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야, 끝나고 농구나 한판 하고 가자. 내가 부 애들한테 말해서 불 켜둘테니까."
물론 대답은 없었다. 교과서에 코를 박고, 코를 골고, 코를 뭉개며 자고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취침에 든 친구를 지긋이 바라보며 농구공을 머리위에 살짝 튕겼다. 이 퍼포먼스에 코뼈가 뿌러질뻔 한 우대는 기겁하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는 크롸롸롸 하는 기합과 함께 상대방을 때려 눕혔다. 그렇게 한참을 아킬레스건 홀드에서 길로틴 초크로 이어지는 콤보에 걸려 사경을 헤맨 난은 투덜거리며 몸을 풀었다. 아! 우리 귀염둥이는 매일매일 괴롭혀 주고 싶은데 힘이 너무 장사라 괴롭구나. 그래도 큰소리로 말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은 있어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다행히 듣지 못한듯 얼얼한 코를 만지던 우대가 되물었다.
"뭐라고 말한거냐. 뭐라고 중얼중얼 하는게 들리다 갑자기 코뼈 부러지는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때리는 줄 알았던 난은 온몸의 신경을 긴장시켰다 겨우 풀었다.
"농구하자고, 농구. 코트 맡을테니까."
"왠일이야. 너 마중 나가야 하는거 아니야?"
우대는 긴장한 내색을 겨우 지우며 물었다. 생각도 못한 순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사실상 가장 높은 허들이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이렇게 갑자기 해결되자 기뻐하는 속내를 감추기도 힘들었다. 분명히 마중 나간 이녀석과 마주치면 한참을 놀려먹을텐데. 아니 어쩌면 평생.
"오늘부터 연이 마중나가는건 아버지가 하신데. 억지로 시간 맞추지 말고 수험생의 본분을 다 하라신다."
몇마디 더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자체적으로 필터링 했다. 앞에 말만 들어봐도 아귀가 맞는다. 이렇게 되면 이녀석을 따돌리고 세화여고에 가려 했던 벼라별 작전들이 무명무실해 지지만 허탈하기보단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오늘 난이 녀석이 자습시간에 여유가 넘쳤던 거였다. 이 녀석 수준에 세화여고 하교시간에 맞춰 학습량을 끝내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느긋했던걸 보면 오늘은 가지 않는게 확실하다. 무엇보다 트릭같은걸 짜기엔 난의 수준이 너무 저능아다!
우대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무리라고 말했다.
"왜? 오랜만에 한판 하자니까."
"오늘부터는 내가 바빠질 것 같거든."
의문형으로 가득한 난에게 우대는 어깨를 흔들어 보였다.

여고생 수백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라는 착각인지 진실인지 햇갈리는 상황속에서 우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막 수업이 끝나고 잔뜩 모여서 하교하고 있던 세화여고생들은 교문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귀여운 남학생 우대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지나갔...을 리가 없다. 가뜩이나 숫기가 없어서 구석진 그늘에서 미니벨로에 기대있는 우대의 모습은 계속해서 빠져나오는 자동차들에 가려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 속에서 우대는 홀로 자의식 과잉에 빠져 '쟤네들도 또 날 쳐다보고 차에 타네. 자꾸 왜 이러지' 이따위 중2병스러운 독백이나 하던 중이었다. 가뜩이나 소문도 흉흉하고 분위기도 안 좋은 만큼 민감한 여고생들은 굳은 얼굴로 귀가를 서두를 뿐이었다. 교사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해야할 만큼 차량수가 어마어마 했다. 학교의 전 학부형들이 마중 나온듯 차 없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어머니들의 모습도 적지 않았다. 사태가 이정도 수준이니 아무리 고3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자습을 포기한듯 이른 저녁임에도 교실 불이 전부 꺼져 있었다. 우대는 그런 긴장감에 쌓인 분위기 속에서도 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있다보니 주위의 시선이 묘하게 바뀌고 있었지만 예민함이라고는 없는 성격에 눈치 챌 리가 만무했다. 사실 그정도 예민함이 있었다면 이런 시기에 여학교 교문 근처 그늘에 서성이는 의문의 남학생이라는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역활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저녀석은 뭐지?'하는 시선을 쏘아갔다. 교통정리를 어느정도 끝낸 교사들이 넋놓고 있던 우대를 그제서야 발견하고 똑같이 의혹에 찬 시선을 집중할 쯤 이었다. 우대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잡혔다.
'연이 녀석 지금 나오잖아.'
어떻게든 몸을 숨기고 있어야 했던 1등 공신이 이제서야 학교를 나오고 있었다. 저녀석 눈에 띄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훤히 들어나 보이는 단단한 얼굴로 우대는 더욱더 깊숙히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던 중 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오는 동급생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아차하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저 둘이 같이 나오는건 사실 당연한 거였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니까. 이렇게 되면 어짜피 연과 난 두 남매에게 몰래 리수를 만난다는 계획은 초장부터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연이네 아버님이 차를 끌고 나오셨다. 기회다! 리수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던 연은 쾌활하게 차로 향했고, 리수가 몸을 돌려 나온 것이다. 우대는 급히 미니벨로를 끌고 리수 앞으로 뛰었다. 교사들이 의문의 소년 A를 강제로 연행해 끌고 가기 위해 결심하기 직전이었다.
"앗, 진짜 데리러 와준거야?"
어깨를 톡톡 치는 손길에 고개를 돌린 리수는 우대를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물론이지요, 아가씨. 에스코트 해준다고 했잖아."
하며 연습해 왔던 비장의 상큼이 미소를 펼쳐보았다. 음, 이정도면 합격선이지 하고 자신하며 미니벨로의 안장을 손바닥으로 쳐 보였다. 쾌적한 안내를 약속하듯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그런데 어째서인지 비장의 상큼이 미소에도 리수의 표정이 애매했다.
"미안하게, 진짜. 안와줘도 된다니까."
"무슨 소리야. 너 지금 혼자 집에 가려고 했잖아. 요즘같은 시기에 말이 돼? 특히 여학생들은 무조건 집에 갈때는 2인 이상이 다닐것으로 교육청에서 감사도 나온다잖아. 영 맹하게 군다니까."
연습한 멘트를 읊으며 역시나 어른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보이길 빌며. 이정도 행동은 괜찮겠지. 지나친 간섭으로 보이려나? 너무 신경쓰는것 처럼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어 잠시 가슴이 덜컹거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정도는 허용선 이었다. 몇번이고 집에서 고민하고 결정했는데 여기와서 또 걱정하는 것도 너무 소심해 보였다.
"내가 무슨 바본가. 혼자 갈리가 없잖아. 당연히 연이 아버지가 태워다 주신다고 했지."
"괜찮아. 날 훨씬 부담없이 쓸 수 있으니까. 어짜피 나랑 가는길도 같잖아. 연이네는 돌아서 가야되고. 잠깐잠깐! 뭐라고? 연이네 아버님이 태워주신다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철 조인트 같은 두 손이 우대의 양 어깨를 찍었다. 덜덜덜 떨며 뒤돌아서는 우대는 볼 수 있었다. 너무나 환하고 티없이 웃고 있는 연과 난 남매 아버님의 모습과 그에 대조적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체 자신의 노려보고 있는 연의 모습을.

마이너스를 마이너스하니 다시 플러스가 됬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좋게 끝난듯 싶었다. 사실 우대는 뭐가 어떻게 됬는지도 잘 이해가 안갔지만. 뭔가 할말이 잔뜩 있는듯 연은 삿대질을 하며 우대에게 다가왔지만 한참을 우물거린 뒤 뒤돌아서 차에 타버렸고, 연이네 아버님은 평상시 그 보살님 미소로 바라보고 계셨다. 우대는 연이를 통해 결국 사실을 들은 난의 놀림을 생각하고 고개를 떨궜고, 연이네 아버님은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양쪽의 의미는 달랐지만. 리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푹푹 쉴 뿐이었다. 청춘이니, 응원이니, 한참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시던 아버님은 리수의 등을 떠 미시며 직접 미니벨로에 태워주셨다. 겨우 일단락 된듯 싶어 안도하던 우대는 뒤돌아서 자전거를 타려 했지만, 강철같은 손가락이 남모르게 자신의 목을 죄고 있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우대의 목을 쓰다듬으며 아버님은 딱 한번만 속삭이셨다.
"내 딸아이 울리는건 딱 한번만 용서해 주마. 우대야."
뭔가 죽을뻔 했다는 깨달음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자전거를 끌던 우대는 한참을 가서야 고개를 슬며시 돌려 뒤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환하게 웃는 아버님의 미소에 겨우겨우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우대는 말한마디 못하고 딸꾹질이나 하며 자전거를 몰았고, 그렇게 한참을 가 다리 앞에 멈추자 리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냐고 차마 퉁명스럽게 내뱉지도 못하는 우대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한심한 것이다.
기어를 올리고 패달을 힘껏 밟았다. 거칠게 체인이 쓸리는 소리가 바람소리 같았다. 바람의 머리결이 소녀의 말을 소년에게 건넸다. 속도는 터질듯이 올라갔다. 우대는 홀로 들리는 자신의 심장소리 속에서 나즈막하게 고백했다.
" ─────── "
"...미안. 바람소리 때문에 잘 안들려."
"곧 도착할 것 같다고."
차분히 속도를 내린 우대는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었다. 조용히 핸들을 꺽는 우대의 뒤에서 리수가 말했다.
"오늘까지만이야. 내일은 연이랑 올꺼니까. 알겠지?"
"말했잖아. 연쇄살인범이 잡힐때 까지는 내가 에스코트 해 줄거라고."
코너를 돌고 바로 근처인 집을 향하며 자전거를 밀었다. 사실 자전거를 잘 타는 편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아팠다. 차라리 이렇게 끌고 가는게 속 편했다. 그렇게 걸으며 마침 생각난듯 품을 뒤지자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길쭉하고 무겁고 차가워서 속주머니에 넣기 쉽지가 않은 그것은 따로 포켓을 사서 옷에 연결시켜야 했다. 주위 시선이 적막한 골목에서 날카로운 빛이 일었다. 적색 노을이 칼날에 스며들며 무수한 음영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흉기였다. 단순히 주머니칼이나 등산용 나이프와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살육용 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분명 무엇인가를 찔러 죽인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피비린내 나는 칼이었다.
"에스코트라니 웃기지. 누가 널 해친다고."



유명 메이커인 베이커리 앞에서 한 소녀가 멍하니 서 윈도우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드오렌지멜랑콜릭스위트무스케이크라고 써 있는 빵조가리가 다소곳하고 청초한 모습으로 망막에 한가득 잡혔다. '남자가 변태인게 어떻단 말인가! - K1' 라는 대사와 만화풍 케릭터가 프린팅 되있는 후드티를 뒤집어 쓴 소녀는 쓴물을 삼키는 기분으로 지갑을 펴 보았다. 긍지가 한숨이 되어 사라졌다. 통째로 사는건 무리일지라도 한 피스 정도는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비겁한 희망이었다. 큰 결심을 하고 생계비의 일부를 돌려 볼 궁리를 잔뜩 해 보았지만 최저생활비마저 아득히 멀어질 뿐이었다.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아쉬워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물은 나와야 목욕이라도 하겠지."
타협할 수 없는 부분도 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프라하의 공주님이라고 불렸던 몸이 이렇게까지 된 구구절절한 사연에는 한숨은 물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분부족으로 비틀거리는 몸으로 귀가하는 길은 멀고 험했다. 그렇게 가다 공과금 납부를 까먹었단 사실에 놀라 둘러보니 벌써 은행은 한참 지나 있었다. 정말 당장 집에들어가서 수돗물이나 끓여먹고 자고 싶은 심정이 한가득이었지만 납부를 잊고 벌금 물었다간 다음달부터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두블록쯤 떨어진 곳에 은행이 보였다. 저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제 정녕 현금이란것은 볼 수도 없는 생활이 이어질걸 생각하니 암담천만 이었다. 눈물이 베어나올듯 슬픔에 흐릿해진 눈가에 낯익은 모습이 보인것도 그 쯤이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교복을 입고 있는 우대가 있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돌아다니기에 미묘한 시간대 였지만 원래 학교라는것을 접한 적이 없었던 소녀는 별 의아함 없이 바라볼 뿐 이었다. 잠깐 아는척이라도 해야할 지 생각이 들었지만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포기했다. 사실 아는척을 해도 좋아할리도 없었다. 친해 진다고 좋은 사이도 아닌만큼 지나치기로 결심한다. 무심히 신호에 따라 발을 내딛을 때, 그녀는 그렇게 무방비하게 고개를 돌린 자신을 책망했다.
격정이 파도쳤다. 살의는 칼날같이 날카롭고 위험했다. 무언가가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 사실을 너무나 명백한 감각으로 느낀다. 낯선 시선의 끝에는 자신의 시체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쇠붙이에 사지육신을 절단 당하고 쓰러질 소녀의 시체가 선명히 떠올랐다. 피의 범벅이 된 자기 자신의 최후였다. 누가? 의문은 당연했지만 어리석었다. 분명한 사실을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소녀는 한걸음 내딛었던 발을 조심스럽게 되돌렸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다리를 꾹 눌러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자 예상대로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레저용으로 만들었을 폴딩나이프였지만 이제는 사람 두엇쯤 해체시킨듯이 검붉게 빛나는 칼을 든 소년이 바로 도로 건너편에 서있었다.
"오가Ogre. 멈춰."
괴물의 이름으로 칭해진 소녀는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밤비와 같은 탄력으로 몸을 뻗어 순식간에 도로를 질주했다. 손바닥에 파고들만큼 폴딩나이프를 움켜쥔 우대는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씹으며 그녀를 쫓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순발력으로 뛰던 오가의 그림자가 점점 길게 늘어졌다. 마치 뜀박질하는 그녀를 따라잡지 못하는듯 보였지만 붉게 변색되가는 하늘은 그저 단순히 노을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와 별개로 그녀 주위를 덮는 그림자가 하나 둘 씩 늘어났다. 인적이 드문 아파트 건설촌의 을씨년한 그늘이 노을마저 가렸다. 숨박꼭질하듯 발을 튕기며 자재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시시덕거리다 지루해 진듯 주저앉고 나서야 우대의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던 우대는 겨우 도착해서는 양 무릎을 짚고 한참 숨을 돌렸다. 그러던 중에도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오가는 지분댔다.
"무슨 생각으로 흉물을 대로변에서 꺼내든거야. 갑자기 미치도록 날 죽이고 싶어졌어?"
그 소리에 고개를 쳐든 우대는 여전히 적의가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숨을 헐떡이며 그러고 있어봐야 하품만 나올 뿐이었다. 그 상태로 무언가 말을 하려는듯 씩씩거렸지만 무작정 덤비지는 못했다. 당연한것이 그로써도 한순간 흥분으로 단매에 쳐죽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위기감에 격정을 누그러뜨린 우대는 허탈한 듯 칼을 치우며 자세를 바로 했다.
"가뜩이나 흥분해 있는 사람을 도발하지마. 난 너한테 묻고 싶은게 잔뜩 있어서 왔으니까."
무심하게 듣던 소녀, 오가는 철근을 밟으며 튀어올라 옆면이 훤하게 뚤려있는 건물의 2층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내려다 보는 오가의 시선이 잔인하리 만큼 선명했다.
"뭐 선후관계가 이상한것 같지만 오늘 한번만 봐주겠어. 설명하고 날 납득시켜봐."
"그래 나도 긴말 할 정신은 없어. 하나만 묻자. 어젯밤 너 또 죽였냐?"
"업무에 관한 사항은 노코멘트입니다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질문에 소녀는 너무나 가볍게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오가 나름의 접근불가, 촉수엄금의 사인이었지만 반쯤 이성을 잃은 소년이 알아차릴순 없었다.
"똑바로 말해. 어젯밤 누군가가 죽었어."
"너야 말로 똑바로 말해. 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세벽 3시경 발견된 시체는 작일 저녁 23시쯤으로 사망시각이 추정됬다. 사인이나 용의자, 살해된 원인 어떤것도 밝혀지고 경찰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그날 조간을 기점으로 사방의 언론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다시 탑 토픽으로 실었다. 그것은 경찰 등의 관계자들이 흘린 내용에 의거한 추리였다. 난도질, 살육, 조각난, 찢긴듯한 단면, 여고생, 4번째 시체, 활동영역, 17일만의,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마, 살인귀Oger. 기사들은 핏빛으로 흥건했다. 살해당한 여고생이 어째서 그 시간에 밖에 나가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가족들 역시 그녀가 나간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 세벽 찾아온 경찰들의 전언에 오열했다. 몰래 집밖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에 면식범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시체를 보고나선 모두 사그라들었다. 이것은 원한이나 개인적인 사정 따위에 일어날 수 있는 살인사건 따위가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기에. 어떤 단언도 감히 할 수 없었던 수사관들의 침묵에 언론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추리했다. 있을 수 없는 사건에 붙는 사건에 붙는 미확인의 라벨과 동치의 단어. 참혹의 연쇄살인마 오가였다. 언론의 기만술에 민감한 몇몇 음모론자나 좌익단체들은 미해결의 강력범죄들을 하나로 묶어 이슈화시키려는 얄팍한 수작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한 언론의 편이었다. 우대는 이런 판단 기준과는 무관했다.
들뜬 마음에 생각보다 일찍 깬 하루였다. 나름 생각하기를 전날의 선전포고를 신경쓰며 리수의 집에 들릴 생각이었다. 본인은 싫어 하겠지만 에스코트하겠다고 말을 던진 이상 자존심의 문제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기다릴 생각이 없었기에 미니벨로를 밟는 페달은 느긋하게 돌고 있었다. 매일 저자세인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둥의 망상을 하며 골목을 돌고 있을때, 저 멀리서 오열과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어떤 상상도 떠오르기 이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생각보다 먼저 불안이 엄습했다. Don't touch의 라인이 그어진 건너편에 분주히 뛰고 있는 수사관들과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건 선명한 흰색 뿐이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하얀 분필의 라인. 피로 온통 범벅이되 변색된 거리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그것은 어떤 형체도 되지 못한 부정형의 괴물같았다. 사방에 흩어진 흰선들은 어떤것도 한사람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해서 난도질당한 그녀를 그리듯 뚜렷하게 보였다.
겨우 비어있는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구토를 견뎌냈다. 이전과는 다른 역한 숨소리가 비져나왔다. 그것은 상상이 아닌 연상이었다. 조잡한 단서와 퍼즐을 긁어모아 흐릿하게 모자이크한 장면으로 그려내는것과 전혀 다른 완벽한 재생Repeat. 부숴지고, 찢어지고, 잘려나가는 장면scene과 우득우득, 찌익치익, 빠직빠직하더니 툭 하고 떨어지던 사지四肢를 기억해 버린 것이다. 오가의 손에서 해체되던 신체를 코앞에서 본 광경이 트라우마처럼 머리 속에서 뒤섞였다. 그때 본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머리가 리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필사적으로 달렸다. 최소한 경찰차가 사방에 깔린 곳에서 칼을 빼들지 않은건 천만 다행이었다. 다만 손이 떨려서 였을 뿐 본의는 아니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이 현실감 없는 장면을 머리속에 쳐박아준 장본인을 찾아 무작정 뛰었다. 달리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랬다고?"
"그게 네가 평상시 하던 짓이잖아!"
도리도리 고개를 젓던 오가는 철근 위를 미끌어져 내려와 쌓여있던 판넬 위로 안착했다. 그리고는 조심성없이 쭈그리고 앉고선 양 손으로 턱을 바치곤 우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닌데. 그리고 너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하는거야. 평상시에 하는건 원+원 전단지 찾아오는거랑 쓰레기 수거장에서 쿠폰 줍기랑 벼룩시장 지역별로 챙겨오고 이런거지. 하루 금세 지나간다고."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너가 아니야? 그럼 도대체..."
"당연하지. 부수고 죽이는건 단순한 부업. 길가던 민간인을 죽일턱이 있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대는 손끝에서 미끌어지는 나이프를 겨우 쥐었다. 말도 안됀다고 생각하고, 변명따위 집어치우라고 외치고 싶은데 팔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미 납득하고 안도하고 있었다. 이성이 날아가버릴 정도의 흥분이 믿을 수 없을만큼 상쾌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오가의 그 한마디를 듣기위해서 달려왔다는냥 너무나 당연스럽고 또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괴리감을 느끼기도 전에 한숨을 쉬며 허탈감에 주저앉는 다리를 지탱했다.
"죽이지 않았다고."
곱씹듯 중얼거리는 우대를 바라보던 오가는 그 등짝을 발로 차버릴듯한 기세로 뛰어내렸다. 표정을 힘껏 일그러뜨린 오가는 어이없다는 제스쳐를 마음껏 폭주시키며 우대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레 기세에서 밀린 우대는 뒷걸음질 치며 사정을 이해 못하겠다는듯 오가를 바라보았지만 표정이 풀릴 기미는 안보였다.
"너 그때 뭘 본거냐."
"그때?"
"내 손에 죽은 것들이 어떻게 보였냐고."
한참 해매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우대는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인형? 허수아비?"
워낙 범상치 않았던 첫만남 이었던 만큼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지만 실상 말로 표현하자니 막막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라는 과정을 무시하고 머리속에 쳐박아둔 영화장면처럼 낯설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겨우겨우 한두단어를 끄집어내 연결해 보아도 앞뒤 없는 상황은 바뀔리 없었다. 츄리닝 바지에 헐렁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던 소녀(오가)와 사방에 절단난 시체들. 반인반괴의 형상을 한 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이 비명한번 지르지 못하고 찢어죽는 광경이었으니 로버트 로드리게스나 쿠엔틴 타란티노 정도가 아니면 다시 떠올리기도 힘들 터였다.
"몬스터나 괴물, 괴수 뭐 이딴게 떠오르는게 정상 아니야?"
기가 차다는듯 오가는 혀를 찼지만 그 표현은 첫만남 이후부터 그녀에게 전매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종이인형처럼 오가의 손길에 잘려나간 것들이라 별 위기감 없이 바라보았던 것들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녀의 존재가 워낙 임팩트가 커 주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그때 본것들 치고 제대로 된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상념속에서 헤매는 우대의 손을 붙잡은 오가는 성큼 한걸음을 내딛었다.
"가자. 우선 가면서 설명하자고."



현장, 즉 리수의 집앞으로 가는 도중 편의점에서 산 당일 조간에는 한페이지에 걸쳐 이번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등교 중 현장을 보고 이성을 잃고 오가를 찾았던 우대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항들이 여럿있었다. 언론의 생리를 어느정도 아는만큼 취사선택한 오가는 몇몇 단어에 눈길을 주었다. 이전까지 연쇄살인마인 본인이 저지른 사건들이 토픽화 됬을때 기사의 중점은 사건의 잔혹도와 범인의 정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만 이번 사건은 포커스가 이전에 비해 흐릿했다. 물론 범인이 오가가 아닌만큼 동일한 연쇄살인범으로 몰고간 것은 언론의 억지 추리 때문이었고, 덕분에 필요한 부분만 선별적으로 기사에 실었음은 자명했다. 특히 사체에 대한 부분은 가장 모호했다. 이전까지 사건들의 연속성을 증명해 주는 가장 큰 공동점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담성과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체의 훼손에 있었다. 인간의 육체능력과 도구의 결합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갈기갈기 찢어진 사체야 말로 오가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이번 리수의 사체는 조금 달랐다. 잘려나간 신체에 대한 부분보다는 시체 자체의 변질이 눈에 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각질과 같은 표피와 완전히 배출된 체액 같은 부분은 이전의 사건과는 양상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인외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사는 아무런 의혹 없이 범인을 추리, 아니 단정 지었다. 그렇다고 한숨을 쉬며 비웃고 지나갈 수도 없는게 단지 언론의 선정성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공포였다. 저널리즘을 망각시킬 정도의 공황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펜을 잡고 기사를 써내려간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게 힘겹게 이름을 지어준
차였고, 이번의 이상사건은 자연스럽게 그 공포를 되세겨 주었다. 괴물이라는 뜻에서 오가라고 통칭하기는 했지만 도시전설이 그녀에게 지어준 정식 명칭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마치 자신들의 공포를 감출 수 라도 있듯이 힘겹게 피력하듯. 나이트후드NightHood. 얼굴 없는 연쇄살인마. 기사에는 온갖 폰트의 글씨로 그 이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근처는 이미 출입이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사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한발자국을 걸을때마다 동요하던 우대는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질듯 보였다. 그 현장쪽 방향을 향해 쳐다보는것 조차 힘겨운듯 날카롭게 선 손톱으로 팔뚝을 긁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확인해 보고 올테니까."
말없이 뒤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이자 소리없이 오가는 사라졌다. 사방을 날카롭게 살피는 경찰들이 잔뜩 있었기에 우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길 기대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달해서야 밭은 숨을 내쉬며 주저앉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르게 하는것만으로 벅차 기다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세 후드를 깊게 눌러쓴 오가가 반대편에서 그에게 손짓함이 보였다. 겨우 그녀에게로 다가가 눈빛이 마주쳤다. 눌러쓴 후드때문에 가리워진 그림자가 깊은 눈매에 적막하게 내려앉았다. 그 심연을 눈앞에 두고서야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괴물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의가 우물처럼 샘솟았다 가라앉았다.  
"뭔가 알아냈어?"
"그야 읽는건 내 전문이니까. 프라하 같은 고도도 아닌 이런 삭막한 도시에서야 특히 쉽지. 거의 대부분은 알아냈어."
크게 들이키는 숨과 내뱉는 숨. 우대는 자연스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차마 마주할 수 없어 비스듬히 보고 있던 심연을 바로보며 우대는 말했다.
"따라갈꺼다."
"응."


주변을 돌아다니는 인원들은 많이 줄었지만 경계 자체는 훨씬 삼엄해져 있었다.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어우러져 정신없는 골목을 오가는 가볍게 지나쳤다. 인파들을 뚫고 들어가는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안그래도 지나치게 주목받는것의 귀찮음을 깨달은 터라 심플하게 임무를 해결지었다.
파정破情하라. 파정하라. 파정하라. 파정하라. 파정하라!
손을 지긋이 바닥에 대고 중얼거렸다. 곧 거미줄같은 궤적을 그리며 심상을 확장해 목표치에 도달했다. 심상염사心象念寫의 카메라가 시간을 거꾸로 달렸다. 5분, 29분, 1시간 49분, 4시간 12분. 황급한 걸음거리들과 반대반향으로 도는 시계바늘이 어지럽게 얽히며 돌아갔다. 그리고 당시. 오가는 뚜렷하게 보았다.
리수 라는 소녀가 황급하게 집에서 뛰쳐나오는 모습. 멍한 동공으로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동요하는 리수를 차분히 바라보니 옷차람이 엉성했다. 언뜻봐선 몰랐지만 파자마차림에 숄스타일의 조끼 하나만 걸친체로 밖에 나온 것이었다.
'그럴리가 있나.'
당연히 말도 안됀다. 10대 소녀가? 집에 불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그럴리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리수가 지금 얼마나 패닉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렇게 기묘한 차림으로 불안하게 사방을 둘러보던 소녀는
죽는다. 순식간에.
빠직빠직하는 소리가 단속적으로 들렸다. 근육과 뼈가 마찰하는 소리였다. 비틀려 축출된 체액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비명을 지르려고 열린 입은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입술부터 혀에 이르기까지 성문을 이르는 모든 조직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게 보였다. 그렇게 무너진 신체는 썩은 나무처럼 텁텁한 향을 남긴체 쓰러졌다. 아스팔트에 닿은 몸이 부서져 사방에 쏟아진다.

과정 자체는 처음 보았던 오가는 흥미진진한듯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흩어져있는 허물과 쏟아진 피. 곧 날이 밝고, 인기척이 들리며 비명이 이어졌다. 거기서 오가는 손을 땠다. 비틀렸던 시간이 황급히 쏟아져 흘렀다. 타임랙에 잠시 멍한 기분에 빠진 오가는 힘차게 제 뺨을 쳐주고 자리서 일어났다. 일처리가 깔끔하게 될것 같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돌아온 오가에게 이야기를 듣던 우대가 말했다.
"따라갈꺼다."
윽, 개소리 하지마. 라고 말할뻔 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그렇게 멍청하진 않았다. 이 고집불통 질풍노도의 10대 소년에게 말이 통할턱이 없으니까. 무난하게 대답해준 후 생각했던 말을 마치 막 생각난냥 떠들었다. 꽤 오래 걸어야 할것 같으니 자전거라도 가져오라고. 물론 심상염사를 통해 오늘 아침 우대가 끌고온 자전거를 집 근처 골목에 쳐박아 놨음을 알고 한 이야기였다. 알겠다고 비장하게 말하고 돌아선 우대를 잠시 후 오가는 다시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봐."
주춤하니 서있는 우대 앞에 다가선 그녀는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 던졌다. 갑작스런 탈의에 식겁한 우대는 정통으로 옷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 안에 나시티 하나만 받쳐입고 있던 오가는 양손으로 팔을 비비며 말했다.
"그거 입고 가라. 교복입고 이시간에 계속 돌아다니면 눈에 띄잖아."
"여자애옷을 어떻게 입냐."
"괜찮아 박시한거라 사이즈 맞아."
"그런 의미가 아니고."
뒷말을 잇기가 무섭게 그럼 무슨 의미인데? 라는 눈빛으로 초롱초롱 바라보는 오가의 시선이 두려워 우대는 입을 닫았다. 그저 조용히 후드티에 프린팅 되있는 '남자가 변태인게 어떻단 말인가! - K1'라는 말을 되뇌어볼 뿐이었다. 일리가 있기도 했기에 마뜩잖이 옷을 입고 돌아서는 우대였다. 가느다란 손이 어깨 뒤에서 그를 안았다. 깜짝 놀라 굳은체 말을 못하는 그였지만 오가는 상관없이 후드를 올렸다.
"얼굴 가려."
창피함에 가득차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우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오가는 발을 옮겼다. 탄력을 받은 다리가 가볍게 건물 사이로 질주했다. 아마 우대는 한참을 당황할 것이다. 미니벨로는 이미 그녀가 건너편 집 담장 너머로 던져논지 오래였다. 이제 그는 따돌린 것이나 마찬였고, 그녀는 본업에 충실해 질 시간이었다. 추적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을 뺏기기엔 그녀는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했다. 별다른 고민도 없이 직선으로 향했다. 몇블럭 지나지도 않아 빌라촌으로 들어섰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지하주차장을 향했다. 어느세 그녀의 손에는 우대에게 줬던 것과 같은 종류의 폴딩나이프가 잡혀 있었다. 오는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대의 이상했던 행동도 이해가 갔다. 자신의 지인이 살해당했다. 그 모습이 상식적인 범주를 초월하고 있었기에 도시전설급의 연쇄살인마 오가를 추적했다. 이것은 행동력 충만하고 논리적인 행동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대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는 우대는 오가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을 터였다. 도시를 뛰어다니면 서로를 노리던 소녀와 괴물의 현장을 목격한 체험자인 것이다. 거기다 그 소녀는 또 위험에 빠지지 말라고 호신용 칼도 나눠줬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성을 잃자마자 그녀를 범인으로 생각한 건지. 오가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그 부분이었다. 오가라는 존재를 신용하지 않았던 것조차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고 대화를 풀어갔고, 그녀가 단순히 죽이지 않았다 라는 한마디 말을 하자 안도했다. 마치 그는 무의식적으로 오가가 리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쌓여 있었던것만 같았다. 그리고 염사를 통해 전후사실을 파악한 오가는 우대가 얼마나 감이 뛰어난 자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대는 오가를 믿고 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리수를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급적 빨리 끝내자고, 리수양."

비참한 절규가 지하에 울려퍼졌다. 아플정도의 이명속에서 오가는 그 진원지를 찾았다. 하얀 아반테 차량위에 두발로 선 그것은 비판에 가득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기괴괴奇奇怪怪한 그 형상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폭발하는 형상이며, 뻗어나가는 방향성이었다. 폭주하여 치솟는 슬픔이 고형화된 귀신이었다. 어떤 굴곡도 없는 그것은 바라 보는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팽창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귀신의 모습을 한 리수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몸을 억눌렀다.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덩어리라고 불리는 개념에는 다가갈 수 있도록 본인의 억제시켰다. 그 와중에도 체 억눌리지 못한 것들이 촉수처럼 뻗어나가며 사방을 휩쓸었다. 허물을 벗고, 피를 쏟고, 인간을 벗어난 리수는 그렇게 존재했다. 오가는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관찰했다. 그리고 역수로 쥐어진 나이프를 쳐들고 읖조린다.
"너 카타스트로피 오더Catastrophy Order라 칭하메 인류의 기휘忌諱로다."
오가의 선언신판宣言神判속에서 인류의 카테고리임을 부정당한 리수는 한층 가열찬 공격을 뿌렸다. 마치 그녀의 말을 부정하듯이. 자신이 인간임을, 아니 인간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었다.
오가는 부정했다.
"SCREEN."
역수로 쥐어진 칼은 부드럽게 우에서 좌로 그어졌다. 칼날에 나눠진 하나 면은 마치 허공에 그어진 빗금처럼 새하얀 잔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눈의 착각이었다. 단 한수의 참격은 부채꼴처럼 펼쳐지듯 위아래의 구분없이 사방을 잘라냈다. 같은 선상에 있던 차량의 1/3이 날아가 버릴 정도의 일격이었다. 리수는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더 이상 형태를 억누를 힘은 잃었다. 사방이 쏟아지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봐라. 넌 그저 인류의 기휘다."
오가의 비웃음 속에서 팽창은 일순간 멈추는것 처럼 보였다. 허나 아니었다. 그것은 사방이 아닌 방향성을 갖고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치 탄환처럼 쏟아지는 리수를 오가는 칼날로 쳐냈고, 그 탄력에 리수는 지하를 벗어났다.

허물을 벗고 변성한 이후 리수는 필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어디에도 나설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지고 싶지 않았다. 발가벗겨진 몸에 그늘이라는 피부를 입혀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집 앞에 쓰러져 있다간 언제나처럼 우대가 나타날 터였다. 그 끔찍한 상상이 그녀의 동력이었다. 허나 힘들게 찾은 얄팍했던 안식마저도 사라졌다. 눈앞에 불현듯 나타난 괴물은 너무나 손쉽게 그녀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사라지라고, 인간의 세상에서 없어지라고 말했다. 너무나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었다. 지하의 그늘에 숨어 숨죽이고 있을땐 죽어야 한다고 수천번을 다짐했는데, 지금 다시 비참하게 햇빛 아래로 도망쳤다. 어둠속에서 죽어 마땅하거늘 통제를 잃은 육신은 이미 멈출수가 없었다. 어쩌면 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밝은 곳에 단 한번이라도 닿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죽고싶다고 수없이 말하며 자신을 속여왔지만 살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따뜻함이 손에 닿은 순간 리수는 눈도 귀도 멀어버렸다.
"죽엇!"
아까 그 괴물이 휘둘렀던 것과 똑같은 칼날이 깊숙하게 찔러 들어왔다. 우대였다.
이번 일격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했다. 리수는 자신의 근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것을 느꼈다. 나이프보다 더 날카로운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햔 뺨과 동공 주위를 쌔빨갛게 수놓고 있는 핏줄들이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그 눈이 리수를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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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체 완성되지 못한 비명이 쏟아졌다. 우대는 칼을 놓치고 귀를 틀어막을 수 밖에 없었다. 리수는 외쳤던 것이다. '보지마' 라고. 얼굴이 스치는 일격에 무리하게 고개를 꺽어 피한 우대 였지만 튀는 핏물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탁한 신음 소리를 토하며 엉거주춤 물러섰지만 시야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우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밖에 나와 사태파악을 한 오가는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괴물을 목을 밟고 꺾어 죽였다. 우직 우득 우드득 하는 소리에 우대는 멍해졌다.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
"...앞이 안보여."
재빠른 손길로 눈꺼풀을 뒤집어본 후 오가는 무신경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혀를 찼다.
"괜찮아. 피가 튄것 뿐이니까. 그러게 넌 눈치가 없냐. 여길 왜 와."
"리수를 죽인 새끼잖아."
덜덜 떠는 손으로 눈가를 짓누르며 우대는 외쳤다. 우는듯한 떨림에 오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칠게 눈가를 비비자 아직 굳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핏물이 점점 묽어져 눈물이 되었다.
"그래, 잘했다. 니가 죽였으니까 내가 마무리할께. 됐지?"
고개를 끄덕이는걸 잠시 바라보고 돌아보자 리수는 죽어가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흉부를 관통한 칼이 덜컥 거리며 매달린 상태였지만 아직은 진행중인 죽음이었다. 그제 이르러서야 제 주장을 굽힌 몸은 원래의 새하얗던 피부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보였다. 오가는 가만히 몸을 굽혀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경험치에 따른 추정이지만 죽음 직전의 이 과정이야 말로 가장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항상 괴물들은 자신에게 매달려 단숨에 죽여달라고 소리를 질렀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엉망진창이 된 신체가 되돌아가는 과정을 죽음보다 두려워 했었다. 리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눈은 가려도 귀는 못가린탓에.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죽여달라고, 제발 죽여달라고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체 으스러진 골격을 비틀며 몸부림쳤다.
오가는 처음으로 그 재해에게 자비를 배풀었다.




"미안해."
무리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대답 자체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일그러진 허우대의 표정을 보고 상처받았다. 연애라는게 아무리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라지만 이런 상황은 지나쳤다. 이렇게까지 정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이정도로 상처받을 줄 몰랐던 자기 자신이었다.
"날 좋아하는거 아니었어?"
본인이 말하고도 얼굴이 화끈해질 이야기였지만 전혀 괘념치 않았다. 묻지 않고서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시원스럽게 차이고 펑펑 우는게 낫지 '미안해'가 뭔가? 하지만 오히려 우대는 당황해서 엉거주춤할 뿐이었다. 그 행동에 화가 더 났다. 진짜 허우대스러웠다. 우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연이가 나한테 고백한거 알고 있어?"
그말에 리수 역시 당황했다. 모를리가 없었다. 둘도 없는 단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듣고 고백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연이가 아니면 분명히 자기일거라고 확신했었다. 비록 부질없지만.
"나 연이한테 더 상처주고 싶지 않아."
뭐야 그게? 라고 저절로 말할뻔 했다.
"그럼 연이랑 사귀었으면 됬잖아!"
왜 날 햇갈리게 해! 라고도 저절로 말할뻔 했다. 의외로 단호하게 우대는 대답했다.
"연이는 그냥 동생이야. 단지 가장 소중한 사람중 하나인 동생인거고. 연애감정을 떠나서 난 걔한테 상처주는짓 못해."
"그럼 나 가능성이 있다는거야 없다는거야. 확실히 말하라고."
새빨게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는 리수에게 우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똑같이 얼굴을 붉히고 계면쩍어 할 뿐이었다.
"가자, 바래다 줄게."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앞장섰을 뿐이었다. 마치 그것이 대답이라도 된다는냥. 물론 상할데로 상한 마음에 리수에게는 택도 없는 짓이었다.
"됐어. 차인 여자는 혼자 갈꺼니까. 꼴도 보기 싫네요."
"위험하다니까. 안전해지기 전까진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자고."
우대는 페달을 가볍게 밟았다. 보이지 않게 작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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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쓰긴 했는데...이 무슨 중2병 -_-...

취지가 굉장히 재밌어서 한편 썼습니다만 너무 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