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행사 - 판갤SF대회
글 수 47
"패치 작업의 기한 연장을 위해 '개입'을 요청하신 게 맞나요, 닥터 그린?"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차후 보수 지급에 감산이 있을 겁니다."
상대방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다른 말이 날아든다.
"전자공학 엔지니어 한 명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상당히 삭막하고 딱딱해 보이는 대화지만 그가 하는 말 중에 잘못된 것이나 추가할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화법이다.
보고를 마치고(그것을 보고라 부를 수 있다면) 연구실로 돌아온 그는 잠시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구실은 제법 넓었지만 - 프로그래머에게는 과할 정도로 - 창문도 없는 곳에서 1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가끔씩 갑갑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지만, 개입을 신청해 여유기간이 좀 생겼으니 잠시 쉬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팀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내기로 했다.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다음 날, 숙소에서 연구실에 막 도착한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저... 이곳이 그린 박사님의 연구실이 맞습니까?"
그리 늙어 보이지 않는(아마 학위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남자가 문을 살짝 열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엔지니어링 박사라고 소개했다. 용건을 물으니,
"유지보수팀 관리팀장님의 조언 요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아 기억났다. 전자공학 엔지니어를 한 명 보내 준다고 했었지. 개입은 가급적 작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일 같은 경우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뭐 크게 어려울 일은 없지만 일단 난 프로그래머니까.
"컴퓨터는 저쪽에 있는 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설계도와 관련 자료는 바로 전송해 드리지요. 할 일은 개입을 통해 건네 드린 그놈을 잠시 동안 사용할 수 없도록 망가뜨려 주시면 됩니다."
"에... 고장 내는 거라니 평소에 해 보기 어려운 경험이네요. 얼마나 크게 하면 되나요?"
"1년 정도로 부탁합니다."
혼자 일하긴 하지만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식사 시간마다 만나 제법 친해진 사람들도 있기에 외로이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엔 시간도 없고 그 정도로 친한 사람도 없었다. 애초에 난 사람을 쉽게 사귀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런 이유로 최근 난 적당히 외로움을 타고 있었고(스스로 외롭다고 자각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하는 꼴을 보니 제법 외로웠나 보다), 이번에 온 엔지니어가 사람과 얘기하는 것에 솜씨가 있어, 며칠 지난 후 우린 내가 이곳에서의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는 친해질 수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테뉴어 심사까지 미뤄 두고 여기에 왔는데 이게 뭐냔 말이죠. 예정일까지 10개월가량 남았다기에 시스템 적응하고 몇개월동안 패치 작업해서 테스트하고, 못해도 한두 달은 남길 줄 알았는데, 시뮬레이션 한번 돌리는 데만 1주일이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고대의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저걸 기다리느니 시험채점을 조교대신 직접 하고 말지."
"그래도 실력에 자신이 꽤나 있으셨나 보네요. 그 안에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다니... 그 시뮬레이션은 왜 그리 오래 걸린답니까? 이곳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설비 관련 쪽에서만 있다 보니 그런 줄은 몰랐네요."
"시뮬레이션용 서버 리셋하고, 주위환경 인스톨 하고 하다 보니 그렇게 걸리는 거죠. 시스템 구조상 테스트할 부분만 따로 떼서 해 볼 수도 없고, 서버도 테스트용이라 메인보다 좀 느리니 어쩔 수 없지요 뭐."
처음 이걸 알았을 때는 정말 기가 막혀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소스 짜고, 컴파일 버튼 누르고, 딸깍, 에러 보고 다시 수정, 다시 컴파일, 딸깍딸깍, 프로그램 한번 돌리고, 생각 한번 하고, 코코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코드 손좀 보고, 반복. 대학 들어가 프로그래밍이란 걸 처음 할 때부터 몸에 밴 습관.
그렇게만 되었다면야 진작 끝났을 것을, 생각 한번과 코코아 한 모금이 있어야 할 자리에 7번의 수면과 21끼의 식사가 들어가 버리니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자신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 노교수님의 대학시절 얘기를 듣고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듯이 교수님께 들었던 그대로 들려 주셨었다. 계산할 거 적어 놓고, 긴 종이에 순서대로 구멍 뚫고, 집어넣고 찰칵찰칵찰칵찰칵, 새로 구멍 뚫린 놈 옮겨 적고, 정리해서 다시 구멍 뚫고, 다시 찰칵찰칵.
소스코드 잔뜩 뽑아서 인쇄하고, 순서 기다리며 오타 찾고, 집어넣고, 덜컹덜컹덜컹, 반나절 후 튀어나온 결과 확인하고. 반나절의 덜컹거림 후 튀어나온 결과가 <에러 : 글자 하나 빼먹었음> 일 때의 절규는 한 다리 건너 전해 듣는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이런 건 굳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존경스러운데.
개입 계획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전선의 한 지점의 전기저항 값에 +값을 주기로. 저항이 +가 되는 순간 그 지점에서 발열이 일어나고, 그 주위 전선도 같이 따뜻해지고 액체헬륨은 끓어오르고. 헬륨 좀 새어 나오고 전선도 점검하고 교체하거나 해야 할 테고. 상수 하나 잠시 바꾸니 주위까지 우루루루. 계획이 나온 지 1주 후에 개입은 이루어졌고, 난 반년 가량의 시간을 추가로 얻었다.
인간의 특징 중 하나가 호기심이라는 건 잘 알고 있고, 여기의 경영철학이 완전한 인간사회 제공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이건 좀 심하지 않나. 관련 실험이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몇 번이고 이루어 진 데다 이런 거 없다고 사회가 비사실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야 그저 돈 받고 서버 좀 만져 보고(테스트용이 내가 있던 대학에 있던 놈보다 더 좋다니, 이런 거 만져 볼 기회는 잘 없다)해서 별로 불만은 없지만, 가끔씩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그네들이 우주의 비밀을 알든 말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괜스레 일만 더 늘리고 말이다.
아무튼, 그 뒤로 작업은 순조로이 진행되었고(할짓없는 테스트기간을 제외한다면), 예정일 한 달 전에 최종 테스트를 포함한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최종 패치가 담긴 칩을 서버 관리부서에 넘기는 것도 끝났고(보안상의 문제로 프로그램 업데이트에 관한 부분은 네트워크로 접근할 수가 없다) 이제 짐 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1년가량밖에 되지 않지만, 그 시간 중 절반은 그저 흘려보냈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된 일이었다. 대학에 돌아가기 전 휴가라도 떠나야 겠다. 이번엔 좀 시끌벅적한 곳으로. 동아시아 쪽은 어떠려나. 난 확실히 기업에서 일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돈 좀 덜 받고 연구실 좀 좁으면 뭐 어떤가. 애들 가르치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 할 수 있는 교수직이 최고다.
2009년 6월 23일,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가동을 시작하였다. 몇 번의 고장으로 인해 본래 계획된 일정보다 조금 미뤄졌지만,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실험 결과를 고대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실험으로 인해 생긴 블랙홀이 지구를 파괴할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확실히 지구는 블랙홀로부터는 완벽히 안전했다.
하지만 이 실험이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는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구의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할 때 관리자의 실수로 마지막 결과물 대신 그 전의 버전이 적용된 것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실험이 이루어지는 순간,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앞의 세계가 무너져 내려가며 자신의 몸과 마음도 같이 붕괴되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수천 명의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결국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할 시간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못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차후 보수 지급에 감산이 있을 겁니다."
상대방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다른 말이 날아든다.
"전자공학 엔지니어 한 명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상당히 삭막하고 딱딱해 보이는 대화지만 그가 하는 말 중에 잘못된 것이나 추가할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화법이다.
보고를 마치고(그것을 보고라 부를 수 있다면) 연구실로 돌아온 그는 잠시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구실은 제법 넓었지만 - 프로그래머에게는 과할 정도로 - 창문도 없는 곳에서 1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가끔씩 갑갑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지만, 개입을 신청해 여유기간이 좀 생겼으니 잠시 쉬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팀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내기로 했다.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다음 날, 숙소에서 연구실에 막 도착한 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저... 이곳이 그린 박사님의 연구실이 맞습니까?"
그리 늙어 보이지 않는(아마 학위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남자가 문을 살짝 열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엔지니어링 박사라고 소개했다. 용건을 물으니,
"유지보수팀 관리팀장님의 조언 요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만..."
아 기억났다. 전자공학 엔지니어를 한 명 보내 준다고 했었지. 개입은 가급적 작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일 같은 경우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뭐 크게 어려울 일은 없지만 일단 난 프로그래머니까.
"컴퓨터는 저쪽에 있는 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설계도와 관련 자료는 바로 전송해 드리지요. 할 일은 개입을 통해 건네 드린 그놈을 잠시 동안 사용할 수 없도록 망가뜨려 주시면 됩니다."
"에... 고장 내는 거라니 평소에 해 보기 어려운 경험이네요. 얼마나 크게 하면 되나요?"
"1년 정도로 부탁합니다."
혼자 일하긴 하지만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식사 시간마다 만나 제법 친해진 사람들도 있기에 외로이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엔 시간도 없고 그 정도로 친한 사람도 없었다. 애초에 난 사람을 쉽게 사귀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런 이유로 최근 난 적당히 외로움을 타고 있었고(스스로 외롭다고 자각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하는 꼴을 보니 제법 외로웠나 보다), 이번에 온 엔지니어가 사람과 얘기하는 것에 솜씨가 있어, 며칠 지난 후 우린 내가 이곳에서의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는 친해질 수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테뉴어 심사까지 미뤄 두고 여기에 왔는데 이게 뭐냔 말이죠. 예정일까지 10개월가량 남았다기에 시스템 적응하고 몇개월동안 패치 작업해서 테스트하고, 못해도 한두 달은 남길 줄 알았는데, 시뮬레이션 한번 돌리는 데만 1주일이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고대의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저걸 기다리느니 시험채점을 조교대신 직접 하고 말지."
"그래도 실력에 자신이 꽤나 있으셨나 보네요. 그 안에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다니... 그 시뮬레이션은 왜 그리 오래 걸린답니까? 이곳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설비 관련 쪽에서만 있다 보니 그런 줄은 몰랐네요."
"시뮬레이션용 서버 리셋하고, 주위환경 인스톨 하고 하다 보니 그렇게 걸리는 거죠. 시스템 구조상 테스트할 부분만 따로 떼서 해 볼 수도 없고, 서버도 테스트용이라 메인보다 좀 느리니 어쩔 수 없지요 뭐."
처음 이걸 알았을 때는 정말 기가 막혀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소스 짜고, 컴파일 버튼 누르고, 딸깍, 에러 보고 다시 수정, 다시 컴파일, 딸깍딸깍, 프로그램 한번 돌리고, 생각 한번 하고, 코코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코드 손좀 보고, 반복. 대학 들어가 프로그래밍이란 걸 처음 할 때부터 몸에 밴 습관.
그렇게만 되었다면야 진작 끝났을 것을, 생각 한번과 코코아 한 모금이 있어야 할 자리에 7번의 수면과 21끼의 식사가 들어가 버리니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자신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 노교수님의 대학시절 얘기를 듣고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듯이 교수님께 들었던 그대로 들려 주셨었다. 계산할 거 적어 놓고, 긴 종이에 순서대로 구멍 뚫고, 집어넣고 찰칵찰칵찰칵찰칵, 새로 구멍 뚫린 놈 옮겨 적고, 정리해서 다시 구멍 뚫고, 다시 찰칵찰칵.
소스코드 잔뜩 뽑아서 인쇄하고, 순서 기다리며 오타 찾고, 집어넣고, 덜컹덜컹덜컹, 반나절 후 튀어나온 결과 확인하고. 반나절의 덜컹거림 후 튀어나온 결과가 <에러 : 글자 하나 빼먹었음> 일 때의 절규는 한 다리 건너 전해 듣는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이런 건 굳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존경스러운데.
개입 계획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전선의 한 지점의 전기저항 값에 +값을 주기로. 저항이 +가 되는 순간 그 지점에서 발열이 일어나고, 그 주위 전선도 같이 따뜻해지고 액체헬륨은 끓어오르고. 헬륨 좀 새어 나오고 전선도 점검하고 교체하거나 해야 할 테고. 상수 하나 잠시 바꾸니 주위까지 우루루루. 계획이 나온 지 1주 후에 개입은 이루어졌고, 난 반년 가량의 시간을 추가로 얻었다.
인간의 특징 중 하나가 호기심이라는 건 잘 알고 있고, 여기의 경영철학이 완전한 인간사회 제공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이건 좀 심하지 않나. 관련 실험이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몇 번이고 이루어 진 데다 이런 거 없다고 사회가 비사실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야 그저 돈 받고 서버 좀 만져 보고(테스트용이 내가 있던 대학에 있던 놈보다 더 좋다니, 이런 거 만져 볼 기회는 잘 없다)해서 별로 불만은 없지만, 가끔씩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진짜도 아닌데 그네들이 우주의 비밀을 알든 말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괜스레 일만 더 늘리고 말이다.
아무튼, 그 뒤로 작업은 순조로이 진행되었고(할짓없는 테스트기간을 제외한다면), 예정일 한 달 전에 최종 테스트를 포함한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최종 패치가 담긴 칩을 서버 관리부서에 넘기는 것도 끝났고(보안상의 문제로 프로그램 업데이트에 관한 부분은 네트워크로 접근할 수가 없다) 이제 짐 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1년가량밖에 되지 않지만, 그 시간 중 절반은 그저 흘려보냈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된 일이었다. 대학에 돌아가기 전 휴가라도 떠나야 겠다. 이번엔 좀 시끌벅적한 곳으로. 동아시아 쪽은 어떠려나. 난 확실히 기업에서 일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돈 좀 덜 받고 연구실 좀 좁으면 뭐 어떤가. 애들 가르치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 할 수 있는 교수직이 최고다.
2009년 6월 23일,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가동을 시작하였다. 몇 번의 고장으로 인해 본래 계획된 일정보다 조금 미뤄졌지만,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실험 결과를 고대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실험으로 인해 생긴 블랙홀이 지구를 파괴할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확실히 지구는 블랙홀로부터는 완벽히 안전했다.
하지만 이 실험이 전체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는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구의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할 때 관리자의 실수로 마지막 결과물 대신 그 전의 버전이 적용된 것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실험이 이루어지는 순간,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앞의 세계가 무너져 내려가며 자신의 몸과 마음도 같이 붕괴되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수천 명의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결국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할 시간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