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행사 - 판갤SF대회
글 수 47
2. 소년
소년은 혼자 있었다. 시끄러운 교실 한 복판에 소년의 책상이 있었다. 소년은 그 아이들과 유리된 세상에 있는듯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소년이 바라던 것이었다. 소년은 소설책을 읽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들때 저 아이들과 다른 세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 있는 세상은 조용하고 평안한 것으로 느껴졌다. 소년은 책을 읽다가, 혹은 잠이 오지 않을때면 상상을 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상상을 시작한다.
소년은 우선 집에서 문을 열고 나선다. 높은 아파트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때는 잘 실감하지 못할거야.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걸어나올 때, 인사하게 되는 경비 아저씨가 없다. 어색한 웃음을 띄고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거리를 걸을 때 불쾌한 소음을 내는 자동차도, 무감정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 행인들도 없다. 무엇보다도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다른 등교생들도 없다.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느릿한 걸음으로, 얼마되지 않는 등교길을 걷는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해진 공기를 더 깊게 들이쉰다. 장난스럽게 더운 숨을 내뱉어 넓게 퍼지는 하얀 김도 본다. 비 때문에 부분부분 얼룩진 아스팔트 도로는 소년의 것이다. 소년은 노란 중앙선을 따라 걷는다. 텅빈 도로와 침묵은 소년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소년은 아무도 지나지 않는 교문에 들어선다. 저 넓은 운동장은 텅텅 비었다. 가운데 가서 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지만 저 많은 문 속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환희에 빠진다. 소년은 타박타박 걸어서 교내로 들어선다. 텅 빈 복도. 소년은 한층한층 복도를 모두 걸어본다. 창문으로 보이는 빈 교실들. 소년은 자신의 반 앞에 도착해서 찰칵하고 문을 연다. 드르륵 열리는 문. 아무도 없는 교실. 소년은 가운데 가서 선다. 한 바퀴를 뱅글 돈다. 아무도 없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본다. 아무도 없다. 혹시나 싶어 다시 복도로 나선다. 아무도 없다. 소년은 빙긋 웃으면서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소설책을 꺼내고 펼쳐든다. 해가 떠오르고 햇살이 소년에게 가닿는다. 졸립다. 소년은 책갈피를 꽂고 책상에 엎드린다. 잠이 든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났다.
교실은 부산스러웠다. 잠시 엎드린 그대로 귀를 기울였다.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소년은 자신의 이름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확신은 서지 않지만, 어쩐지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산함은 계속 되었다. 소년은 부스스 일어나면서 교실의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멍한 머리 때문에 숫자가 언듯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쉬는 시간이었다. 웃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엇 때문에 웃는걸까? 나 때문에? 소년은 막무가내로 추리했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웃는 아이들에게 왜 웃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돌아보지도 못했다. 만약에 자신 때문에 웃는다면, 돌아보게 되면 왜 보냐고 시비를 걸지도 몰랐다. 뭘봐? 하고. 소년은 가로저었다. 피해망상이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소년이 돌아보면 잡담 속에서 잊혀졌던 소년을 떠올리고 다시 화제 삼아 이야기할지도 몰랐다. 소년은 누군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무엇보다도 자신 몰래 자신을 이야기 하는게 싫었다. 이쯤에서 소년은 자신의 뒤에서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정말로 자신을 이야기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모두 소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이 싫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 시체병
많은 사람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썩어가는 사람들은 병에 걸려 있었고, 그 병을 시체병이라고 불렀다. 진짜 이름이 있었지만 복잡한 병명은 금세 잊혀졌다. 시체병은 상당히 잘 지은 이름이었다. 시체병은 옛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 전염병이었고, 이름 그대로 사람을 시체처럼 썩게 만들었다. 시체병은 아주 잘 지은 이름이었다.
시체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병에 걸린 것도 모르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오른손이나 왼쪽 다리, 등. 부분적으로 몇몇 손가락이나, 발가락. 운이 나쁘면 가슴이나 얼굴에 감각을 잃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심코 지나갔다.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병원을 가지 않은 채로 몇 일이 지나면 사람들은 괴이한 현실을 맞이하는 것이다. 속 부터 곪고 썩어들어간 신체 부위가, 일상 생활을 하다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오른손이라면 문을 거칠게 홱 열다가 손잡이를 잡은 채로 뜯겨 나가는 것이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새카만 피와 살점이 바닥에 투둑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허전한 팔목을 보면서 공황에 빠지는 것이다.
시체병은 그 존재를 들키기도 전에 전 세계로 퍼졌고, 발견이 될 쯤에는 이미 소년 가까이에 도달했다. 치료제와 치료 방법은 나타나지 않았다. 병은 너무 쉽게 전염되었고, 너무 쉽게 죽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푸르딩딩 썩어가는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3. 가출
소년의 물음에 대답하듯 교실에 비명이 울려퍼졌다. 교실을 찢어놓을 한 비명에 반 아이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소년도 비명을 찾아서 고개를 돌렸다.
어떤 아이가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비명은 그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비명을 지르던 아이는 기침을 콜록하고 피를 뱉었다. 검은 피가 아이의 가슴 아래로 고여 있었다. 아이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팔을 밀다가 우둑 소리와 함께 다시 고인 피 위로 쓰러졌다. 이제 비명은 다른 아이들이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부러진 팔의 흰 뼈가 드러나 보였다. 살이 썩어 있었다. 아이는 심하게 기침 했다. 내뱉는 것은 시커먼 썩은 살덩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소년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누군가는 다가갔다. 공황 속에서 전화를 하고, 선생님을 부르고, 양호실로 아이를 옮겼다. 소년은 좀 더 물러났다.
소년은 그것이 전염병인지도 몰랐고, 쓰러진 아이를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되려 측은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기에, 소년은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시체병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뉴스와 신문들이 그 병을 알렸고,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나타났던 감염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이나 귓볼에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위해 만났던 사람들은 서로를 전염시켰다. 마치 시체병이라는 소문 만으로도 감염이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시체병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꼈다. 서로를 멀리했다. 사람들은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은 계속 되었다. 살이 썩는다는 것을 알쯤엔 이미 늦었다. 시체병의 전염능력은 잠복기에 가장 활발했다.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린 뒤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수는 흔하다. 사랑 하는 사람끼리 입을 맞추는 것도 흔하다.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도 흔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거나, 체온이 남았던 자리에 다시 자신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시체병을 일으키는 원인도 함께 남았다. 병은 그렇게 전염되었다.
소년은 그 점을 걱정했다. 이미 감염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생각했다. 소년은 자신이 과연 병에 걸렸을지 궁금했다. 소년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를 기억해봤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난다. 부모님은 깨어나지 않는다. 먼저 밥을 먹고 세면을 한다. 동생을 깨우고 밥을 먹인다. 그동안 자신의 방에서 교복을 입는다. 부모님을 깨운다. 집을 나선다. 등교길을 걷는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일은 잘 없다.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궁색해져, 같은 반 아이라도 어색해졌다. 소년은 같은 반 아이가 앞에 걷게되면 걸음을 늦추곤 했다. 학교에 도착한다. 책상은 가운데 있다. 자유로운 자리 배정 때문에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 소년은 남는 자리를 택하곤 했다. 조회 시간이 지나고 청소를 한다. 복도 쓸기. 물에 적신 밀대로 비질한 복도를 민다. 닦는다기 보다는 물칠을 하는 기분이다. 잠시 쉬는 시간은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도서관의 책들 중엔 이미 읽을만한 것은 모두 읽은 뒤였다. 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착실하게 듣는다. 종종 밤 늦게 책을 읽었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수업이라 생각되면 그대로 자버렸다. 학업 성적은 오르지도 않고 줄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이 오면 잠을 더 자거나 책을 더 읽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아이들이 밥을 먹고 올 때까지 책을 읽었다. 소년은 한적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다시 저녁시간이 된다. 점심시간과 다를바 없다.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면 소년은 적당히 숙제를 하고 소설책을 몰래 읽었다. 모든 아이들이 책상에 시선을 붙이고 사각사각 샤프가 종이 긁는 소리를 낼 때, 소년은 기분이 좋았다. 학교가 마치면 소년은 조금 늦게, 아이들이 몰리지 않는 틈을 타서 학교를 나섰다. 누군가와 부대끼면서까지 빨리 집에가야할 이유는 없었다. 집엔 동생 뿐이다. 대체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종종 동생은 먼저 잠들었다. 소년은 적당히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침대 위에서 책을 펼쳤다. 책을 읽다가 잠이오면 그대로 책을 덮고 불을 껐다. 잠들었다.
소년은 눈을 떴다. 잠깐 잠이 들었나. 소년이 생각했다. 자신의 방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몸이 뻐근했다. 문득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기억났다. 이미 감염이 되었을까, 안되었을까. 소년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인터넷을 떠다녔다. 소년이 원하는 글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 접촉한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겨 감염되었을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별로 신빙성은 없어 보였지만, 소년은 설문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은 결과에서 깜짝 놀랐다. 소년이 시체병에 감염되었을 2%였다. 아래 댓글로 수 십 퍼센트 대의 사람들이 울상짓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상황이 약간 희극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별안간 비명이 들렸다. 잠을 자고 있던 소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명은 가까웠다. 집 밖에서 난 소리가 아니였다. 소년은 침대에서 발을 내리며 차가운 바닥을 느꼈다. 방이 조금 추웠다. 문을 열자 거실이 나왔다. 아직 밤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더듬거리며 형광등 스위치를 찾았다. 이쯤 어디 있을텐데. 생각하던 소년은 손을 황급히 가져왔다. 가족 중에 누군가 전염되었다면? 분명 거실의 형광등 스위치도 껐다 켰겠지. 소년은 잘 누를일이 없는 스위치였지만 다른 가족들은 달랐다. 소년은 주저하다가 소매를 당겨 스위치가 있을법한 곳을 눌렀다. 깜빡이며 불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악몽인가? 소년은 얼마전 교실에서 들었던 비명을 기억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소년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장실이었다. 시계를 흘기니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소년이 "엄마?" 하고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소년은 화장실 앞으로 걸어갔다. "아." 소년이 작게 벌어진 입으로 말했다. 소년의 앞에 소년의 어머니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입에는 피가 한가득 고여 있었다. 손에 쥐여진 칫솔에는 이빨이 붙은 잇몸이 그대로 엉켜 있었다.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쯤부터 감염에 의한 사망사고가 늘기 시작했다. 어딜가든 엉망이었다. 병원은 가득찼다. 의사들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서도 가득찼다. 범죄자들은 자포자기한 감염자가 대다수였다. 경찰들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족한 치안 관리는 군인이 대신했다. 군인도 사람이었고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왼쪽턱 아래를 절개해야 했지만 적어도 그 부분 만큼은 더이상 썩지 않았다. 다만 시체병은 도려낸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썩기 시작할때는 이미 몸 깊숙히 침투한 뒤였기에, 어디가 다시 썩기 시작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소년은 침통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침통하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돈이 종이조각에 불과해지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돈을 버는게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집을 지켰다. 소년은 방을 지켰다.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한 날에도 손을 쓰지 못하고 구급차를 부르는게 전부였다. 소년은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왔다갔다 했다.
누군가 방을 두드렸다. 소년의 아버지였다. 소년은 문을 열지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 문을 열고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소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 문을 열라고 했다. 잠깐 실랑이가 있고, 아버지가 포기하고 문 너머에서 말했다. 동생이 병에 걸렸단다. 왼쪽 손바닥이 새파래. 소년은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다시 종아리에 감각이 없다는구나. 소년은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요?" 소년의 아버지는 정부에서 마련하는 대피처로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소년이 알기에 현관문 너머는 혼란이었다. 강도가 판을 치고, 감염자들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고 했다. 그래서 소년은 말했다.
"집에 있는게 안전하잖아요?"
소년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집에는 먹을 것도 없단다. 거의 체념한 목소리였다.
소년의 어머니는 치료를 받고 병원에 입원하지 못했다. 병원에 남은 입원실은 없었다. 소년의 가족은 몇 가지 약물을 받아들고 어머니를 치료했다. 소년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른 가족은 어머니를 보살폈다. 그 결과 동생도 병에 걸렸다. 소년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미련하지 않다.
소년은 짐을 챙기기로 했다. 별로 챙길것은 없었다. 급하게 사재기 했던 건조음식들과 옷가지들. 책은 가져갈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다시 안올것도 아니고. 누가 훔쳐가지도 않겠지. 소년은 생각했다. 그러다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침대 구석에서 글러브가 끼워진 야구 배트를 발견했다.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었다. 무거웠지만 그럴듯 했다. 장갑과 마스크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그렇게 챙긴 뒤, 가족들 몰래 집을 나섰다. 생전 처음해보는 가출이었다.
소년은 혼자 있었다. 시끄러운 교실 한 복판에 소년의 책상이 있었다. 소년은 그 아이들과 유리된 세상에 있는듯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소년이 바라던 것이었다. 소년은 소설책을 읽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들때 저 아이들과 다른 세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 있는 세상은 조용하고 평안한 것으로 느껴졌다. 소년은 책을 읽다가, 혹은 잠이 오지 않을때면 상상을 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상상을 시작한다.
소년은 우선 집에서 문을 열고 나선다. 높은 아파트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때는 잘 실감하지 못할거야.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걸어나올 때, 인사하게 되는 경비 아저씨가 없다. 어색한 웃음을 띄고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거리를 걸을 때 불쾌한 소음을 내는 자동차도, 무감정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 행인들도 없다. 무엇보다도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다른 등교생들도 없다.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느릿한 걸음으로, 얼마되지 않는 등교길을 걷는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해진 공기를 더 깊게 들이쉰다. 장난스럽게 더운 숨을 내뱉어 넓게 퍼지는 하얀 김도 본다. 비 때문에 부분부분 얼룩진 아스팔트 도로는 소년의 것이다. 소년은 노란 중앙선을 따라 걷는다. 텅빈 도로와 침묵은 소년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소년은 아무도 지나지 않는 교문에 들어선다. 저 넓은 운동장은 텅텅 비었다. 가운데 가서 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지만 저 많은 문 속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환희에 빠진다. 소년은 타박타박 걸어서 교내로 들어선다. 텅 빈 복도. 소년은 한층한층 복도를 모두 걸어본다. 창문으로 보이는 빈 교실들. 소년은 자신의 반 앞에 도착해서 찰칵하고 문을 연다. 드르륵 열리는 문. 아무도 없는 교실. 소년은 가운데 가서 선다. 한 바퀴를 뱅글 돈다. 아무도 없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본다. 아무도 없다. 혹시나 싶어 다시 복도로 나선다. 아무도 없다. 소년은 빙긋 웃으면서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소설책을 꺼내고 펼쳐든다. 해가 떠오르고 햇살이 소년에게 가닿는다. 졸립다. 소년은 책갈피를 꽂고 책상에 엎드린다. 잠이 든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났다.
교실은 부산스러웠다. 잠시 엎드린 그대로 귀를 기울였다.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소년은 자신의 이름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확신은 서지 않지만, 어쩐지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산함은 계속 되었다. 소년은 부스스 일어나면서 교실의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멍한 머리 때문에 숫자가 언듯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쉬는 시간이었다. 웃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엇 때문에 웃는걸까? 나 때문에? 소년은 막무가내로 추리했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랐다. 웃는 아이들에게 왜 웃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돌아보지도 못했다. 만약에 자신 때문에 웃는다면, 돌아보게 되면 왜 보냐고 시비를 걸지도 몰랐다. 뭘봐? 하고. 소년은 가로저었다. 피해망상이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소년이 돌아보면 잡담 속에서 잊혀졌던 소년을 떠올리고 다시 화제 삼아 이야기할지도 몰랐다. 소년은 누군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무엇보다도 자신 몰래 자신을 이야기 하는게 싫었다. 이쯤에서 소년은 자신의 뒤에서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정말로 자신을 이야기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모두 소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이 싫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 시체병
많은 사람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썩어가는 사람들은 병에 걸려 있었고, 그 병을 시체병이라고 불렀다. 진짜 이름이 있었지만 복잡한 병명은 금세 잊혀졌다. 시체병은 상당히 잘 지은 이름이었다. 시체병은 옛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 전염병이었고, 이름 그대로 사람을 시체처럼 썩게 만들었다. 시체병은 아주 잘 지은 이름이었다.
시체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병에 걸린 것도 모르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오른손이나 왼쪽 다리, 등. 부분적으로 몇몇 손가락이나, 발가락. 운이 나쁘면 가슴이나 얼굴에 감각을 잃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심코 지나갔다.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병원을 가지 않은 채로 몇 일이 지나면 사람들은 괴이한 현실을 맞이하는 것이다. 속 부터 곪고 썩어들어간 신체 부위가, 일상 생활을 하다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오른손이라면 문을 거칠게 홱 열다가 손잡이를 잡은 채로 뜯겨 나가는 것이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새카만 피와 살점이 바닥에 투둑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허전한 팔목을 보면서 공황에 빠지는 것이다.
시체병은 그 존재를 들키기도 전에 전 세계로 퍼졌고, 발견이 될 쯤에는 이미 소년 가까이에 도달했다. 치료제와 치료 방법은 나타나지 않았다. 병은 너무 쉽게 전염되었고, 너무 쉽게 죽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푸르딩딩 썩어가는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3. 가출
소년의 물음에 대답하듯 교실에 비명이 울려퍼졌다. 교실을 찢어놓을 한 비명에 반 아이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소년도 비명을 찾아서 고개를 돌렸다.
어떤 아이가 바닥에 엎드리고 있었다. 비명은 그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비명을 지르던 아이는 기침을 콜록하고 피를 뱉었다. 검은 피가 아이의 가슴 아래로 고여 있었다. 아이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팔을 밀다가 우둑 소리와 함께 다시 고인 피 위로 쓰러졌다. 이제 비명은 다른 아이들이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부러진 팔의 흰 뼈가 드러나 보였다. 살이 썩어 있었다. 아이는 심하게 기침 했다. 내뱉는 것은 시커먼 썩은 살덩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소년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누군가는 다가갔다. 공황 속에서 전화를 하고, 선생님을 부르고, 양호실로 아이를 옮겼다. 소년은 좀 더 물러났다.
소년은 그것이 전염병인지도 몰랐고, 쓰러진 아이를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되려 측은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기에, 소년은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시체병에 대한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뉴스와 신문들이 그 병을 알렸고,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나타났던 감염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이나 귓볼에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위해 만났던 사람들은 서로를 전염시켰다. 마치 시체병이라는 소문 만으로도 감염이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시체병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꼈다. 서로를 멀리했다. 사람들은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은 계속 되었다. 살이 썩는다는 것을 알쯤엔 이미 늦었다. 시체병의 전염능력은 잠복기에 가장 활발했다.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린 뒤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수는 흔하다. 사랑 하는 사람끼리 입을 맞추는 것도 흔하다.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도 흔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거나, 체온이 남았던 자리에 다시 자신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시체병을 일으키는 원인도 함께 남았다. 병은 그렇게 전염되었다.
소년은 그 점을 걱정했다. 이미 감염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생각했다. 소년은 자신이 과연 병에 걸렸을지 궁금했다. 소년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를 기억해봤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난다. 부모님은 깨어나지 않는다. 먼저 밥을 먹고 세면을 한다. 동생을 깨우고 밥을 먹인다. 그동안 자신의 방에서 교복을 입는다. 부모님을 깨운다. 집을 나선다. 등교길을 걷는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일은 잘 없다.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궁색해져, 같은 반 아이라도 어색해졌다. 소년은 같은 반 아이가 앞에 걷게되면 걸음을 늦추곤 했다. 학교에 도착한다. 책상은 가운데 있다. 자유로운 자리 배정 때문에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 소년은 남는 자리를 택하곤 했다. 조회 시간이 지나고 청소를 한다. 복도 쓸기. 물에 적신 밀대로 비질한 복도를 민다. 닦는다기 보다는 물칠을 하는 기분이다. 잠시 쉬는 시간은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도서관의 책들 중엔 이미 읽을만한 것은 모두 읽은 뒤였다. 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착실하게 듣는다. 종종 밤 늦게 책을 읽었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수업이라 생각되면 그대로 자버렸다. 학업 성적은 오르지도 않고 줄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이 오면 잠을 더 자거나 책을 더 읽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아이들이 밥을 먹고 올 때까지 책을 읽었다. 소년은 한적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다시 저녁시간이 된다. 점심시간과 다를바 없다.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면 소년은 적당히 숙제를 하고 소설책을 몰래 읽었다. 모든 아이들이 책상에 시선을 붙이고 사각사각 샤프가 종이 긁는 소리를 낼 때, 소년은 기분이 좋았다. 학교가 마치면 소년은 조금 늦게, 아이들이 몰리지 않는 틈을 타서 학교를 나섰다. 누군가와 부대끼면서까지 빨리 집에가야할 이유는 없었다. 집엔 동생 뿐이다. 대체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종종 동생은 먼저 잠들었다. 소년은 적당히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침대 위에서 책을 펼쳤다. 책을 읽다가 잠이오면 그대로 책을 덮고 불을 껐다. 잠들었다.
소년은 눈을 떴다. 잠깐 잠이 들었나. 소년이 생각했다. 자신의 방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몸이 뻐근했다. 문득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기억났다. 이미 감염이 되었을까, 안되었을까. 소년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인터넷을 떠다녔다. 소년이 원하는 글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 접촉한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겨 감염되었을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별로 신빙성은 없어 보였지만, 소년은 설문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은 결과에서 깜짝 놀랐다. 소년이 시체병에 감염되었을 2%였다. 아래 댓글로 수 십 퍼센트 대의 사람들이 울상짓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상황이 약간 희극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별안간 비명이 들렸다. 잠을 자고 있던 소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명은 가까웠다. 집 밖에서 난 소리가 아니였다. 소년은 침대에서 발을 내리며 차가운 바닥을 느꼈다. 방이 조금 추웠다. 문을 열자 거실이 나왔다. 아직 밤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더듬거리며 형광등 스위치를 찾았다. 이쯤 어디 있을텐데. 생각하던 소년은 손을 황급히 가져왔다. 가족 중에 누군가 전염되었다면? 분명 거실의 형광등 스위치도 껐다 켰겠지. 소년은 잘 누를일이 없는 스위치였지만 다른 가족들은 달랐다. 소년은 주저하다가 소매를 당겨 스위치가 있을법한 곳을 눌렀다. 깜빡이며 불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었다. 악몽인가? 소년은 얼마전 교실에서 들었던 비명을 기억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소년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장실이었다. 시계를 흘기니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소년이 "엄마?" 하고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소년은 화장실 앞으로 걸어갔다. "아." 소년이 작게 벌어진 입으로 말했다. 소년의 앞에 소년의 어머니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입에는 피가 한가득 고여 있었다. 손에 쥐여진 칫솔에는 이빨이 붙은 잇몸이 그대로 엉켜 있었다.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쯤부터 감염에 의한 사망사고가 늘기 시작했다. 어딜가든 엉망이었다. 병원은 가득찼다. 의사들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서도 가득찼다. 범죄자들은 자포자기한 감염자가 대다수였다. 경찰들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족한 치안 관리는 군인이 대신했다. 군인도 사람이었고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왼쪽턱 아래를 절개해야 했지만 적어도 그 부분 만큼은 더이상 썩지 않았다. 다만 시체병은 도려낸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썩기 시작할때는 이미 몸 깊숙히 침투한 뒤였기에, 어디가 다시 썩기 시작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소년은 침통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침통하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돈이 종이조각에 불과해지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돈을 버는게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집을 지켰다. 소년은 방을 지켰다.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한 날에도 손을 쓰지 못하고 구급차를 부르는게 전부였다. 소년은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왔다갔다 했다.
누군가 방을 두드렸다. 소년의 아버지였다. 소년은 문을 열지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 문을 열고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소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 문을 열라고 했다. 잠깐 실랑이가 있고, 아버지가 포기하고 문 너머에서 말했다. 동생이 병에 걸렸단다. 왼쪽 손바닥이 새파래. 소년은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다시 종아리에 감각이 없다는구나. 소년은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요?" 소년의 아버지는 정부에서 마련하는 대피처로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소년이 알기에 현관문 너머는 혼란이었다. 강도가 판을 치고, 감염자들이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고 했다. 그래서 소년은 말했다.
"집에 있는게 안전하잖아요?"
소년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집에는 먹을 것도 없단다. 거의 체념한 목소리였다.
소년의 어머니는 치료를 받고 병원에 입원하지 못했다. 병원에 남은 입원실은 없었다. 소년의 가족은 몇 가지 약물을 받아들고 어머니를 치료했다. 소년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른 가족은 어머니를 보살폈다. 그 결과 동생도 병에 걸렸다. 소년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미련하지 않다.
소년은 짐을 챙기기로 했다. 별로 챙길것은 없었다. 급하게 사재기 했던 건조음식들과 옷가지들. 책은 가져갈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다시 안올것도 아니고. 누가 훔쳐가지도 않겠지. 소년은 생각했다. 그러다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침대 구석에서 글러브가 끼워진 야구 배트를 발견했다.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었다. 무거웠지만 그럴듯 했다. 장갑과 마스크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그렇게 챙긴 뒤, 가족들 몰래 집을 나섰다. 생전 처음해보는 가출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