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대] 노 웨이 아웃 (수정)

조회 수 721 추천 수 0 2010.08.08 22:20:32



  노 웨이 아웃
by. DOSKHARAAS

 그는 눈을 떴다. 뛰고 있었다. 그 곳은 터널 같은 곳이었는데, 온통 은색이었다. 그의 옷도 은색이었다. 그의 좌우로 대머리인 아저씨와, 머리가 긴 어린 여자가 뛰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이다. 서로 경쟁을 하는 것 같았다. 

"저기요." 그가 대머리 아저씨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아저씨의 옷에 써 있는 숫자 0012를 보고, 숫자로 불러보았다. 0012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을 보았다.

"저, 여기가 어디죠?"
"몰라."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왜 뛰는 지는 아세요?"
"몰라."
"그런데 왜 뛰세요?"
"몰라."

그는 어린 여자에게-숫자는 0014였다.- 같은 질문을 했고,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번호가 0013일 것이라 생각하고, 물어보았더니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은빛 터널을 달리고 있고, 자신의 숫자는 13이다. 뛰는 목적은 알지 못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옷 때문에 고개와 허리가 완전히 돌아가지 않아 뒤를 볼 수 있는 것은 힐끔 보는정도였다. 뒤에는 검은 물체가 바싹 쫒아오고 있었다. 보는 것 만으로 공포감에 질린 그는 뛰는 목적을 알았다. 저 물체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그는 0012와 0014에게 뒤에서 쫒아오는 물체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미 그 물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그 물체가 공포감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뒤를 쫒는 그 물체가 무서워서 견딜 수 가 없었다. 

그는 달리면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몸을 비틀거리는 사이에 0012와 0014는 저 멀리 달렸다. 그는 쓰러져 검은 물체에 공격 당할 것이 두려워 몸을 웅크리고 떨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공격이 오지 않았다. 의아해 고개를 들고 눈을 뜨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여러 개 겹쳐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괴 물체는 없고 0012와 0014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말을 걸기도 전에 사라졌다. 자신의 공포 때문에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자신을 쫒던 괴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는 뒤를 힐끔 보니 여전히 괴 물체가 도사리고 있었다. 놀라 고개를 앞으로 돌리니 등줄기가 서늘하다. 그는 일어서서 몸을 뒤로 돌렸다. 괴 물체는 없었다. 다시 등 쪽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날 잡으려 들지 않는구나. 그냥 내 뒤에서 계속 겁만 주는 거야. 그가 중얼거리는 사이에 다시 두 사람이 그를 지치며 달렸다.

그는 화가 나서 벽을 발로 찼다. 이 곳은 원으로 연결되어 있어 같은 곳을 뱅뱅 돌 뿐이었다. 그 증거로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을 지나치고 달렸다. 그들에게 소리를 쳐 보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했다.

화가 나 발로 벽을 찼다. 몇 번이고 걷어찼다. 벽이 부서졌다. 부서진 벽에 대고 발길질을 계속 했다. 구멍이 점점 커졌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탁 트인 공간이라 그는 한껏 자유를 느끼며, 이상한 터널에 갇혀서 같은 곳만 뱅뱅도는 두 사람을 비웃었다. 밖에서 보니 역시 그 곳은 원형으로 연결된, 마치 제 꼬리를 집어삼킨 뱀 같은 구조의 은빛 터널이었다. 그는 해방감에 어디까지라도 달리고 싶어졌다. 온 힘을 다해 아무 방향으로나 달렸다.

주위를 보니, 자신 말고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기뻐 견딜 수 없어 보였다. 그들의 옷에는 00ab1, 00df9 등, 알파벳과 숫자가 같이 써 있었다. 그는 00hs7이라고 써 붙은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날씨 참 좋죠? 바닥도 말랑말랑하고. 정말 축복받았다니까요! 아, 당신은 00cc13이시군요. 13 더하기 13은 26이라는 거 알고 계세요? 아마 아시겠죠? 참, 그것보다 다른 사람들 하고는 만나보셨나요? 어서 가서 만나보세요! 참 즐겁다니깐."

그는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뛰었다. 00cc13이 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그들도 즐거움에 횡설수설할 뿐, 왜 뛰고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그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고, 자신이 달리는 풍경이며 지역을 외워가며 끝 없이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어느샌가 자신이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는 튜브형으로 닫힌 공간이었다면, 이 곳은 공의 안 쪽 같은 곳이었다. 여전히 그는 갇혀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달리고 있었다. 아까는 공포가 그 연료였다면 이제는 즐거움이 그 연료였다.

즐거움을 포기하고 멈추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달린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바닥을 두들겼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말렸다. 그는 사람들과 싸워가며 바닥을 두들겼다. 땀을 잔뜩 흘리는 남자 하나를 메치자, 그 충격으로 바닥이 깨졌다.

블랙홀이라도 되는 듯, 그 구멍을 통해 모든 것이 빠져나갔다. 나무며 풀이며 산이며 사람이며 동물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물들이 뒤엉켜 소용돌이치며 밖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도 거기에 있었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그는 자신이 의지대로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 주위에는 이미 날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옷에는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십자, 세모, 네모 등등. 그리고 자신이 빠져 나온 곳은 구체였고 무수히 많은 구체가 여기 저기 개구리알처럼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대화도 없었고, 그저 여기 저기 날아다니기만 했다. 그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끝없이 날았다. 빛을 거의 따라잡을만큼 빨리 날기도 하고, 거의 멈추어 있는 것 처럼 천천히 날기도 했다. 구체와 구체 사이를 비집고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어디를 가도, 그 누구와 대화를 해도, 왜 이 곳에 날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러자, 공간이 접히고 말리며 한 점으로 응축되었다. 점은 매우 작아 엄청나게 무겁고 뜨거웠으며, 크기는 한없이 작아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점은 그에게 말했다.

"이봐. 영업방해 말고, 계속 움직여서 에너지를 만들 것이 아니면 꺼져."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는데?"
"나가고 싶어? 그냥 거기 있어, 그럼."

그는 멈추었다.

잔뜩 움츠러든 점이 용수철이 풀리듯 폭발하며 펼쳐졌다.

그는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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