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행사 - 판타지손바닥대회
글 수 65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백신고등학교 뒤, 백신초등학교 앞 상가.
상가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것으로 벌써 네 번째 화재였다.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번 꼴로 계속 화재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잦은 화재라면 방화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화재조사팀이 조사해본 바로 화재의 원인은 전기누전과 가스폭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욕먹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고 진짜 화재의 원인은 ‘모른다.’였다. 어떤 원인도, 흔적도 없이 갑자기 건물이 타올랐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윗선에서는 아주 골머리를 썩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개 소방사인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벌써 10년 째 소방사의 자리에 앉아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소방사의 일을 할 예정이었다. 그에게 앉아서 서류나 뒤적거리거나 갓 들어온 병아리들을 지휘하느라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것은 영 적성에 맞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타오르는 상가건물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그 상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줌마가 있었다.
“어이구, 어떻게 하누, 어떻게 하누.”
아마도 상가건물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을 아줌마는 불타오르는 상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한탄을 쏟아내었다. 근처에 이런 아줌마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장사 밑천인 가게가 불타버렸으니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을 본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리고 불구경 나온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그렇게 보는 거요? 구경 났소? 썩 꺼지쇼!”
그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자 구경꾼들이 찔끔하더니 순순히 흩어졌다. 구경꾼들 사이에는 딱 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별말 없이 물러섰다. 아마도 소리를 친 사람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다면 그들도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2미터를 넘는 키에, 보디빌더 뺨 칠정도의 두꺼운 몸을 가진 소방사, 강금마는 구경꾼들을 쫒아버리고선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직도 비탄에 잠겨있는 아줌마들을 바라보았다. 마침 소방서에 발령 받은 지 얼마 안된 신참 하나가 한 아줌마를 붙잡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 저 안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 없어요?”
“어떻하누, 어떻게 해! 어어엉!”
“아줌마, 저기…… 대답을 좀……”
금마는 한숨을 내쉬고선 신참의 뒷덜미를 붙잡아 끌었다. 신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사람들한테 그런 거 물어봐서 뭐하냐? 자식아. 물어봐도 모른다고 말할게 뻔한데.”
“그렇습니까?”
“게다가 지금 정도로 불이 커졌으면 인명구조는 웬만하면 포기해. 들어가서 너도 뒤지고 싶으냐?”
금마는 손가락을 들어 상가를 가리켜 보았다. 불은 상가 전체를 삼키고 창 밖으로 혀를 날름대고 있었다. 저 정도 불길이면 저 안은 당연히 불바다일 것이 뻔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한 다음에 신참의 목덜미를 놔주었다.
“사람 찾는 건 때려 치우고 가서 불 끄는 거나 도와. 꺼질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신참은 기운차게 인사를 하며 달려나갔다. 그리고 금마는 다시 한번 상가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화재가 잦았기 때문에 그들은 충분히 긴장을 하고 화재상황에 대비하고 있었고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신속하게 준비를 맞추고 현장으로 향했다. 신고 접수 후 현장도착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신속한 출동이었다. 그런데도 요 모양 요 꼴이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건물이 불에 완전히 먹혀버린 것이다.
불은 굉장히 거세었지만 다행히 상가 건물이 그리 크고 복잡한 건물이 아니어서 인명피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상가와 붙어있는 건물도 없어서 불이 다른 곳으로 옮길 염려도 없었다. 상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어떻게 손쓸 수 있는 불길이 아니었다. 물 뿌린다고 꺼질 불도 아니고, 벌써 건물은 다 타버린 거나 마찬가지니 대충 불 끄는 시늉만 하다가 철수하면 될 것이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해내고선 입맛을 다셨다. 입 안이 씁쓰름 했다. 기분이 나빴다.
“제길.”
그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상가를 뒤로했다. 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자신도 불 끄는 시늉이라도 할 셈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그의 뒤통수를 잡아 끌었다.
“……음?”
그는 다시 상가를 바라보았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똑 같은 일을 10년쯤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소방사였고 119구조대원이었으며 무모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그의 감이 저 상가 안에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상가로 다가갔다. 건물은 완전히 불에 휩쌓여서 다가가기만 해도 대단한 열기가 느껴졌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건물을 이리저리 돌면서 창문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창문 안은 시커먼 연기와 시뻘건 불로 가득 차 있어서 뭔가를 눈으로 발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끈기를 가지고 그 무의미해 보이는 관찰을 계속했다. 한참을 그렇게 건물 안을 넘보던 그는 마침내 창문 안쪽의 불길과 연기 사이에서 꿈지럭 꿈지럭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별다른 확인 절차를 거칠 생각도 없이 그는 곧바로 도로에 정차시켜놓은 소방차로 달려들었다. 그는 재빠르게 산소통을 등에 걸치고 방화모를 눌러썼다. 그때 신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금마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안에 사람이 있다.”
그의 말을 들은 신참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물었다.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가시려고요? 안에 사람이 있는 거 확실합니까?”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신참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신참은 그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신참이 그의 앞을 막아 섰다.
“안 됩니다! 지금 저긴 아주 불구덩이 속인데, 선배님도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인명구조는 포기하라고!”
“어……”
그 말을 들은 금마는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섰다.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길, 괜한 말을 지껄였군.’
한번 할 일을 정하면 누가 뭐래도 하고야 마는 성미의 금마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한 말인데 어떻게 그리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원래 말재주가 별로 없었던 터라 신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렇게 꼼지락거리는 사이 저 안에서 사람은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다지 자신을 치켜세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딱 한가지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방사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왔지만 단 한번도 사람이 죽거나 반병신 되는 꼴을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큰 사고가 별로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설혹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는 모든 사람들을 멀쩡하게 구해냈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말이다. 그 10년 간의 기록은 그의 유일한 자랑거리였으며 또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겁 없이 뛰어들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그는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자신의 10년 공덕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꺼져, 새끼야!”
“……”
언제나 그렇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꺼져.’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2미터짜리 거구에서 뿜어지는 그 기세가 얼마나 삼엄했는지, 신참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비켰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금마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참은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소방대장에게 달려갔다.
“소방대장님! 금마 선배님께서 저 안으로 뛰어드셨습니다!”
소방대장은 신참의 말에 표정을 굳히기는 했지만 딱히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소방대장은 담담히 대꾸했다.
“그냥 냅둬라. 들어갔다고 어떻게 가서 구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그렇게 내버려둬도 괜찮은 겁니까?”
소방대장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을 거다. 그 놈이 그 지랄 떠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넌 신경 끄고 가서 애들 물 뿌리는 거나 도와.”
“하지만……”
신참은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머뭇거렸다. 소방대장은 결국 역정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식아, 냅두라면 냅둬! 넌 네 할 일이나 해!”
“예, 옛!”
소방대장은 신참이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돌려 불타고 있는 상가를 바라보았다. 금마는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한답시고 저 안으로 뛰어들어가기라도 했지만 정작 소방대장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은 무력감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담배라도 한대 피웠으면 좋으련만. 그는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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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어디 있는 거지.’
금마는 한참 동안 불길 속을 헤매고 있었다. 들어 온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 사람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쯤 되자 당연히 자신의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잘 못 본건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불길이 거세게 치솟았다. 그는 놀라서 조금 뒤로 물러났다. 아직도 태울 게 남아있는지 불길은 더 거세져 있었다.
‘이러다간 내가 타 죽겠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건물 안을 돌아다녀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건물을 뒤져봐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불길은 더욱더 거세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 뻔했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이 불구덩이 속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내키지 않았지만 물러서야 할 때였다. 이제는 그냥 그가 처음부터 잘못 보았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그때 그의 얼굴을 향해서 둥그런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
그는 그것이 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려서 그것을 막았다. 불을 팔로 막았는데 마치 바위에 맞은 것 같은 둔중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거구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크억!”
그는 고통 어린 숨과 함께 입에 물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토해냈다. 그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당황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불…… 아니, 불로 이루어진 사람, 불의 거인이 서있었다.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불의 거인은 천천히 걸어서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금마는 자기자신이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볼 거 못 볼 거 다 보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건 정말 난생 처음 보았다. 그래서 그는 거인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멍하니 주저앉아서 맹한 소리를 내뱉었다.
“어? 어?”
어느새 그의 앞에 들이닥친 불의 거인은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듯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그는 또다시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려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때 뭔가가 그의 앞에 섰다.
“……어?”
불의 거인의 금마 사이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금마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팔을 치우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앞에 선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들은 둘 다 헐렁한 후드 티에 힙합바지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 색 후드 티를 눌러쓰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노란색 후드 티였다. 검은 색 후드 티는 어깨가 넓고 키가 큰 것이 남자 같았고 노란색 후드 티는 몸집이 작고 어깨가 좁으니 여자 같았다. 노란색 후드 티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맨 손이었지만 검은 색 후드 티는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색깔이 알록달록한 것이 눈에 띄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초록색바탕에 주황색의 물통이 달린 장난감 물총이었다. 검은 후드 티는 말없이 그 물총을 들어서 불의 거인을 겨냥했다. 그리고 노란 후드 티는 몸을 숨기듯이 검은 후드 티의 등뒤에 달라붙었다. 그것을 본 금마는 차마 말을 하지는 못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새끼야, 그걸로 꺼질 불이면 그냥 바지 까고 오줌만 싸도 꺼지겠다.’
금마가 어떤 생각을 하든, 검은 후드 티는 물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화아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물총의 끝에서 사람 몸통만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줄기가 아니라 물기둥이라고 표현해야 할만한 그것이 그대로 불의 거인에게 쏟아졌다. 하얀 수증기가 굉장한 기세로 피어 올랐다. 잠시 후, 수증기가 주변의 불길에 모두 날아갔을 때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와 뜨거운 열기로 주위를 압도하던 불의 거인은 온데 간데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장난감 물총에서 뿜어진 물기둥한방에 그냥 깨끗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금마는 잠시 동안 입을 쩍 벌린 채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불의 거인을 물총으로 쏴 죽이고 유유히 복도를 걸어가는 후드 티들의 등이 보였다. 그는 소리쳤다.
“야! 너…… 너 이 새끼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노란 후드 티가 검은 후드 티의 소매를 잡아 끌었지만 검은 후드 티는 그것을 무시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물총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금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츄화아악!
물총으로부터 또 다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불의 거인에게 쏘았던 것처럼 기둥만한 굵기는 아니었지만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물 대포에 비견될만한 물줄기가 금마의 얼굴에 쏟아졌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그는 손을 휘저어 물줄기를 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푸푸푸! 이런 씨발!”
물줄기가 끊어지자 금마는 곧장 물에 흠뻑 젖은 방화모를 벗어서 바닥에 팽겨쳤다. 후드 티들은 다시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삿대질을 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야! 거기 너희들!”
검은 후드 티는 이번에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손만 뒤로 돌려서 그에게 중지를 내밀어 보였다. 그것을 본 금마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
“병신새끼야! 위를 봐!”
“……!”
그의 외침에 후드 티들은 흠칫 놀라며 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불의 주먹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후드 티들은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했다.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 검은 후드 티는 천장으로부터 떨어져 내린 불의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쳇! 이 건물의 불을 통째로 꺼버렸어야 했는데!”
그는 곧장 물총을 들어서 거인에게로 쏘았다. 그의 물총에서 또다시 폭발적인 기세로 물기둥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발사되던 물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니 사람 손목만한 굵기까지 줄어들었다. 물론 물총에서 쏘아내는 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압이었지만 처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줄기였다. 그렇게 물의 기세가 줄어들자 불의 거인은 물에 맞아 수증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으억!”
검은 후드 티는 거인의 주먹 한방에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서 벽에 부딪힌 다음,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것을 본 노란 후드 티가 소리쳤다.
“오빠!”
그 소리를 들었는지 불의 거인은 고개를 돌려 노란 후드 티를 바라보았다. 거인의 철퇴 같은 주먹이 이번에는 노란 후드 티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불의 거인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노란 후드 티가 외쳤다.
“아, 아저씨!”
어느새 달려온 금마가 손을 뻗어 노란 후드 티의 몸을 빼낸 것이다. 불의 거인은 재차 주먹을 날려 금마를 후려쳐갔다. 금마는 자신의 가슴께에나 겨우 올법한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으며 몸으로 그 공격을 받았다.
“크악! 씁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아버렸다. 하지만 거인의 주먹에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물총을 집어 들었다. 그 사이에 거인은 또 다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날아드는 불주먹을 향해 물총을 겨누고 쏘았다.
찌익
물총은 물총답게 실같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쏘았다. 그의 입에서 다시 한번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퍼억!
그는 망치로 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충격에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몸이 단단히 단련된 튼튼한 몸이었으니 지금까지 버텼지 아니었으면 벌써 검은 후드 티처럼 뻗어버렸을 것이다. 그때 그의 품 안에 안겨있던 노란 후드 티가 말했다.
“아저씨! 저는 그냥 내버려 두고 도망쳐요!”
금마는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더더욱 찡그리며 물었다.
“뭐라구?”
“저희는 그냥 버리고 도망치시라고요!”
퍼억!
또다시 거인의 주먹이 그의 커다란 몸을 두들겼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닥쳐!”
그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굴려 불의 거인의 주먹을 피했다. 그가 몸을 굴린 곳은 검은 후드 티가 쓰러져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검은 후드 티의 늘어진 몸을 어깨 위로 올렸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더니 노란 후드 티에게 물었다.
“야, 내가 누군 줄 알고 도망치라니 뭐라니 하는 거냐?”
“……?”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말이야! 119 구조 대원이란 말이다!”
금마는 이를 악물며 용을 썼다. 그는 두 사람을 짊어진 채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뒤로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의 거인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것을 막아 섰다. 금마는 발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옆구리와 어깨 위에 있는 두 명 때문에 빠르게 몸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저리 꺼져어어!”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불의 거인이 퍽하고 꺼져버린 것이다. 불의 거인이 사라지자 금마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복도를 달릴 수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 매달려 그것을 보고 있던 노란 후드 티가 놀랍다는 어조로 물었다.
“아저씨!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에요?”
“나도 몰라! 제길! 말 걸지마! 죽겠다!”
그는 숨을 거칠게 들이쉬며 겨우 대답했다. 매캐한 연기가 목을 타고 들어왔다. 숨쉬는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불로 뒤덮여 있는 복도를 내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는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불길이 커다랗게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불의 거인이 나타나서 그를 덮쳐왔다. 그는 마구 가속을 붙여서 달리던 참이라 불의 거인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거인의 주먹이 그의 배에 박혀 들었다.
“으악!”
“꺄악!”
그는 불의 거인의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고선 바닥을 굴렀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두 사람도 그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크으, 제기랄……”
바닥에 쓰러진 금마는 배를 움켜쥐고선 신음소리를 흘렸다. 재수없게도 이번의 공격으로 갈빗대 몇 개가 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가 배를 손으로 감싸고 몸을 추스르는데 노란 후드 티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노란 후드 티가 말했다.
“아저씨! 아까처럼 ‘꺼져라!’라고 말해보세요!”
금마는 노란 후드 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
그의 물음에 노란 후드 티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까 아저씨가 ‘꺼져!’라고 하니까 불이 꺼졌잖아요! 아까 정도의 효과만 나도 제 능력으로 효과를 증폭시키면 건물의 불을 한꺼번에 다 끌 수도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해봐요!”
“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는 노란 후드 티를 구박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생각해보니 지금 상황에서 말이 되는 게 어디 있는가? 불이 사람을 두드려 패고, 물총이 기둥만한 물줄기를 내뿜는데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쯤 말이 안 되는 것이 더 생기더라도 변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와 노란 후드 티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불의 거인은 코앞까지 들이닥쳐있었다.
‘별 수 없군.’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며 사납게 소리쳤다.
“꺼져!”
부웅!
대답은 주먹이었다. 거인이 날린 주먹에 가슴을 맞은 금마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이번에도 아무 대비 없이 공격을 받은 거라 타격이 컸다. 가슴이 깨질 듯이 아파왔고 숨이 턱턱 막혔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크어억……”
그는 머리를 절절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잠시 후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불의 거인이 노란 후드 티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거인은 단숨에 노란 후드 티의 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순식간에 노란 후드 티의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노란 후드 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악!”
금마도 불의 거인에게 수없이 두들겨 맞았지만 그는 방화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화복과 후드 티는 다르다. 불의 거인에 닿은 후드 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그것을 본 금마는 이를 부서져라 갈아대면서 몸을 일으키려 발악을 했지만 도저히 일어설수가 없었다.
“아아악! ......아아.”
한없이 올라갈 것 같던 노란 후드 티의 비명이 급격히 잦아들었다.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목이 졸리는 것 보다는 타 죽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금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으아아아!”
그는 기합을 지르며 단숨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 없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불의 거인을 향해서 손가락을 내뻗었다. 그의 입에서 상처 입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이 새끼……! 그 애한테서 손 때고……!”
꺼- 져-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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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뒤에 위치한 흰돌아파트단지
“다시는 들어오지 마!”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아파트의 문이 쾅 닫혔다. 민수는 뭔가에 긁힌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굳게 닫힌 문에 달라붙었다. 그는 문을 두들기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잘 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
쾅쾅쾅
쾅쾅쾅
“시끄러워!”
다시 한번 신경질적이고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민수의 얼굴을 향해 신발의 밑창이 날아들었다.
잠시 후, 민수는 뭔가에 긁힌 자국 위에 뭔가에 두들겨 맞은 자국을 더한 얼굴을 하고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그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후우……”
그렇게 한 숨을 쉬는데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연기가 눈을 잡아 끌었다.
어디에 불이라도 났나 보군. 하지만 나랑 상관 있는 일은 아니지. 아니, 나도 얼굴에 불이 났으니 아주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닐지도......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품을 뒤졌다. 곧 그의 품에서 하얀 담배갑과 라이터가 딸려 나왔다.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빼문 그는 라이터의 점화장치를 튕겼다. 칙, 칙 하고 자그마한 불꽃이 튀었지만 불이 잘 붙지를 않았다. 그는 손으로 바람막이를 만들며 계속해서 점화장치를 튕겼다.
치익!
라이터에 불이 붙었다. 그는 그 자그마한 불을 애물단지마냥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입에 문 담배의 끝을 가져다 댔다. 막 담배에 불이 붙으려는 순간, 갑자기 라이터의 불이 피식 하고 꺼져버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라이터의 가스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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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는 벌써 3일째 밤을 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수많은 컵라면 껍데기와 담배꽁초가 쌓여있었다. 3일 밤 3일 낮을 모조리 게임을 하는데 써버린 것이다. 그의 눈은 무지막지하게 충혈되어있어서 당장이라도 피를 뿜어낼 것만 같았다. 눈물이 말라버려서 눈을 깜박이는 것도 뻑뻑하니 힘들었다. 엉덩이의 감각은 저리다 못해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고 허리도 엉덩이의 사정과 비슷했다. 그도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쓰러져서 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잘 수는 없었다. 그가 원하는 아이템을 먹기 전에는!
힘이라는 것은 현실이든 게임이든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서 한번 빠져들면 끝도 없이 그것을 원하게 된다. 그는 더 큰 힘을 가지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 아이템이 필요했다. 근데 그 문제의 아이템이 3일간의 지독한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제 까지만 해도 몬스터를 한 마리 잡을 때 마다 나와라 나와라 주문을 외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힘겹게 마우스를 클릭하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크에엑-.”
몬스터의 구슬픈 비명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듣기만해도 동정심이 치솟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담담했다. 벌써 이 비명을 들은 것이 몇 번째 인가. 차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몬스터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아이템을 땅에 떨구었다. 범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그 것들을 확인했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나왔다!”
그는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라도 쏟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자그마치 3일이다! 3일에 걸친 길고 험난한 작업 끝에 드디어 손에 아이템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땅에 떨어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아이템을 향해 마우스의 커서가 다가갔다. 그리고 막 그것을 클릭하려는 순간,
피슈웅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꺼져버렸다.
“아?”
그가 제대로 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그는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양손을 들어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의 입에서 몬스터와도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끄, 아, 아, 아,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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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죽겠다. 정말.”
연희는 너무나 피곤했다. 29살 노처녀로써 이제 연륜이라는 것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 그녀였지만 갓 들어온 버르장머리 없는 신입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정말로 짜증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싸가지 없는 것들……’
낮의 일을 생각하니 다시금 짜증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 회사의 일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입가의 근육을 움직여 씨익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웃자 웃어! 그녀는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조작했다. 곧 거실에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음악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로운 동작으로 옷을 벗어 내렸다. 금세 알몸이 된 그녀는 허리까지 닿는 길다란 머리칼을 흔들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온 그녀는 먼저 거품목욕제를 꺼내서 욕조에 조금 뿌려놓고 물을 틀어놓았다. 그녀는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몸이 피곤할 때면 꼭 거품목욕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간단하게 거품목욕을 할 준비를 끝내놓은 그녀는 샤워기 앞에 서서 대충대충 몸을 씻었다. 그리고 나서 욕조를 바라보니 욕조는 이미 새하얀 거품들로 가득 들어차있었다. 물론 거품아래로는 다 물이지만 겉보기에는 거품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그녀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욕실의 전등이 꺼져버렸다. 그리고 거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도 멈춰버렸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또 조용해졌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정전인가?”
잠시 후, 전등에 불이 들어오고 중도에 끊겼던 음악소리도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깐 정전이 일어났나 보다, 하고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원래의 예정대로 욕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욕조의 안은 방금 전과는 달라져있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거……?”
욕조 안의 거품은 몽땅 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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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은 멍한 눈으로 상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는 어두웠다. 왜냐하면 근처에 있는 불빛이라는 불빛은 모두 꺼져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등도 꺼졌고 길을 지나가던 자동차들의 라이트도 꺼져있었다. 아니, 자동차들은 아예 시동까지 꺼져버려서 모두다 도로에 멈춰 서있었다. 그리고 상가를 활활 태우던 불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던 연기와 함께 불도 깨끗하게 꺼져있었다. 이제 빛나는 것이라곤 하늘 위에 떠있는 달과 별뿐이었다.
신참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 후에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소방호스를 바라보았다. 소방호스를 타고 세차게 뿜어져 나오던 물도 꺼져있었다. 그는 소방호스의 끝을 들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방금 전만 해도 물을 내뿜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듯이 그 끝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소방호스의 끝을 관찰하는 동안 꺼졌던 불빛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 둘씩 다시 켜졌고 길가에 멈춰있던 자동차들은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켰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던 소방호스가 움직였다.
“응?”
츄와아악!
“으와아아악!”
갑작스레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신참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진 호스는 물줄기의 수압 때문에 갓 잡아 올린 잉어마냥 펄떡거리면서 사방으로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서 갖가지 욕설들이 튀어나왔다.
“으윽! 뭐야! 시발!”
“아오! 이 멍청한 새끼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어!”
신참은 연신 ‘죄송합니다.’를 부르짖으며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호스를 잡으려 했지만 그게 영 쉽지가 않았다. 소방호스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교묘하게 움직이며 그의 손을 피했다. 보다 못한 근처의 소방사들이 달려들었고 그 드잡이질을 보다 못한 소방대장이 그냥 물을 꺼버림으로써 사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호스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물에 쫄딱 젖어버린 소방사 한 명이 신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놈 자식! 정신을 어디다가 팔고 다니는 거야?”
신참은 머리를 푹 숙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그가 외쳤다.
“금마 선배님!”
“응?”
신참의 외침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불은 다 꺼졌지만 시커먼 숯 덩어리가 되어버린 상가를 빠져 나오는 거구가 있었다. 금마였다. 그는 배를 감싸 쥔 채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소방사들은 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소방사 중 한 명이 금마가 배를 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선 말했다.
“선배님! 어디 다치셨습니까?”
금마는 손을 들어 보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아, 갈비뼈가 몇 개 나간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소방사는 옆에 있던 신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신참이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쨔샤! 가서 들것이나 하나 가져와!”
“예!”
헐레벌떡 달려간 신입이 들것을 가져오자 금마는 숨을 내쉬면서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잔뜩 몰려있던 소방사들을 헤치고 들어온 소방대장이 금마에게 물었다.
“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그의 말은 스스럼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반말이었다. 그와 금마는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던 죽마고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방대장의 물음에 금마 역시 반말로 대꾸했다.
“왠 이상한 놈들이 안에 있던데.”
“이상한 놈들?”
“음…… 그 뭐시냐. 무슨 우비 비슷하게 생긴 옷인데……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소방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비 비슷한 옷?”
소방대장은 물론이고 주위의 아무도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싶자 금마는 갈비뼈가 부러져서 굉장히 고통스러울 텐데도 벌컥 성을 내며 열성적으로 떠들었다. 말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뭔가를 설명하려니 대단히 힘들었다.
“아, 왜! 있잖아! 그, 그, 비보인지 개보인지 춤추는 애들이 잘 입는 거! 우비처럼 생겼는데 그렇게 길지는 않고…… 이렇게 뒤에 모자가 달려서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비 비슷한 옷!”
“???”
금마의 조악한 설명에 근처의 소방사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방대장이 중얼거렸다.
“그게 뭔데 자꾸 우비타령이냐?”
답답해진 금마가 소리를 꽥 지르려는데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신참이 말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후드 티요?”
금마는 박수를 짝치며 반갑다는 듯이 신참을 돌아보았다.
“아! 그래! 그거!”
그리고 소방대장이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후드 티를 입은 놈이 있었는데 그 다음은?”
“……”
그 말에 금마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고작 후드 티 하나 설명하는데도 이렇게 애를 먹었는데 그 뒤의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아예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그답지 않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안에 들어갔더니…… 그 후드 티를 입은 연놈들이 두 명 있었는데…… 또 이상한 불같이 생긴 놈도 있었구. 그런데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싸가지 없는 놈이 그 불같이 생긴 놈을 물총으로 쏴서 죽였는데…… 그 불 새끼가 다시 나타나서 애들을 두들겨 패더라구…… 그래서……”
거기까지 들은 소방대장은 질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됐다! 됐어! 너한테 뭘 설명하라고 한 게 잘못이지!”
그는 시커멓게 타서 건물의 모양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가를 가리켜보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저 안에 후드 티를 입은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그 놈들이 불을 껐다는 거냐?”
“어……”
뭔가가 조금, 아니 많이 달랐지만 그는 그다지 진실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또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마의 말에 소방대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 길래……”
그때, 또 다시 신참이 손가락을 튕기며 한마디를 내던졌다.
“나이트 후드!”
이번에는 소방사들 모두가 신참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나이트 후드?”
신참은 주위의 눈이 자신에게 쏠리자 즐겁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떠벌리기 시작했다.
“예! 요즘 들어서 꽤 유명한 이야기인데 모르셨어요? 후드 티를 입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마법같이 해결해내는 정체불명의 집단! 아마 이번 일도 나이트 후드가 벌인 일인 게 분명해요!”
그러자 주위의 소방사들은 다들 뭔가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는 듯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흠…… 그러고 보니 어딘가 TV에서 본 것도 같아.”
“멍청아, 나이트 후드가 요즘 얼마나 유명한데 무슨!”
“나 나이트 후드 팬인데! 제길! 나이트 후드를 코앞에서 놓치다니!”
소방사들은 순식간에 나이트 후드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들은 마치 동창회에 모인 아줌마들처럼 재잘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방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함을 질렀다.
“자식들아! 언제까지 떠들고 있을 거야! 빨리 정리하고 철수 해야지!”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목청이 꽤 크다고 자부하는 몸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소방사들이 떠드는 소리에 가볍게 파묻혔다. 때문에 소방대장은 몇 번이고 목청이 떨어져나가라 소리를 질러서야 겨우겨우 소방사들이 뒷정리를 하게 만들 수 있었다. 소방대장은 투덜거리면서도 분주히 움직이는 소방사들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바닥에 들것을 깔고 여유롭게 드러누워있는 금마를 발견했다. 그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넌 왜 놀아!”
금마는 여유롭게 대꾸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아파 죽겠는데 일 하게 생겼냐? 누워있어야지.”
“……갈비뼈는 왜 부러졌는데? 나이트 후든지 하는 놈들한테 맞기라도 했냐?”
금마는 아까 말한걸 뭘 로 들었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안에서 왠 사람처럼 생긴 불 새끼한테 두들겨 맞았다니까!”
그 말을 들은 소방대장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멋대로 결론을 만들어내 버렸다.
“그래 그래, 상가 안에서 왠 불한테 두들겨 맞는 데 왠 후드 쓴 애들이 나타나서 그 불을 꺼버렸다는 거 아니야.”
“불은 내가 껐는데……”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짜샤.”
혼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금마는 소방대장의 물음에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말해봐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소방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후드 티 입은 애들이 불을 끈 다음에 어떻게 했냐?”
“엉?”
“그러니까 후드 티 입은 애들이 불을 껐다며! 그 다음에 어떻게 됬냐구.”
금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둘 다 다쳐서 쓰러져있는데 또 어디서 후드 티 뒤집어쓴 놈들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가버리던데?”
“……”
“……”
그 둘은 잠시 침묵했다. 소방대장이 말했다.
“끝이냐?”
금마는 그 말에 머리를 쥐어짜보았다. 또 무슨 일이 있지?
“어…… 그러고 보니 그 중에 한 명이 ‘아저씨 짱 멋지네요!’라고 지껄였던 거 같았는데.”
“……그리고?”
금마는 인상을 썼다.
“끝이야!”
소방대장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싱거워?”
“뭐가 싱거워?”
금마의 신경질적인 대꾸에 소방대장은 혀를 찼다.
“너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 대충 말하는 거지?”
금마는 이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사람 말하는 거 끊고 자기 멋대로 말해버려서 기분이 더러웠던 참이었다. 그의 입에서 습관적으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꺼져!”
상가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것으로 벌써 네 번째 화재였다.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번 꼴로 계속 화재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잦은 화재라면 방화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화재조사팀이 조사해본 바로 화재의 원인은 전기누전과 가스폭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욕먹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고 진짜 화재의 원인은 ‘모른다.’였다. 어떤 원인도, 흔적도 없이 갑자기 건물이 타올랐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윗선에서는 아주 골머리를 썩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개 소방사인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벌써 10년 째 소방사의 자리에 앉아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소방사의 일을 할 예정이었다. 그에게 앉아서 서류나 뒤적거리거나 갓 들어온 병아리들을 지휘하느라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것은 영 적성에 맞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타오르는 상가건물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그 상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줌마가 있었다.
“어이구, 어떻게 하누, 어떻게 하누.”
아마도 상가건물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을 아줌마는 불타오르는 상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한탄을 쏟아내었다. 근처에 이런 아줌마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장사 밑천인 가게가 불타버렸으니 저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을 본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리고 불구경 나온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그렇게 보는 거요? 구경 났소? 썩 꺼지쇼!”
그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자 구경꾼들이 찔끔하더니 순순히 흩어졌다. 구경꾼들 사이에는 딱 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별말 없이 물러섰다. 아마도 소리를 친 사람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다면 그들도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2미터를 넘는 키에, 보디빌더 뺨 칠정도의 두꺼운 몸을 가진 소방사, 강금마는 구경꾼들을 쫒아버리고선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직도 비탄에 잠겨있는 아줌마들을 바라보았다. 마침 소방서에 발령 받은 지 얼마 안된 신참 하나가 한 아줌마를 붙잡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 저 안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 없어요?”
“어떻하누, 어떻게 해! 어어엉!”
“아줌마, 저기…… 대답을 좀……”
금마는 한숨을 내쉬고선 신참의 뒷덜미를 붙잡아 끌었다. 신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사람들한테 그런 거 물어봐서 뭐하냐? 자식아. 물어봐도 모른다고 말할게 뻔한데.”
“그렇습니까?”
“게다가 지금 정도로 불이 커졌으면 인명구조는 웬만하면 포기해. 들어가서 너도 뒤지고 싶으냐?”
금마는 손가락을 들어 상가를 가리켜 보았다. 불은 상가 전체를 삼키고 창 밖으로 혀를 날름대고 있었다. 저 정도 불길이면 저 안은 당연히 불바다일 것이 뻔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한 다음에 신참의 목덜미를 놔주었다.
“사람 찾는 건 때려 치우고 가서 불 끄는 거나 도와. 꺼질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신참은 기운차게 인사를 하며 달려나갔다. 그리고 금마는 다시 한번 상가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화재가 잦았기 때문에 그들은 충분히 긴장을 하고 화재상황에 대비하고 있었고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신속하게 준비를 맞추고 현장으로 향했다. 신고 접수 후 현장도착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신속한 출동이었다. 그런데도 요 모양 요 꼴이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건물이 불에 완전히 먹혀버린 것이다.
불은 굉장히 거세었지만 다행히 상가 건물이 그리 크고 복잡한 건물이 아니어서 인명피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상가와 붙어있는 건물도 없어서 불이 다른 곳으로 옮길 염려도 없었다. 상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어떻게 손쓸 수 있는 불길이 아니었다. 물 뿌린다고 꺼질 불도 아니고, 벌써 건물은 다 타버린 거나 마찬가지니 대충 불 끄는 시늉만 하다가 철수하면 될 것이다. 그는 거기까지 생각해내고선 입맛을 다셨다. 입 안이 씁쓰름 했다. 기분이 나빴다.
“제길.”
그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상가를 뒤로했다. 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자신도 불 끄는 시늉이라도 할 셈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그의 뒤통수를 잡아 끌었다.
“……음?”
그는 다시 상가를 바라보았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똑 같은 일을 10년쯤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소방사였고 119구조대원이었으며 무모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그의 감이 저 상가 안에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상가로 다가갔다. 건물은 완전히 불에 휩쌓여서 다가가기만 해도 대단한 열기가 느껴졌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건물을 이리저리 돌면서 창문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창문 안은 시커먼 연기와 시뻘건 불로 가득 차 있어서 뭔가를 눈으로 발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끈기를 가지고 그 무의미해 보이는 관찰을 계속했다. 한참을 그렇게 건물 안을 넘보던 그는 마침내 창문 안쪽의 불길과 연기 사이에서 꿈지럭 꿈지럭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별다른 확인 절차를 거칠 생각도 없이 그는 곧바로 도로에 정차시켜놓은 소방차로 달려들었다. 그는 재빠르게 산소통을 등에 걸치고 방화모를 눌러썼다. 그때 신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금마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안에 사람이 있다.”
그의 말을 들은 신참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물었다.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가시려고요? 안에 사람이 있는 거 확실합니까?”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신참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신참은 그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신참이 그의 앞을 막아 섰다.
“안 됩니다! 지금 저긴 아주 불구덩이 속인데, 선배님도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인명구조는 포기하라고!”
“어……”
그 말을 들은 금마는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섰다.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길, 괜한 말을 지껄였군.’
한번 할 일을 정하면 누가 뭐래도 하고야 마는 성미의 금마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한 말인데 어떻게 그리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원래 말재주가 별로 없었던 터라 신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렇게 꼼지락거리는 사이 저 안에서 사람은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다지 자신을 치켜세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딱 한가지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방사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왔지만 단 한번도 사람이 죽거나 반병신 되는 꼴을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큰 사고가 별로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설혹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는 모든 사람들을 멀쩡하게 구해냈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말이다. 그 10년 간의 기록은 그의 유일한 자랑거리였으며 또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겁 없이 뛰어들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그는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자신의 10년 공덕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꺼져, 새끼야!”
“……”
언제나 그렇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꺼져.’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2미터짜리 거구에서 뿜어지는 그 기세가 얼마나 삼엄했는지, 신참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비켰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금마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참은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소방대장에게 달려갔다.
“소방대장님! 금마 선배님께서 저 안으로 뛰어드셨습니다!”
소방대장은 신참의 말에 표정을 굳히기는 했지만 딱히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소방대장은 담담히 대꾸했다.
“그냥 냅둬라. 들어갔다고 어떻게 가서 구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그렇게 내버려둬도 괜찮은 겁니까?”
소방대장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을 거다. 그 놈이 그 지랄 떠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넌 신경 끄고 가서 애들 물 뿌리는 거나 도와.”
“하지만……”
신참은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머뭇거렸다. 소방대장은 결국 역정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식아, 냅두라면 냅둬! 넌 네 할 일이나 해!”
“예, 옛!”
소방대장은 신참이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돌려 불타고 있는 상가를 바라보았다. 금마는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한답시고 저 안으로 뛰어들어가기라도 했지만 정작 소방대장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은 무력감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담배라도 한대 피웠으면 좋으련만. 그는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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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어디 있는 거지.’
금마는 한참 동안 불길 속을 헤매고 있었다. 들어 온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 사람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쯤 되자 당연히 자신의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잘 못 본건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불길이 거세게 치솟았다. 그는 놀라서 조금 뒤로 물러났다. 아직도 태울 게 남아있는지 불길은 더 거세져 있었다.
‘이러다간 내가 타 죽겠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건물 안을 돌아다녀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건물을 뒤져봐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불길은 더욱더 거세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 뻔했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이 불구덩이 속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내키지 않았지만 물러서야 할 때였다. 이제는 그냥 그가 처음부터 잘못 보았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그때 그의 얼굴을 향해서 둥그런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
그는 그것이 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려서 그것을 막았다. 불을 팔로 막았는데 마치 바위에 맞은 것 같은 둔중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거구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크억!”
그는 고통 어린 숨과 함께 입에 물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토해냈다. 그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당황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불…… 아니, 불로 이루어진 사람, 불의 거인이 서있었다.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불의 거인은 천천히 걸어서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금마는 자기자신이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볼 거 못 볼 거 다 보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건 정말 난생 처음 보았다. 그래서 그는 거인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멍하니 주저앉아서 맹한 소리를 내뱉었다.
“어? 어?”
어느새 그의 앞에 들이닥친 불의 거인은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듯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그는 또다시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려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때 뭔가가 그의 앞에 섰다.
“……어?”
불의 거인의 금마 사이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금마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팔을 치우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앞에 선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들은 둘 다 헐렁한 후드 티에 힙합바지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 색 후드 티를 눌러쓰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노란색 후드 티였다. 검은 색 후드 티는 어깨가 넓고 키가 큰 것이 남자 같았고 노란색 후드 티는 몸집이 작고 어깨가 좁으니 여자 같았다. 노란색 후드 티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맨 손이었지만 검은 색 후드 티는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색깔이 알록달록한 것이 눈에 띄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초록색바탕에 주황색의 물통이 달린 장난감 물총이었다. 검은 후드 티는 말없이 그 물총을 들어서 불의 거인을 겨냥했다. 그리고 노란 후드 티는 몸을 숨기듯이 검은 후드 티의 등뒤에 달라붙었다. 그것을 본 금마는 차마 말을 하지는 못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새끼야, 그걸로 꺼질 불이면 그냥 바지 까고 오줌만 싸도 꺼지겠다.’
금마가 어떤 생각을 하든, 검은 후드 티는 물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화아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물총의 끝에서 사람 몸통만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줄기가 아니라 물기둥이라고 표현해야 할만한 그것이 그대로 불의 거인에게 쏟아졌다. 하얀 수증기가 굉장한 기세로 피어 올랐다. 잠시 후, 수증기가 주변의 불길에 모두 날아갔을 때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다란 덩치와 뜨거운 열기로 주위를 압도하던 불의 거인은 온데 간데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장난감 물총에서 뿜어진 물기둥한방에 그냥 깨끗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금마는 잠시 동안 입을 쩍 벌린 채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불의 거인을 물총으로 쏴 죽이고 유유히 복도를 걸어가는 후드 티들의 등이 보였다. 그는 소리쳤다.
“야! 너…… 너 이 새끼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노란 후드 티가 검은 후드 티의 소매를 잡아 끌었지만 검은 후드 티는 그것을 무시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물총을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금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츄화아악!
물총으로부터 또 다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불의 거인에게 쏘았던 것처럼 기둥만한 굵기는 아니었지만 시위 진압용으로 쓰이는 물 대포에 비견될만한 물줄기가 금마의 얼굴에 쏟아졌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그는 손을 휘저어 물줄기를 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푸푸푸! 이런 씨발!”
물줄기가 끊어지자 금마는 곧장 물에 흠뻑 젖은 방화모를 벗어서 바닥에 팽겨쳤다. 후드 티들은 다시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는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삿대질을 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야! 거기 너희들!”
검은 후드 티는 이번에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손만 뒤로 돌려서 그에게 중지를 내밀어 보였다. 그것을 본 금마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
“병신새끼야! 위를 봐!”
“……!”
그의 외침에 후드 티들은 흠칫 놀라며 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불의 주먹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후드 티들은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했다.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 검은 후드 티는 천장으로부터 떨어져 내린 불의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쳇! 이 건물의 불을 통째로 꺼버렸어야 했는데!”
그는 곧장 물총을 들어서 거인에게로 쏘았다. 그의 물총에서 또다시 폭발적인 기세로 물기둥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발사되던 물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니 사람 손목만한 굵기까지 줄어들었다. 물론 물총에서 쏘아내는 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압이었지만 처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줄기였다. 그렇게 물의 기세가 줄어들자 불의 거인은 물에 맞아 수증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으억!”
검은 후드 티는 거인의 주먹 한방에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서 벽에 부딪힌 다음,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것을 본 노란 후드 티가 소리쳤다.
“오빠!”
그 소리를 들었는지 불의 거인은 고개를 돌려 노란 후드 티를 바라보았다. 거인의 철퇴 같은 주먹이 이번에는 노란 후드 티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불의 거인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노란 후드 티가 외쳤다.
“아, 아저씨!”
어느새 달려온 금마가 손을 뻗어 노란 후드 티의 몸을 빼낸 것이다. 불의 거인은 재차 주먹을 날려 금마를 후려쳐갔다. 금마는 자신의 가슴께에나 겨우 올법한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으며 몸으로 그 공격을 받았다.
“크악! 씁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아버렸다. 하지만 거인의 주먹에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물총을 집어 들었다. 그 사이에 거인은 또 다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날아드는 불주먹을 향해 물총을 겨누고 쏘았다.
찌익
물총은 물총답게 실같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쏘았다. 그의 입에서 다시 한번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퍼억!
그는 망치로 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충격에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몸이 단단히 단련된 튼튼한 몸이었으니 지금까지 버텼지 아니었으면 벌써 검은 후드 티처럼 뻗어버렸을 것이다. 그때 그의 품 안에 안겨있던 노란 후드 티가 말했다.
“아저씨! 저는 그냥 내버려 두고 도망쳐요!”
금마는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더더욱 찡그리며 물었다.
“뭐라구?”
“저희는 그냥 버리고 도망치시라고요!”
퍼억!
또다시 거인의 주먹이 그의 커다란 몸을 두들겼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닥쳐!”
그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노란 후드 티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굴려 불의 거인의 주먹을 피했다. 그가 몸을 굴린 곳은 검은 후드 티가 쓰러져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검은 후드 티의 늘어진 몸을 어깨 위로 올렸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더니 노란 후드 티에게 물었다.
“야, 내가 누군 줄 알고 도망치라니 뭐라니 하는 거냐?”
“……?”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말이야! 119 구조 대원이란 말이다!”
금마는 이를 악물며 용을 썼다. 그는 두 사람을 짊어진 채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뒤로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의 거인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것을 막아 섰다. 금마는 발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옆구리와 어깨 위에 있는 두 명 때문에 빠르게 몸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저리 꺼져어어!”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불의 거인이 퍽하고 꺼져버린 것이다. 불의 거인이 사라지자 금마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복도를 달릴 수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 매달려 그것을 보고 있던 노란 후드 티가 놀랍다는 어조로 물었다.
“아저씨!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에요?”
“나도 몰라! 제길! 말 걸지마! 죽겠다!”
그는 숨을 거칠게 들이쉬며 겨우 대답했다. 매캐한 연기가 목을 타고 들어왔다. 숨쉬는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불로 뒤덮여 있는 복도를 내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는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불길이 커다랗게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불의 거인이 나타나서 그를 덮쳐왔다. 그는 마구 가속을 붙여서 달리던 참이라 불의 거인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거인의 주먹이 그의 배에 박혀 들었다.
“으악!”
“꺄악!”
그는 불의 거인의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고선 바닥을 굴렀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두 사람도 그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크으, 제기랄……”
바닥에 쓰러진 금마는 배를 움켜쥐고선 신음소리를 흘렸다. 재수없게도 이번의 공격으로 갈빗대 몇 개가 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가 배를 손으로 감싸고 몸을 추스르는데 노란 후드 티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노란 후드 티가 말했다.
“아저씨! 아까처럼 ‘꺼져라!’라고 말해보세요!”
금마는 노란 후드 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
그의 물음에 노란 후드 티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까 아저씨가 ‘꺼져!’라고 하니까 불이 꺼졌잖아요! 아까 정도의 효과만 나도 제 능력으로 효과를 증폭시키면 건물의 불을 한꺼번에 다 끌 수도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해봐요!”
“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는 노란 후드 티를 구박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생각해보니 지금 상황에서 말이 되는 게 어디 있는가? 불이 사람을 두드려 패고, 물총이 기둥만한 물줄기를 내뿜는데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쯤 말이 안 되는 것이 더 생기더라도 변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와 노란 후드 티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불의 거인은 코앞까지 들이닥쳐있었다.
‘별 수 없군.’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며 사납게 소리쳤다.
“꺼져!”
부웅!
대답은 주먹이었다. 거인이 날린 주먹에 가슴을 맞은 금마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이번에도 아무 대비 없이 공격을 받은 거라 타격이 컸다. 가슴이 깨질 듯이 아파왔고 숨이 턱턱 막혔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크어억……”
그는 머리를 절절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잠시 후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불의 거인이 노란 후드 티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거인은 단숨에 노란 후드 티의 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순식간에 노란 후드 티의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노란 후드 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악!”
금마도 불의 거인에게 수없이 두들겨 맞았지만 그는 방화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화복과 후드 티는 다르다. 불의 거인에 닿은 후드 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그것을 본 금마는 이를 부서져라 갈아대면서 몸을 일으키려 발악을 했지만 도저히 일어설수가 없었다.
“아아악! ......아아.”
한없이 올라갈 것 같던 노란 후드 티의 비명이 급격히 잦아들었다.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목이 졸리는 것 보다는 타 죽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금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으아아아!”
그는 기합을 지르며 단숨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 없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불의 거인을 향해서 손가락을 내뻗었다. 그의 입에서 상처 입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이 새끼……! 그 애한테서 손 때고……!”
꺼- 져-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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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뒤에 위치한 흰돌아파트단지
“다시는 들어오지 마!”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아파트의 문이 쾅 닫혔다. 민수는 뭔가에 긁힌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굳게 닫힌 문에 달라붙었다. 그는 문을 두들기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잘 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
쾅쾅쾅
쾅쾅쾅
“시끄러워!”
다시 한번 신경질적이고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민수의 얼굴을 향해 신발의 밑창이 날아들었다.
잠시 후, 민수는 뭔가에 긁힌 자국 위에 뭔가에 두들겨 맞은 자국을 더한 얼굴을 하고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그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후우……”
그렇게 한 숨을 쉬는데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연기가 눈을 잡아 끌었다.
어디에 불이라도 났나 보군. 하지만 나랑 상관 있는 일은 아니지. 아니, 나도 얼굴에 불이 났으니 아주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닐지도......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품을 뒤졌다. 곧 그의 품에서 하얀 담배갑과 라이터가 딸려 나왔다.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빼문 그는 라이터의 점화장치를 튕겼다. 칙, 칙 하고 자그마한 불꽃이 튀었지만 불이 잘 붙지를 않았다. 그는 손으로 바람막이를 만들며 계속해서 점화장치를 튕겼다.
치익!
라이터에 불이 붙었다. 그는 그 자그마한 불을 애물단지마냥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입에 문 담배의 끝을 가져다 댔다. 막 담배에 불이 붙으려는 순간, 갑자기 라이터의 불이 피식 하고 꺼져버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라이터의 가스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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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는 벌써 3일째 밤을 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수많은 컵라면 껍데기와 담배꽁초가 쌓여있었다. 3일 밤 3일 낮을 모조리 게임을 하는데 써버린 것이다. 그의 눈은 무지막지하게 충혈되어있어서 당장이라도 피를 뿜어낼 것만 같았다. 눈물이 말라버려서 눈을 깜박이는 것도 뻑뻑하니 힘들었다. 엉덩이의 감각은 저리다 못해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고 허리도 엉덩이의 사정과 비슷했다. 그도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쓰러져서 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잘 수는 없었다. 그가 원하는 아이템을 먹기 전에는!
힘이라는 것은 현실이든 게임이든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서 한번 빠져들면 끝도 없이 그것을 원하게 된다. 그는 더 큰 힘을 가지기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 아이템이 필요했다. 근데 그 문제의 아이템이 3일간의 지독한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제 까지만 해도 몬스터를 한 마리 잡을 때 마다 나와라 나와라 주문을 외웠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힘겹게 마우스를 클릭하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크에엑-.”
몬스터의 구슬픈 비명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듣기만해도 동정심이 치솟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담담했다. 벌써 이 비명을 들은 것이 몇 번째 인가. 차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몬스터는 바닥으로 쓰러지며 아이템을 땅에 떨구었다. 범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그 것들을 확인했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나왔다!”
그는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라도 쏟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자그마치 3일이다! 3일에 걸친 길고 험난한 작업 끝에 드디어 손에 아이템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땅에 떨어져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아이템을 향해 마우스의 커서가 다가갔다. 그리고 막 그것을 클릭하려는 순간,
피슈웅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꺼져버렸다.
“아?”
그가 제대로 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그는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양손을 들어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의 입에서 몬스터와도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끄, 아, 아, 아,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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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죽겠다. 정말.”
연희는 너무나 피곤했다. 29살 노처녀로써 이제 연륜이라는 것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 그녀였지만 갓 들어온 버르장머리 없는 신입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정말로 짜증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싸가지 없는 것들……’
낮의 일을 생각하니 다시금 짜증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 회사의 일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입가의 근육을 움직여 씨익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웃자 웃어! 그녀는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조작했다. 곧 거실에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음악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로운 동작으로 옷을 벗어 내렸다. 금세 알몸이 된 그녀는 허리까지 닿는 길다란 머리칼을 흔들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온 그녀는 먼저 거품목욕제를 꺼내서 욕조에 조금 뿌려놓고 물을 틀어놓았다. 그녀는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몸이 피곤할 때면 꼭 거품목욕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간단하게 거품목욕을 할 준비를 끝내놓은 그녀는 샤워기 앞에 서서 대충대충 몸을 씻었다. 그리고 나서 욕조를 바라보니 욕조는 이미 새하얀 거품들로 가득 들어차있었다. 물론 거품아래로는 다 물이지만 겉보기에는 거품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그녀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욕실의 전등이 꺼져버렸다. 그리고 거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도 멈춰버렸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또 조용해졌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정전인가?”
잠시 후, 전등에 불이 들어오고 중도에 끊겼던 음악소리도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깐 정전이 일어났나 보다, 하고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원래의 예정대로 욕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욕조의 안은 방금 전과는 달라져있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거……?”
욕조 안의 거품은 몽땅 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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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은 멍한 눈으로 상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는 어두웠다. 왜냐하면 근처에 있는 불빛이라는 불빛은 모두 꺼져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등도 꺼졌고 길을 지나가던 자동차들의 라이트도 꺼져있었다. 아니, 자동차들은 아예 시동까지 꺼져버려서 모두다 도로에 멈춰 서있었다. 그리고 상가를 활활 태우던 불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던 연기와 함께 불도 깨끗하게 꺼져있었다. 이제 빛나는 것이라곤 하늘 위에 떠있는 달과 별뿐이었다.
신참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 후에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소방호스를 바라보았다. 소방호스를 타고 세차게 뿜어져 나오던 물도 꺼져있었다. 그는 소방호스의 끝을 들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방금 전만 해도 물을 내뿜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듯이 그 끝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소방호스의 끝을 관찰하는 동안 꺼졌던 불빛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 둘씩 다시 켜졌고 길가에 멈춰있던 자동차들은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켰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던 소방호스가 움직였다.
“응?”
츄와아악!
“으와아아악!”
갑작스레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신참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진 호스는 물줄기의 수압 때문에 갓 잡아 올린 잉어마냥 펄떡거리면서 사방으로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서 갖가지 욕설들이 튀어나왔다.
“으윽! 뭐야! 시발!”
“아오! 이 멍청한 새끼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어!”
신참은 연신 ‘죄송합니다.’를 부르짖으며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호스를 잡으려 했지만 그게 영 쉽지가 않았다. 소방호스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교묘하게 움직이며 그의 손을 피했다. 보다 못한 근처의 소방사들이 달려들었고 그 드잡이질을 보다 못한 소방대장이 그냥 물을 꺼버림으로써 사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호스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물에 쫄딱 젖어버린 소방사 한 명이 신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놈 자식! 정신을 어디다가 팔고 다니는 거야?”
신참은 머리를 푹 숙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번개 같은 속도로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그가 외쳤다.
“금마 선배님!”
“응?”
신참의 외침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불은 다 꺼졌지만 시커먼 숯 덩어리가 되어버린 상가를 빠져 나오는 거구가 있었다. 금마였다. 그는 배를 감싸 쥔 채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소방사들은 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소방사 중 한 명이 금마가 배를 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선 말했다.
“선배님! 어디 다치셨습니까?”
금마는 손을 들어 보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아, 갈비뼈가 몇 개 나간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소방사는 옆에 있던 신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신참이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쨔샤! 가서 들것이나 하나 가져와!”
“예!”
헐레벌떡 달려간 신입이 들것을 가져오자 금마는 숨을 내쉬면서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잔뜩 몰려있던 소방사들을 헤치고 들어온 소방대장이 금마에게 물었다.
“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그의 말은 스스럼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반말이었다. 그와 금마는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던 죽마고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방대장의 물음에 금마 역시 반말로 대꾸했다.
“왠 이상한 놈들이 안에 있던데.”
“이상한 놈들?”
“음…… 그 뭐시냐. 무슨 우비 비슷하게 생긴 옷인데……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소방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비 비슷한 옷?”
소방대장은 물론이고 주위의 아무도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싶자 금마는 갈비뼈가 부러져서 굉장히 고통스러울 텐데도 벌컥 성을 내며 열성적으로 떠들었다. 말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뭔가를 설명하려니 대단히 힘들었다.
“아, 왜! 있잖아! 그, 그, 비보인지 개보인지 춤추는 애들이 잘 입는 거! 우비처럼 생겼는데 그렇게 길지는 않고…… 이렇게 뒤에 모자가 달려서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비 비슷한 옷!”
“???”
금마의 조악한 설명에 근처의 소방사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방대장이 중얼거렸다.
“그게 뭔데 자꾸 우비타령이냐?”
답답해진 금마가 소리를 꽥 지르려는데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신참이 말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후드 티요?”
금마는 박수를 짝치며 반갑다는 듯이 신참을 돌아보았다.
“아! 그래! 그거!”
그리고 소방대장이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후드 티를 입은 놈이 있었는데 그 다음은?”
“……”
그 말에 금마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고작 후드 티 하나 설명하는데도 이렇게 애를 먹었는데 그 뒤의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지만 아예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그답지 않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안에 들어갔더니…… 그 후드 티를 입은 연놈들이 두 명 있었는데…… 또 이상한 불같이 생긴 놈도 있었구. 그런데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싸가지 없는 놈이 그 불같이 생긴 놈을 물총으로 쏴서 죽였는데…… 그 불 새끼가 다시 나타나서 애들을 두들겨 패더라구…… 그래서……”
거기까지 들은 소방대장은 질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됐다! 됐어! 너한테 뭘 설명하라고 한 게 잘못이지!”
그는 시커멓게 타서 건물의 모양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가를 가리켜보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저 안에 후드 티를 입은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그 놈들이 불을 껐다는 거냐?”
“어……”
뭔가가 조금, 아니 많이 달랐지만 그는 그다지 진실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또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금마의 말에 소방대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 길래……”
그때, 또 다시 신참이 손가락을 튕기며 한마디를 내던졌다.
“나이트 후드!”
이번에는 소방사들 모두가 신참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나이트 후드?”
신참은 주위의 눈이 자신에게 쏠리자 즐겁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떠벌리기 시작했다.
“예! 요즘 들어서 꽤 유명한 이야기인데 모르셨어요? 후드 티를 입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마법같이 해결해내는 정체불명의 집단! 아마 이번 일도 나이트 후드가 벌인 일인 게 분명해요!”
그러자 주위의 소방사들은 다들 뭔가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는 듯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흠…… 그러고 보니 어딘가 TV에서 본 것도 같아.”
“멍청아, 나이트 후드가 요즘 얼마나 유명한데 무슨!”
“나 나이트 후드 팬인데! 제길! 나이트 후드를 코앞에서 놓치다니!”
소방사들은 순식간에 나이트 후드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그들은 마치 동창회에 모인 아줌마들처럼 재잘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방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함을 질렀다.
“자식들아! 언제까지 떠들고 있을 거야! 빨리 정리하고 철수 해야지!”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목청이 꽤 크다고 자부하는 몸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소방사들이 떠드는 소리에 가볍게 파묻혔다. 때문에 소방대장은 몇 번이고 목청이 떨어져나가라 소리를 질러서야 겨우겨우 소방사들이 뒷정리를 하게 만들 수 있었다. 소방대장은 투덜거리면서도 분주히 움직이는 소방사들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바닥에 들것을 깔고 여유롭게 드러누워있는 금마를 발견했다. 그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넌 왜 놀아!”
금마는 여유롭게 대꾸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아파 죽겠는데 일 하게 생겼냐? 누워있어야지.”
“……갈비뼈는 왜 부러졌는데? 나이트 후든지 하는 놈들한테 맞기라도 했냐?”
금마는 아까 말한걸 뭘 로 들었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안에서 왠 사람처럼 생긴 불 새끼한테 두들겨 맞았다니까!”
그 말을 들은 소방대장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멋대로 결론을 만들어내 버렸다.
“그래 그래, 상가 안에서 왠 불한테 두들겨 맞는 데 왠 후드 쓴 애들이 나타나서 그 불을 꺼버렸다는 거 아니야.”
“불은 내가 껐는데……”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짜샤.”
혼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금마는 소방대장의 물음에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말해봐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소방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후드 티 입은 애들이 불을 끈 다음에 어떻게 했냐?”
“엉?”
“그러니까 후드 티 입은 애들이 불을 껐다며! 그 다음에 어떻게 됬냐구.”
금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둘 다 다쳐서 쓰러져있는데 또 어디서 후드 티 뒤집어쓴 놈들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가버리던데?”
“……”
“……”
그 둘은 잠시 침묵했다. 소방대장이 말했다.
“끝이냐?”
금마는 그 말에 머리를 쥐어짜보았다. 또 무슨 일이 있지?
“어…… 그러고 보니 그 중에 한 명이 ‘아저씨 짱 멋지네요!’라고 지껄였던 거 같았는데.”
“……그리고?”
금마는 인상을 썼다.
“끝이야!”
소방대장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싱거워?”
“뭐가 싱거워?”
금마의 신경질적인 대꾸에 소방대장은 혀를 찼다.
“너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 대충 말하는 거지?”
금마는 이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사람 말하는 거 끊고 자기 멋대로 말해버려서 기분이 더러웠던 참이었다. 그의 입에서 습관적으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꺼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