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감상/비평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전에 이청준씨의 소설집을 읽고 있었다. 이청준씨가 뛰어난 소설가라는 점에는 토를 달 것이 없지만, 솔직히 난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왠지 이청준씨의 이야기는 별 것 아닌 것을 너무 과장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처럼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냥 책장을 넘기면서 한글연습이나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 때 마누라가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빌려 들고 들어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 제목 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이었다. 내가 읽어보지 못했던 조지 오웰의 책이라니. 흥분한 나는 마누라에게 책을 강탈해서는 읽기 시작했다.
난 조지 오웰의 열렬한 팬이다. 무언가를 말할 때 최상급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조지 오웰만큼은 국내외를 모두 합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책을 빼앗긴 마누라의 모진 바가지도 웃으며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대단하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하고 느낀 바를 적은 글이다. 이를 위해 조지 오웰은 탄광 지대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싸구려 하숙집, 탄광, 광부의 집 등을 살폈다. 책의 전반부는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였고, 책의 후반부는 자신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비판, 제언을 담았다. 책은 생생한 묘사와 조지 오웰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조지 오웰의 뛰어난 식견과 냉정한 현실감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조지 오웰의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기만과 감정과잉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비범한 통찰이다. 희망과 바람에 현혹되지 않고, 절망과 고난에 왜곡되지 않는다. 그 매서운 시선은 조지 오웰 자신마저 예외로 두지 않는다. 때로는 냉혹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런 조지 오웰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 바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 ‘냉혹하다’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조지 오웰은 인간애가 풍부한 사람이다. 조지 오웰의 각종 산문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그의 모든 실천 동기와 사상은 모두 인간애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유물론과 혁명에 치우치고, 전체주의의 껍데기로 왜곡되는 상황에서 누락되고 비틀린 인간애를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은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안타까워하는 조지 오웰의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그저 ‘느끼는 사람’만이 아니다. 느끼는 동시에 ‘아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경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 스스로 믿고 싶은 바만 믿는 바보들이 얼마나 많은지, 교묘한 술수로 거짓을 사실인 양 믿게 만드는 사기꾼이 누구인지, 심지어 자신의 인간애가 지닌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마저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냉정한 균형감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탁월함을 이루어 냈다고 본다. 이 책은 사회주의자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다. 맹목과 편견으로 독재 자본보다도 노동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왜 노동자들이 그 비참한 압제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는가’를 쉽고도 명확하게 알려준다.
사실 이 글을 읽으면서 70여 년 전의 영국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 이다지도 들어맞을까 싶었다. 허위에 목을 매고, 교조주의로 눈을 가리고, 자기 감상에서 빠져 홀로 꿈을 꾸는 똑똑이들이 떠올랐다. 파렴치에 진저리치고, 모진 학대에 힘겨워하면서도 자신의 손에 들린 권리의 칼날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시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보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그저 사회주의자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보태기1 : 많은 공감이 갔던 부분
....끔찍한 전문용어도 문제다. 일반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니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수용자들에 대한 수용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다. 심지어 동지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을 불신하는데 적지만 한 몫을 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 중에 용기를 내어 대중 집회에 갔다가 자의식 강한 사회주의자들이 의무적으로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제일 가까운 맷줏집으로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의 본능은 건전하다. 오랫동안 써봐도 부끄러움을 삼키지 않고서는 부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호칭을 왜 붙여야만 한단 말인가?(p.300)
보태기 2 :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맹자의 사단이 떠올랐다. 사단은 남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 서로 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조지 오웰이야 말로 이 사단을 가장 골고루, 균형있게 갖춘 사람이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