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기반 네트워크 - server1  



  2029년에는 사람의 의식을 전자적인 데이터로 치환하는 연구가 완성되었고, 2031년에는 이러한 서비스가 상용화 되었다. 'cyber-space에서의 영구 거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들은 고가의 가격에 고객의 기억을 데이터로 치환시켜 컴퓨터에 집어넣었다. 원 육체의 사망이 확인되는 시점부터 카피된 의식 - 이제부터 이를 지칭하는 정확한 용어인 'cyber-ghost'라 하기로 하자 - 가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cyber-ghost'는 진정 나인가? 또는 정말 그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시끄럽고 애매한 질문들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딜레마를 피해 cyber-ghost는 죽기 하루전이나 바로 직전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고, cyber-ghost를 만들고 나서는 바로 자살이라도 해서 이러한 골치아픈 문제를 피해가도록 한다.  



  cyber-space 형성 초기에는 말기 암환자, 사고로 죽기 일보 직전의 사람, 지체 부자유자, 기타 중증 장애자 등등, 육체와 함께 머물기 힘들거나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도피해오는 공간이었다. 나 역시 초기에 이 cyber-space로 온 사람들 중 하나지만, 나는 다르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 소개가 필요하니, 이쯤에서 내 소개를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cyber-ghost 이다. 나는 이곳 cyber-space를 설계하고 구현한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이었고, 리얼 월드에서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cyber-space 의 가능성을 믿고 이 곳으로 온 선각자 중 한명이다.  



  'ghost' 라는 것은 우리 존재를 매우 잘 나타내어 주는 좋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가 인간이었을 때도 우린 영혼과 환생을 믿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고대로부터 '유령'이라고 불리웠던 존재와 우리는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순수하게 정보로만 이루어진 존재이며, 따라서 형태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에게 보여지는 석이 가능한데, 이 때문에 cyber-space 초기에는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꽃미남, 꽃미녀들만 돌아다녔다.  



  우리는 생각만 하면 어디든지 나타날 수 있고, 메모리만 충분하다면 어떠한 사물이든지 구현해 낼 수 있다.  당연히 우리는 먹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 지루하지 않냐고? 천만에, 우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낙원이든지 창조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올림푸스의 신들처럼 꽃이 만발한 동산에서 하프를 연주하며 문학에 대한 토론을 할 수도 있고, 고딕양식의 거대하고 높다란 성의 응접실에서 만찬을 들 수도 있다. 이 곳에서는 꿈이 곧 현실이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이곳은 어떠한 소망도 허용된다. 어떠한 상상 가능한 천국이라도 이에서 낫지 못할 것이다.  



  독서경험이 풍부한 독자라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글이라는 것, 정확히 말해서 이야기라는 것은 억압된 욕망의 토사물이다. 원래대로하면, 더할 나위없이 만족한 상태에 있다는 인간(이었었지.......)이 글 따윌 쓸 리가 없는 것이다. 이 것은 내가 처한 현재 상황이 그리 만족스러운 건 아니라는 걸 암시하는 것이다.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좀 더 기다리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이야기란 것에는 선 후 관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이런 관계를 뒤집어가면서도 재미있고 이해가 잘 되도록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쪽엔 문외한이다.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해서 읽어 주지 않는다면 힘들여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매우 슬퍼진다.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게 된 사람에게는 제발 끝까지 읽어 주기를 간구한다. 하잘 것 없는 종이 쪼가리에 적힌 짤막한 낙서라도, 읽어 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법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얼마 전 일이다. 우리들이 존재하는 공간. cyber-space 자체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문이 없는 방에 들어가 있는 데, 방이 계속해서 좁아진다고 생각해보라. 우리가 바로 그 꼴이다. 우리들은 당연히 cyber-space외부로 나갈 수 없으므로, 공간의 소멸과 함께 우리들도 소멸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수많은 고스트들이 이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였다. 그 원인을 가장 먼저 해명해 낸 것은 바로 나였다. 내 조사에 따르면 원인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다.  



  우리들 자신을 구성하면서 우리의 본체이기도 한 기억, 기억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것이다. 방대한 기억은 곧 방대한 메모리, 방대한 저장공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기억이나 이 세계에서의 공간이나, 동일한 자원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의 기억이 축적됨에 따라 우리의 기억이 점유하는 저장용량이 많아지고 한정된 저장용량 내에서는 이것이 우리에게 '세계가 좁아진다.' 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를 버리고 이곳에 들어올 때 영원을 약속받았다. 프로바이더와 한 계약에는 저장용량이 부족해 지는 일이 없도록 저장공간의 지속적인 확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얼월드와의 교신은 오래전에 끊겼다. 교신이 끊긴 이상 설령 3차대전이라도 일어나서 전 인류가 멸망해 버렸다 하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끓어지지 말아야 할 교신이 끊어진 것으로 보아 진짜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전 cyber-ghost가 모여서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가 아예 없어져 버린다. cyber-ghost가 되면 결국은 생각하는 일밖에 할 일 이 없게 된다. 그런 ghost들이 골들이 싸매고 앉아 한가지 문제만 잡고 죽어라 씨름했으나,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해결책이란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해결방법은 너무너 뻔하다. 기억을 지워서 잔여 메모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기억이란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기억을 깎아 낸다면 다음 그는 깎아내기 이전과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존재 자체를 깎아내 존재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되어 버린다.  



  나도 그들 사이에서 열심히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하나 둘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초기에 들어온 가장 오래된 고스트들 중 하나인데다. 이곳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었고, 문제의 원인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도 나였기 때문에  결국엔 모두들 '나'라면 어떤 묘수가 있지 않을까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게 된 것 같다.  

나는 결국 한참 생각하는 척을 하다 이렇게 말했다.  



" 기억을 공유합시다."  



  내가 중간에 들어갔어야 할 몸통을 잘라버리고 머리하고 꼬리만 말해 버린 탓에 청중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당연한 물음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 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각자 기억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모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모인 모두, 심지어 여기오지 않은 자들의 기억조차 이 정보를 포함합니다. 데이터 저장의 측면에서 이 만한 낭비는 없습니다. 정보는 하나만 있으면 족하고, 관련된 모두가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으면 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그리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기억 그 기억의 주인조차도 사용하지 않게 된 기억은 지우도록 합시다.  



"잠깐.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압니다. 알아요."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우리들은 우리가 인간이었을때의 정신영역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기 때문에 의식영역에 load되지 않는 기억일지라도 무의식측면에선 활발히 활동하여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의 소거가 없이는 앞서말한 기억의 공유도 결국 약속된 파멸의 시간을 잠시 늦추는 것에 불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이었을 때를 잊지 않으셨겠지요. 그 때도 쓸모없고 하찮은 기억은 물론이고, 때때로 매우 중요한 기억조차 마구 잊어버리고 살았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기억이 우리의 본질이라고 할 지라도 '온전한 기억'이라는 욕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겁니다."  



  아무도 나보다 나은 의견을 내놓지 못했기에 결국 그들도 나의 말을 따라 주었다. 내가 말한 것을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A와 B와 C가 길을 가는데 B가 돌부리에 채였고, 그것을 A.B.C는 물론이고 지나가던 구경꾼 E.F도 보았다고 하자. 본래대로 라면 '언제 언제 어떠한 상황 하에서 B가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채였다.'라는 정보를 전부 각각 기억하게 된다. 이것을 이중에서 가장 접근이 쉬운 어드레스를 가지고 있는 B에게만 기억하게 하고, 나머지들의 중복되는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정보가 있는 메모리를 B와 공유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으로 데이터의 불필요한 중복을 크게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돌부리에 채여서 크게 다치거나 하지 않은 이상, 다시 그 일을 기억해낼 경우는 많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이 정도는 있거나 없거나한 사소한 기억이다. 다른 기억과의 연관성도 전무하다. 이런 것들을 삭제함으로써 저장공간의 확보를 꾀하자는 이야기이다.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처음에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다시 한번 예정된 운명을 피해 갈 묘수를 발견한 것처럼 생각했다. 다들 중복되는 기억을 지웠고, 하다보니 ACCESS가 가장 쉬운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억을 모두 내어 맡긴 이도 생겨났다. 정보의 재편성이라는 게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모두 소멸하기는 싫었으므로 모두 자신의 기억을 서로 상대방에게 맡기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일이 그렇게 생각처럼 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름마저 소멸된 어떤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이길 좋아한 것 같다. 같은 이와 두 번 이상  만나는 일이 적었고, 이 친구를 만났던 이들은 모두 그를 별 대수롭니 않게 여긴 것 같다. 이 친구를 기억했던 이들은 다시 이 친구를 떠 올릴 일이 적었고, 내가 주장한 "일정기간 이상 의식영역에 LOAD되지 않는 기억들은 지워져야 한다.' 는 주장에 따라 이 친구에 대한 기억은 차근차근 지워져 갔다. 마침내 그는 완전히 DELETE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 친구'가 단수가 아닌 복수라는 데에 있고, 얼마나 되는 지도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자신을 남에게 확실히 각인시키지 못한 이들은 무관심속에 소멸해 버렸다. 소멸한 이 역시 타인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는 그와 함께 그가 저장하고 있었던 타인의 기억도 소멸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소멸하지 않은 자들도 이미 소멸한 자들과 함께 소멸된 자신의 기억에 괴로워 했고, 운이 나빠 기억을 많이 잃어버린 이들은 거의 미쳐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었다. 소멸된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잃어버린 기억은 다시는 복구되지 못했다. 모두들 다른 이들이 자신을 잊는 것을 두려워했다.  



  웃기는 것은 일이 잘못되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탓하는 풍조이다.  



  성난 이들은 나에게 책임을 물어 나를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격리시켰다. 내 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에 솔직히 따져보면 내 탓이 클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나는 내가 다만 그들의 분노의 제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다시 예전의 체제로 돌아가기는 이미 늦었다. 벌써 소멸한 이들은 소멸했고, 기억은 영원히 삭제되었지 때문이다. 그리고 되돌아간다면 남아있는 이들도 결국 약속된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억되도록 애쓴다. 우리는 타인에게 기억됨으로써 존재하게끔 되었다. 내가 나로써 존재하기 위해선 좋던 싫던 많은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기억되어야만 한다.  



  나?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없어져 간다. 이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알 수 없는 곳에 갇힌 나를, 다른 이들은 점점 나를 잊어갈 것이고, 그만큼 나는 깎여져 나간다. 그리고는 언젠가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이전에 잊혀져간 많은 이들처럼.  



  글을 왜 썼는지 나중에 가르쳐 준다고 앞에 썼었던가? 열역학 제 2법칙이 뭐였더라? 어쨌건 그것에 의해 모든 질서는 깨어진다. 생자필멸, 나는 이 냉혹한 법칙을 벗어나기 위해,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뛰어보아야 부처님 손바닥이던가. 내가 이 곳에서도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해 보았다. 자살하는 사람도 신발은 벗고 죽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자신이 있었다는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픈 욕구의 표출이라고들 한다. 이 글도 그런 비슷한 걸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 이곳은 공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이렇게 글 정도는 남길 수 있다. 인류최초의 기록 방식인 글은 정보의 손실이 심하지만, 잘만 하면 용량에 비해 놀랄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 글을 써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되어서 글이 엉망이고 게다가 두서없이 길어졌다. 이 곳은 아무도 오지 않으니, 이렇게 써놓은 글도 없어지진 않겠지. 혹시라도 나의 이야기를 읽게 된 이가 있다면, 부탁하고 싶은 바가 있다. 가능하면 잊지 말아 달라고. 그 때쯤이면 나는 완전히 잊혀져 있겠지만. 33.6k 33.6k에 불과하다. 보통의 사이버 고스트의 기억은 10조 Mbyte, 킬로바이트로 환산하면 약1만조 Kbyte나 된다. 당신기억의 몇천조분의 1만이라도 일찍이 소멸한 당신과 같은 존재를 위하여 비워줄 수는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