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행사 - 판갤단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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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결과를 받아보고 나는 신에게 감사했다. 내 삶의 최종목적지이자 이유를 찾은 것만 같았다. 이것을 위해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구나 하는 묘한 감흥을 느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내 남은 평생을 바칩니다. 부디 내가 사랑하는 그애의 앞날에 축복만이 존재하기를...
내가 양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10살때였다,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직접 알려주신 것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던 부모님은 내게 사실을 알려주셨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난 묘하게 침착했던 것 같다. 그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 부모님의 사랑이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란걸 알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그렇구나'하는 감상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부모님은 변함없이 나만을 사랑해 주셨다.
수술은 당연하게도 의사에게 거절당했다. 위험도도 너무 높을뿐더러 가능성도 낮은데 멀쩡한사람을 희생시켜 환자를 살리는건 본말전도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게는 포기할 생각따윈 없었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면 될 뿐이었다.
그런 내가 동생이 생겼단 말을 들은 것은 13살때였다. 그 소식을 듣고 점차 불러오는 엄마의 배를 볼때마다 내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난 부모님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무서웠던 것이다. 부모님은 그런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내 동생이 태어났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질투심에 휩싸였다.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갈 악마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친자식을 사랑하고 난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출할 용기도 없이 나는 겁과 질투심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다. 그곳에서 난 동생을 처음 만났다.
첫 느낌은 '못생겼다.'였다. 갓난아기가 으레 그러하듯 주름투성이에 눈도 뜨지 못하고 하얀 강보에 감싸여 있는 자그마한 생명.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동생을 보는 순간 전부 잊어버렸다.
미추와는 상관없이 내 '동생'은 천사와 같았다. 동생의 주변에는 항상 빛이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질투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나는 동생을 처음 본 순간부터 동생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동생을 보기위해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리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생활은 해봤기에 돈의 위력과 이런 때에 써야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기다 나름의 돈도 모아둔게 있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시간만이 얼마 없을 뿐이었다. 빠르게 사람을 매수하고 다소간의 불법행위로 서류 등의 절차도 처리했다. 어느 누구도 모르게 비밀리에 준비가 끝나자 동생에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동생의 담당의사를 만나 요구했다. 동생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아니, 그것은 요구라기보단 통보였다.
의사의 반대는 미약했다. 결국 그나 그가 속한 병원의 환자에 대한 생각은 그정도란 거겠지. 그들에게 중요한건 '기록'인 것이다.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쉽게 진행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동생을 돌보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에겐 충분한 시간이 없었고, 나는 충분히 그 대신이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직접 동생을 업어키웠다. 동시에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빠가 되기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 그리고 동생 또한 그런 나의 노력에 보답하듯 갈수록 앙증맞고 귀엽게 자라주었다. 다소 조용하긴 할 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꽃과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생각해주었다. 내가 동생을 생각하듯이. 주변에선 그걸 보고 시스콘, 브라콘이라고 놀려댈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알맞은 말이었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급변한 것은 내가 사고로 한쪽눈을 실명했을 때였다. 정확히는 동생을 감싸다가 맞은 파편이 내 왼눈을 철저히 찢어발겨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동생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나는 안심했다.
그일 이후, 동생은 그에 대한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나를 어떻게든 도우려 애썼다. 그것이 계속되자 우리는 서로가 붙어있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의존증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남매이상의 감정을 느끼는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술이 준비되고 병원을 옮기기 시작한 이후 동생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저 친우가 전해주는 소식과 사진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동생을 추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잔 발작의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그것을 참느라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은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계획을 위해서였다. 친우를 믿고 계획이 진행된다. 수술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 몸의 상태에 만전을 기했다. 동생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오길 기다리면 되었다.
내가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주변에도 철저히 숨겼기에 조금 과하게 친한 남매정도가 주변의 우리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 탓에 함께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나는 내 장애를 딛고자, 대학졸업 후 스스로의 사업을 개척하려 정신없었다. 그리고 동생은 학업에 매진하느라 바빴다. 내 뒤를 좇듯이...
그리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당시 독립해있던 나는 동생을 혼자 둘 순 없었기에 내 집으로 데려왔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 같았다. 슬픔에서 벗어나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순식간에 연인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동생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멀쩡하던...건강하기 그지없던 동생이 심장발작이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모든 검사가 심장질환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입원 후 1년여에 걸친 치료가 동생을 무사히 치료하는 듯 했다.
그 때, 두번째 발작이 동생을 덮쳤다. 살아난 것이 용할 지경이라고 했다. 급하게 한 수술또한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끝났다. 이식 외에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식자를 찾을 때까지 동생이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사업을 대부분 정리하고 동생의 곁을 지켰다. 고통 속에 몸부림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빛을 잃어가는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이어졌다.
내가 업어키우고 학교에 데려갈 때,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나를 의지하며 꼭 쥐어오던 작고 따뜻한 손이. 지금은 그 힘을 잃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체온으로, 느껴질 듯 말 듯한 희미한 힘으로 내 손을 마주잡아왔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 입모양만으로 날 안심시키는 말을 읆조렸다. 그런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잔발작도 없이 동생의 상태는 순조롭게 좋아졌다. 아슬아슬하게 수술의 안정권에 들어갔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졌다. 내일 수술하기로 결정된 뒤 친우에게 전화했다. 그동안 내 억지에 어울려준 하나밖에 없는 친구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괴로운 일만 시키게 되어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확실한 입막음을 부탁하고 동생의 뒤를 부탁했다. 동생에게 배신자이자 나쁜놈으로 남겠지만, 자유를 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동생을 죄책감과 책임감이란 사슬로 내게 묶어둘 순 없었다. 동생이 나를 원망하고 증오해도 좋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비겁자라 기억해도 좋다. 동생은 더 자유롭게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인공심장 혹은 심장이식만이 동생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성공률이 낮으며, 인공심장은 상당한 생활의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멍청한 의사놈들이 입을 어떻게 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은 울면서 차라리 자신을 포기하라며 내 가슴팍을 전혀 아프지 않은 주먹으로 두들겼다. 이런 행동까지 제대로 힘을 주지 못 할 정도로 약해진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이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마취에서 깨어나보니 내 가슴팍과 연결된 커다란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조금 남은 마취기운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저런 기계가 동생에게 달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픔이 계속 따라다니긴 했지만 어느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진 약간의 시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동이 가능해졌을 때, 의사로부터 경과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란다. 거부반응도 없고 적합성도 높아 이대로라면 몇개월 내로 완치되어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몇주간 경과를 지켜봤다. 동생의 가슴에 이식된 심장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유래없는 대성공이라고 의사가 떠벌이는 것을 흘려들으며 내 할일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이젠 내 할 일을 끝마칠 때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그 노트'를 꺼내 읽어보았다. 계속 주저했지만 결국 전하지 못햇던 물건이다. 친구와의 약속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곧 크리스마스이니 그때의 선물로 삼도록 하자. 병때문에 2년 늦긴 했지만 대학에 합격한 것에 대한 축하와 생일 축하,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겸해 선물하도록 하자. 친구와 그 애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선 전화로 약속을 잡아볼까...
'요즘 애들은 미리 약속해두지 않으면 만나기도 힘들다니깐.'
"아, 오빠인데. 혹시 크리스마스에 시간 있어?"
<아저씨? 시간은 있는데요.>
"오빠라고 하라니깐. 네 생일 축하겸 어디 갈데가 있어서."
<네에. 시간 비워둘게요.>
"그래, 그때보자."
휴대폰을 닫고, 다시 한 번 노트를 펼쳤다.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할 말을 머리속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거의 1년이 넘게 지났구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나가자 옷에 폭 싸여있는 듯한 인상의 작고 귀여운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애를 놓고 가다니 너도 죄많은 남자다.'
친구에게 속으로 불만과 질투심을 토로하며 차에서 나와 문을 열고 소녀를 에스코트했다. 작게 인사하는 소녀에게 싱긋 웃어 답해주고는 다시 차에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심부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접어들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낮고 헐벗은 야산뿐이다. 볼 것도 없는 황량한 야산만이 있을 뿐인 곳이다. 그런 도로의 어느 산 앞에서 도로변에 차를 멈추었다.
"아저씨...대체 어디가는 거예요?"
"오빠라니깐! 가서 설명해줄게."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아끌고 산에 올랐다.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기에 금방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을씨년한 봉분 하나가 있었다. 가끔 들러 손질은 해줬지만 상당히 볼품없는 작은 봉분이었다. 좀 더 신경써주고 싶었지만, 당시의 사정상 어쩔 수 없었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버렸다.
'놈한텐 미안하군...'
"아저씨, 여기가 어디길레...?"
"음, 말했던대로 선물을 주려고 왔지. 자, 이게 그 선물."
품에 품고있던 노트를 꺼내 내밀었다. 낡은 노트가 선물이란 것에 의아해하길레 어서 읽어보라고 재촉했다. 소녀는 차근차근 노트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빠가 수술을 앞두고 틈틈히 과거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낙서와 일기, 수기 등의 모음이었다. 간호사에게 고민하는 마음을 다잡기위해 쓰던거라며 반드시 처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잘 구슬려 받아낸 것이었다.
"어서 읽어봐."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녀가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시각각 얼굴 표정이 바뀌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지켜봤다.
'그럴만도 하지. 자길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오빠가, 사실은 자길 위해 희생했던거니...'
억지로 오열을 참으며 한글자라도 놓칠새라 정성들여 읽어나가는 소녀는 이윽고 서있을 힘도 없는지 주저앉았다. 하지만 노트는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히려 품에 꼭 끌어안고 소리죽여 오열했다.
"흑...그럼...지금 오빠는 어디에?"
표정에 불안감이 어려있는 걸 보니 어느정도 예감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흐느끼며 묻는 소녀에게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봉분을 가리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잔혹하지만 그녀에게 내가 선물하기로 한 것은 오빠에 대한 '진실'이었으니 망설임은 없었다.
"스스로 인공심장의 전원을 껐다."
그 말에 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움직임으로 머뭇거리며 봉분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곤 옷에 흙이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봉분에 얼굴을 파묻은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본 후, 눈시울이 뜨거워져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야, 약속을 어긴건 미안하지만 난 이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양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10살때였다,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직접 알려주신 것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던 부모님은 내게 사실을 알려주셨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난 묘하게 침착했던 것 같다. 그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 부모님의 사랑이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란걸 알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그렇구나'하는 감상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부모님은 변함없이 나만을 사랑해 주셨다.
수술은 당연하게도 의사에게 거절당했다. 위험도도 너무 높을뿐더러 가능성도 낮은데 멀쩡한사람을 희생시켜 환자를 살리는건 본말전도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게는 포기할 생각따윈 없었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면 될 뿐이었다.
그런 내가 동생이 생겼단 말을 들은 것은 13살때였다. 그 소식을 듣고 점차 불러오는 엄마의 배를 볼때마다 내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난 부모님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무서웠던 것이다. 부모님은 그런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내 동생이 태어났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질투심에 휩싸였다.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갈 악마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친자식을 사랑하고 난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출할 용기도 없이 나는 겁과 질투심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다. 그곳에서 난 동생을 처음 만났다.
첫 느낌은 '못생겼다.'였다. 갓난아기가 으레 그러하듯 주름투성이에 눈도 뜨지 못하고 하얀 강보에 감싸여 있는 자그마한 생명.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동생을 보는 순간 전부 잊어버렸다.
미추와는 상관없이 내 '동생'은 천사와 같았다. 동생의 주변에는 항상 빛이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질투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나는 동생을 처음 본 순간부터 동생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동생을 보기위해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리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생활은 해봤기에 돈의 위력과 이런 때에 써야하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기다 나름의 돈도 모아둔게 있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시간만이 얼마 없을 뿐이었다. 빠르게 사람을 매수하고 다소간의 불법행위로 서류 등의 절차도 처리했다. 어느 누구도 모르게 비밀리에 준비가 끝나자 동생에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동생의 담당의사를 만나 요구했다. 동생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아니, 그것은 요구라기보단 통보였다.
의사의 반대는 미약했다. 결국 그나 그가 속한 병원의 환자에 대한 생각은 그정도란 거겠지. 그들에게 중요한건 '기록'인 것이다.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쉽게 진행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동생을 돌보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에겐 충분한 시간이 없었고, 나는 충분히 그 대신이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직접 동생을 업어키웠다. 동시에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빠가 되기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 그리고 동생 또한 그런 나의 노력에 보답하듯 갈수록 앙증맞고 귀엽게 자라주었다. 다소 조용하긴 할 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꽃과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를 생각해주었다. 내가 동생을 생각하듯이. 주변에선 그걸 보고 시스콘, 브라콘이라고 놀려댈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알맞은 말이었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급변한 것은 내가 사고로 한쪽눈을 실명했을 때였다. 정확히는 동생을 감싸다가 맞은 파편이 내 왼눈을 철저히 찢어발겨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동생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나는 안심했다.
그일 이후, 동생은 그에 대한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나를 어떻게든 도우려 애썼다. 그것이 계속되자 우리는 서로가 붙어있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의존증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남매이상의 감정을 느끼는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술이 준비되고 병원을 옮기기 시작한 이후 동생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저 친우가 전해주는 소식과 사진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동생을 추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잔 발작의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그것을 참느라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은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계획을 위해서였다. 친우를 믿고 계획이 진행된다. 수술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 몸의 상태에 만전을 기했다. 동생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오길 기다리면 되었다.
내가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주변에도 철저히 숨겼기에 조금 과하게 친한 남매정도가 주변의 우리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 탓에 함께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나는 내 장애를 딛고자, 대학졸업 후 스스로의 사업을 개척하려 정신없었다. 그리고 동생은 학업에 매진하느라 바빴다. 내 뒤를 좇듯이...
그리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당시 독립해있던 나는 동생을 혼자 둘 순 없었기에 내 집으로 데려왔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 같았다. 슬픔에서 벗어나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순식간에 연인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동생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멀쩡하던...건강하기 그지없던 동생이 심장발작이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모든 검사가 심장질환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입원 후 1년여에 걸친 치료가 동생을 무사히 치료하는 듯 했다.
그 때, 두번째 발작이 동생을 덮쳤다. 살아난 것이 용할 지경이라고 했다. 급하게 한 수술또한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끝났다. 이식 외에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식자를 찾을 때까지 동생이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사업을 대부분 정리하고 동생의 곁을 지켰다. 고통 속에 몸부림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빛을 잃어가는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이어졌다.
내가 업어키우고 학교에 데려갈 때,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나를 의지하며 꼭 쥐어오던 작고 따뜻한 손이. 지금은 그 힘을 잃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체온으로, 느껴질 듯 말 듯한 희미한 힘으로 내 손을 마주잡아왔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해 입모양만으로 날 안심시키는 말을 읆조렸다. 그런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잔발작도 없이 동생의 상태는 순조롭게 좋아졌다. 아슬아슬하게 수술의 안정권에 들어갔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졌다. 내일 수술하기로 결정된 뒤 친우에게 전화했다. 그동안 내 억지에 어울려준 하나밖에 없는 친구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괴로운 일만 시키게 되어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확실한 입막음을 부탁하고 동생의 뒤를 부탁했다. 동생에게 배신자이자 나쁜놈으로 남겠지만, 자유를 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동생을 죄책감과 책임감이란 사슬로 내게 묶어둘 순 없었다. 동생이 나를 원망하고 증오해도 좋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비겁자라 기억해도 좋다. 동생은 더 자유롭게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인공심장 혹은 심장이식만이 동생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성공률이 낮으며, 인공심장은 상당한 생활의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멍청한 의사놈들이 입을 어떻게 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은 울면서 차라리 자신을 포기하라며 내 가슴팍을 전혀 아프지 않은 주먹으로 두들겼다. 이런 행동까지 제대로 힘을 주지 못 할 정도로 약해진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이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마취에서 깨어나보니 내 가슴팍과 연결된 커다란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조금 남은 마취기운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저런 기계가 동생에게 달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픔이 계속 따라다니긴 했지만 어느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진 약간의 시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동이 가능해졌을 때, 의사로부터 경과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란다. 거부반응도 없고 적합성도 높아 이대로라면 몇개월 내로 완치되어 퇴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몇주간 경과를 지켜봤다. 동생의 가슴에 이식된 심장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유래없는 대성공이라고 의사가 떠벌이는 것을 흘려들으며 내 할일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이젠 내 할 일을 끝마칠 때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그 노트'를 꺼내 읽어보았다. 계속 주저했지만 결국 전하지 못햇던 물건이다. 친구와의 약속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곧 크리스마스이니 그때의 선물로 삼도록 하자. 병때문에 2년 늦긴 했지만 대학에 합격한 것에 대한 축하와 생일 축하,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겸해 선물하도록 하자. 친구와 그 애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선 전화로 약속을 잡아볼까...
'요즘 애들은 미리 약속해두지 않으면 만나기도 힘들다니깐.'
"아, 오빠인데. 혹시 크리스마스에 시간 있어?"
<아저씨? 시간은 있는데요.>
"오빠라고 하라니깐. 네 생일 축하겸 어디 갈데가 있어서."
<네에. 시간 비워둘게요.>
"그래, 그때보자."
휴대폰을 닫고, 다시 한 번 노트를 펼쳤다.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할 말을 머리속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거의 1년이 넘게 지났구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나가자 옷에 폭 싸여있는 듯한 인상의 작고 귀여운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애를 놓고 가다니 너도 죄많은 남자다.'
친구에게 속으로 불만과 질투심을 토로하며 차에서 나와 문을 열고 소녀를 에스코트했다. 작게 인사하는 소녀에게 싱긋 웃어 답해주고는 다시 차에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도심부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접어들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낮고 헐벗은 야산뿐이다. 볼 것도 없는 황량한 야산만이 있을 뿐인 곳이다. 그런 도로의 어느 산 앞에서 도로변에 차를 멈추었다.
"아저씨...대체 어디가는 거예요?"
"오빠라니깐! 가서 설명해줄게."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아끌고 산에 올랐다.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기에 금방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을씨년한 봉분 하나가 있었다. 가끔 들러 손질은 해줬지만 상당히 볼품없는 작은 봉분이었다. 좀 더 신경써주고 싶었지만, 당시의 사정상 어쩔 수 없었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버렸다.
'놈한텐 미안하군...'
"아저씨, 여기가 어디길레...?"
"음, 말했던대로 선물을 주려고 왔지. 자, 이게 그 선물."
품에 품고있던 노트를 꺼내 내밀었다. 낡은 노트가 선물이란 것에 의아해하길레 어서 읽어보라고 재촉했다. 소녀는 차근차근 노트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빠가 수술을 앞두고 틈틈히 과거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낙서와 일기, 수기 등의 모음이었다. 간호사에게 고민하는 마음을 다잡기위해 쓰던거라며 반드시 처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잘 구슬려 받아낸 것이었다.
"어서 읽어봐."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녀가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시각각 얼굴 표정이 바뀌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지켜봤다.
'그럴만도 하지. 자길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던 오빠가, 사실은 자길 위해 희생했던거니...'
억지로 오열을 참으며 한글자라도 놓칠새라 정성들여 읽어나가는 소녀는 이윽고 서있을 힘도 없는지 주저앉았다. 하지만 노트는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히려 품에 꼭 끌어안고 소리죽여 오열했다.
"흑...그럼...지금 오빠는 어디에?"
표정에 불안감이 어려있는 걸 보니 어느정도 예감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흐느끼며 묻는 소녀에게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봉분을 가리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잔혹하지만 그녀에게 내가 선물하기로 한 것은 오빠에 대한 '진실'이었으니 망설임은 없었다.
"스스로 인공심장의 전원을 껐다."
그 말에 소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움직임으로 머뭇거리며 봉분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곤 옷에 흙이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봉분에 얼굴을 파묻은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본 후, 눈시울이 뜨거워져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야, 약속을 어긴건 미안하지만 난 이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선 하얀 눈이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