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초청 단편
제3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출품작
챔피언과 안개와 로맨스
by fedor
허공에서, 조명을 등진 브라질리안 킥이 대각선으로 꽂혀들었다.
S자로 휘어든 킥은 가드 너머로 날아들어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몸이 경직된다. 시야의 모든 불빛이 흐붓이 잔상을 남기며 떠밀리고, 다리가 풀려 면상부터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마 일어날 수 없겠지. 귓가에 쏟아지는 함성도 어느새 그쳐 세상은 침묵이다. 바닥이 차츰 확대되어왔다. 효도르는 자신이 떨어지는지 바닥이 밀려드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제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육체는 쓰러지지 않고 대롱거리며 로프에 걸려있었다. 오른팔이 멋대로 로프를 움켜쥐고 있다. 이봐, 놔. 편해지자고. 오른팔은 죽은 듯 침묵한다. 뭐야, 놔. 쉬고 싶어. 놔. 순간, 로프를 잡은 팔 위로 그림자가 겹쳐들었다. 효도르는 불현듯 눈알을 굴려 사각링의 바깥을 보았다.
사위는, 안개로 뒤덮여 있다. 그 너머는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는 링을 포위하며 좁혀와, 로프를 잡은 글러브에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언제라도 새어들 듯 바싹 밀착해온다. 그 밀도 높은 안개의, 스산한 숨결이 효도르의 뺨에 닿았다. 소름돋는 한기였다.
아아, 나는 결국 다시 이곳이다.
다시 눈알을 굴렸다. 날아드는 그림자는 아직 닿지 않았다. 효도르는 몸을 뒹굴어 후속타를 피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선다. 형체조차 희미한 상대는 당혹스레 효도르를 쳐다보고 있다. 효도르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의 주먹질이 가드 위로 날아든다. 효도르는 태클로 녀석을 눕히고, 위에서부터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꽂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앗싸 좋구나. 다섯 여섯 일곱 여덟 --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어떤 타격음도 숨소리도 그쳐버린 침묵을 깨뜨리며, 갑작스레 공소리가 들렸다. 땡땡땡땡 - 그 뒤를 따라 함성소리도 쏟아졌다. 효도르는 주위를 둘러본다. 안개는 걷혀있었다. 그리고 빽빽이 메운 관중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터지는 플래쉬, 뒤를 보았다. 트레이너가 효도르에게 손짓한다.
나는 이겼다.
"효도르, 네가 이겼어!"
기쁨은 없다.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 뿐, 눈을 감는다.
"챔피언씨. 어제 위험한 고비가 있었는데, 그 순간의 심정은요?"
"....."
"당신이 이긴 크로캅에 대한 감상은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는 어떤 선수죠?"
".....먼저 가지."
그녀는 볼을 부풀리고 효도르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그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밤거리의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이 넘어든 자리에서 효도르의 그림자가 멀어지고 있다. 그녀는 흘낏 가로등을 보았다. 깜빡거리며 날파리들을 꼬여대는 둥근 나트륨 전구를, 길게 솟은 장대가 조용히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담배꽁초, 구겨진 전단지, 그리고 분명히 알 수 있는 마리화나 꽁초와 빈 주사기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그녀는 다급히 효도르를 따라 뛰었다.
"이봐요! 좀 멈춰봐요!"
짙은 밤안개가 밤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도시를 거니는 망령마냥 건물과 건물 사이를 부유하며, 사람의 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안개 너머로, 효도르의 등은 까마득히 멀었다. 그녀는 속도를 높여서 효도르의 뒤를 따른다. 기분 나쁜 안개였다. 숨은 차올랐지만, 억지로 숨을 죽였다. 안개가 콧속으로 스며드는듯한 감각이 싫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효도르를 좇았다.
차츰 멀어지던 효도르의 등짝이 문득 멈춰섰다. 그녀는 그의 뒤에 멈춰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기사에 추가할거에요. 당신은 무례하고, 여성을 뒷골목에 버려둘만큼 무성의하다고."
"......"
"그래도 아예 양심이 없는건 아니었군요. 그래요. 무서우니까, 같이 좀 가요."
"뭐가 무섭지?"
"당신이야 챔피언이니 뭐가 무섭겠어요? 저같은 민간인은, 게다가 여자는 술취한 변태에서 양아치에 도둑놈까지 위험물이 한두개가 아니라구요."
"......"
그녀는 흘끗 효도르의 등을 보았다. 그는 멈춰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으며,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아래에 뭐가 있을까. 그녀는 빼꼼히 고개를 아래로 기울였다.
"당신도 그걸 아주 몰랐다고 하는건 아니겠... 어머."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효도르의 발 밑으로 죽은 고양이의 시체가 있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배가 갈라져 피와 내장이 얽힌채 흘러나와 있다. 살갛이 드러나도록 찢기고 그어진 상처가 가득하고, 뒷다리 두개는 거의 끊겨져 너덜너덜했다. 바닥에 떨어져 혈관과 신경으로 간신히 연결되어있는 눈알은 그녀를 향해 희번뜩 노려보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쪽 눈알은 아예 없었다.
그녀는 뒷걸음질치며 효도르를 보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본다. 그의 눈동자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뭐, 뭐에요, 그건."
효도르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양이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뭐하는거에요!?"
효도르는 흘러나온 내장을 손으로 모았다. 뒤에서, 그녀의 비명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효도르는 내장을 모아 고양이의 시체 안으로 조심스레 밀어넣는다. 갈라진 부위를 조심스레 덮었다. 눈알을 주워 시신경과 혈관을 먼저 흘려넣은 뒤 제 자리에 꽂았다. 다른 눈알을 찾으려 주위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효도르는 다른쪽 눈알은 포기하고, 너덜거리는 뒷다리를 잘 모아서 구부렸다. 마치, 고양이가 자는 모습으로 시체를 움직인다.
효도르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참혹한 주검은 얼핏 보기에 이제 상처입은 고양이가 잠든것처럼 보였다. 효도르는 고양이의 시체를 아기 어르듯 주워들어 일어났다. 손과 옷에 피딱지가 굳었다.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떨고 있는것 같았다. 효도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거에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거리를 벗어나, 흙이 깔린 공터로 갔다. 내리쬐는 것은 달 뿐이다. 파르스름한 달빛이 환하게 밝힌 공터에는, 쓰레기들이 흙 여기저기에 파묻혀있었다. 유리조각, 술병, 쓰레기, 버려진 땅이었다. 효도르는 그 한켠에 나아가, 고양이를 뉘이고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효도르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그의 거친 손이 바닥을 할퀴자 유리조각에 긁혀 피가 흘렀다. 그는 유리조각을 빼내고, 다시 땅을 파내었다. 굳어버린 땅은 쉽사리 파헤쳐지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땅을 파내려갔다. 손톱 끝이 부서졌다. 쓰레기가 나왔다. 쓰레기를 버리고, 땅을 판다.
효도르는 문득,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흰 손을 보았다.
"고양이를 묻으려는거죠?"
"......"
"나도, 도와줄게요."
그녀는 머뭇거리듯 땅을 슬쩍 짚더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두어번 손을 놀렸을뿐인데 유리조각에 긁혀 피가 흘렀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고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땅을 팠다. 효도르는 그녀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뭘봐요? 빨리 파기나 해요."
"...고맙소."
"...네? 네, 아, 네."
둘은 고양이를 묻었다. 충분히 파내린 뒤에 고양이를 재우듯 눕히고, 그 위에 흙을 쌓았다. 효도르가 그녀를 보았을때, 그녀는 등을 돌리고 하늘의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상냥하군요."
효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얘기 좀 해도 돼요?"
"...."
"사실 전 이번 일 탐탁지 않았어요. 전 폭력이 제일 싫거든요.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음, 아시겠죠? 그래서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서로 때리는건 정말 보기 싫어요. 당신은 때리기 스포츠의 챔피언이잖아요. 그래서 이번 일도 하고싶지 않았어요. 편집장님 기대를 저버릴수 없어서 맡기는 했지만. 당신도 분명 사납고 폭력적인 사람일줄 알았어요."
그녀는 빙글 돌아 효도르를 보았다.
"그런데 당신은 아닌것 같아요."
"당신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나요?"
"... 그런 편이오."
"네. 달이 참 밝네요."
둘은 다시 밤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었다. 평소라면 이런 야밤에 이런 거리를 걷지 않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때리기의 챔피언인 남자가 곁에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둘 사이에 잠시 말이 끊겼다.
밤의 안개는 여전히 도시를 가두고 있었다. 조금만 멀어져도 시야가 끊겨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효도르를 보았다. 효도르는 그 안개에 더 불안해하는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으나, 왠지 그랬다. 그녀는 만난지 얼마 안된 이 남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한걸음 효도르에게 다가서서 걸었다. 그는 조금 움찔했지만,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한동안 걷다가, 효도르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도 폭력이 싫소. 이런 말 하면 당신은 웃겠지만."
"...네?"
의외의 말이라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일년 내내 안개끼는 호숫가에서 자랐소. 아버지는 경기중 폐인이 된 격투가였지. 그에게 폭력을 배웠소."
"..."
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링 위에서 상대 선수를 때릴때, 맞을때, 항상 어린 시절 그곳의 안개가 나타나 나를 둘러싸지."
그는 손을 뻗어 안개를 만지려는것 같았다. 몇번 허공을 휘젓던 손은,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 안개가 무서웠소. 안개에 휩싸인 곳에서 아버지에게 맞아가며 싸움을 배웠지. 내게 있어 안개는 두려움과 불안뿐이오."
"당신 ..."
"아버지는 내게 말했소. 지지 말아라. 지는 순간 너는 먹혀버린다. 안개가 너를 휘감아 죄어들어 까마득한 지옥 밑바닥까지 내려앉힐 거야... 라고."
"...."
"내가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가지요. 지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지지 않은 이유는 ..."
그가 주먹을 쥐었다.
"경기마다 날 감싸고 괴롭히는 안개에게 도망치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서요. 지는 순간 난 먹혀버릴테니까."
효도르가 멈춰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가 멈추자, 그녀또한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안개가 잔뜩 낀 오늘밤이 무척 무섭소. 내가 아직 꼴사납게 울지 않는건.. 당신이 함께 있어준 덕분이지."
가만히 서로가 서로를 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가 서로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서로의 눈동자를 통해서라면 거울에서도 보지 못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서로를 향한 시선또한 깊어졌다.
안개또한 잠시 그 움직임을 멈춘듯, 둘 사이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효도르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만졌다. 그녀는, 뺨에 오른 그의 손에 자기 손을 겹쳤다. 둘의 온기가 서로를 데우고 있다. 안개 너머에서 달빛이 쏟아져 내린다. 안개를 통과해 둘에게 닿은 달빛은 한없이 흐리고 희미하다. 하지만, 그 엷은 달빛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여어- 뭐하는거야? 둘?"
"야, 그림 좋은데. 낄낄낄."
"우리도 그 여자 나눠주라."
"....!"
둘이 황급히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열명 가까이 되는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다가오고 있다. 가슴털 난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근육질에서, 앙상한 몸에 각목을 든 닭머리 양아치까지, 그들의 의도는 뻔해보였다. 효도르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뒤로 가렸다. 효도르의 등에 의지한 그녀의 떨림이 효도르에게 전해졌다.
효도르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움켜쥔 효도르의 주먹을 그녀가 감싸쥐었다. 효도르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울먹거리는 눈으로 소근거렸다.
"싸우지 말아요.. 싸우면.. 싸우는건 싫어요. 그냥 가요. 네?"
"보내주지 않을거요."
"가진거 다 주면 그냥 보내줄거에요. 저사람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요. 저도 맞을게요. 네?"
효도르의 주먹이 풀렸다.
"...알았소."
"어이~~~ 뭐라고 떠드는거야 시벨롬아?"
"아놔 이 좆병진 색기가 존나 겁먹었네 낄낄낄 안죽어 안죽어 이새꺄."
"그런데 실수로 죽이면 어쩌지? 켈켈켈."
효도르가 말했다.
"가진건 다 주겠소. 그냥 보내주시오."
"뭐 이 미친놈아. 얼마있냐? 돈을 보고 고려해보지."
효도르가 지갑을 던져주었다. 그들이 지갑을 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게 다냐?"
"그렇소."
"... 좋아. 가라."
"어? 미쳤냐 너? 저색기 왜 보내?"
"저렇게 겁먹었는데 설마 숨겼겠냐? 이정도 돈이면 몇주는 놀고 먹을 수 있어. 괜히 때렸다가 짭새한테 걸리면 골치아파. "
"언제부터 뒷일을 그렇게 생각했다고 .."
"그냥 가자. 낄낄 너 운좋다 이새끼 앞으로도 자주보자 응? 이 시벨 겁쟁이 개새꺄."
"킥킥킥."
그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효도르와 그녀를 희롱하듯 쿡쿡 찔렀다. 효도르가 그녀를 감싸자 그들이 휘파람을 불었지만 딱히 그녀를 더 건드리지는 않았다. 효도르의 뺨을 툭툭 치거나, 사타구니를 슬쩍 만지는 무례한 행동을 했지만 효도르는 참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그들은 둘을 지나며 한대씩 효도르를 건드렸다. 그들은 질퍽한 농담과 함께 효도르를 모욕하며 지나갔다.
"... 잘됐어요. 그렇죠?"
"...그렇소."
그때였다. 지나가던 그들이 멈춰서서 낄낄대며 효도르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야, 해봐 한번.` , `재밌겠네 그거.` 따위의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들중 한명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덩치 큰 형씨, 내가 선물 하나 하지."
"..."
"손 내밀어 보슈."
효도르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위로 그의 주먹이 올려졌다. 뭔가를 쥐고 있는것 같았다. 효도르의 손에 역겨운 촉감의 무엇인가가 닿았다. 그의 손이 치워지고, 효도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미친 고양이 새끼가 우릴 재수없게 꼬라보더라고, 킬킬킬 그래서 이꼴로 만들어줬지."
효도르는 그녀를 뒤로 물러세웠다. 그녀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몰라 의아해하고 있었다. 효도르는 그에게 건내진 고양이 눈알을 바닥에 조심스레 놓았다. 효도르의 반응이 재미없는지, 그들이 야유를 보냈다.
"물러나 있으시오."
"...네?"
"그리고, 당신은 ... 아마 날 싫어할거요."
"...왜요?"
그녀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60억분의 1, 세계 최정상의 파이터, 아이들에서는 자상한 아버지 아내에겐 든든한 남편 가정적인 파이터 에밀리야넨코 효도르의 가공할만한 펀치가 눈앞의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뒤의 무리가 비명을 질렀다. 강타당한 남자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효도르는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효도르는, 그의 주위로, 어린 시절의 안개가 다시 스산하게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효도르는 그들을 처참하게 구타했다.
대부분 피떡이 되어 굴렀다. 주위는 안개뿐이다. 그리고 바닥을 기며 경련을 일으키는 처참한 몰골의 양아치들, 바닥은 피투성이였다. 효도르는 표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덜맞은 놈들은 뒷걸음질치며 효도르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사지가 돌아가서는 안될 방향으로 꺾인 놈들도 있었고, 코뼈가 부서진 놈도 있었다. 효도르의 얼굴에도 그들의 피가 튀어있었다.
안개는 자욱하다. 어린 시절의 안개, 그 사이에서 아버지가 언제라도 튀어나올것 같다. 하지만 머리는 차분했다. 어떻게 이놈들을 부숴버릴지 질서정연하게 그 과정이 뇌리로 나열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다.
`주먹으로 턱을 쳐라. 쓰러진 상대를 밟아라. 여의치 않으면 마운트 포지션으로 끝없이 상대를 내리쳐라. 위를 점하면 이긴다. 손목을 비틀어라. 발목을 비틀어라. 관절을 부숴라. 목을 졸라라. 눈을 쑤셔라. 사타구니를 파괴하라. 후장을 찔러라.`
그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기분나쁜 안개 안에서 그는 무적이었다. 패배의 두려움이 가슴 한켠에 남아있지만, 이들에게는 패배할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무언가가 그를 잡아끌고 있다. 때리지 말라고, 그를 말리고 있었다. 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안개속엔 자신과 적, 그 두 종류 뿐이다. 싸움을 말리는 자가 있을리 없다. 의아했다.
`.....요.`
뭐?
`.........돼요.`
안들려. 팔이 붙잡혀 있었다. 여의치 않아서 발로 상대를 밟았다.
순간, 붙잡힌 팔 쪽에서 향기가 흘렀다. 효도르가 깜짝 놀라 멈칫했다. 그리운 향기였다. 뿌리쳐서는 안될 것 같다. 하지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진다. 내가 지면, 나는, 나는 - ....
순간, 뒷골에 강한 충격이 날아들었다. 바닥으로 쓰러진다. 급소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 부위를 반복해서, 몇번이고 충격이 다시 가해진다.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안돼, 정신 차려. 희미하게 눈을 떴다. 제대로 밟지 못한 양아치놈이 쇠파이프로 그를 내려치고 있었다. 안개는 한층 끈적하게 효도르를 옥죄어왔다. 금방이라도 바닥이 내려안고 안개에 휩싸여 나락으로 떨어질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돼, 질 수 없어. 효도르는 가까스로 회복할 수 있었다.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
그때였다.
`져도 돼요!`
져도 돼?
`당신은 져도 돼요!`
효도르는 그 순간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쓰러졌다. 정신을 잃는다. 그는 졌다.
"정신 차려요."
"...."
"정신 차려요."
효도르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그녀의 얼굴, 울먹이는 그녀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괜찮아요?"
"어떻게 .. 됐지?"
"갔어요. 전부. 당신이 너무 심하게 때려서 당신을 기절시키고도 무서워서 도망갔어요. 됐어요?"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내가.. 졌나?"
"네, 졌어요. 어때요. 통쾌하죠? 당신은 패배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구요."
".. 당신 덕분이야."
효도르가 미소지었다.
"당신 덕분에, 질 수 있었어. 고마워."
그녀도 눈물 자욱 어린 얼굴로 웃었다.
"내가 싫겠지. 이제. 당신은 폭력이 싫다고 했으니까."
"당신..."
"난 이런 놈이야.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패버려. 그놈들 얼굴 봤지? 완전 피떡이었어. 내가 싫겠지. 좋을리 없어. 그래. 가도 좋아. 난 폭력배나 다름 없는 놈이야. 난 원래 혼자..."
효도르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막았다.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꿈결같은 순간이 흐르고, 둘이 입술이 떨어졌다. 그녀는 미소지었다.
"당신 취미가 뭐에요?"
"취미?"
"그래요. 사람때리는건 당신 취미가 아니잖아요."
효도르는 머뭇거렸다.
"말해봐요."
"...동화 그리기."
"..네?"
"동화 그리기. 웃기지?"
"아뇨."
그녀는 효도르의 뺨을 감싸 쥐고, 그를 쳐다보았다.
"전혀 웃기지 않아요."
둘의 입술이, 다시 맞닿았다.
이름 :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Emelianenko Fedor)
출생 : 1976년 9월 28일
신체 : 키 182cm, 체중 105kg
출생지 : 러시아
가족 : 동생 이종격투기선수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경력 : 2005년 4월 프라이드 FC 부시도 6 (VS 코사카 츠요시)
2005년 8월 프라이드 FC 그랑프리 파이널 (VS 미르코 크로캅)
2006년 10월 프라이드 FC 32 REAL DEAL (VS 마크 콜먼)
수상 : 2003년 프라이드 FC 헤비급 챔피언
주종목 : 격투기, 코만도 삼보, 유도
소속팀 : Red Devil Sport Club
취미 - 동화 일러스트.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