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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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초등학교에 가봤다. 딱히 선생을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어짜피 인사이동됐을테고. 그냥 어렸을 적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간 것이다.
초등학교는 당연하지만 예전의 색을 잃었다. 말그대로 건물같은 것들의 색이 바랬다. 그리고 모래 운동장, 그것이 이렇게 넓었나 싶다. 모래운동장이 더 넗어진 것 같은 느낌이,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막화가 된 것 같았다.
여아들이 철봉 근처에서 얼음땡을 하고 놀고 있었다. 나는 흐뭇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땡볕이 뒷목을 달궜지만 기다렸다. 그녀들이 가고나서 나는 쇠붙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저렇게 높았던 철봉이 이렇게나 작았다니... 구름사다리는 더이상 도전거리가 못됐고 정글짐은 엄두도 못냈다. 나는 먼지색 그네에 앉았다. 그러다 뺑뺑이를 보고 동심이 부활하여 뺑뺑이를 탔다. 신이나서 빠르게 도는데 내 키하고 뺑뺑이 손잡이의 높이가 안 맞는 바람에 추하게 그리고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난 킬킬거리며 왼쪽몸에 느껴지는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문득 뺑뺑이 밑에 있는 것에 눈이 갔다. 어둠속에 네모난 상자를 꺼내들었다.
필통. 그렇다. 나는 필통을 여기에다가 숨겨놨었다. 지금보면 변신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변형을 하는 로보트가 그려진 필통이다. 왜 숨겨놨었지?
그건 그렇고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하고 뺑뺑이 타면서 놀다가 내가 너무 심하게 돌려서 그녀가 넘어졌었지. 피가 꽤 많이 났었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하다.
내가 그녀를 엄청 좋아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녀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난 이사를 가지도 않았다. 이 근처 아이들과는 가끔 마주키긴하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전학을 간 것인가? 아니다.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 뭐지?
나는 필통을 열었다. 무언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리고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필통의 안에는 귀여운 여아형태의 고무 인형이 있었다. 지우개라고 했지만 잘 지워지지 않고 까맣게 되기만 하는 그것.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것을 그녀로 설정하고 좀 소중히 했었다. 그리고 쪽지가 있었는데 연필로 뭐라고 써놓았던 것 같지만 흐릿해서 알아볼수가 없었다. 아마 뺑뺑이가 덜컹거릴때 같이 덜컹거려서 고무인형과 문질러졌나 보다.
어쨌든 나는 필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필통과 인형을 깨끗히 닥아놓을 생각이었다. 이런는 걸 보면 그 필통이 어지간히 소중했나보다.
바가지에 필통에 들어있던 연필과 고무인형을 놓고 세면대에서 필통을 먼저 씼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씼으려고 보니까 고무인형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인형을 찾은 것은 몇 달 후였다.
이모가 2살이 된 딸을 데려와서 엄마랑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기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켁켁거리면서 우는 걸보니 이상한걸 주워먹어서 목이 막혔을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등을 두드리고 몸을 기울여도 이게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아기를 거꾸로 해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목에 넣어 토악질을 유도하기도 했다. 결국 앰뷸런스를 불렀다. 아기는 살았지만 산소공급이 안되서 식물인간이 되었다. 기도에 고무덩어리가 끼어있었다고 했다.
그날 나는 고무인형의 몸통을 찾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필통을 열어 종이 쪽지를 꺼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었던건가. 그것이 신경쓰여 죽을 것 같았다. 기억이 스물스물 율동을 시작하고 나는 쪽지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XX의 마법. 피를 인형에 발라서 압디또"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XX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지만 압디또라는 것이 주문이라는 것은 알았다. 곧 기억이 살아났다.
난... 그녀의 피를 발라서 인형에 발라 주문을 외웠었다. 내가 주문을 외우고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그 주문의 효과는 기억이 난다. '피의 주인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 그 주문의 효과였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그녀의 행방을 찾았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조카가 입원한 병원과 같은 곳에서 식물인같으로.
이 모든 일이 내 탓이라고 할 논리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난 중처럼 그 병원을 드나들었다.
10년이 지나도 나는 그 문병을 다녔다. 신기하게도, 아니 경외스럽... 두렵게도 조카와 그녀는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10년... 10년이다. 10년동안 나는 이 병원에 묶여있었다. 속죄를 위해서...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명분같은 거였다. 난 단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두러움은 사라지고 증오가 자리잡았다. 10년동안 이딴 짓꺼리를 해서 내가 잃은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싸우기로 했다. 이제 뒤에는 죽음 밖에 없다. 자살과 살해.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결말은 승리다.
그때 증오스런 악마가 나타났다. 그를 본 순간 기억의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이제는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내. 그는 나의 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와 대조적으로. "피의 주인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확신을 얻었다. 두려움에 실천하지 못한 일을 할 생각이다.
피의 주인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나의 피를 인형에 뭍히고 압디또라고 외우면 난 나의 것이 된다. 그 악령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고무 인형을 꺼냈다. 내 손을 물어뜯어 피를 내고 머리가 떨어져나간 인형에 발랐다. 그리고 말했다.
"압디또."
난 내 삶에 만족을 하고 있다. 비록 오체불만족이라고 하더라도 살아서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