는 품에 안기고 싶어도 멀찍이서 불안한 눈초리로 나와 아리를 보았다. 어쨌든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느 날, 방 안에 들어가보니 하라가 아리에게 젖병을 물려주고 있었다. 팔만 간신히 달을 정도로 뻗어 젖병을 거꾸로 들고 꼭지만 입에 물려주고 있었지만, 어쨋거나 환영할만한 모습이었다. 나는 기뻐서 하라가 다 컸구나, 하고 말했지만 하라는 입을 꾹 다물고 얌전히 우유를 먹여 주었다. 아리가 깰까봐 염려하는 모습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아리는 젖을 오물거리며 삼켰다. 사이좋은 남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편한 마음이 들었다. 아리는 천천히 먹는 편이었기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팔 아파."
아리에게 젖병을 물려 준지 얼마 안되서, 하라는 어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라기보단 색칠이다. 파란색과 검은색, 종종 축축한 이끼빛의 녹색이 그림 한켠에 자리했다. 그걸 스케치북에 가득 채워 그렸다. 온통 안에 뭐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점액질 느낌의 색감이다.
"하라야, 이게 뭐니?"
하지만 하라는 입을 꾹 다물고 그림만 그렸다. 손과 팔이 크레파스 투성이가 되고 아끼던 옷이 지저분해져도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좀 더 예쁘게 빨간색을 써보면 어떨까?"
그러면서 빨간 크레파스를 집어들자 하라는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스케치북을 빼앗아갔다. 기분이 나빠져서 크레파스를 두고 아리를 돌보러 갔다. 뒤에서 하라가 씩씩대면서 나를 노려보는게 느껴졌다. 큰일이네. 애를 저렇게 키운 적 없었는데.
밤이 되어 아리와 침대에서 잠들어 있을 때였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눈을 살짝 떠보니 바로 옆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새파랗고 길쭉한 얼굴을 가진 누군가가 우두커니 아리 옆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자세히 보니 하라가 낮에 그린 그림이었다.
서툴게 가위로 오려진 그 그림은 가면처럼 하라의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얼굴선을 따라 기묘한 입체감이 담기자, 그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상한 입체감을 가진 종이가면은 사람이라기보다 바다에 뚫린 구멍처럼 깊기도 했고 끝없이 펼쳐진 해초더미들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면에는 눈구멍이 뚫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앞이 안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라는 흐느적 흐느적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리는 그때마다 까르르 웃었다. 그러다 문득 하라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췄다. 아니,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눈구멍이 없으니까. 하라는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앞을 응시하다가 휘적휘적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하라가 아리를 즐겁게 해주려고 가면을 그렸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하라가 아리에게 다시 또 관심을 보인 것은 오랜만에 하라의 친구가 오던 날이었다. 아리가 집에 온 이후 통 친구가 오지 않아 무척 아쉬웠는데 처음으로 온다는 것이다. 기쁜 마음에 하라가 좋아하는 도넛을 튀겼다.
하라는 무척 좋아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거실을 뛰어다녔다. 아랫집에서 올라올까 하는 마음에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하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뚝 조용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가만히 서 있는 하라가 보였다. 난 막 튀긴 도넛을 달라는 건가 싶어 작게 튀겨진 도넛 하나를 집어주었다. 하지만 하라는 고개를 숙인 채 가로 저었다.
"아리 주세요."
뭔가를 부탁 할 때면 하라는 늘 존댓말을 쓰곤 했다. 내가 요리하는 동안 하라가 아리를 돌보겠다는 건가 싶어 괜찮다며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시 또 하라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리 주세요. 아리 주세요."
어쩔 수 없이 등에 메고 있던 아리를 내려주었다. 하라는 아리를 품에 안고 다시 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거실로 뛰어갔다. 하라가 혹시라도 아기를 떨어뜨릴까 싶어 조마조마 했지만 하라는 아리를 조심조심 거실 한쪽에 내려놓고 다시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리가 들고 온 것은 하라의 입보다 더 큰 어른 숟가락과 얼마 전에 본 물고기 가면이었다. 그걸 아리의 앞에 놓은 하라는 다시 또 쿵쿵거리며 거실을 뛰어다녔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하라의 친구가 온 것이다. 하라는 재빨리 뛰어가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려면 친구는 발을 내딛는 순간 움찔했다. 그러면서 코를 틀어막았다. 도넛 냄새가 심한가? 나도 모르게 소매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희미한 기름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친구는 불안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조심조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다가 거실 한쪽의 아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리는 어느 틈에서인지 하라가 그린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요람을 왕좌처럼 앉고, 가면을 후광처럼 두른 아리를 본 순간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와앙, 친구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앙, 하라도 울음을 터뜨렸다.
앙앙, 아리도 울음을 터뜨렸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쉽게 운다.
그 후로 하라가 아리를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젖병을 물려주거나 가면을 쓰고 아리를 재밌게 해주거나 하는 일은 커녕, 겁에 질린 것 같다. 내가 아리를 껴안고 겹에만 가도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언제나 아리를 감시하듯 멀리서 숨은 채 훔쳐보았다.
나는 하라가 아리를 싫어한다는 생각에 다시 또 걱정이 되었다. 왠지 하라가 아리를 점점 자신의 동생으로 여겨가다가 친구의 울음으로 이건 내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린 것 같았다. 남의 눈을 통해 진면목을 알았다고 할까. 하지만 아리는 엄연히 하라의 동생이다.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나는 하라가 몰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문득 예전에 하라가 방 안에서 조용히 아리의 젖병을 물려 주었던게 생각이 나 기대에 차 방안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하라는 방안에서 아리가 있는 요람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커다란 어른 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베개를 요람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또 베개를 가져왔다. 그 베개도 요람 안에 넣었다. 그 다음에는 쿠션을, 그 다음에는 천 이불로 덮더니 그 위에 올라타려 했다.
"하라야, 이녀석. 무슨 짓이야."
하라는 뒤를 돌아보더니 깜짝 놀라 자기 방으로 달아났다. 나는 요람 안에 든 베개와 이불을 서둘러 치웠다. 밑에서 숨이 막힌 아리가 켁켁거렸다. 하라의 방으로 따라갔지만 잠긴 뒤였다. 몇 번이고 하라를 불렀지만 악 쓰는 비명을 계속 질러대며 내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처음부터 아예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리 주세요."
하라는 갑자기 또 내게 다가와 아리를 달라고 했다. 베개 사건을 잊지 않고 있던 나는 거절하려 했지만 하라는 계속해서 졸라댔다. "아리를 잘 돌볼게요.", "아리랑 놀아줄게요." 결국 나는 업고 있던 아리를 내려 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친구가 왔던 게 계기가 됐던 것처럼 이 일로 다시 옛날의 관계를 회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계를 풀 수 없었던 나는 몰래 자매가 노는 모습을 훔쳐보기로 했다. 하라는 조심조심 아리를 안고 방안의 침대에 눕혀놓았다. 그리곤 뭔가를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젖병을 들었다.
엄마 놀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하라는 아리에게 젖병을 물려주고 아직 이빨도 없는 아리에게 뭔가를 먹이듯이 숟가락으로 입에 넣어주는 시늉을 했다. 아리는 오물오물 젖병을 씹었고, 하라는 옳지 잘한다며 뭔가를 먹여주는 시늉을 계속했다. 그 모습에 안심하고 집안 청소를 마저 했다.
얼마나 청소를 했을까,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방으로 달려왔다. 방에는 요람 안으로 허리를 숙인 하라가 있었다. 요람 안에는 목 졸린 듯 기이한 울음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여 밖으로 흘러나왔다. 서둘러 하라를 떼어내자 하라는 나가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리의 목에는 빨간 손자국이 남이었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하라의 옆에 떨어진 숟가락이 보였다. 하라의 입보다 더 큰 어른 쇠 숟가락.
"그건 뭐니?"
하라는 흠칫 놀라며 숟가락을 등 뒤로 더욱 숨겼다. 억지로 숟가락을 빼앗자 숟가락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하라는 주저앉아 다시 또 울음을 터뜨렸다. 아리를 살펴보자 천천히 가늘게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을 뜨게 하자 온통 새빨간 피로 가득찬 한쪽 눈이 보였다. 아마 숟가락으로 눈을 파내려다가 아리가 울자 목을 졸라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번 일은 용서를 할 수 없어서, 하라를 잠시 같은 동네에 사는 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하라는 고양이 미유를 안고 할머니 집으로 가던 날 또 엉엉 울었다. 미유도 야옹야옹 울었다.
그날 밤, 하라를 보내고 나니 잠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다친 아리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둘은 결국 내 딸이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건 바라지 않을 뿐더러, 누구 한명 다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라를 잠시 떠나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밤늦게 잠들었는데, 문득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쿠르르, 쿠르르. 욕실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다. 귀가 먼저 깨고 눈을 뜨니 벽 색깔이 이상했다. 어느 한쪽만 유난히 색이 짙다. 뭘까, 스탠드를 켜려던 순간, 코가 뒤늦게 깨어났다. 비린내가 난다. 생선 비린내? 아니다. 피비린내.
불을 켜자 온통 피투성이가 된 벽과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리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뭔가로 북북 찢겨진 흔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피가 아직도 흥건할 정도로 고여 있었다. 내 팔에도 묻어있다. 너무 깊이 잠들어서 비명소리도 못 들은 걸까? 그런데 피는 왜 벽까지 이상하게 튀었을까? 이상한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쿠르르, 쿠르르.
핏자국은 침대에서 방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더 기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천장까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마치 집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피는 흐르거나 고일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묻은 정도였다. 누군가가 묻힌 것이 아니라, 뭔가가 기어가면서 남긴 것처럼. 달팽이의 체액과도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심지어 천장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로 천장을 피투성이로 만들며 슥슥. 그렇게? 벽과 바닥에도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봤던 칼자국들이 가득했다. 아주 조그맣고 날쌘 파리 같은 것을 칼로 찍어 잡으려 했던 모양이다.
핏자국은 화장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는 여기서 들려왔다. 쿠르르, 쿠르르. 쿨렁, 쿨렁.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피투성이가 된 거울이 보였다. 거기도 뭐가 기어간 흔적이 가득하다. 안으로 발을 내딛고, 소리가 들려오는 욕조 쪽을 보자, 온통 피투성이가 된 하라가 식칼을 꽉 움켜쥔 채 벌벌 떨면서 욕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리는 거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새빨간 피와 물이 뒤섞여 배수 구멍으로 쿠르르, 쿠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빨려들어 갔다. 뭔가 막히는지 쿨렁, 쿨렁 하면서 다시 솟아오르기도 한다.
이건 또 뭐지.
*
그 후 아리를 찾아보았지만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시체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지만 하라는 그 일에 대해서만 물으면 끔찍하게 무섭다는 표정만 지을 뿐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경찰에 유괴 신고를 하고 집안을 정리했다.
피를 이정도로 흘렸으면 죽었을 텐데, 시체도 보이지 않으니 아리가 죽었을 리는 없다. 아리가 죽지 않았다면, 하라가 죽인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리가 사라진 뒤 하라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지만 곧 예전의 안색을 되찾아갔다. 전보다 조금 조용해지긴 했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하라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뛰어왔다. 내 앞에 도착하자 바로 두 손을 조심스럽게 오므려 감싸 쥔 채 내밀었다. 동그란 눈망울을 귀엽게 뜨고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게 뭐게?"
하라의 말에 나는 웃으며 글쎄, 그게 뭘까? 하고 물었다. 하라는 채근하듯 내게 물었다.
"이게 뭐게?"
나는 적당한 답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그 말에 하라는 순식간에 표정을 무너뜨리더니 작게 말했다.
"맞아."
하라는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두 손을 펼쳐 보여주고 다시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하라가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만 하라가 지은 슬픈 표정에 가슴이 아팠다.
하라가 한 놀이의 힌트를 얻은 것은 엉뚱하게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라의 담임선생이었다. 아직 찾아뵙지도 못하고 학교 선생님을 이렇게 전화 통화로 뵙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사과를 그렇게 전하자 담임선생은 그런 것은 신경도 안 쓴다는 태도로 말했다.
"하라가 친구들을 겁주고 있어요."
"친구들을 겁주다니요?"
나는 하라가 불량서클(초등학교 1학년 임에도 불구하고)에라도 들어간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들려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하라가 하고 있는 놀이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나요?"
"놀이라니… 그런 건 전혀 모르겠어요."
담임선생은 작게 한숨을 몰아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라는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말을 참 잘 듣는 학생이에요. 어린 아이가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을까,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참 인기가 많아요. 다만 어떤 아이들은 하라를 조금 무서워하고 있어요. 이상한 놀이 때문에요."
"이상한 놀이…"
"수업 시간에 가끔 벌벌 떨거나 겁에 질린 채 꼼짝도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어떤 학생은 화장실도 못가고 있다가 교실 안에서 소변을 본 적도 있구요. 어제는 기절을 하는 학생도 나왔어요. 그 애들 대부분은 하라와 같은 반 아이들인데."
"대체 하라가 무슨 놀이를 하는데요?"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자기도 잘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우연히 봤어요. 창 밖으로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라가 어디선가 달려와서는 친구한테 손을 내밀더라구요. 두 손을 조개처럼 오므리고, 주먹밥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선 '이게 뭐게'하고 묻는 거에요. 상대 애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못 들었지만, 하라가 손을 펼치니까…"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 애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더라구요. 정말 무서운 걸 본 것 처럼."
나는 그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귀여운 하라의 얼굴과 하얀 고사리 손을 모아 꼭 쥐고 있다가, 확 펼치면 겁에 질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꼬마 악마같은 모습.
하라의 장난은 나도 본 적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의 말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점이 많이 남아있었다. 설령 하라가 개구리 시체를 아이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고 해도 그런 건 아이들끼리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걸 선생님이 지나치게 비약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아이를 과보호 하는 걸까?
"선생님의 말만으론 애들이 하라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에는 힘들겠는데요."
"…분명 하라 때문이에요. 분명히…"
아직 숨기고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말들은 개구리 혀처럼 끈적끈적하고 흉측한 형태로 숨겨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좀 더 채근했다. 선생님은 이제 통화를 끊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하라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선생님은 제법 길게 망설이다가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혹시 종교를 믿으시나요?"
"별로… 전 무교에요."
"전 카톨릭이에요. 독실한 신앙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를 하고 있었요."
말만 들어도 정말 참된 교육자같다.
"그런데… 저, 이런데 비교하는 건 저도 정말 싫지만, 아이들의 태도에는 어쩐지 종교적인 냄새가 묻어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라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어떤 종교를 만들고 있다고. 아이들 자체는 그런 구체적인 생각이 없을지 모르지만."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하라를 사이비 교주로 삼고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믿다니? 그럼 그 종교의 신은 뭐란 말인가, 주머니 괴물? 하지만 식상한 발상은 아니다. 옥수수밭의 아이들 같은 영화도 있고. 그러나 늘 그렇듯 거기서도 어른이 문제다. 나는 이맛살을 모으며 그녀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전했다. 불쾌히 여길 법도 하지만 선생님은 스스로도 우스운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요. 종교가 아니라면, 하라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아이에요. 어쩌면 정말 그 애는 선지자 같은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굉장한 카리스마가 있거나요. 조금이나마 이 점에 대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하라에겐 정말 뭔가가 있어요… 종교에 대해서 비유한 이유는 하라의 놀이 속에서 일종의 속죄양 의식 같은 것을 읽었어요."
"속죄양?"
"다수의 죄를 면하기 위해 소수를 제물로 바치는 것. 면죄부로 볼 수도 있고. 아예 죄책감을 예방하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는데… 하라는 아이들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하라 역시도 어떤 죄책감에 휘둘리고 있는게 분명해요."
하라의 죄책감이라는 말에 나는 잠시 아리가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졌다. 선생님은 나를 설득시키기가 힘든지 조바심을 내면서 다른 이야기를 또 꺼냈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증거라는 듯이.
"하라의 친구들 중에는 제 아이도 있어요."
"어머나… 걱정되는 건가요?"
"제 아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차별을 두거나 하진 않아요. 그러니 그런 식으로 비꼬지 말아주세요. 학교에선 더 엄격하게 구분한다고 자신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하라와의 관계에 살짝 조언을 해준 적 있어요."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지만 분명 상대방은 침묵으로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제 아이에게는, 강아지가 있었어요.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실수로 넘어지면서 그 강아지를 죽였는데, 아이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문 열어 놓은 사이에 도망갔다고 하고 조용히 산에다 묻어줬어요. 아이가 많이 울긴 했지만. 그런데 어제 아이의 방 선인장 화분 밑에 강아지가 있는거에요.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그 강아지는 재작년에 묻은 거에요. 재작년에… 개미랑 구더기가 바글바글 했지만, 다른 강아지가 아니란 것은 남편도 저도 틀림없이 알고 있어요. 그걸 보고 꼼짝도 할 수 없이 굳어있는데 애가 뒤에서 나한테 말했어요. '이게 뭐게?' 라고."
얼마 안되서 통화는 끊어졌다. 처음의 대화 내용을 빼면 별 의미 없는 내용들이었다. 선생은 좀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다음에 직접 하라를 데리고 셋이서 이야기 하자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직도 통화 내용이 혼란스러웠다. 하라가 아이들을 겁주고 있다고? 학생들이 하라 때문에 화장실도 못가고, 2년 전에 묻은 강아지 시체가 나타났다고?
나는 하라에게 사준 피아노 앞에 앉아 턱을 댄 채 곰곰이 생각했다. 죽은 강아지가 나타난 것 역시 하라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라와 연관이 있는 건 그 애가 하라와 친구라는 것과 변변찮은 놀이뿐이다. 그 정도 놀이쯤은 나 역시도 어렸을 때 한 두번 쯤은 해봤다.
하지만 하라의 종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다. 하라가 정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든 그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죄책감은 상당히 오래가니까. 집에서는 어떤 종교도 믿고 있지 않으니,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방식이 선생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 고래로부터 죄책감을 면하기 위해선 초월적인 존재에게 용서를 구해왔다.
그렇다면 하라가 믿는 신은 누구인가?
하라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가늠하면서, 피아노 건반을 하나 둘 두드렸다. 아리를 잃은 뒤 집안 어디엔가 구멍이 난 것 처럼, 피아노 건반 하나가 울리지 않았다. 텅 빈 것처럼. 하라가 집안의 그 건반 같았다. 있으되 울리지 않는.
하라는 그 날 오후 늦게 돌아왔다. 하라는 돌아오자마자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달려와 폭 안겼다. 나는 하라의 동그란 단발머리를 스다듬으며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하라는 어떤 남자애가 자기 손을 잡으려고 했던 일, 길을 걷다가 차가 물을 엄청 크게 튀기면서 갔던 일들을 자질구레하게 이야기했다.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듣던 중 하라는 갑자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참, 엄마. 이것 봐봐."
그러면서 손을 조개처럼 오므려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게?"
나는 아무것도 안 들었으리란 걸 알면서 싱긋 웃고 고민하는 척 했다.
"글쎄, 뭘까?"
"빨리, 이게 뭐게?"
문득 저번에 아무것도 없다고 정답을 맞췄더니 하라가 무척 슬픈 표정을 지었던게 생각났다. 나는 재치 있게 틀릴 만한 답변을 생각하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레몬 사탕이지?"
그러자 하라는 다시 또 순식간에 무표정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했다.
"맞아."
그러면서 하라는 손을 펼쳐보였다. 안에는 노란색 레몬 사탕 두개가 들어있었다. 하라는 "이거, 줄게." 하면서 내 손위에 사탕을 올려놓고 도망갔다. 방안으로 사라지는 하라를 보면서 손 위로 묘한 여운이 남았다.
다음 날, 하라를 보낸지 얼마 안되서 전화가 왔다. 학부모 회장이었다.
웬일로 이 아줌마가 전화를 했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라 얘기였다. 나는 수다 떨기를 좋아하지 않아 얘기가 내키지 않았지만 어제 하라의 일도 있고 해서 얌전히 얘기에 응했다. 그런데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하라의 선생님이 어제 죽었다는 것.
"어머… 어쩌다가."
차마 그 수다를 시시콜콜 기억할 수 없어서 요점만 추리자면, 하라의 선생님은 어제 학교 난간에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아마 자살인 것 같은데 죽을 이유도 없고 학생들을 무척 아끼는 교사라 의문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하라라서 여러가지 곤란한 질문도 많이 받았다. (거기서 그녀는 하라는 별 일 없죠? 하고 물었다)나는 하라가 걱정됐지만 그 애는 똑똑하기도 하고 서툰 짓을 할 애도 아니라서 괜찮을거라고 안심시켰다.
학부모 회장은 내가 묻지도 않은 것 까지 시시콜콜 이야기 해주었다. 보통 노끈이나 커튼 따위를 쓰는데 선생님이 이상하게 가늘고 질긴 끈을 써서 목에 심한 상처가 났다는 것. 그로 인해 목이 심하게 상해 혀 근육이 끊어져서 길게 흘러나와야 하는데 끌어 내릴 때까지 멀쩡했다고 하는 것. 알고보니 입안에 사탕들이 가득 차 있어서 그걸 꺼내자 마자 깜짝 상자처럼 혀가 툭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탕들 때문에 개미랑 벌 같은 벌레가 엄청나게 꼬여서 얼굴이 끊임없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고. 구체적인 묘사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화를 끊은 뒤 죽은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하라의 피아노 뒤편을 열어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건반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소리가 안나는 건반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다가 마침내 그것을 발견했다. 피아노 줄이 한가닥 없다.
가늘고 질긴 줄이라고.
나는 데롱데롱 매달린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레몬 사탕 하나를 꺼내 입안에 넣고 오독오독 깨물어 먹었다. 개미가 꼬일 만큼 달았다. 그날 따라 하라는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하라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앉혀 놓고 물었다.
"하라야, 너희 선생님 돌아가셨다며?"
"응. 선생님 죽었어."
"하라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하던데, 무슨 일로 만났니?"
"그냥… 그냥 물어봤어."
"선생님이? 뭘 물어봤니?"
"아니, 내가 물어봤어. 이게 뭐게? 하고."
"선생님이 뭐라고 했니?"
하라는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하라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되게 웃기게 죽었다? 목에 되게 얇은 줄 감고 흔들흔들 매달려 있는데 입이랑 눈이랑 개미가 우글우글거렸어. 벌도 삐용삐용거리고. 침도 막 질질 흘렸어."
하라는 거기서 깔깔거리며 크게 웃었다. 내가 웃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하라의 웃음소리는 금방 사그라 들었다. 나를 응시하던 하라는 허리 뒤에서 손을 꼬물꼬물하더니 곧 두 손을 내밀었다.
"엄마, 이게 뭐게?"
나는 답변을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틀릴 수 밖에 없는 걸 답으로 골라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겨울에 나지 않는 꽃 이름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장미."
하라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맞았어."
그리곤 손을 펼쳐 내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떨어뜨려 주었다.
"이거, 줄게."
새빨간 장미 봉오리는 마치 손에서 돋은 핏줄기처럼 선명했다. 아마 이건 온실이나 그런 곳에서 키워 판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장난을 치기 위해 이런 정성을 마다하지 않다니, 아이답다. 하라는 내게 장미를 떨어뜨려주자 마자 다시 또 방으로 도망갔다. 이번에는 하라의 뒷모습을 쫓지 않았다. 대신 하라의 장미를 우유병에 넣고 물을 채워 넣어 주었다.
선생님이 하라의 질문에는 뭐라고 답했을까.
며칠 후, 나는 하라의 학교를 찾아갔다. 선생님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직 안 끝났지만 일단 추모식 차원의 행사가 열려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에 대한 몇몇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녀는 참 교육자임이 틀림없다.
하라의 담임 선생님 추모식에 참가하면서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라의 선생님은 하라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 애가 친구들을 유혹하고, 겁을 줘 복종시키고, 죄책감을 이용한다고? 설령 그렇다고해도 죽은 개와 아이의 장난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령 선생님의 아들이 개를 잃은 죄책감을 느껴 그 개를 원했다고 치자. 그리고 선생님은 그 개를 죽이고 아들을 속인 죄책감에 자살이라도 원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봐야 하라가 어쩌고 하는 것은 순전히 조금 특이한 아이에게 죄책감을 덮어씌우고 전도하는 짓이었을 뿐이지… 거기서 나는 잠시 생각이 멈췄다. 뭔가 이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더이상 생각을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던 탓인지, 알수 없었지만 나는 그순간 일어난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당해버렸다. 어쨋건 내 주의를 집중시켜준 건, 섬뜩한 소음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
수백 수천개의 작은 칼날과 갈고리들이 피부와 살점을 헤집고 뼈를 긁어내는 소리.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학교 울타리 쪽을 보니 창고 옆 철조망을 잔뜩 모아둔 곳에 뭔가 이상한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운동장과 길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작 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빨간 살덩이는 조용한데. 그게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원형 철조망 곳곳에 걸려 찢어진 옷자락을 보고 깨달았다.
그 새빨간 고깃덩어리는 성대가 찢긴건지 비명도 지르지 않고 두터운 철조망 더미 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살과 뼈를 긁고 뜯어냈다. 피가 후둑후둑 밑으로 쏟아졌다. 다진 고깃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이 열린 곳은 없고, 다만 옥상의 높이는 15m정도 되어보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비명소리만 줄창 들릴 뿐, 신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핸드폰을 꺼냈다. 왠지 철조망의 가시와 새빨간 덩어리들을 보고 있으니, 한겨울에 장미가 핀 것 같다.
덕분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거기서는 진부한 사실을 다시 한번 알았지만, 새로운 사실 또한 알았다. 진부한 사실은 여전히 경찰에서는 납치된 아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고깃덩이의 신분이었다.
"하라 어머니. 2년전에 아이에 대해 실종 신고를 하셨더라구요."
"납치 신고에요. 이름은 아리구요."
"그 당시 조사 했을 때에는 집안에 하라 말고는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었어요. 족적도 지문도, 모두 하라의 것 뿐이었다구요."
"이해가 안되네요."
"네. 저도 이해가 안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저, 어머니. 혹시 어머니가 목격하신 시체가 누군지 아시나요?"
"글쎄요… 워낙에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뭐한데, 어머니는 참 담담하시네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면 기절하거나 패닉 상태에 빠지곤 하는데."
"제가 좀 차분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였데요?"
"어머니 따님 되시는 하라의 친구에요. 혹시 아시나요?"
"아아… 생각나네요. 참 쉽게 우는 아이였는데. 그 애였구나."
"사실 이제야 알려진건데, 집 밖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지문이 하나 있었어요. 아이의 것이라 별로 신경쓰진 않았는데 지금 그 확인해보니 하라의 친구와 같은 것이네요. 아마 하라의 친구는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납치했다면 그 친구겠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하고 싶지 않군요."
나는 당연히 아리가 납치 때문에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설마 아리가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 남아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실례지만, 남편 분은 어디에 계시죠?"
취조가 끝나고 추모식이고 뭐고 다 접어둔 채 곧장 집으로 향했다. 서서히 석양이 길어지고 어두워지고 있다. 해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아마 추모식도 끝나고 하라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천천히 다시 떠올려봤다. 확실히 오늘 일은 조금 이상하다. 왜 하라의 친구는 떨어졌을까? 하라는 그 일을 알고 있을까? 왜 하필 오늘, 내 앞에서였을까?
집으로 천천히 가까워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현실 감각을 되찾아간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린다. 누군가 가시밭길 위로 내 발을 올려놓고 밟아 대는 것 같다. 누구의 무게일까, 하라의 죄? 아리의 혼?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아리의 죽음을 인정한다. 경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뭔가 자물쇠를 연 것 같이. 이미 알고 있던건데, 이상하게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이상해.
피곤하다.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다시 또 생각이 가지치기를 한다. 나는 왜 이 이상한 일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라는 왜 그런 이상한 놀이를 했을까. 난, 도무지, 이게 뭔지 모르겠다. 이럴땐 정말 기댈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어깨를 기대기엔 하라는 너무 작아. 적당한 짝이라도 있다면 정말 괜찮을텐데.
나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어버렸다. 그런 사람은 없다.
난 애초에 결혼한 적도 없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하라를 임신하고, 낳고, 혼자서 키웠다가, 하라가 동생을 원했다. 동생의 이름은 아리가 좋겠어, 라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리를 임신하고, 낳고, 하라와 키웠다. 그리고 아리는 일년도 안되서 사라졌다.
집에 들어가자 텅 빈 거실이 보였다. 아직 하라가 안온걸까. 갑자기 목이 말라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 혀에 닿자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창틀에 세워둔 장미가 든 우유병이 넘어지면서 물이 쿠르르, 쿠르르 내려간다. 깊이는 알 수 없다. 무저갱 같은 무시무시한 깊이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아. 틀림없이 아리는 이 안에 있어. 그 안은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뒤에는 하라가 열렬한 눈빛으로 두 손을 내밀고 정답을 재촉하며 묻는다. 하라는 요즘 이걸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게 뭐게?"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하라가 원하는 답 역시도 알고 있다.
"아리."
하라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맞아!"하고 소리치더니 두 손을 내민다.
"이거, 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