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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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이다. 파렘의 농부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이다. 일을 하는 농부이다. 하루에 두어 번 괴물들이 몰려오면 샤이탄 안으로 몸을 숨기고, 파렘의 군대가 진영을 갖춘 채로 다가와 괴물들을 향해 창을 들이대고 전진하는 것을 일상적인 광경으로 본 농부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도 그다지 일반적인 일을 겪진 않을 것 같았다.
내 눈앞에는, 생애 처음 보는 괴상한 옷을 입었지만, 눈앞에는 그나슈페트의 학자들 사이에서나 보급된다는 '안경' 을 쓴, 엘리트같아 보이는 누군가가 나무로 된 사각의 막대기 묶음들을 세워두고 그 위에 체후 종이는 아닌 듯한 무언가를 이용해 손을 놀리고 있는 자가 있었다.

  " 누구시오? "
" 저는, 나그네라고 해두죠. "
" 나그네? "

갈수록 병신같은 대답이다. 나그네라니. 비술가도 아닌 듯 해 보이는 작자가 홀로 이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건 죽음으로 직결되는 행동인 것도 모르는 듯했다.

" 허 참, 그래서 지금, 뭐하는 짓거리요? "
"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그리고 있어요. "
" 나를? 미친. 날 그려봤자 뭐 어쩌시려고 그러시나? 사규학사회에라도 가져가 발표하시게? 뮐 교국에 가서 보여주시게? 허튼생각 하지 말고 가시오. 가. 부잣집 아들 같은데. "

그는 입가 사이로 슬쩍 미소를 짓는 듯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그를 그대로 무시한 채 대지로 눈을 돌렸다. 대지에는 붉은 넝쿨들이 가득했다. 그 넝쿨들 사이에 열려 있는 둥근 주머니들을 떼어내어 바구니에 담는 게 내 일이다. 이 주머니 속에는 낱알들이 들어 있는데, 톡톡 씹히고 맛도 좋고, 먹으면 배고프지도 않은 좋은 곡식이다.

" 당신은 - . 이 일에서 기쁨을 느낍니까? "
" 매친. 기쁨,슬픔. 그런 걸 어떻게 신경쓰오? 살기 바쁜데. "

계속 짜증이 나는 질문을 그는 던져대었다.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그를 한동안 무시하고 계속 주머니를 땄다. 4월 25일. 한창 추수철인데 일하는 데 이런 잡생각이 끼면 안 된다. 수확하기에도 바쁜데.

"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신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
" 신? 신이 뭐요? 뮐? 에라칸? 후슘? 트우릴렌? 요새는 신이 하도 많아서. 온갖 전도사들이 이걸 믿으라 저걸 믿으라. 허 참. 난 시간 없으니 빨리 가시오! 그런 얘기는 당신같이 많이 배워먹은 사람들끼리 하라니까? "
" 죄송합니다. 화나셨다면 사과드리죠. 계속하세요. 일. "
" ..허 참내.."

이쯤되면 화낼 기운도, 마음도 사라진다. 그저 저 사람을 미친놈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일에만 열중할 뿐.

한동안 그는 가만히 있는 듯 했다. 무언가가 종이를 긁는 슥슥 - 하는 소리만이 자리를 채웠다. 나는 툭툭 주머니를 따며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는 그것을 알라나 모르겠다. 알면 나한테 따질 테고, 뭐 따진다면 없애버리면 되니까. 수색대가 온다고? 밭의 거름으로 쓰면 된다.


" 뮐은 미친년입니다. "
" ...뭐요? "
" 못 들으셨습니까? 다시 말해드리죠. 뮐은. 미.친.년. 입니다. "

이거 보니 정신나간 놈이었구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멍한 얼굴표정을 그에게 날려주었다. 그의 표정은 태연했다. 완전히 미친 게 아니라면, 뮐을 그렇게 욕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서는 어디에서도 살기 험난할 텐데.

" 그런 말을 하고도.."
" 멀쩡하냐고요? 예. 멀쩡합니다. 저는 ... 이니까요. "
" 허허. 참. "

그저 웃으면서 바구니를 옆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미소짓는다. 허름한 옷이기에 움직이는 게 유연성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나는 문득 이런 사람을 신고할 수 있다는 걸 떠올렸다.
뮐 교단이었던가? 그곳의 신전에 신고하면 된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근처에 신전은 없어도 군대는 있다. 군대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댔지? 참.

" 그런데 당신, 어디 소속이오? "
" 예? 소속이요? 저는 나그네입니다. 뭐..속해 있다면 속해 있는 곳이 있겠지만.."
" 속해 있는 곳? "

그렇게 물으면서 나는 눈가에 비웃음을 띄었다. 신고하려면 먼저 그가 어디 소속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자칫하다 비술가라던가, 고위층 소속이면 곤란하니까. 안경을 보면 고위층 같은데, 저 옷은 도대체 어디의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 어디오? 거긴? "
" 환상회랑이라고. 있습니다. 그런 곳이. "
" 허어? "

환상회랑이라니. 그곳은 또 어딘가? 모르겠다. 모르겠어. 일단 이자를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 단체가 어떤 곳인가에 따라 내가 신고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결정되겠지만.

" 배가 출출하군요. 같이 뭣 좀 먹지 않으시렵니까? "
" 무얼? 허허. 참. 당신이 지금 무얼 가지고 있다고? "
"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는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엇이 나오리오? 나는 그를 비웃었다. 고작해야 육포 정도겠지.

그러나 그가 다시 꺼낸 무언가를 본 나의 예측은 산산이 부숴졌다.

" 자아 - 같이 먹죠. "
" ...그..그..그....그건 뭐요!? "

흰색의 음식이었다. 가장자리 면에는 여러 가지 모양들이 조각되어 있었고, 가지각색의 무언가가 위에 올려져 장식하고 있었다. 빨강,파랑,초록,노랑,주황,흰색,그리고 보라색과 남색. 팔색의 장식이 흰색의, 원기둥 모양의 그것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음식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에 나는 어느덧 침을 꿀꺽 삼켰다.

" 케이크란 것입니다. 이것은. 자, 같이 먹죠. 특이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
" 그..그렇구만. 그런데 어디서 난.."
" 저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알아두세요. 이제 대충 스케치가 끝났으니 잠시 손을 좀 씻고 오겠습니다. "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렸다. 순간 나는 어느새, 그가 손에 물병을 들고 있음을 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빈손이었다.

" 저..저기.."
" 무슨 일이시죠? 아, 괴물이 올 거 같나요? 안심하세요. 그들은 지금을 방해하지 않아요. 작은 휴식을 방해할 무뢰한들이 아니니까요. "

  무뢰한들이 아니라고? 이 작자, 확실히 미쳤다. 다른 농부들이 오면 부탁해 봐야지. 상금으로 무엇을 줄진 모르지만. 그리고 그것마저도 그 녀석과 같이 나누어야 하리라. 다행히 그는 싸움박질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자가 내민 케이크라는 무언가에서 풍겨나오는 향긋하기 그지없는 냄새에 반쯤 홀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내 손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묻는다 싶더니, 어느새 내 입 안으로 향긋한 무언가가 들어가고 있었다.

" 움 - 우으음 - 우음!! "

보드랍게 씹혔다. 단 맛이 입 사이사이로 퍼져간다 싶더니 순간 미각을 자극했다. 나는 무식하다, 그리고 그것을 자부하는 편이지만, 이건 그런 내가 맛보기에도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을 맛있고 보드라운 음식이었다.

" 깨끗이 드시지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
" 우걱 - 우걱..우욱! 욱!! "

너무 빨리 먹다 보니 목이 막혀왔다. 쿨럭쿨럭. 쿨럭쿨럭. 넘어갈 때까지는 상당한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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