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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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린치 대단하다. 이런 걸 동정작으로 던져 놓고서 그 바닥에서 그만한 거장이 되었다니 진짜 존경할 만하다. 분명 [이레이저 헤드]는 마치 정상인 무리 속의 돌연변이 같은 놈이었을 테다. 조지 루카스도 첫 장편영화 [THX-1138(1970)]은 소름끼칠 만큼 멸균적인 SF영화를 내놓긴 했으나 금방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로 노선을 바꿔타 제도권으로 편입하며 빵빵하게 잘 나가는데, 데이빗 린치 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컬트킹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양반이다. 제목부터 비범한 [이레이저 헤드]는 외려 이후 영화를 훌쩍 뛰어넘는 불안으로 들끓고 있다. 어느 공장 노동자가 애 보는 이야기를 찍었는데 도무지 단 1초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자리가 워낙에 가시방석이라 보는 내내 그만 화면을 꺼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먼지 가득한 길거리, 피를 토하는 닭고기, 망가진 엘레베이터, 쇠약한 여자친구, 낡은 스팀난로, 혹부리 여자아이의 째지는 노래, 서큐버스 같은 이웃 여자, 정자를 닮은 벌레,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기형아 '베이비'의 앵앵거리는 울음소리까지 온통 불쾌한 것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시종 고막을 할퀴어대는 공장 소음 세례는 또 어떻냐는 말이다. 사람을 신경쇠약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걸 24시간 틀어주면 되겠다고, 그렇게 투덜대다 어느새 후덜덜 떨면서 무서워하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레이저 헤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다. 마치 혼곤한 악몽을 꾸다 겨우 깼는데 사실 여전한 악몽이기를 거듭하는 식이다. 헨리는 오랜 공장 생활로 몸뚱어리 자체가 기계 레버처럼 수동화된 아저씨다. 공장은 헨리의 일상 생활 영역까지 철저하게 파괴했다. 데이빗 린치는 헨리라는 사나이를 대량 생산되는 지우개처럼 몰개성한 군중의 일부로 몰아붙인다. 꼭 헨리가 아니라 찰리라도 상관 없다. 또 찰리가 아니라 제임스면 어떠냐. 노동자란 어차피 규격에 맞추어 제조되는 부품이니 망가진다 해도 다른 부품으로 갈아 넣으면 된다. 지우개 머리통의 일그러진 환상은 산업사회의 아가리를 벌리고 목구멍에 그득한 가래를 죄 긁어내고 있는 모양새다. 구역질 나는 공포다. 그게 우리네와 아주 관계없는 공포는 아닐 테다. 끔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