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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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는 불안을 도구삼아 공포를 조각하는 장인이다. 그의 공포영화는 신체 훼손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보는 이를 한없이 불안하게 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었다. 굳건하게 두 발 딛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표가 실상 구름처럼 허허하고 부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균열을 구로사와 기요시는 기어코 쩍 벌려놓고야 만다. 그러면 뼛속까지 사무쳐 스미는 공포가 밀려온다. 그것이 바로 구로사와 기요시 스타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거장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감독들처럼 로망 포르노로 시작했던 구로사와 기요시는 어느새 일본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특별한 공포영화의 거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족 드라마 [도쿄 소나타]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새로운 경지다. 간신히 가족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사는 네 사람의 이야기는 언뜻 흔해빠진 감동 드라마로 흐를 것 같지만 일본의 거장은 완전히 다른 화법으로 시대를 읽어낸다. 가족을 위협하는 외부의 힘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세계화 바람이 아비를 해고시켜 초라하게 만들고, 큰아들은 미국에 열광하는가 싶더니 별안간 미군에 입대하며, 작은아들은 급식비를 빼돌려 피아노를 배우는데, 어미만이 멀어지는 가족을 필사적으로 되찾으려 한다. 유대가 상실된 가족의 형태와 정이 부재하는 집이란 공간은 이미 지옥에 가까운 공포다. 여기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전의 초현실적 공포가 아니라 우리네 주변에 크게 작게 존재하는 평범한 지옥을 보여준다. 그러나 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가족의 상처를 보듬어 새로운 삶을 사는 희망의 비약은 예전의 구로사와 기요시에게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법이다. 이번에 그는 핏자국이 아닌 드뷔시의 피아노 선율로 가슴을 떨리게 한다. 다시 살자. 연주가 그친 자리에서 화면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가족의 뒷모습에 울컥 목이 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