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출품작

토요일

by P9

 

 토요일.
 나는 관 속에서 눈을 떴다.
 “어?”
 어스름한 시야 너머로 부자연스런 곡선이 보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무언가가 움찔했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그 것은 얼굴을 비비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그 것은 어린 여자 아이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
 “어……아, 안녕.”
 전혀 상황파악이 안 되었지만 나는 일단 좁은 관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났다.
 “먼지가 심하군.”
 답답한 공기가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먼저 주위를 확인했다. 어딘가 광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뒤쪽으로 빛이 보였다. 나는 그 쪽으로 이동했다.
 “응?”
 몇 발짝 걷고서 문득 위화감을 느껴 고개를 돌리자 관 너머에서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그녀는 뭘 원하는 걸까? 10대 초반의 소녀가 어둠 속에서 젊은 남자한테 시선을 보낸다. 그 행동의 의미는? 몇 초간의 장고 끝에 나는 손을 들어 소녀를 불렀다.
 “이리 올래?”
 “응.”
 소녀는 다람쥐같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관을 뛰어 넘어 내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우리는 불가마를 향했다.
 밝은 곳에서 본 소녀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전신이 온통 먼지투성이인데다가 특히 얼굴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 울기라도 했는지 완전히 얼룩이 져 있었다.
 “여기 어디 씻을 데가 없으려나?”
 나는 눈을 찌푸리며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밝은 쪽으로 향해 오며 빛에 익숙해진 눈은 좀처럼 어둠 속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저쪽.”
 소녀는 불가마에서 오른쪽으로 상당히 빗나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여기 지리는 네가 더 잘 알겠구나. 가서 씻고 올래?”
 내가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지긋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음……”
 이 행동의 의미는 뭐지? 어린 소녀가 젊은 남성을 어둠 속의 화장실로 끌어당긴다. 잠시 생각 끝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나도 세수하는 데가 어디인지는 알아야 할 테니까.”
 소녀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불가마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기에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나는 소녀를 들여보내고 화장실 옆의 벽에 기대어 섰다. 다시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조명시설이 있는 곳은 일단 여기 화장실과 불가마. 식수는 다른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 화장실에 수도시설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고. 남은 건 식량인데, 먹을 만한 게 있으려나? 소녀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소매를 잡아당겨 고개를 돌리니 소녀가 일을 마치고 나와 있었다. 하얀 원피스는 차마 빨지 못한 듯 군데군데 때가 져 있었지만 얼굴은 깔끔했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이 어린 소녀 특유의 귀여움이 잔뜩 배어든 얼굴이었다. 나는 칭찬의 의미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말했다.
 “그럼 갈까?”
 내가 걸음을 떼자 소녀는 문 옆의 스위치를 조작해 불을 끄고는 따라붙었다.
 “불을 켜 두는 게 낫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묻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야 다음에 올 때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 아냐?”
 내가 당연하단 듯이 말하자 소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하, 하지만 화장실 불을 켜 두면 멀어지잖아?”
 이번엔 내가 머뭇거릴 차례였다.
 “무, 무슨 말이야?”
 “화장실 불을 켜면 화장실이 넓어지니까.”
 소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불을 켜고 화장실을 뒤로했다. 소녀는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불가마의 빛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야 우리는 불가마 뒤쪽으로 왔을 테니 빛이 보이지 않겠구나. 나는 어둠속에서 나무 타는 소리를 줍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적당히 방향을 잡고 걸어 나갔다.
 기묘한 공간이었다. 사방으로 어둠만이 깔려 있는데, 바람도 소리도 없다.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바닥은 평평하여 인공적인 실내 같은데, 어디에도 벽이 없다. 이곳은 거대한 암실이었다.
 나는 어둠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어둠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올 때는 금방 왔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먼 걸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해서야 멀리 빛이 보였다. 뭐야, 설마 한 바퀴를 빙 돌아 온 건가? 난 계속 앞으로만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우리는 불빛을 쫓아 불가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노곤함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 배고프다.
 
 일요일.
 불가마 앞에서 불을 쬐며 나는 작은 소녀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여기선 뭘 먹지?”
 “뭐가 먹고 싶은데?”
 소녀는 내게 물었다.
 “글쎄, 카레?”
 나는 적당히 떠오른 음식 이름을 대었다.
 “그럼 카레를 먹으면 되지.”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식당에 가면 돼.”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일어서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불가마 뒤를 돌아서 소녀에게 이끌린 대로 걸어가자 갑자기 문이 나타났고, 안은 제법 정갈한 식당이었다. 4인용의 낡은 목제 식탁 위에 카레라이스가 놓여 있었다. 일단 의문은 제쳐 두고 나는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로 했다.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지?”
 배를 두드리며 나는 질문했다.
 “홍항이야.”
 소녀는 맞은 편 식탁에 앉아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으며 말했다. 어느새 만들어 온 걸까?
 “뭐?”
 나는 수저 옆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소녀의 입 주위를 닦아주었다.
 “구옹바앙. 물건을 만드는 곳.”
 “뭘 만드는데?”
 “뭘 만들고 싶은데?”
 그녀는 다시 되물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배부른 남자를 바라본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거지?
 “아니, 별로 만들고 싶은 건 없어.”
 “응.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해줘.”
 “부탁할게."
 스파게티를 다 먹은 소녀는 이제 심심한 듯 포크로 빈 접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안내해줄래?"
 내가 청하자 소녀는 금방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응, 내일. 오늘은 휴일이니까 문을 닫은 곳이 많아. 그러니까 내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 다음에는 뭘 하란 걸까?

 월요일.
 어둠 속을 걸으며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네가 여기, 그러니까 공방의 책임자인 거야?”
 “나는 그저 공방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을 도와줄 뿐이야.”
 다시 소녀에게 이끌려 간 곳은 도서실이라고 부를만한 곳이었다. 단, 그 곳은 화장실과 식당과는 다르게 그 곳은 입구라고 할 만한 문이 없이 어느 장소부터 책장들이 사방으로 늘어서 있었다. 책장은 깨끗이 관리되어 있었다. 책을 한 권 뽑아들자 책장 위에 달린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네. 뭐 추천하는 책은 없니?”
 그녀는 또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책들을 읽고 싶은데?”
 “글쎄.”
 나는 일단 <무인도를 탈출하는 모범적인 이야기들>, <비밀을 파헤치는 모범적인 이야기들>, <감옥에서 벗어나는 모범적인 이야기들> 등의 그나마 흥미로워 보이는 <모범적인 이야기들 시리즈>를 몇 권 뽑아서 불가마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나는 대체 뭘 어쩌면 좋은 걸까? 약간 짜증을 느끼며 책을 베고 누웠다.

 화요일.
 도서관에 가려고 했는데 이상한 문 앞에 도착해 버렸다. 문틈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이.”
 생각해보니 소녀의 이름을 몰랐기에 조금 난폭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그렇게 불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문’이군.”
 이건 노골적인 함정이다. 분명 어제 읽은 책 중에도 이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함정에 빠지는 모범적인 이야기들> 중에 말이다. 한참을 문 앞에 서서 고심했다.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이 ‘문’이 아니라면 어디로 가면 좋다는 말인가? 나는 이를 악 물고 문에 손을 대었다. 이제 이 문을 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려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문에서 물러나며 손을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왜? 문을 열고 발을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
 “뭔가 밖에는 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예감이 들어.”
 그런 건 터무니없는 망상일 뿐이다.
 “예감이 들 뿐이잖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야.”
 소녀는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은 안전할지도 모르고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이미 안전하잖아?”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겁쟁이.”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돌아 뛰어갔다. 맨발로 바닥을 차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음……”
 어린 소녀가 울면서 뒤돌아 뛰어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뭔가?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나는 소녀를 따라 불가마로 돌아갔다. 소녀는 불가마 앞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었지만 나는 건네줄 말을 찾지 못한 채 그 옆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책장에서 다른 책을 한 권 빼왔다. 제목은 <어린 소녀의 구두를 만드는 청년들의 모범적인 이야기>이다.
 
 수요일
 “저기, 뭔가 만들어볼까 하는데. 마침 여기는 그런 곳인 것 같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뭘 만들고 싶어?”
 키가 작은 그녀는 웃음 띤 얼굴로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아~으음. 시, 신발?”
 나는 한 손에 든 책을 은근슬쩍 뒤로 돌리며 말했다.
 “이리 와 봐.”
 내 다른 쪽 손을 붙잡고 그녀는 나를 불가마 뒤로 끌고 갔다.
 한참을 걸어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필기구가 놓인 거대한 책상과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기계들이 가득 차 있는 방이었다.
 그녀는 먼저 풍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복사기 같은 기계에 이야기를 쓴 종이를 집어넣고 버튼을 누르니 우웅하고 기계가 돌아갔다. 그리고 한 쪽에서 음료수 캔 크기의 깡통이 튀어 나왔다. 그녀는 그 것을 화석이라고 했다.
 그녀가 내게 펜을 넘겨주었다. 나는 어제 읽은 책을 참고해서 적당히 글을 적어 넣었다.
 ‘그녀는 빨갛고 둥근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발등에 작은 리본이 달린, 단지 그 것뿐인 소박한 구두였지만 잘 손질이 되어 있어 반들반들 윤이 나는 그런 구두였다.’
 종이는 금방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삐걱이는 소리, 비틀대는 소리, 회전하는 팬의 모터음 등 갖은 기계음들이 지나고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투입구 옆의 관 속에서 커다란 캐찹통 같은 깡통이 떨어져 나왔다.
 “신발치고는 크다.”
 안에는 액체가 들어있는 듯 그녀가 신나서 좌우로 흔들자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한 손에는 각자의 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다시 불가마로 돌아왔다.
 “이걸 여기 주물에 집어넣고”
 그녀는 불가마 옆에 쌓여있던 상자들을 뒤적이다가 어디선가 금속제의 통을 꺼내더니 캔을 따서 안에 든 액체를 부어넣었다. 그리고는 내게도 얼굴만한 통을 내밀었다.
 내가 캔을 따서 통 안에 구두의 화석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액체인데 화석이라고? 석유같은 건가?
 “가마 안에 집어넣은 다음, 9분을 기다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것을 기다란 뒤집개 같은 도구에 올려서 불가마 안에 집어넣고는 이어서 내 것도 그 도구를 이용해 불가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앉아서 멍하니 불가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콧노래가 세곡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커다란 뒤집개 같은 도구를 들었다.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불 속을 몇 번 헤집고는 무사히 두 개의 주물을 꺼냈다. 그녀는 바닥에 놓인 주물로 손을 뻗었다.
 “조심해!”
 나는 성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어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뜨겁지 않아?”
 “왜?”
 나는 조금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그녀의 손을 풀어주었고 그녀는 찰카닥찰카닥하며 주물을 만지작거렸다.
 “짜잔.”
 그녀가 고정쇠를 벗기자 네모난 뚜껑이 열리며 붉은 풍선이 튀어나왔다.
 “아하하.”
 그녀는 풍선을 가슴에 안고는 얼굴을 문질러댔다.
 나는 그녀가 꺼내놓은 내 주물을 집어 들었다. 전혀 뜨겁지 않았다. 나는 주물을 열어보았다. 귀여운 디자인의 아이용 구두가 들어있었다.
 “으흠.”
 나는 어색하게 기침을 하고서는 그녀에게 구두를 내밀었다.
 “여기, 선물.”
 그녀는 폴짝폴짝 뛰었다. 몇 번이나 손에 구두를 들고 내 주위를 뛰더니 그녀는 결국 구두를 내려놓고 조심스레 발에 맞춰보았다. 톡톡 구두 끝으로 땅을 두드려보고 그녀는 한가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느새 불가마 뒤로 사라지더니 알몸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나신에서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알몸으로 젊은 남자를 바라보는 소녀, 그녀는 대체 무엇을 바라는 걸까?
 “옷 잊어버렸어.”
 “잠깐 기다려. 금방 새 옷을 만들어 줄 테니까.”
 나는 웃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고 잰걸음으로 설계실을 향했다.

 목요일,
 오른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건 죽기 마련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등 뒤로부터 들려왔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죽는다고?”
 나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그 무거운 단어에 짓눌릴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아무리 위대한 용도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뭘 알고 있지?”
 “뭘 알고 싶어?”
 그녀의 반문에 나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나는 이제 곧 죽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빨리 말해!”
 “당신은 누구야? 어디에서 왔어?”
 나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서 불가마 뒤로 돌아갔다. 그 곳엔 내가 처음 눈을 떴던 관이 있었다. 어째서 눈치 채지 못했을까. 검은 금속 소재의 판들, 긴 상자 모양, 그리고 풀어헤쳐진 잠금쇠.
 “이건 관이 아니라, 주물인 건가?”
 나는 불가마 앞으로 돌아와 소녀를 억세게 붙잡았다.
 “누구지? 누가 나를 만들었어?! 너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야.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태어나는 법이니까.”
 “무슨 말이야?”
 오늘따라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무슨 비유인 건가? 속담? 좀 제대로 말을 해 봐!
 “공간은 있어도 길은 없어. 질문은 있어도 대답은 없어. 공방은 필요한 것을 주지만 무엇이 필요한지는 가르쳐 주지 않아.”
 그녀는 그녀를 붙잡은 내 팔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 여기가 아니라면, 공방 밖으로 나갈 수도 있어.”
 그녀는 리본과 레이스가 잔뜩 다린 붉은 드레스를 꼭 껴안은 채 말했다.
 “네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니, 내가 방해하더라도 정말 필요하다면 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이라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저을 차례였다.
 “아니야, 내 이야기에 그런 선택지는 없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어. 그 때도, 지금도.”
 “웃기지마! 내가 대체 어떻게 했다면 좋았다는 거야?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해? 무언가를 알아서는 안 됐나? 세계 그 자체를 나타내는 책이 내 앞에 있는데도? 주어진 것을 내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어야 해? 다른 누군가를 원해서는 안 됐나? 네가 옆에 있는데도? 무언가를 만들어서는 안 됐다고? 여기가 공방인데도 불구하고? 그럼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일까? 그런 건, 그런 건 무리야!”
 나는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정해진 이야기였던, 아니면 내 스스로의 선택이었던간에 나의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밖에는 흘러가지 못했다. 결국, 죽음이라는 귀결을 향해.
 “아니야, 아무 것도 틀리지 않았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
 그녀는 한 발짝 내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이야기는 모두 틀린 이야기일까?”
 그녀는 내게 손을 뻗었다.
 “죽는다는 건 틀렸다는 표시가 아냐. 그런 건 하나의 흐름일 뿐이야.”
 우리는 잠시 그렇게 연결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묵묵히 책장으로 가서 <불사에 관한 모범적인 이야기들>. <부활과 재생에 관한 모범적인 이야기들>을 꺼내왔다.
 나는 설계실에 들어가 밤을 새워 이야기를 썼다.
 
 금요일,
 “그런 말로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내가 태어났던 커다란 주물을 불가마 안에서 꺼냈다. 주물 속에는 나와 닮은 남자가 들어 있다. 천천히 가슴이 오르내렸다. 호흡은 하고 있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는다.
 “왜 눈을 뜨지 않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마법도 이야기 앞에서는 무력한 법이야. 너는 육신을 만들고 거기에 생명을 깃들게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런 것조차도 결정적이지 않지. 아무 것도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들 수는 없어.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태어나는 법이니까.”
 “시끄러워!”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고 있었다. 나는 절룩거리며 불가마에서 떨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 몸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내 등 뒤를 따랐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걸음으로는 그녀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식당을 떠올리며 발을 두 번 굴렸다. 눈을 뜨자 내 앞에는 식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식당 안은 불이 꺼진 채 향기로운 차향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차를 들이켰다. 이제는 작은 움직임에도 몸이 부스럭 거리며 흙가루가 되어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떨어진 찻잔을 줍고서 잠시 울었다. 다시 불가마 앞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나는 여전히 주물 속에 누워 눈 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후우, 이게 내 한계인 건가.”
 나는 주물 옆에 앉아 시선을 돌려 천장을 올려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어둠, 어둠. 시선을 내리자 눈앞에 그녀가 있었다.
 “아, 아까는 미안해.”
 나는 머뭇거리며 사과했다.
 “응.”
 “얘도 언젠가 눈을 뜰까?”
 “응.”
 “그리고 죽는 걸까?”
 “응.”
 “그렇다면 저것은 관이면서 동시에 주물인 거로군.”
 “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거의 부서지려고 하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모르겠어. 이렇게 죽어가는 와중에도 죽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게다가 이제는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단지 그냥……이유가 없다면 그 이유가 없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 바보 같은 짓이지.”
 그녀는 나에게 매달리듯 나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내가……울어줄 테니까.”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끝내 어떤 말도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 남은 왼손으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내.”
 “응.”
 그녀는 나를 살며시 껴안았지만 그 작은 힘에도 나의 몸은 으스러졌다. 나의 육체는 집속력을 잃고 허물어 졌다. 사방으로 나의 육체였던 것들이 흩날려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나는 그녀의 마지막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는 그의 주물 속에서 눈을 떴다. 소녀는 주물에 등을 기대고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그의 기척을 느끼자 소녀는 눈물을 훔쳤다. 얼굴을 비벼 표정근을 이완시키고는 돌아보았다.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