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대] 남자답게 탈출

조회 수 814 추천 수 0 2010.08.08 22:09:00



3년 전까지만 해도 박씨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남자였다.

남자답게 어깨도 떡 벌어지고 키도 컸던 그는 성공적이라고 까지 할건 없지만 모범적인 중년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정리해고를 당한 후에도 그는 가장 역할에 자신이 있었다.  까짓거 대충 사업하면 먹고사는데 별거 있겠어?

그 요즘 트렌드 뭐야, 고급스럽고 된장 냄새 풀풀나게 카페 하나 만들어 놓으면 멍청한 년들이 좋다구나  와서 돈 질질 흘리겠지?

 

처음 알바를 고용할 때 최대한 잘생긴 연놈으로 구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겉으로 외모지상주의 타파라고 소리치지만 쥐뿔도 통하지 않는다.

어여쁜 알바녀의 외모는 이제 불이 꺼져가려고 하던 박씨의 성욕을 다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몇 달 못 버티고 알바녀는 그만뒀다. 거참, 엉덩이 몇 번 쓰다듬고 가슴 좀 만졌다고 그만두냐?

하지만 그가 아쉬워 할건 없었다. 어차피 또 구하면 되니까. 시다할 년들은 세상에 깔리고 깔렸다고.

 

그렇게 두자리수에 가까운 여성들이 알바를 관둔 시점에 바로 옆에 또다른 카페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로.

덕분에 그는 사업한지 5년만에 평생 모아놨던 노후자금 3억을 고스란히 날렸다. 아파트 담보 대출로 인해 집도 빼았겼다. 그것도 모자라 빚더미에 올라버렸다.

그 다음 코스는 일사천리였다.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잖아?
매일 빚쟁이들의 빚독촉은 심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빚은 쌓여만 간다.


 그때부터였다. 그의 자신감은 천천히 메말라갔다.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일들이 후회되었다.

사업을 쉽게 생각한 것도, 젊은 여자 살맛 좀 보자고 달려든 것도, 지금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도.
그렇게 과거로부터 뒷걸음질 치며 달아났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족들의 차가운 눈초리였다. 자신에 차있던 가장의 모습은 그렇게 무너졌다.

더 이상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절벽까지 몰리게 되자 그는 집을 떠났다.

밤에는 피시방에서 자고 아침에는 일일용역소에서 잡일을 하며 적은 돈을 벌었다. 
박씨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간단한 검색정도가 그가 수행 가능한 행위의 전부였다. 그는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 씨드라이브에 저장되어있던 영화들을 틀어서 봤다.
사흘이 지나도 빚쟁이들은 아직도 박씨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편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다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박씨는 영화를 보았다.

가정을 위협받던 장대한 몸집의 남자가 총 하나 꼬나들고 범죄조직을 줄줄이 녹이는 영화였다.

마지막에 남자는 가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이렇게 노예처럼 살 바에야 무기를 들고 싸우겠다.
남자답게.
박씨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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