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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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심장이 든 눈동자
DOSKHARAAS(손지상)
2010년 7월 9일 오후 4시 47분 초고 완성
성 안 풍경은 언제나 똑같았다.
시간에서 빗겨나간 성 안은 어둠과 낮이 뒤엉켜 굳어 있었다. 성긴 빛의 그물이 어둠 위로 깔려있었고 틈새로 어둠이 스며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칼로 베어낸 것처럼 한 조각으로 멈추어 있었다. 성의 주인은 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다.
별을 만든 이가 남긴 무한한 자식, 별의 아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며, 별의 씨앗을 남겼다. 씨앗은 자라 별이 되었고 성의 주인은 테라스에서 별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았다. 성 안은 시간에 빗겨나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들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용'. 용은 영원히 응집된 한 점이 된 자신의 성 안에 살며 별을 만든 이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
성 안에 '시간'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 안은 영원했다. 시간은 성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받지 않았다. 먼저 노크를 하고 들어가면 되는 일이다. 용이 반갑게 맞아줄지도 모른다. 시간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곳에도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용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 '기사'가 시간을 찾아왔다. 그녀의 갑옷은 은빛으로 빛났고 말은 빛보다 빠르게 우주를 가르며 날 수 있었다. 그녀는 용맹함을 보이고 명예를 드높히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이를 위해 용을 찾아 은하계를 헤맸다. 순례 길은 험했고 그녀와 말은 지쳤다. 휴식을 위해 들린 별에는 시간이 살고 있었다.
시간은 그녀를 위해 말이 쉴 곳과 따뜻한 자리, 그리고 따뜻한 차를 내 주었다. 차는 별빛을 우려 만든 것이었다. 기사는 예를 표하고, 갑옷을 벗은 뒤 편안히 자리에 앉았다. 시간은 머리를 빗으며 창 밖을 보았다. 검푸르고 풍성한 긴 머리칼이 빗질을 따라 흐드러지며 흘러내렸다. 기사는 싸움을 위해 짧게 자른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창 밖은 쓸쓸하군요. 기사가 말했다. 시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머리 빗기를 계속했다. 기사는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성'은 쓸쓸한 빛을 깜빡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기사는 손가락으로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별에 있는 성이, '용'이 사는 곳인가요? 기사의 질문에 시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아름다운 기사가 용을 죽이고 그의 심장을 꺼낼 것이란 걸.
심장.
시간은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두 손으로 제 품을 눌렀다. 가슴이 뛰는 이유가 걱정인지 흥분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용이 사는 곳이군요. 기사가 말했다. 차가 식습니다. 시간이 대답했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시간은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일어섰다. 홀로 남은 기사는 차를 마시며 성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미 용의 심장이 비치고 있었다. 금빛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간은 문을 열었다. 그녀 앞에는 '거짓'이 서 있었다. 나른한 몸짓을 하며 인사하고 들어온 그는 시간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그를 싫어했다. 나가 주세요. 시간이 말했다. 그녀는 차분했고 단호했다. 거짓은 최면을 걸기라도 하듯 우아하고 부드럽게 손가락을 놀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언제까지 기다리실 셈인가요? 그대는 기다리지만 용은 그대를 모릅니다. 용은 기만자입니다. 속이고 농락하는 자입니다. 지금껏 수 많은 별의 아이들과 사랑을 속삭이고 그 들을 버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조각 내 왔습니다. 당신 곁에서 당신에게 사랑을 약속한 입으로 다른 사랑을 다른 곳에서 말하고 다른 사람을 쓰다듬은 손으로 당신의 몸을 어루만질 겁니다. 그대는 아직도 모르십니까? 그는 나의 형제입니다. 나의 형제의 입맞춤을 아직도 바라고 있습니까? 거짓은 웃었다. 쓴 맛이 나는 웃음을 감추려 거짓은 고개를 숙였다.
나가 주세요. 시간이 말했다. 그녀도 울고 있었다. 거짓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검은 실크햇을 들어올리며 인사를 하고 거짓은 밖으로 나갔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시간의 가녀린 등뿐 이었다. 문이 닫혔다.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문 뿐일 텐데도.
별의 아이들이 그를 마중을 나왔다. 그는 눈가를 훔치고 그들과 같이 춤을 추며 진공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그가 떨어뜨린 눈물이 별이 되었다 사라졌다.
시간은 그 자리에 서서 거짓이 남기고 간 말을 곱 씹어 보았다. 씹을 수록 말은 바스라졌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잘 쉬었습니다.
시간은 고개를 들었다. 기사는 빛나는 갑옷을 입고 빈 찻잔을 건넸다. 시간의 눈물이 찻잔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기사는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금빛 심장만이 비치고 있었다. 시간은 은빛 화살처럼 날아가는 기사와 말을 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빗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용은 혼돈으로 검을 삼고 빛의 그물을 망토 삼아 불을 뿜으며 기사와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힐 때 마다 별이 비명을 질렀고 기사의 갑옷이 불길을 막아내자 은하수가 눈을 가렸다. 시간은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 거짓이 남기고 간 말이 반짝였다. 고개를 흔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이, 금빛 피를 흘리며 맥을 뛰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눈물도 금빛이었다.
노크 소리에 눈가를 닦고 문을 열었다. 용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용의 인사에 그녀는 대답도 하지 못한 체, 용의 구멍 뚫린 가슴을 보았다. 용은 기사의 목을 건넸다. 환한 미소가 핀 얼굴에는 핏기가 없어 하얗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을까요? 용에게 시간은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돌아가는 용의 가슴에서 떨어진 금빛 피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시간은 그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거짓이 그녀를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그가 온 것을 몰랐다. 그는 문을 두들기기에 너무 수줍고 부끄러웠다. 그는 금빛 징검다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 시간은 언제나 자신의 방에서 기사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속에는 금빛 심장이 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