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A: 색다른 변화
나는 물고기다.
차디찬 바닷가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여대던 어린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살이 일렁이는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새까만 생머리, 그리고 자비로운 태양의 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싱그러운 새하얀 몸매. 아직 덜 익은 젖가슴이 유난히 눈에 돋보였다. 어디선가 몰려온 달콤한 구름은 찬찬히 꼬마의 몸을 품었다.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이 푸른 무늬들로 아이를 내려다봤다. 여름의 열기로 아이의 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해야 했다. 다시는 푸른 버덩을 보지 못하여도. 다시는 꿈 많은 자의 열정을 지켜보지 못한다고 하여도. 다짐이 이루어지자 그녀는 천천히 물 안으로 그 작은 얼굴을 파묻었다. 차가운 물과의 만남으로 소녀의 온몸은 싸늘해졌다. 뒤이어 수없이 많은 물방울이 어린애의 연약한 피부를 간질였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긁어댔으나 이 신비로운 간지럼 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바다 위를 둥둥 떠가는 녹색 건더기들 덕분에 아이의 고운 피부는 태양에게 험을 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난관에도 수리는 계속해서 자욱한 물 사이를 가로질렀다. 절대로 멈추지 않고. 민감했던 피부 조직들도 짜디짠 소금물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드디어 어린 꼬마는 배우고 있었다. 물고기가 되는 방법을.“수리야, 아직도 물속에 있는 거니?”
저 멀리 검은 선글라스를 쓴 어머니의 말씀이 아이의 귀에 들려왔다. 수리의 어머니는 무지갯빛 파라솔 아래에 누워 있었다. 소녀와는 달리, 그녀는 갓 산 분홍 원피스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액세서리는 꽤 있었다. 비싼 금빛 귀고리서부터 탁한 진주 목걸이……. 두 눈에는 그 비싸다는 루이뷔통 선글라스까지 걸쳐져 있었다. 이런 생소한 장식들 몇 개에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먼지 가득한 유리창처럼.
“……”
어머니의 지겨운 소리에도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물고기로 탈바꿈할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수리는 이미 수영하는 법을 터득하였기에 말이다, 아니, 물과 함께 소통하는 어류만의 수영하는 방식을. 두 다리를 모아 있는 힘껏 흔들어 대며 신선한 바닷물을 들이마셨다. 고통이 아이의 폐를 억눌렀다. 본격적으로 한 물고기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색다른 경험들이 바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속 밑에 조용히 자리 잡은 아름다운 수풀들과 산호초들을 쓰다듬는 그 느낌. 조심스레 바닥을 손으로 주물러주면 튀어나오는 생명의 숨결. 쾌감은 연이어 어린 소녀를 찾아왔다. 미지의 세계를 여러 번 반복해서 뒤진 후에야 아이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붙어 있는 수십 조각의 비늘을 발견하였다.
“어?”
수리는 놀란 나머지 말없이 한동안 변화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전보다는 훨씬 줄어든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은빛의 비닐들이 소녀의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새로이 돋아난 어린 새싹들을 쳐다보며 아이의 눈에서 호기심이 발했다. 딱딱한 물고기의 피부가 점점 소녀의 마음과 몸을 세상과 단절시켰다. 중세 시대 갑옷을 껴입은 것처럼 육체가 무거워졌다.
몸은 하나의 나뭇가지처럼 쭉 내뻗고, 마음은 가볍게 먹었다. 너무 무겁지도, 날아갈 정도로 약하지도 않게. 얇은 두 손은 물고기의 힘찬 양쪽 지느러미로 만들고자 그녀의 허리에 세게 밀착시켜놓았다. 두 발은 서로 합쳐져 기다란 은색 꼬리를 완성하였다. 성공의 여지는 무한하였다. 아이는 물고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도 걱정됐는지 수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위해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딸이 물고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만물의 조상에게 이미 흠뻑 도취해버린 자가 바로 자신의 자식이라는 것을. 물속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를 발견하고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녀로서 남은 일은 검은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며 수리를 쳐다보는 것뿐.
많았던 절차들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어갔다. 남은 건 아가미를 만드는 것. 천천히 가슴에 자신만의 아가미를 생각해냈다. 연한 분홍색이면서도 튼튼한 아가미. 꼬마를 멀리멀리 보내줘도 힘들지 않을 그런 아가미. 마음 아프게 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을 보태줄 강인한 아가미를 소녀는 품 안에 안았다.
오오, 그녀는 느낀다. 서서히 내면에서만 존재하였던 욕망의 분출구가 열리는 것을. 자신의 가냘픈 두 귀 옆에 한 쌍의 아가미가 부드럽게 붙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조심스러운 난쟁이처럼 살며시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어린 물고기를 숨 쉬게 해주고 있다. 이제 수리는 다른 물고기처럼 여행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가미가 생겼기에 이제는 모든 바다를 행군하고, 그들의 기운을 손아귀에 품어볼 수 있었다.
몸은 변화를 거듭 반복하였다. 한때 사람이었던 소녀의 몸을 비늘이 완벽히 도배하였다. 마치 버려두었던 허물을 다시 입은 것처럼 아이의 몸은 불어났다. 그러나 힘겨웠던 몸만은 튼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생겨왔던 수많은 과거의 상처들이 아물어갔다. 분홍색은 이미 알록달록한 비늘 사이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이제는 그녀의 어머니 역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수리는 변하였다. 소녀는 무언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이는 하나의 고치에 감싸진 채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숨 쉬는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 어머니의 딸은 이제 달라졌다. 그것은 물고기였다.
“수리야…….”
그녀의 어머니조차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고치에 쌓여 수리의 본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그녀는 변화의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하나의 어여쁜 물고기로. 어머니로서의 할 일은 끝이 난 셈이었다.
수리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고치를 깨고 새로운 운명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역시나 마지막 단계는 힘들고, 멀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녀가 깨뜨려야 할 관문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고치를 깬다는 것은 그렇게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자연적으로도 이미 충분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누에의 실로 칭칭 감겨 있었던 소녀의 몸에 점차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자유로운 부분이 생기면 생길 때마다 아이는 혼사의 힘을 다해 새하얀 벽을 밀어댔다. 처음에는 행동 자체가 무의미하였다. 제아무리 밀어 봐도, 노력해보아도 고치 안은 어둠으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빛이 새어나왔다. 꺼져가는 세상 속을 마지막으로 비추어주는 한 줄기의 불빛. 그 줄기는 수리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거센 몸부림과 함께 아이는 고치를 뚫고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모든 모습이 물고기의 한 부분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붕어의 일종인 듯하였다. 은색 비닐과 분홍색 아가미의 조화가 이 귀여운 물고기를 꾸며주고 있었다. 검게 불타오르는 정열의 눈동자. 넓은 바닷속으로 아이를 밀어줄 든든한 꼬리지느러미.
소녀의 모든 부분에서 신의 손결이 느껴졌다. 사람이었을 때보다는 몸이 훨씬 작아졌지만, 가슴에 품은 웅대한 미래만큼은 여전하였다. 비록 어른이 되는 꿈은 저버렸으나, 바다에서의 장래는 버려지지 않았다.
이미 어머니의 눈에는 끊임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물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수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은색 붕어는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리……. 수리야!”
찢어지는 울부짖음에도 물고기는 이미 머나먼 여정을 떠난 후였다. 붉은 석양 뒤로 몇 번의 물거품이 올라올 뿐, 그녀의 딸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나머지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으로 어머니는 그날 하루를 하염없이 보냈다. 세상이 노랗게 변해가는 것을 구경하며…….
*
노을을 향하여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지 벌써 스무 시간은 족히 넘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보아도 수리가 찾고 있는 ‘멋진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진귀한 보석들과 행복으로 들뜬 산호초 마을은 많고도 많았다. 가는 곳마다 희망으로 가득한 물고기들의 보금자리는 각양각색이었다. 다양한 색을 발하는 산호초의 마을부터 하늘 위에 둥둥 뜬 수풀로부터 그늘을 허락받은 마을까지. 모두가 방랑하는 그녀를 환영했고 가지가지 장점들을 내세우며 꼬마 물고기를 유혹하였다. 그럼에도, 소녀가 진정으로 찾으려고 했던 ‘유토피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거쳤던 마을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으나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제아무리 숨기려고 애써도, 눈부신 마을 뒤에는 그림자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힘없는 물고기들을 잡아가는 괴물들. 그것들이 그녀의 신선한 피와 살을 원하였다. 아아, 이 넓은 세상에 작은 물고기 하나 정착할 곳이 없다는 것인가.
모든 것이 생겨나고, 또 죽어가고 있었다. 생명의 씨앗들이 땅 위로 돋아나 아늘거리며 아름다움을 전하는 한편, 심해 어느 곳에서 나타난 괴물들에게 순식간에 잡아먹혀 버리는 정어리들도 보였다. 괴물. 그것들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다가왔다. 다리가 수백 개 이상 달린 주황색의 물고기. 거대한 입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여 버리는 거대한 녀석. 갓 태어난 어린 붕어에게는 모두 위험천만한 놈들이었다.
*
사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리는 새로운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수백만 개의 모래 알갱이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소복소복 쌓여 있는 광활한 사막을 바라볼수록 은색 붕어 자신은 너무나 작고 무기력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서도 작은 물고기가 걱정 없이 살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후덥지근한 열기가 그녀에게 인사할 뿐이었다.
“없나?”
한탄이 절로 어린 물고기의 입에서 나왔다. 모든 것이 아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배려였던 구경거리조차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불필요하게 쌓인 회색 조약돌들이 소녀 주위를 맴돌았다. 그것들을 넘어 노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목덜미가 밤하늘 달빛에 서늘해졌다.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자 수십 개의 별똥별이 지구로 내리꽂았다. 소망을 위한 밤이었다.
하늘에는 현재가 존재하였다. 꺼져가는 노란 불빛 하나에 의존하는 아이의 지구는 외로워 보였다. 등대 하나 바다를 밝혀주지 않았다. 암흑은 신난 나머지 세상을 점점 덮어갔다. 더운 여름이었는데도 녀석은 얼굴까지 망토로 가렸다.
“아……. 너무 피곤해.”
피곤함이 그녀에게 밀려왔다. 기대와 희망 끝에 찾아온 무력감, 그리고 씁쓸함. 은색 붕어는 제 갈 길을 벗어난 채 힘없이 바닥을 기어갔다. 짙은 흙더미가 서서히 아이의 곳곳을 핥아댔다. 은색은 짙은 흙더미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꼬마 붕어의 눈초리에는 공허한 공간만 가득하였다. 피로감에 수리의 눈꺼풀은 닫혀갔다.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잠은 무서운 속도로 물고기를 눌러댔다. 은색 지느러미는 움직임을 멈춘 지 오래였다. 한때 들떠 있었던 눈동자는 흙탕물에 더럽혀져 갔다. 반항하기도 전에 물고기는 수면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갈색의 늪으로 꿈 많은 물고기는 깊이 빨려 들어갔다. ‘멋진 마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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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새롭게 가입한 해바라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