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감상/비평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물조리개로 무지개 타고 흩뿌려지는 정도의 힘에서부터 소방호스로부터 표호하는 정도의 힘까지 작가의 성향, 실력에 따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대개 물줄기가 강할수록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며 약할수록 따분하다. 물론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기준이라는 것이 아니다. '설국'같은 작품더러 제아무리 롤러코스터를 달리는 듯한 짜릿한 장면 전개가 없다고 불평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하지만 대개 서사의 전개가 요동치고 굴곡이 교묘하게 컨트롤된 작품이라면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고 인정받는 것은 사실이다. 라이트노벨에 벽돌로 하나하나 쌓아가는 듯한 느리고 육중한 즐거움은 그리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라이트노벨에 대해 받아들여지는 주요 개념중 '가볍게 읽을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는 서사를 간결하고 뚜렷이 할때 구현되기 때문이다. 본 작품은 어떤가. 그러한 점에서는 꽤나 담백하고 타이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컨셉에 맞춰 구상-기획-플롯-집필-퇴고라는 타이틀을 단 각 장은 그대로 기승전결을 이룬다.
하지만 이 작품은 태생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작품의 소재는 소설이고 갈등은 인물의 저술로부터 나온다. 갈등과 전개는 동적이지 않고 다분히 관념적이다. 소설을 대하는 인물들의 논리 전개가 바로 이야기의 추진력이다. 그러니까 지루하다. 모든 이야기매체는 각각의 특징이 있어서 그것에 따라 표현방법이 제한되는 한편, 오직 그 매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는 것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소설로 AVGN같은 비디오 리뷰를 하려면 적잖은 곤란을 겪게될 것이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런닝타임을 통제하는 대신 시청자의 이미지와 청각에 직접 호소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배우가 욕하고 날뛰어도 이미지를 구현할 소재가 없는 텍스트 리뷰에는 적절하지 않다. 영화 '미저리'나 최근의 '베스트셀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주력 서사는 글이 미친 인물의 행위이지 글 자체가 아니다. 메타적 텍스트를 서사 진행의 단초로 삼을 수 있는 매체로 소설만큼 적당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약점이다. 관념의 전개는 언제나 독자의 주의를 잡아끌기 힘들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그 전개에 동참하도록 약속된 미스터리나 법정물이 아니라면 진이 빠지기 십상이다. 겉으로는 인물들이 방안에 밍기적대면서(무대도 방학의 산속 기숙학교라니 얼마나 따분해 보이는가) 지지부진한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물간 논쟁으로 서사가 전개되다보니 이 작품은 위기와 절정역시 비평가의 평론 한 마디로 이뤄진다. 페이지의 대부분을 잡아먹는 작품론, 소설에 대한 고뇌 등등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당연히 비평이 의도하는 서사의 골을 느끼기 어렵다. 글 전반에 깔린 논리는 탄탄하다. 하지만 메인 서사를 이해하고 에리스의 작품관까지 이해하기에는 글에 힘이 달린다. 이 작품의 독자는 서사를 추적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법서와 비평문과 줄거리 요약을 읽어야만 한다. 이것은 적잖이 피곤한 일이다. 비슷한 컨셉의 작품으로 문학소녀 시리즈가 있다. 문학소녀와 이 작품에는 주요한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문학소녀에는 권당 하나의 문학작품이 다뤄진다. 그리고 인물들이 작품을 논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용 작품의 서사가 본 서사에 직접 개입하고 본 서사는 충분히 인용 서사를 참조한다. 그리고 탐정의 존재가 있어 일목요연하게 미스터리를 정리해준다. 이러한 점들은 문학소녀의 서사 논리를 좀더 분명하게 해주고 흥미를 충분히 유발하게끔 하며 독자에게 그것을 간단하게 전달해주는 기능을 한다. 거기다 문학소녀에는 글로 글을 다룬다는 문제점을 공감각 능력으로 깜찍하게 보완해낸다. 이는 만담의 효과도 갖고 있고 작품의 주요 매력요소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그러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미스터리의 경우는 관념에 의한 서사 전개가 거의 무한정 허용된다. 이 작품도 엄밀히는 미스터리 형식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이라 하기에는(인물의 심리적 속박을 추적하여 해방하는 한 방식) 그렇게 치밀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박진감을 살리는 데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간에 결말로의 이행은 깔끔하고 순조롭다. 그러한 점 때문에 예상컨대, 독자의 반응은 한 세 가지 정도로 칼 자르듯 나뉠 것이다. 이 작품은 어쨌든간에 구조적으로는 탈이 없으니까. 이제 이 전개가 끌어올린 결말을 살펴보자. 결말은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전형적인 각성 전개이다. 복선에서 가져온 히로인의 성질이 문제를 일으키고 남캐는 히로인과 면담을 하고 결국은 둘이 왠지 조금 더 친밀해진 것 같긴 하지만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얼레리꼴레리한 삶으로 돌아옵니다. 해피해피. 면담 과정에서 남캐는 반드시 의미심장하지만 몇 겹의 암시를 뚫고 마침내 히로인의 심장을 마사지하는 말을 하게 된다. 이것도 일종의 최종보스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왕 앞에 선 용사가 마왕을 훈계하는 이치도 사실상 이와 같다. 주인공은 자신의 승리를 화려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용사는 외판원으로 전직한다. "나는 사실 포니테일 모에야." 이 세상 모든 용사를 통틀어서 쿈의 이 선언만큼 통쾌하고 전복적인 선언은 보질 못했다. 하루히 시리즈는 현상계를 사이에 둔 일상계와 비일상계의 미묘한 시소타기가 묘미이다. 용사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마지막 사력을 다한 외침 하나면 온 세상을 뒤덮은 마왕의 힘은 뒤집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을 충실히 하여 그 근거와 토대를 닦아놓았어야 한다. 하루히에서는 독자에게 세계를 충분히 이해시켰고 버튼 하나로 결말이 지어지도록 철저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쿈은 마왕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가인은 그러한 근성과 열혈은 부족해 보인다. 결말을 향한 논리는 위에서도 말했듯 흠잡을 곳은 없다. 하지만 의표를 찌르는 무언가가 부족하고 당연하리만큼 예측되는 곳으로밖에 나가질 않는다. 라노벨이 한 권 완결의 미덕을 추구하는 한 이런 구조는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 기억에 오래 남으려면 좀더 색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캐릭터는 그렇게 선명해보이지 않는다. 문장이 전체적으로 차분하다보니 진지한 대화와 농담이 구분가지 않는다. 시니컬한 에리스가 츤데레 모션을 취하는 장면은 혹여 다른 어설픈 자사 작품을 패러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세트로 다니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고유 아이덴티티를 획득하는 데 고난을 겪는다. 만화라면 그림으로 한번에 구분되지만 소설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좀더 바삐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마왕을 제외하면 시즈 뿐이다. 마왕은 여러 전략이 적중했다. 스파이의 쾌감. 각종 세계의 비밀 혹은 힘을 갖고 있지만 일반인인 너희에게는 알려줄 수 없어 큭큭큭... 먼치킨 주인공이 독자의 호감을 얻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이런 캐릭터는 독자에게 정체불명의 자부심을 부여해준다. 적당한 동정심 유발. 이것은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적당한 호기심 유도. 마왕은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독자는 그래서 태고로부터 내려온 존재를 경외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