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남자는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송이눈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해서 내렸다. 눈은 이미 산을 뒤덮었다. 설피를 신은 그의 발이 얇고 넓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이따금 쉬었다가 다시 걷곤 했다.
해가 질 무렵이 찾아오자 그는 산 중턱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리를 펴고 그대로 걸어가면 천장에 머리가 닿는 작은 동굴이었다. 동굴의 안쪽은 깊은 어둠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동굴에 산다는 괴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남자는 주변에서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주웠고,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몸을 충분히 데울 만큼의 불을 지필 수 있었다. 남자는 설피를 벗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른 나뭇가지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면서 탔다. 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동굴 뒤쪽으로 늘어난 남자의 그림자를 춤추게 했다.
눈은 아직까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쇠통에 눈을 담고 녹이고, 딱딱한 육포를 여러번 씹어 삼켰다.
녹은 눈을 마시고서 모아온 마른 나뭇가지를 더 던져넣었다. 찾아오는 온기가 얼어붙었던 그의 감각을 되살렸다. 데워진 손으로 볼을 비비니 몹시 차가웠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은 것 같았다. 불을 피우는데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동굴의 어둠을 등지고 있던 남자는 등이 간지러워 벽으로 등을 기대었다.
기온이 더 떨어졌다. 식사를 마친 그는 두꺼운 모포를 덮으며 동굴 더 깊숙히 들어갔다. 그 와중에 돌멩이 하나를 걷어찼다. 투둑투둑 하고 돌멩이 구르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정말 깊은 동굴이군. 그가 생각했다.
그가 벽에 몸을 기대앉았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
어렴풋한 떨림에 그는 환청을 들은 것인가 의심했다.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도와주세요."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던 남자는 눈을 떴다.
청아하나 힘이 없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동굴을 울리며 명확하게 들려왔다.
"거기 누구 없나요? 도와주세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 붙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남자가 동굴 안쪽을 향해 말했다.
"누구요?"
"다리를 다쳤어요. 꼼짝도 할 수 없어요."
"동굴 안쪽에 있는거요?"
"네. 제발. 도와주세요."
남자는 동굴의 안을 향하여 한 발을 내딛었다가, 멈추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당신 사람이오?"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남자는 여백을 뒀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소. 이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당신의 말을 곧대로 믿어 행동하는건 몹시 위험한 일이오."
"어떤 이야기이기에 사고를 당한 객을 위해 작은 도움하나 줄 수 없는 건가요?"
"이런 이야기요. 산 깊숙한 동굴엔 괴물이 산다고 하오. 어찌된 것인지는 몰라도 괴물은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없소. 푸르른 계절엔 동굴을 안식처로 삼는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사는데,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뚝 떨어진다지. 결국 괴물은 겨울에도 먹이를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소. 그 방법이란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란 이야기요. 몸을 숨기고 사람인체 하며 동굴 안으로 사람을 꾀어 잡아먹는다는거요. 공교롭게도 지금이 그 상황이오."
"선생님 말씀은, 제가 그 괴물일거란 이야긴가요?"
"꼭 그렇다는건 아니오. 그럴지도 모른다는거요.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제가 단지 동굴 안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게 괴물이라는 증거가 되나요?"
"앞서 말했듯 단정은 아니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내보일 수 없는데다가 내게 동굴 안으로 들어오라 이야기하고 있소. 의심할 근거로는 충분하다 생각되오."
"선생님. 저는 산을 넘어가려던 객일 따름입니다. 거친 눈발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 들어섰다가, 호기심이 동해 동굴 안을 살피던 중에 발을 헛디뎌 동굴 안쪽으로 떨어졌습니다. 동굴의 안쪽은 가파른 경사로거든요. 일어서려고 했지만 무리였습니다. 아무래도 두 다리 모두 부러진 듯 해요. 때문에 선생님을 수고스럽게 이리로 와달라 부탁드린 것 입니다."
"그치만 증거가 없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것이 증거가 될겁니다."
곧 동굴 안쪽에서 쩔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조금 걸어가니 주머니 하나가 눈에 보였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목소리가 말했다.
"제 전낭을 던졌습니다. 약간의 금전과 제 신분을 밝힐 패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목소리는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이야기했다. "이것으로 저에 대한 증명이 되었습니까? 이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 쪽 다리엔 감각이 없습니다. 도와주신다면 그 안의 금전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남자는 주머니를 확인했다. 목소리가 말한 신분과 일치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말한 신분 그대로요. 하지만 이것이 당신의 신분을 증명한다고 말할 수 없소. 이야기 속의 괴물이 실존한다면 그 괴물에게 잡아먹힌 사람은 아주 많을테고, 개중엔 신분을 증명할 패를 가진 사람도 있었을거요. 이 패 또한 그러한 것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면……"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절 도울 생각이 없는 것 아닙니까? 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산을 내려간다면 더 큰 보답을 약속 드릴 수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낡이 밝으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겠소. 듣자하니 괴물은 태양빛을 싫어한다하오. 다행히도 이 동굴은 동쪽을 향해 입구가 나 있고, 해가 뜨면 동굴 안쪽까지 햇빛이 들어설거요. 그럼 그 때 구해드리겠소."
"아뇨. 안 돼요. 전 이미 한계입니다. 저는 나흘 째 이곳에 있고, 이틀 전에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감각이 없는 다리에선 매퀘한 냄새가 납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정신을 잃고 있었고, 혼미한 감각 중에 무언가 제 머리를 때려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돌멩이었던거 같군요."
"나는 당신이 괴물일 가능성도 상정해야하오. 당신이 괴물이 아닐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소.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고도 당신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별다른 도구가 없소."
불꽃이 점점 작아지자 남자는 돌아가 남은 나뭇가지를 모두 태웠다. 밖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눈발이 더 거세졌다. 동굴 안쪽으로 눈이 문지방 처럼 쌓이며 들이닥쳤다.
목소리가 말했다.
"선생님. 말씀드리고픈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요?"
"저는 솔직하게 말해서, 선생님이 환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저는 이제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을하고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의 환영, 아니. 환청을 듣게되는 것이지요. 저는 선생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고, 그저 목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때에 그런 환청을 듣는다해서 이상할건 없지요. 그런데,"
목소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이 경우엔 선생님이 상당히 괘씸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선생님. 떨어진 식량으로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이 동굴 바닥에서 다리가 썩어가는 채로 나흘 간 있었습니다. 이 겨울, 산을 오가는 사람은 잘 있지 않는 법이니 저는 이대로 죽을거라 믿었지요. 그런 그때에 선생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일순간 저의 희망이셨죠. 하지만 겨우 나타난 희망이 저를 괴물로 내몰며 살려주지 않겠다니. 그것이 제 환청이라 생각한다면 괘씸하다 느낄 수 밖에 없지요."
"난 환청이 아니오."
"꿈을 꿀 때 그것이 꿈이라 생각하는 경우는 잘 없지요."
"……좋소. 내가 환청이라 칩시다. 그래서 그게 어쨌단 말이오?"
바닥을 툭 하고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발치의 떨어진 그것은 둥근 원통형에 끄트머리에 길다란 심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목소리가 말했다.
"저는 제 직업과 관련해, 다소의 폭약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밖으로 향하는 발소리를 낸다면 남은 폭약을 모두 터트리겠습니다."
"뭐요?"
"선생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다른 소리도 내지 마십시오. 폭약을 터트리겠습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 작은 동굴 정도는 무너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혹 이 동굴이 무너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눈사태 정도는 일으킬 수 있겠죠. 눈사태는 동굴 입구를 막을 것이고, 눈 덮힌 동굴 입구를 나서는데 수 일이 걸릴겁니다. 식량이 충분하실지 모르겠군요."
"왜 그러는거요? 무슨 생각이오?"
"제가 말했잖습니까. 당신이란 환청은 괘씸합니다. 꿈이라면 최악의 악몽입니다. 그러니 제가 죽더라도 기필코 날려버릴 심산입니다. 선생님이 환청이 아니라면 저를 구하는 것으로 증명해주세요."
"무슨 말이오? 내가 지핀 모닥불이 거기서도 일렁이지 않소?"
"환각이겠지요."
"당신이 깨어난건 내가 돌멩이를 걷어찼기 때문이 아니오?"
"환촉이겠지요."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저는 다시 잠이 옵니다. 곧 의식을 잃을 것 같아요. 여기서 다시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전에 이 폭약을 태울거에요. 선생님이 실재임을 증명하려면 제게 다가와 손을 뻗어 절 도와주시는 것 뿐입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당신의 말이 틀려서 내가 진짜 사람이라면? 그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거요?"
"그 경우에는 죄송하다 말씀드릴 수 밖에요."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가 뒤로 돌면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을 괴물로 의심할 수 밖에 없소. 나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소."
"선생님!"
남자는 폭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이 폭약 때문에 더 의심이가오. 아침이 되면 확인해보겠소."
"선생님! 가지 마세요!"
"그대가 정말 사람이라면 미안하게 됐소."
"돌아서시는 순간 폭발 시키겠습니다! 가면 안 되요."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가 발을 옮기자 돌 부스러기가 부스럭 소리를 냈다.
그가 다음 발을 때었을 때, 여자는 눈을 질끈 감고서 부싯돌로 불을 튕겼다.
심지 바로 위에 붙은 불은 곧장 폭약 안으로 쫒아들어갔고, 일순간 폭약이 터져나가며 화염이 동굴을 가득 채웠다. 남자는 그대로 불에 삼켜지며 동굴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그는 지글거리며 불탔다. 굉음이 산을 울렸고 산에 쌓인 눈이 능선을 타고 내려와 동굴의 입구와 남자를 덮었다.
그는 계속해서 걸어갔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폭약을 터트리지 않소?"
"……저는 선생님이 환상이 아니라 진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폭약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남자가 돌아봤다.
"당신이 괴물이 때문이 아니고?"
"선생님! 저는 이제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저는 저 아래 마을에 삽니다. 부탁드리건데, 산을 넘어가시면 전낭을 보이며 제 죽음에 대해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남자가 어둠을 보며 말했다.
"당신이 괴물이 아니었다면, 그렇게하겠소."
남자는 모포를 덮고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는 저 동굴에 있는 것이 정말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했고, 정말 사람이라면 몹시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괴물일까, 사람일까.
날이 밝자 남자는 으슬으슬한 몸을 이끌고 동굴 안 쪽으로 들어섰다. 햇살이 그의 등 뒤로 쏟아져 동굴 안 쪽 까지 가 닿았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서자 급한 경사의 비탈이 보였다. 남자는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 너머를 봤다. 이내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본 것은 꿈틀거리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햇살을 피해 몸을 움추리며 주먹만한 눈동자로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 아래로 하얀 백골들과 죽은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과 옷가지가 널려있었다. 괴물이 으르렁거리자 남자는 조용히 뒤돌아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는 햇살을 받으며 설피를 다시 신고 걸어가며 마을에 가 저 동굴에 괴물이 있음을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그가 보게 된 것은 한 여성의 사체였다.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는 시체는 차가웠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쪽 다리는 걷어져 있었는데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미안하다고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그 날 오후 중에 마을에 도착했고 그녀의 가족에게 죽음을 알렸다.
남자가 말했다.
"……당신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드오. 괴물이 그렇게나 논리정연할거라 생각되지는 않으니까."
"그럼 어서 도와주세요."
"좋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두운 동굴을 조심조심 내딛었다.
"조심하세요. 저도 그 쯤에서 넘어진 것 같거든요."
"알겠소."
남자는 좀더 몸을 낮추면서 동굴 깊숙히 들어섰다.
그때 그의 허리로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그가 어어, 할 때 동굴 안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졌다. 남자가 속았다고 생각했을 때 괴물은 이미 그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괴물의 주위로 백골들과 죽은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과 옷가지가 널려있었다. 남자는 끄르륵 피거품을 내뱉으며 죽었다.
그가 발을 내딛자 물렁한 것이 밟혔다. 여자가 아, 하고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 그건 제 손이에요."
"미안하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일어설 수 있겠소?"
"아뇨. 그런데, 정말 계셨군요."
"가서 불을 가져오리다."
남자는 다시 횃불가로 가서 나뭇가지에 천조각을 두르고 기름을 먹여 간단한 횃불을 만들었다. 불을 밝혀 다시 돌아가자 여자의 모습이 이제야 보였다.
지친듯 미소지은 여자는 이제야 믿으시는군요, 말하자. 남자가 미안했다고 중얼거렸다.
여자가 횃불을 든 사이 남자는 그녀의 가방을 챙기고 그녀를 안아들어 동굴 입구로 향했다. 모포를 깔아 그녀를 눕혔다. 한쪽 다리는 걷어져 있었는데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때요? 괜찮을까요?"
"내일 의원에 가봐야알 것 같지만…… 그리 좋다고 말하긴 힘들군."
그는 대화를 나누며 간단한 음식을 그녀에게 먹이며 간호했다.
여자는 몸을 녹이다 잠들었다.
날이 밝자 남자는 여자를 업고 산을 내려갔다.
햇살이 눈 덮인 산맥을 덮었다. 눈은 이미 그쳐있었다. 남자는 힘겹게 한발한발 내딛었다. 설피가 남기는 발자국은 어제보다 더 깊었다.
등에 업힌 여자가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왜 그러시오?"
"어떻게 저를 구하겠다 마음먹으신 겁니까."
"당신이 구해달라하지 않았소."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하신건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제가 괴물일지, 아닐지는 반반의 확률이 아닌가요. 절 구하기로 마음먹으신건 어떤 이유가 있는게 아닌가요?"
"그런거 없소. 돌아서면 폭약을 터트린다기에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지."
"죄송합니다."
"됐소. 어차피 폭약도 내게 던진 것 하나 뿐이었잖소. 사례를 생각했을지도 모르오. 나는 부유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마세요."
"아니. 큰 건 바라지 않소. 마을에 집이 있다고 했던가?"
"아,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나는 이쪽은 초행이니 아는 얼굴이 없소. 몸 누일 자리라도 마련해준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알겠습니다."
해가 하늘 가운데 있을쯤에 그들은 잠시 쉬며 끼니를 때웠고, 일어나 다시 걸었다. 남자는 혼자였다면 지금쯤 마을에 도착했을거라 생각했다. 해는 천천히 움직였다. 남자도 천천히 걸었다. 구름은 없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보면,"
"예?"
"내가 괴물에 잡아먹히는 것 보다 누군가 나 때문에 동굴 속에서 죽어간다는 사실이 더 괴로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군요. 동굴 속의 목소리는 분명 둘 중 하나였을텐데도 말이지요."
남자는 그렇소, 대답했다.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