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쇠사슬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있다. 인연,운명,관계 뭐라 표현해도 좋다.
이 세상은 감옥이다. 사회,조직,시련 뭐라 생각해도 좋다.
신이 내린 축복은 우리를 가두고 심장을 옳아메버렸다.
잉태는 유죄를 선고받은 재판이며
삶은 참회를 위한 굴레의 연속
죽음은 죄의 용서를 위한 마지막 슬픈 집착이겠지
지구라는 행성은 그런 고리를 한 가득 담은 양동이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것을 받치는 불쌍한 기둥이리라
만약 이 에덴의 동산에서 최고의 행복이 있다면
그건 최고의 『    』이겠지
아 아무래도 좋아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너무나도 춥다.


--

평소와 똑같은 명동의 거리. 겨울이라 거리에서 따뜻하게 털옷이나 잠바를 입고 목돌이를 두르거나 귀마개를 걸친 이들이 눈에 선하다.
개중에는 홀로 거리를 고독히 걷으며 앞으로 다가올 신의 탄생일을 원망스레 생각하는 솔로나 다정하게 발맞춰 걸어가는 커플들
혹은 아무 생각없이 다가올 겨울방학의 자유감을 미리 만끽하는 학생들과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가족들이 보였다.
겨울방학 시즌에 명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광경 그러나 그 광경은 나의 심장을 괴롭게 옥죄는 고문 행복에 충만한 거리의 모습은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보고싶지가 않다.

"후 우"

나는 손에 쥔 블랙커피를 마셨다, 원두의 순수한 쓴맛이 나의 혀를 타고 넘어가면서 올라오는 정체모를 울분감을 달랜다.
그러고서는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자연스레 눈이 찡그러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통사람의 눈에는 푸른하늘과 솜사탕같은 구름에 끼인 빛바랜 태양이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와 동시에 하늘에 무수히 수놓여진 쇠사슬이 보인다.
이것의 의미가 뭘까?

쇠사슬의 줄기는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들과 인간 사이를 묶고 감싸고 옥죄고 구속한다.
그것만으로도 난 쇠사슬이 인간들 사이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뜻하는 것임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 것들은 종류에 따라 쇠사슬의 줄기가 굵거나 얇거나 헐겁다 아마 옭아매진 숙명이나 단체의 얽매여진 정도에 따라 그 종류가 틀릴 것이다.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 갓난아기는 태어날때부터 주민등록증이 세겨져 국가라는 감옥에 번호를 찍고 아이가 크면 어린이가 되고 그때는 학교라는 쇠사슬을 채운다.
학교라는 쇠사슬을 벗어던지면 그때에는 더 크고 굵은 쇠사슬이 너희를 감싼다, 그때에는 사회라고 불러야겠지 그 쇠사슬을...
그리고 그 쇠사슬은 영원히 너희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명동거리를 거닐고 있는 모두가 예외가 아니다.
모두 가두어져 있다, 모두 옭아메여져 있다, 모두 쇠사슬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는 쇠사슬이 옭아매여 있지 않을까?

「어디에 있어?」 「지구에 있어」

「어떻게 살아?」 「사람들과 함께 있어」

이 두개의 '질문'에 만족하는 '해답'을 가지고 있으면 쇠사슬은 우리를 감싼다 그리고 불행과 행복을 건네어준다.
하지만 나에게는 질문에 만족하는 해답을 갖고 있음에도 그 사실에서 예외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고독이라는 자유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외롭지 않다 단지 혼자만이 있기에 광활하고 부유감이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았을 뿐이다.

그 선물을 웅켜쥐고 사는 것이 내 삶 그렇다면 죽음은 어떤 형태일까?
보통 사람들의 죽음이 따뜻한 자신의 가족,친구,지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지로 먼지로 돌아가는 따뜻한 것이라면
내 죽음은 사막에서 조용히 고독히 차갑게 생명을 사그라뜨리는 것일까? 아니면 무미건조한 삶 앞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선택할 것인가?
어찌되었든 두 선택은 먼 미래의 일 지금의 나는 그저 내 삶을 내 선물을 든 채 살아간다.
목 적이 없는 삶, 쳇바퀴 안의 햄스터처럼 똑같은 일만을 반복하는 삶 그러면서도 지체하면 뒤쳐지기에 혹은 시간이 떠밀기에 어쩔수 없이 계속해야가는 의미없는 삶
그때까지는 그랬다, 행복,사랑,우정처럼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는 일반인보다 더 삭막하고 유희없는 세월들 나는 그날들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그때까지만해도..

__


*


가 끔식 시간이 멈추든 시간이 흘러가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인생 최고의 순간인지는 죽음이 가까워 졌을 때 삶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가끔은 한 번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즐 거운 때를 지속시키고 싶다, 그 순간을 반복하고 싶다.
질릴 때까지, 아니 질리고 나서도 계속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 있다.
그것을 잃는 것이 무섭다. 그 앞에 있는 미지가 무섭다.
내 손 안에 있는 불안함은, 분명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나같은 학생이라면
솔직히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진학 이라든지, 취직이라든지, 장래에 관련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로,어른과 아이의 중간인 듯한, 언벨런스한 부유감이 그렇게 만든다.
그 것은 미래에 대한 단서가 좀처럼 잡히지 않을 때, 특유의 현실 도피인 듯한 찰나의 가치관.
말하자면 별로 신경쓸 것 없는 유행병.
일종의 홍역이지만, 나는 거기에 언제까지나 걸려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태감이 들 정도로 재미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는 그 세상 속에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 너, 예를 들어 자신의 인생을 소설이라고 생각해봐라"

그 날, 그 녀석이 이런 말을 말하기 전까지는

"만화든 게임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뭐든 좋으니까,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장편 이야기로, 자신을 그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봐라"

요 람에서부터 관까지 계속되는 이야기, 사소한 것에서부터 소중한 것까지, 자신에게 관련되는 모든 인물,사건을 정리한 대하소설
인 생을 그런 걸로 가정해 보라고 그 녀석은 말했다.

"거기서 질문 하나, 지금 자신이 엮고 있는 소설은, 너 자신이 독자로서 재밌는 거냐? 너는 주인공으로서 제대로 활약하고 있냐?"

옛날부터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말이,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문법이 어색하다던가 어휘가 빈약하다던가 그런 스킬을 얘기하는 게 아냐.
이야기로서 흥미진진하고 많은 독자를 몰입시킬만큼의 재밌는 이야기냐? 아니면 평범한 엑스트라와 다를 바 없는 걸 말하는 거냐?
비슷한 장르와 비교해봤을 때, 툭 튀어나온 특징이 있는거냐?"

조금 난처해졌다,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 같다, 필시 그 녀석의 말이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내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다른 놈이 그렇게 사는 인생은 사는 의미가 없어
이곳이고 저곳이고 누구라도 살 수 있는 듯한 삶의 장르를 선택해도 어쩔 수 없잖아?"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학교 옥상에 설치된 커피 자판기에서 블랙커피를 선택해 마시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친구랑 바보처럼 수다 떨고, 애인을 사귀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나쁘지는 않지만 드문 것도 아냐.
그런 건 지구에 사는 동년대가 리얼타임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난 별로 수가 많다고 바보 취급 하는게 아니다?
요점은 하나, 선택하기 쉬운 길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
선택사항이 있는 듯이 가장해 놓고, 사실은 쭉 뻗은 오솔길일지도 몰라."

즉 우리들은 선택하고 있지 않고 선택되고 있는 것뿐이라면?

"그건 너의 관점일 지도 몰라 무엇을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나의 질문에 그 녀석은 곰곰히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윽고 한참 뜸을 들인 다음 말했다.

"그냥 앞으로의 펼쳐질 이야기가 이미 어른들의 이야기들, 선배들의 인생의 리뷰들을 통해 간접경험으로 체험한 것 같아서 말야
미래가 어떻게 될진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예지능력을 가진 초능력자 따위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뭐랄까 '안봐도 비디오다'라고 표현할까?
실제로 내 과거와 내 현재에서 변한 건 내 몸밖에 없어."

" 하지만 인생은 무슨 일이 펼쳐질지 모르잖아 인간의 이야기가 그렇듯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해
쇠사슬을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어, 어느덧 사람을 엮어놓은 쇠사슬이 갑자기 어느순간을 기점으로 두꺼워지거나 헐겁거나 끓겨지기도 해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시점을 플래그로 하여서 바꾸어지는 거야."

그 녀석에게만은 나는 내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이야기해주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쇠사슬이 인간들을 감싸고 옥죄고 이어지고 풀리고 또 자물쇠가 채워지고…흡사 마치 인간들의 인생이 지구를 무대로 펼쳐지는 신의 인형극 같았다.
철학을 좋아하는 녀석이니 이 말을 듣고서는 '타임 워프'에 나오는 시간 중 숙명론적의 운명의 열쇠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인간들을 옭아매는 쇠사슬 따위 맘만 먹으면 쉽게 풀 수 있는게 아닐까 하고 확신없는 확증을 가졌다. 그 당시만해도.


" 그렇다면 소설로서의 너의 이야기에 발단,전개,갈등,고조,완결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너의 쇠사슬이 보이는 세상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그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나도 이 시야에 익숙해졌을 적에 간혹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인간을 구속하는 쇠사슬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지는데 그 시스템이 신이라는 작가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하늘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인생을 시나리오를 짜서 연극을 펼치고 있다는 오컬트적인 결론이 돌출된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신도들이 하느님께 더 나은 삶을 위해 빌고 시험이 닥쳐오지 않게 기도하는지 납득이 가기는 하다만 그러면 신의 인형극을 볼 관객들은 누구란 말인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인형극안에 있는 인형들을 위해 펼쳐지는 인형극이라니 그건…

 
" 그건 굉장히 해학적이기도하군"

저물어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웃는다, 그 녀석도 내 말에 어느정도 동의하는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__

*

내가 그 녀석을 만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두달 뒤 학교의 옥상에서였다, 그 녀석은 그때에도 지금처럼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블랙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 아아 이 끔찍한 세상 같으니라고!"

그 녀석은 노을을 향해서 삭막한 세상을 축복해주는 것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심란한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와 그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그 녀석의 대사가 조금 유치해보였다, 요즘 교양인들이 흔히 말하듯 중2병 환자란 이런 것일까 싶었다.
여하튼 내 경험으로 보아 그런 냉소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수동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고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을 '개똥철학에 푹 빠진, 시크함이나 추구하는 자진아'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미숙하다는 증거겠지, 더불어 내 자아의 신화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테고, 그렇다면 세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변해야하나?"

그 녀석은 들어주는 이도 없는데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혹은 그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수도 있었다.
다 행히 옥상에는 나와 그 녀석 뿐이라 그 녀석을 미친놈 취급하는 녀석은 없었다, 난 아까 말했듯이 그 녀석을 중2병 환자라고 취급했으니까 아니 그럼 미친놈 취급한게 되어버리나?
하지만 그 녀석은 내가 옥상에 침입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렇겠지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즉 완전히 마음을 문을 열고 무방비상태가 되는 것은 한참 예민할 동급생들에게는 패배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인데 좀 더 들려줄 수 있을까?"

나 는 그 녀석의 옆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내 행동을 간섭이라 생각했는지(틀린말은 아니다)순간 날 내쫓으려 했다.
그 것이 욕설이나 협박이었다면 우리 둘은 다시 만날 일은 없었겠지만 불행히 그 녀석은 변명하는 것을 택했다.

"아아~ 이건 말야 내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풀이야, 그냥 푸념일 뿐이라고, 셀러리맨들이 술 마시면서 세상비판하는거나 같은 레벨이지."

" 푸념도 그냥 이도저도 안되는 주절거림도 있는가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푸념도 있지, 뭐랄까 네 녀석의 말은 공감대가 느껴져."

그 녀석은 시크하게 얼굴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뭔가 철학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난 그다지 사색적이지 않아."

파티고라스가 수학을 싫어했다는 것처럼 설득력 없는 변명이군 그러나 나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 천천히 그 녀석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냥 사회로 나가는 게 두려울 뿐이야."

새는 태어날 때 알껍질을 깨고 나온다, 그 알껍질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알껍질은 세상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했음에도, 새로운 세상에서 상처를 입고, 다시 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시간은 자꾸만 우리에게 세상을 깨도록 강요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러자 원래는 껍질을 깰 수 있는 용기조차 점차 사라지고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만이 커진다.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깨고 나가는 것이 무섭다고 그 녀석은 말하고 있었다.

"어린시절에 머물지 않길 바래."

악 어는 태어났을 때는 아주 작다, 너무 작아서 작은 새에게 잡아먹힐 정도다.때문에 새끼악어는 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한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악어의 몸집은 커지고 오히려 새가 악어를 피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만약이라도 악어가 조금이라도 고등생물이었으면 어린 시절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새를 기억하고서는 오히려 새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서커스에서는 코끼리가 어릴적에 그 힘으로는 풀지 못한 쇠사슬을 묶는다.처음에 코끼리는 여러번 반항할 것이다 하지만 그 쇠사슬은 결코 풀리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 쇠사슬을 자신의 한계로 단정짓는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쇠사슬을 풀고 나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자신의 한계로 결정한 쇠사슬을 풀지 못한다, 어렸을 적 자신을 구속했던 쇠사슬은 자기가 풀 수 있는 힘을 갖게 됬음에도 불구하고 풀 생각조차 품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침팬지 다음으로 아이큐가 높은 코끼리가 오히려 멍청한 악어보다 더 어리석어 보인다.
 
인간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너무 똑똑하면 기껏 넓은 세상으로 나와도 스스로를 구속해버린다. 
나는 그 녀석이 고등한 생물로서 알로 돌아가는 동안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비록 알로 돌아간다하더라도 그때의 우리는 새끼새가 아닌 조금 덩치 큰 새가 되어있을 테니까..
상처 입을 때마다 조금이라도 성장할 테니까 계속 세상을 파괴해보면 어느새 자유에게로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코끼리처럼 어렸을 때 자신을 묶어두었던 쇠사슬에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고는 영원히 묶여야되는건 억울하잖아?

"있지 난 말야 볼 수 있어."

" 뭘 말야?"

"쇠사슬."

"그건 누구나 볼 수 있잖아."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에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으으으으음"

나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녀석에게 내가 보는 세계에 대해 완전히 이해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결국 그건 너무나도 횡설수설한 내용이어서 지금도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녀석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었고 두려워하는 눈치였다는 것이었다.

" 그럼 넌 타인의 인생을 볼 수 있다는거냐?"

"그렇지 하지만 그건 은유적인 형태로 볼 수 있어, 영화에서처럼 미래의 일을 직접적으로 오버랩에서 보는 것이 아냐, 쇠사슬을 통해 은유적으로 짐작하는 거지"

"너…그렇다면 네게도 쇠사슬이 보이냐?"

"쇠사슬이 없는 인간은 없어, 적어도 사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by 소크라테스였나? 아무튼 사회에 있다면 누구든지 쇠사슬에 얽메이기 마련이야
쇠사슬이 없다는 것은 친구도 애인도 없고 부모도 없는 쓸쓸한 노인들이나 왕따 뿐이야. 뭐 사회부적응자도 이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핫, 재밌군."

" 이건 너한테만 가르쳐주는 비밀이야, 웬만하면 숨겨줬으면 해, 난 학교에서 예언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거든."

내 말에 그 녀석은 짖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너는 쇠사슬에 묶여 있냐?"

나는 쓸쓸히 웃었다.

쇠 사슬은 우리들을 구속한다,그것이 한편으로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안내자가 되어 주기도 하며 우리를 증명하는 것이 되기도, 가끔 우리를 시험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내 눈에서 세상은 두가지 분류로 나뉘어지게 된다, 쇠사슬에 얽매인 사회인, 그리고 쇠사슬에 얽매이지 않은 부적응자, 혹은 자유인
나는 어느쪽의 사람이 되어야 행복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결론적으로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의 몫이며 그 사람이 자초하거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__


*

내 가 고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단순히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떨고 놀고 유쾌한 것만 밝히는 일에 실증이 났을 뿐이다.
또 어쩌면 남들과는 다르게 차별되게 느껴지고 싶은 홍역병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 이른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2병
그 홍역에 걸렸을 때부터 난 당연히 나를 구속하는 학교가 무척 싫게 느껴졌고 때문에 나는 땡땡이를 밥먹듯이 쳤다.

머리 도 기르고 염색도 하는데다가 급우들에게 늘상 시비를 걸고 다녔고 담배와 술은 기본, 당연히 학교에서는 나를 문제아로 취급했다. 그러자 나는 학교라는 세상에서 저절로 고립되어 갔지만 나는 그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 비뚤어진 자부심이 생겼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학교 내에 내 평판이 나빠질대로 나빠지고 그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어느 날 나는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선생님을 폭행했고 그것을 빌미로 나는 퇴학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난 중학생이었기에 학교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나는 몇달동안 허성세월을 보냈고 뒤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입 검정고시를 치뤄야했다.
그때까지는 깊은 분노에 사로잡힌 탓에 파멸까지 몰린다 한들 결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그 이후로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져 그것이 가정의 파탄과 이혼을 불러온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정신을 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자초한 것이다.나는 현실에서 너무 이탈해 있었으며 그렇기에 현실은 나를 세상에서 몰아냈다. 그때 뒤늦게 난 나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만해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정착했다.
이 것이 나라는 인간의 역사. 난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편이였고 무언가에 열정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아이였다, 나는 그점을 몹시 후회한다.
쓰레기같은 삶을 어떻게든 재활용하고 싶었지만 늦었다, 이미 나는 깊은 분노에 빙의된 상태였다.
난 내 인생을 후회했고

「그때 내눈에 쇠사슬이 보이기 시작했다.」

__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학교 급식을 받던 중 우연히 한 여자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가 보아온 사람들 중에서 나의 흥미를 이끄는 게 있었는데 그것은 쇠사슬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얇은 끈이 묶여 끓어질듯말듯 묶여있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 접한 케이스였기에 나는 그 소녀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멀리 있는 소녀의 명찰을 살펴보았다.

「시 혜」

밥을 먹은 다음 나는 곧장 옥상으로 갔다, 옥상에는 평소대로 그 녀석이 앉아서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 야, 너 시혜라는 애 알고있냐?"

그 녀석은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녀석이지 그런데 조금 의외인걸? 제아무리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는 너라도 소문은 들을 줄 알았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쉬는 시간에는 매일 교실을 밖으로 나가서 놀기 때문에 애들끼리의 소문을 들어볼 시간이 없어."

"쯧쯧 학교생활에 좀 애정을 가져보는게 어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피차 그 녀석도 사실 학교생활에 애정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 그런 나의 행동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시혜, 일단 그 애는 너처럼 부모님이 이혼했어, 2년전 일이었나,아무튼 그 뒤로 성격이 좀 폭력적으로 변했달까? 아니 문학소녀로 변했다고 보는게 옳겠지."

"우리처럼?"

내 말에 그 녀석은 한동안 날 올려다보더니 잠시 뒤 내 말을 이해한 듯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시혜가 우리 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그녀는 책을 많이 볼 뿐이야, 흔히 가정이 파탄난 아이들이 갖게되는 증상 중 하나지"

상 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충격으로 인해 입을 닫아버린다.
우선적으로 그 녀석의 '너처럼'은 어순이 맞지 않다. 내 가정은 내가 자초해 파괴시켜버렸고 시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이란 것에 인해서 갑작스런 파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 과거에 속죄하기 위해 산다, 과거를 도피하려는 시혜와는 처지가 다르다.

" 그런데 네가 남한테 관심을 갖다니 의외네?…라고 하겠군 너의 반 반장"

"그렇겠지, 그래서 반장을 피해 너한테 온거다."

"하"

나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산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사나 모임 같은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물론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어 하는 거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보람스러울 리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나에 대한 벌 혹은 수련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부반장까지 올랐다.
반장과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반장은 내가 반에서 곁돌며 남 모르게 일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해 늘 나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관심을 보이곤 했다.(물론 전혀 고맙지 않고 귀찮을 뿐이지만)
만약 반장한테 말했다가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지만 그 녀석은 타인의 일에 크게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이 매우 맘에 든다.

"혼자라…"

세상에는 혼자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과 혼자만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쪽은 불행한 측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으면서 또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모순적인 처지에 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시혜는 그런 처지에 속한 것이 아닐까.

"과연 행복할까?"

나는 조심스레 시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상처입는것이 무서워서 관심없는 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 있음으로서 행복을 느끼는 편일까?

"야, 너가 이렇게 타인에게 흥미를 보이는 건 처음이다?"

"응? 아아 마치 내 옛날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리고 뭐랄까…어 뭐 그런거다"

그 녀의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뒷말을 흐리며 상황을 얼버무리듯 일어났다.

"그래 알았어, 그럼 난 이만."

나는 그 녀석과 작별인사를 한 후 학교 계단쪽으로 들어섰다.


__


조 직폭력배마냥 벌써부터 사시미를 들고 다니는 소녀, 피와 폭력에 굶주린 소녀, 고독에 너무 오래 머문 나머지 광기를 마셔버린 소녀
그 소녀가 사시미를 들이밀고 있는 것으로부터 처음으로 나와 시혜는 만나게 되었다.

"정말 미쳤군, 학교에서 칼을 들이대다니"

"응응, 그래 나 미쳤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조금 나 자신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 같네, 그런 의미에서 앞부분은 취소,취소 대신 부탁을 좀 하나 할께."

"부탁?"

"응응."

시혜는 내 어깨를 붙잡고 발끝을 들어 입을 내 귀 옆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시혜와 나는 물리적으로 접촉하려는 찰나에 돌입했고 순간 난 예전부터 내가 여성기피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시혜와의 스킨쉽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동시에 지금 내 목앞에 들이밀어진 사시미를 경계하고 있는 나 자신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부탁 이 뭔데?"

"별거 아니야, 내게 필요한 건 무관심과 외면뿐, 그것만 지켜주면 난 너를 해치지 않겠어 알겠어?"

순 간 내 눈앞에서 나는 과거의 내 자신과 시혜를 오버랩해서 보았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으며 절대 타협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한 모습
날 도와주려는 선생님께 욕을 하고 폭행을 하고 싶어했던 내 자신, 그녀는 과거의 나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순간 나는 내 안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의 나같으면 분명 시혜의 요구에 따랐겠지 하지만...지금은 다르다.

"싫어! 난 네 친구가 되고싶어"

단호한 대답에 시혜는 조금 놀란 듯 어어하며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놀란 건 그녀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 것에 대해 난 몹시 놀랐고 그런 나 자신에게 당혹감과 내 안에 잠든 용기를 느꼈다.

"지금 괜히 영웅행세를 하는 거라면 그만둬 주지 않을래? 꼴보기싫어."

"글쎄, 내가 타인에게 접촉하려는 건 내 자유가 아닐까?"

"그건 방종이야, 상대방이 싫다고 하는데 계속 간섭하겠다면 그건 그 사람을 무시하는거라고 그리고 그것이 나에 대한 무시라면 난 참지 않겠어."

그 러고서는 시혜는 내 목에 사시미를 들이댄다, 그러자 내 목가운데에서부터 상처가 생기며 그곳으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 네가 뭘 안다고 친구가 되겠다는거야? 네가 뭔데? 응? 관심따위 필요없다고 했잖아"

"진정해"

"진정하긴 뭘 진정해?"

나는 시혜에게 안쓰러움을 느꼈지만 표정으로는 무표정함을 유지했다, 어설프게 시혜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시혜는 아마도 그녀를 이어주는 끈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리라 그런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는지 아니면 평안함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녀는 낯선 이가 보여주는 친절에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냥 인조이라고 해도 좋아, 딱 한번만 너랑 친구가 되고싶어."

"뭐?"

시혜의 손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눈이 촉촉해지고 벌겋게 물든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내가 친구가 되고 싶은건 단지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야....

오히려


너한테 관심받고 싶어서야."


"뭐라고?"

시 혜는 어이없다는 듯이 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