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이 한기에 딱딱 부딪힌다. 창백한 입술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린다.지독한 한기 속에 나는 초췌한 눈으로 내 앞을 스쳐가는 이들을 무심히 지켜본다.개중에는 이 추운 한파에도 얇은 옷을 입어 행인들의 눈길을 끄는 이도 있었고 무에 그리 기분이 좋은지 연신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코트를 두껍게 껴입은 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느리게 걸어가는 사내도 있고 사람이 두려운지 굳이 땅바닥에 시선을 맞추어 걷는 나약한 이도 있었다.잿빛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젊은 날의 기억을 회상하는 중년인도 있었고 고된 밤일과 회한 가득한 인생에 염증이 난 늙은 창부도 있었다.술을 마셨는지 가끔 혼잣말을 해대며 하릴없이 인파 속을 누비다가도 아무에게나 시비를 거는 고약한 이 역시도 끼어 있었다.다양한 인간군상의 불규칙적이고 바쁜 행렬을 광장바닥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나는 언제까지고나 앉아서 기다렸다.어제도. 그제도. 지난달도. 지난해도 나는 그저 앉아 기다리고만 있었다.무더운 열기와 추운 한기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단 한 치 앞을 걷는 것조차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이 무력감은 기분 나쁘다는 말로도 제대로 형언할수 없는 두루뭉술하고 끈적끈적한 덩굴이다.속박이었다.끝날 줄 모르는 구속과 현기증과 혼란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쇠퇴해가는 나의 병든 정신과 육체를 조금이라도 더 보살피는 것 밖에는 없었다.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대체 무엇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걸까.무엇이 나를 이리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하지만 그것만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그 와중에서도 단지 죽음은 아니라고 결코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죽은 자니까.밝은 햇빛을 보고도 눈을 찌푸릴 수 없었고 이따금 광장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열기나 모두를 사로잡은 광기의 향연 속에서도 나는 오히려 맥이 빠져 언제나 초연할 수밖에 없는 생명이 없는 시체니까.작고 소소한 것부터 어떤 이든 눈을 한번이라도 돌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구경거리 속에서도 나는 오히려 무심할 수밖에 없다.악과 선의 의미 따위라거나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혐오감,쾌락,자존심,희열,절망감,기쁨,슬픔 같은 소소하고 평범한 감정조차 느낄 수 없게 된 모든 감정을 잃은 지금의 나는 영락없는 한 구의 추악한 시체일 뿐이다.그 시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부패를 한순간이라도 늦추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시체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썩어문드러질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된다면 한때는 인간의 형상을 했던 것을 곁눈으로 슬쩍 보며 지나가는 어떤 이는 잠시 얼굴에 동정하는 기색을 띄울 것이고 어떤 이는 그 나약함에 코웃음을 칠 것이며 그 둘도 아닌 경우. 이 하잘 것 없는 죽음 아닌 죽음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들이 무던히도 많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몰락은 개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시체는 버릇같이 바닥에 깔린 벽돌을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으로 쥐어뜯고 희롱했고 내리치고 다시 쓰다듬었다.벽돌의 상처는 그 자신의 잊힌 메말라버린 감정의 자욱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그리고 그 불쌍한 벽돌은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뿐.이미 꺼져버린 전등 빛의 잔영과도 같은 것이다.의미없는 것이다.슬픈 몸을 한 벽돌이 돌연 흐릿하게 보인다.드디어 쉴 수 있는 것일까. 시체는 몽롱해지는 와중에도 생각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던 실체에 대한 고약한 깨달음이 그를 다시 고통의 세계로 끌어내린다.눈가로 떨어진 한 방울의 빗물. 그것이 벽돌을 흐리게 한 것이었다. 몸속으로 고통을 가장한 허망함이 밀려들어왔다.그는 비와함께 쇠약한 영혼을 가차 없이 내리치는 고통들에 마침내 오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사라진 감정들과 슬픔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 당장이라도 자신 모두를 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한없이 육체를 때려대는 비와 함께 울고만 싶어졌다.노래를 하고 싶었다.노래가 추악하던 아름답던 그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연주하는 악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어떠한 방법으로든 다만 울부짖기를 바랬다.고통에 신음하는 그 짧은 사이,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떠올랐다.밝고 저주스러운 구체가 저 멀리에서 떠오른다.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과연 정말 실존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이 또다시 두 눈에 들어온다.쉬지않았던 숨이 다시 헐떡거리기 시작한다.멈추었던 심장도 미약하게나마 다시 고동치기 시작한다.몇번이고 나를 우롱했던 것과 같은 것인지,이번에는 정말로 진실된 것인지 모를 이 내 좁은 인식과 상식으로는 도대체가 구분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또다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는 여전히 일어날 수 없었다.불안한 마음과 함께 스멀스멀 일어나는 배신의 냄새.시체는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구체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해보고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임을 짐작하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의식이 한층 더 깊은 곳으로 침체되어 간다.뿌리 모를 뿌리가 다리를 더욱 죄여온다.자신을 영원한 어둠속에 던져지고 싶어졌다.그만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잠시 쉴 틈을 지 않고 그를 다시 현실로 깨우고야마는 가증스런 의무감.의무감이 자신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나락의 한 귀퉁이에서 간신히 버티는 게 최선이지만 일단은 그것만이라도 해야 한다.어떻게,언제인지 모를 구원을 그는 믿어야만 했다.사라진 희망을 억지로 세뇌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한시라도 더 버텨야만했다.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야만 할 때다.심연보다도  어두운 고통 속에서 아직은 더욱 더 시간을 보내야 할 때다.어디선가에서 그의 귓속으로 작은 노래가 들려왔다.이름도 모를 어떤 이의 육성. 행복에 겨운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괴로움과 슬픔에 울부짖는 듯한 느낌의 노래가 들려왔다.너무도 아름다워 행인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잠시 가만히 있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소리였다.타오르는 태양빛에도 아무렇지 않던 눈이 부셔온다.현기증 나도록 밝은 눈부심에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광장 한 켠데 우뚝이 앉아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 지저분한 거지를 행인들은 힐끗거린다.한 사람은 동전을 거지의 앞에 던져놓기도 하나.그리고는 동정을 주며 어디서 솟아나오는지 모를 우월감을 표내지 않고 즐긴다.웃음을 지어주고 속으로는 비웃음을 지어준다.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깨어난 부스스 깨어난 시체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동전을 던져준 이를 보고 이유모를 부러움을 느꼈다.어쩌면 잠시나마 그로 인해 이미 마비된 감각의 기억 속에서 잠시 부럽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라서 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시체를 지독히도 현실에 잡아두는 것은 부러움과 같은 행복한 감정이 아니었다.기분나쁜 의무감과 고통.의무감은 그를 편안한 세계로 인도하는 속삭임들과 싸우도록 쉴새 없이 몰아댔다.하지만 의지의 탈을 쓴 겉모양뿐인 의무감은 속삭임들의 유혹을 때때로 승낙하기도 한다.그럴 때면 육신의 고통이 다시 살아나 자신이 아직 이승에 있어야 함을 자각시켰다.더 큰 고통을 세뇌시킨다.시체는 그 엄한 싸움에 못이겨 또다시 혼절했다.        
지나가는 이들의 말소리에 시체는 다시 짧은 휴식에서 깨어났다.눈에 보이는 저 작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구멍에서는 벌레,사회부적응자,구제불능,쓰레기,오물.소리는 다르지만 뜻하는 바는 결국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그렇지만 자신을 음악들 속에서도 그는 그 자신을 결코 비하하지 않았다.도저히 욕할수 없었다.맹세하건대,그는 제 정신이었다.제 정신으로 나락을 뒹구는 것은 도저히 못견딜만큼 괴로운 일이다.괴롭기에,괴롭기에 이 심연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그러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나락은 이름뿐만 나락이 아니었던 것이다.결코 빠져 나올 수 없기에 나락이었다.언제 내려올지 모를 허구의 동아줄을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진다.불안한 마음에는 스스로 몽상을 비난하는 것들로 가득했다.그러나 이쯤하자.오늘을 버티려면 이쯤에서 나를 추스르지 않으면 안된다.나쁜 생각은 그만두자.구원은 분명 언젠가는 온다.올것이다.        
한 때는 멀쩡했을지 모를 두 다리를 짓눌러 앉은뱅이로 만든 그 모든 것들과 거대한 무력감 속에서 그는 오늘도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는 손길을. 구원을 반드시 보리라는 의무감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공허한 날숨을 내쉬었다.그렇게 오늘도 그는,오늘을 살아갔다.        
앉은뱅이의 삶. 절규라는 노래조차 할 수 없는 벙어리. 언제나 듣고 싶어마지 않지만 결코 들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소리. 벙어리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