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시공모 장르부문 2008년 연간 최우수작

당신의 苦를 삽니다

by DOSKHARAAS(손지상)
 
 깼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기를 느꼈다. 몸을 일으켰다. 아침이었다. 싱크대 앞이었다. 얼굴이 땅겨 손으로 만져보니 눈물자국이 묻어났다. 각질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여기서 자고 있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이 집에서 산 기억이 있는데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시감과는 반대인 미시감이었다. 새삼스러운 거실, 새삼스러운 장판, 새삼스러운 벽지, 새삼스러운 천장, 새삼스러운 형광등이었다. 나 자신도 새삼스러웠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분명 30여년을 보아 온 손가락일 터인데, 내 의지로 움직이는 손가락일 터인데, 나는 그 손가락이 내 손가락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 손가락이구나.’ 할 뿐이었다. 내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면서도 얼굴과 손이 마찰하는 피부감각, 물의 차가움, 이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측정될 뿐이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편안한 얼굴이었다.
 물방울이 떨어져 러닝셔츠가 젖어가고 있었다. 물방울은 느릿하게 몸집을 키우다가 한번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물방울처럼 천천히 움직임의 몸집을 키우다가 단번에 걸음을 뗐다. 만일 누군가가 본다면 공룡이 지나가는 것을 흉내 낸다고 생각할 것이다. 쿵-짝-짝-짝-쿵-짝-짝-짝.
 시계는 지각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소리 없이 알려준 탓에 알아차린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기 까지 난 나 자신을 관찰했다. 나는 프로그램 된 대로 절차에 따라 움직였다.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 최단거리로 움직이는 진자처럼 똑딱거릴 때 마다 나는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뉴턴 물리학은 정확했다. 행동주의 심리학도 정확했다. 나는 정확히 프로그램 된 대로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물론 시간축이 약간 틀어진 탓에 지각으로 혼이 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다시 기억하지는 못했다. 시간은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대로 비가역적이다. 물감통의 뒤섞인 물은 원래의 색깔로 분리할 수 없다. 그때의 경험은 그때의 경험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궤적으로 이 자리에 서 있지만, 그 궤적은 이미 나 자신이 되어 버려 분리해버릴 수 가 없었다.
 “물론 자네가 힘든 것은 이해하네, 그런 큰일을 치렀으니까 말이네. 하지만 - ” 과장의 말이 나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큰일?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이지?
 나는 일단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상한 공기를 느꼈다. 나는 이 긴장을 해소하고 싶었다. 똥을 참고 있는 아이들처럼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나마저도 뭔가 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되어버렸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내가 말했다.
 긴장 레이저 빔이 내 질문을 받은 이기민(그는 나와 입사 동기다.)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책임회피적인 기대를 업게 되었다.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되면 어깨의 혈액순환에 안 좋다. 머리가 무거워 지고 식은땀을 흘리고 손을 떨게 된다.
 이기민의 모습이 단연 그랬다.
 “아니, 뭐 그냥,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인트라넷으로 들어갔다. 인트라넷 게시판의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평소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모든 움직임을 세트로 묶어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뇌가 부담이 커져서 멈춰버리고 말 것이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위빠사나’라는 명상법을 하는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자기 동작을 일일이 자각한다고 한다. 만일 그런 짓을 한다면 일상적인 사고가 멈추어 버리고 만다. 너무 많은 창을 띠워서 멈추어 버린 컴퓨터랑 마찬가지가 돼버린다.
 마찬가지 이론은 티베트와 중동의 신비주의를 배워 왔던 아르메니아 출신 성스러운 사기꾼, 구제프도 주장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사디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사람을 괴롭히는 짓을, 의미 없는 짓을, 뇌가 지칠만한 짓을, 충격을 받을 만한 짓을 계속해서 시키는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시판에 뜬 공지사항을 보았다.
 내 아내가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 죽어?
 내가 아내가 있었나? 게다가 죽었다고?
 이 뭔 개소리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심시간을 알리는 웅성거림에 나는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그 사이에 아무도 내가 정신 줄을 놓았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참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과장에게 가서 조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내 눈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승낙했다.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과 다른 점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채려는 필사적인 사고의 움직임이었다. 사고는 본래 기억과 연관이 있다. 기억이 없이는 사고가 없다.
 사고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영혼의 제련된 움직임의 떨림이기 때문이다. 초끈이 떨려 11차원과 이 세상을 만들 듯 기억이라는 끈이 없이는 사고는 없다. 감정도 없다. 결국 사고나 감정이나 기억이나 모두 마찬가지의 떨림인 것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억하고 있지만 처음 보는 것 같은 미시감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마치 기억이 떨리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감정이나 사고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집안을 뒤졌다.
 서랍을 열었더니 모르는 여자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비어있던 마음속에 테이프의 접착제 자국 같은 흔적을 느꼈다.
 그 흔적을 씻어내려고 하는 듯 내 온 몸에 있는 초끈들이 떨면서 눈물을 만들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고 소리를 질렀다. 벽에 부딪힘 소리의 진동은 내 몸에 다시 흡수되어 내 안에서 슬픔이라는 담석으로 변해갔다.
 울다 지쳐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나는 와이셔츠 차림 그대로였다. 넥타이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고 뺨에도 남아있었다. 나는 수사를 계속했다.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수납장 서랍에서 명함을 발견했다.
 株式會社 苦撤商 涅槃社(주식회사 고철상 열반사)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명함에 쓰인 전화번호를 돌렸다. 수화기 안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나는 그 신호음을 듣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 눈 바로 앞에 보라색 실크해트에 보라색 턱시도에 보라색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가 있었다. 얼굴과 눈 코 입이 모두 원으로 되어있는 얼굴이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그가 말했다. 매우 정중한 말투였다.
 “계약상에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당신은 누구시죠?” 그는 매우 놀란 듯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당신 날 기억 못하시는 겁니까?!”
 “…예.”
 “이런 세상에 큰일이군! 이를 어쩌지!”
 그는 거실을 이리저리 돌면서 뜻 모를 혼잣말을 하더니 다시 내 멱살을 잡았다.
 “핑크 코끼리라고 하면?”
 뭔 개소리지?
 그의 둥근 얼굴이 찌부러졌다. 찰흙을 짓밟은 것처럼 합죽이가 된 얼굴로 다시 나에게 물었다.
 “돼지가 하늘을 날면?”
 이건 또 뭔 개소리지?
 내가 쳐다보기만 하자, 그는 날뛰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증기가 솟는 것 같았다. 실크해트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발로 밟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모자에서 커다란 ‘얼굴’이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비명을 질러야 할 상황에서도 나는 초연했다. 어째서일까? 하고 의문을 품는 또 다른 나 자신이 차갑게 식은 질문을 연발하는 것을 들으면서.
 얼굴은 미간에 눈이 하나 더 달려 있었다. 머리카락이 있어야 하는 부분은 길게 늘어나 코끼리 코처럼 변해 있었다. 편안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제 3의 눈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눈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라색 남자는 코끼리 코 같은 두피를 내 머리에 씌웠다. 포경수술을 안받은 남자아이의 표피를 늘려놓은 것 같았다. 나는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럴 의지가 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관찰하는 자로서의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불안한 듯 보였다. 손바닥으로 포경인 얼굴의 이마를 탁탁 치다가 노려보는 제3의 눈과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다시 이리 저리 돌기도 하다 방금 자신이 구겨버린 모자를 펴 보려고 버둥거리기도 했다. 모두 1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머리에 덮인 귀두 표피 같은 두피의 축축함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계량하듯 정확히 얼마나 축축한가를 말이다.
 얼굴의 입이 열렸다.
 “순냐(SUNYA)”
 이 말을 들은 보라색 남자의 얼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까. 동시 다발적, 홀로그래픽적으로 변화하는 얼굴은 시시가 각각으로 변화하는 것들 하나, 하나가 다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공포조차 느끼지 않았다. 얼굴이 녹아내리자 그 안에 또 얼굴이 생겨서 녹아내리자 또 다시 그 안에 얼굴이 녹아내리는 것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냉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까지 기억해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남자는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손님. 이 일을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오래 전부터 해온 베테랑인 저, 바론 삼디가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손님은 아마 저를 기억도 못하실 뿐 더러 이 상황도 죄다 기억을 못하실 겁니다.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 손님께서는 니르비칼파-사마디라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으십니다.”
 “니르비칼파-사마디?” 내가 반문했다. 나는 이 남자가 사이비 종교에 연관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남자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 곳에는 계약서라고 써 있었다.
 “여기 5조 7항을 보세요.” 그가 손가락질을 했다.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苦를 남기지 않은 경우, 즉 니르비칼파-사마디 상태에 이르기 까지 고객의 苦를 채취한 경우 모든 사후 수습 및 책임은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 이는 우주생명유지원칙에 의거한다. 라고 써 있었다. 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 의문에 답했다. “이 우주는 모두 苦입니다.”
 “그건 불교잖아요.”
 “아, 우리 일을 방해하던 석가모니인지 싯다르타 인지 하는 잘생기고 말 많은 청년 말이군요.”
 “청년? 죽은 지가 언젠데 청년이란 소리입니까?”
 “일단 설명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사후수습 절차 과정 중 하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팔짱을 끼고 보라색 남자의 보라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이 컨택트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苦라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뜻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움직임’입니다. 쉽게 말하면 ‘떨림’이지요.”
 “지렁이가 밟으면 꿈틀한다, 이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즉 모든 생명체는 苦의 현상이자 표상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苦를 받아들이고 苦를 생산합니다. 이 苦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가면 괴로움이 됩니다. 이 괴로움이 사라지고 적정한 수준으로 돌아오면 안락감을 줍니다. 가장 단순한 예는 배고픔이나 배설이지요.”
 “뱃속이 비면 괴롭고, 너무 차면 괴롭고, 적당히 차면 편안하다.”
 “의외로 똑똑하시군요.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苦를 생산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간혹 여러 문명을 이룬 의식 체들의 경우 ― 단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를 줄이는 법을 터득해버렸지요. 과학이란 이름으로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차지도 않게 조절하는 것이지요.”
 “그럼 좋잖아요. 편안하고.”
 “하지만 이런 경우, 꿈틀거림, 즉 움직임이 줄어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苦의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되지요.”
 “고인 물은 썩는다.”
 “당신같이 말귀 알아듣는 사람도 드문데, 다행이군요. 어찌되었든 이 苦라는 것은 생명체의 근본 그 자체입니다. 생물체의 의식 발달에 따라 8단계의 苦가 존재하지요. 다른 말로 하면 8단계의 쾌락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1단계는 생존본능에 관한 것이지요. 이는 배고픔의 단계입니다. 2단계는 원초적인 감정의 단계입니다. 정복욕이지요. 남을 지배하면 좋고, 지배당하면 싫은 것입니다. 이 단계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폭력과 성이지요. 대부분의 유기체를 기반으로 한 동물들은 이 단계까지의 苦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더 고도의 苦를 채취할 수 가 없지요.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생각을 만든다?”
 “생각은 바로 苦 그 자체입니다. 생각은 움직임이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위해서는 기억이 필요합니다. 바로 3단계지요. 3단계에서는 2단계 감정에서 생겨난 에너지를 이용해서 각각의 ‘상징’을 만들게 됩니다. 언어라던가 기호라던가 이런 것 들 말이지요. 이렇게 하면 ‘오해’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苦가 알아서 생기게 되지요.”
 “그 위로도 각종 苦, 즉 쾌락이 존재합니다. 이는 본능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프로그램이지요. 이 8단계의 苦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유기 생명 의식체가 바로 인간입니다.”
 “잠깐만, 당신 말대로라면 우리 인간은 苦를 생산하는 가축 같은 거라 이 소리 같은데?”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미 알아버리셨으니 할 수 없군요. 사실입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 생명체는 안정적으로 변해버린 행성과 항성의(그렇습니다. 항성도 움직이고 있어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움직임만으로는 苦의 채취가 부족해서 만든 일종의 ‘가축’입니다. 우리 열반사는 여러 유기체가 생산한 苦를 채취해서 다른 의식 체들에게 넘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苦를 거두고 치우는(撤) 일을 하는 것이지요.”
 나는 급격한 혐오감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들을 위한 가축이었단 말인가? 나는 보라색 남자 ― 바론 삼디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아! 그럼 우린 도대체 뭐 하러 태어난 거야? 누구 좋으라고 우리는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런 분노마저도 양질의 苦로 채취됩니다만.”
 나는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멱살을 풀고 주저앉았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던 내 행동에서 움직임이 발생하고 苦가 발생하고 즐거움이 발생하고 이 모든 것은 다 어디의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자들의 종합비타민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손님의 경우,” 그가 말했다. “니르비칼파-사마디 상태라는 苦가 극단적으로 적은 상태에 있습니다. 니르비칼파-사마디 상태가 21일 지속되면 죽습니다. 환생조차 없는 진짜 죽음이지요. 이 우주에서 폐기처분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이 상태는 우주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본능적 충동도 없지요. 그냥 될 대로 되다가 죽을 뿐입니다.”
 “그보다, 나는 왜 당신들에게 苦를 뽑아내달라고 했었던 거야?”
 “그건 제 입으로 말하는 것 보다,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시는 편이 더 나을 듯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苦의 주요 원인은 기억이라고 했잖아. 내가 지금 기억을 못하는 것은 고를 너무 빼서인데, 어떻게 다시 살려내?”
 “어렵지 않습니다. 다시 넣으면 되지요. 우리는 계약을 마음대로 파기하려는 사람을 위해 계약 당시의 기억을 항상 보관하거든요.”
 그는 서류가방에서 금속 야구 방망이를 꺼냈다. 나는 그 가방에 어떻게 야구 방망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물리적으로 무리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강한 금속성 소리를 들었다.
 깼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기를 느꼈다. 몸을 일으켰다. 아침이었다. 일요일, 싱크대 앞이었다. 얼굴이 땅겨 손으로 만져보니 눈물자국이 묻어났다. 각질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내용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싱크대를 붙잡고 일어섰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이나 쌓여 있었고 약간 썩은 내도 났다. 나는 나오는 한숨을 틀어막고 물을 틀었다. 수세미에 세제를 풀었다.
 수세미에 그릇을 대고 부비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녀가 떠올랐다.
 나의 아내.
 교통사고로 산산이 부서진 나의 아내.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내가 텔레비전을 보며 그녀에게 과일을 깎아달라고 조르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가 하기 싫어 소파로 도망쳤고 어리광을 부리듯 과일을 깎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면서 나에게 웃어보이고는 기름기가 닦이지 않는다며 뽀드득 소리가 날 때 까지 수세미로 그릇을 문질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그 자리에서 힘이 풀렸다. 무릎이 꺾이면서 싱크대에 기댔다. 나는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섞여 슬픔을 다 씻어버리길 바라면서.
 울음이 멎었다.
 사람은 살아야 한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나는 밑반찬과 스팸을 꺼냈다. 밥은 식어있었다. 전기코드를 꼽지 않은 탓이었다. 작은 상을 하나 꺼내 식사를 했다.
 내 앞자리에 앉아 있어야할 사람이 없었다.
 15평 좁은 아파트는 내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눈물을 닦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 안에서 보라색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해도 괜찮겠냐는 전화였다. 나는 누구인지를 물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끊고 어안렌즈를 바라보았다. 보라색 덩어리 같은 원형의 인간이 서있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모자를 들어올리는 구식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꿈이 다시 살아났다.
 안에 잠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문을 잠갔다. 고개를 들자, 거실에 그 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주인처럼 나더러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상 위에 있던 식사는 이미 정리가 되어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해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다짜고짜 명함부터 내밀었다. 주식회사 열반사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내가 물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알고 왜 왔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처음 본 것처럼 행동하는 군요.”
 “이것은 당신의 기억 속입니다. 따라서 나는 내가 맡았던 배역을 다시 되풀이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났던 것은 내일, 월요일이란 말입니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요.”
 그의 대답을 듣자 나는 통제권을 잃었다. 나는 그저 관찰할 뿐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자신은 인간의 번뇌, 즉 苦를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 말하자면 괴로움을 말한단다.
 즐거움이 지나쳐 생기는 苦, 슬픔이 지나쳐 생기는 苦, 과식해서 생기는 苦, 이 모든 苦를 자신들의 회사가 수집을 해서 가공 후 판다는 소리다.
 내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화를 낸다.
 그는 이 모든 생명, 이 모든 우주는 苦에서 도망치려는 본능, 즉 삶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 苦을 빼내면 사람은 매우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나에게 부인과 사별하시고 난 뒤 매우 양질의 번뇌를 생산하고 계시기에 자신이 그 번뇌를 가져가고 대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나는 그의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얇은 서류가방에서 관보다 더 큰 정도의 크기인 탱크를 꺼냈다. 사마디 탱크라고 했다.
 그가 서류가방에서 뽑아낸 선을 연결하고, 기계의 터치패널에 이상한 기하학 도형을 적었다. 또 다른 선을 뽑아 내 미간에 붙였다. 그는 苦의 밀도가 매우 높아 양질의 고를 얻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
 그는 나더러 탱크로 들어가라고 했다. 옷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팬티 한 장만 입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용액 위에 떠 있었다. 중력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 안에서 기분 좋은 잠에 빠졌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보라색 남자, 바론 삼디가 땀을 닦으며 웃고 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苦를 너무 많이 뽑아내어 당신의 뇌와 기억이 조금 망가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모든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슬픔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양의 苦가 이미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내를 떠올리자,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상처의 흉터가 터진 것 같았다. 내가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극소량의 苦 만으로도 나는 괴로웠다. 아내는 내 모든 존재의 근본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苦를 취득한 사람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에게 내 苦를 다시 돌려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려울 수 도 있다고 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모든 위험 부담은 고객의 책임이라고 했다. 나는 감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금속배트를 들었다.
 깡. 홈런.

 * * * * *

 정신을 차린 곳은 우주였다. 나는 놀라서 숨을 참았다.
 옆에는 바론 삼디가 떠 있었다. 그는 연신 땀을 닦으며 나에게 말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의식체입니다. 숨을 쉴 필요도 없고 우주에서 기압차를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은 자신의 신체의 이미지를 이용해 의식 체를 구성하고 있어서 몸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실체는 없습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괴롭지 않았다. 우주복이 없이도 기압이 없는 우주공간에 있었다.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 고향 시리우스지요. 이곳의 의식체가 바로 당신의 고를 사들였지요. 저명한 苦 연구가이십니다.”
 내 눈 앞에 거대하고 우아한 고래가 나타났다.
 Created by. 김민카(김태호)

 그 고래는 나의 의식체보다 수만 배는 더 거대했다. 우주의 빈 공간을 마치 에테르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헤엄쳤다. 그가 움직일 때 마다 선명한 빛이 유체처럼 흘러 그를 감쌌다. 그는 데칼코마니의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자 같았다.
 그의 배에는 앙크 십자가가, 그의 이마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눈은 너무도 깊은 암흑이라 그 눈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내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상상해보라. 당신은 완전한 어둠 속에 중력조차 느끼지 못하고 떠 있다. 당신은 무한히 떨어지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당신은 매우 불안한 상태다. 인간은 중력을 가장 기본적인 자극으로 가지고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근본존재다. 그런데 그 중력이 없다. 당신은 떨어지고 있다.
 그 위로 당신을 티끌처럼 무의미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가 당신 앞에 있다. 우아함과 폭력을 동시에 지느러미에 담고 있고 부드럽고 크게 열린 입에는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었다. 거역은 용납되지 않았고 애초에 가능성으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그가 바로 확률을 지배하는 자이고 여성이며 남성이며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 같았다.
 “이 분은 지금 당신에게 큰 자비를 베풀고 계십니다.” 바론 삼디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 분은 본디 5차원에 거주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몸소 자신을 3차원 우주에 까지 투영시키시고 있어요.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분의 단면은 이 분의 수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아요. 이 분은 당신들 인간이 상상하는 그 어떤 신 보다 강하고 크고 아름답습니다.”
 내가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에 복잡한 기하학 도형이 나타나며 엄청난 정보가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머리 속에 이미지와 정보가 간헐천처럼 터져나가 진짜 내 온 존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고래는 당황한 듯 바론 삼디를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 바라보기만을 했다. 그러더니 고래의 말이 내 머리 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텔레파시 같았다. 그는 자신들의 의사소통체계는 인간들의 2차원적 단선 구조가 아니라, 3차원적 의미 구조를 가진 도형들의 4차 공간차원적인 궤적을 이용해 대화를 한다고 했다.
 우리같이 3차원적인 사고가 한계인 의식 체는 병렬적이고 막대한 정보량을 이해할 수 없고 기껏해야 몇몇 기하학 도형만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4차 공간차원의 무한소가 나타내는 단면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바론 삼디를 일종의 트랜스미터로 사용해 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말하라. 인간. 이제 나는 그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느니라. 어찌 이리도 불편한 것을 사용하는가. 이렇게 순차적이고 직렬적이고 느린 사고는 처음이군. 오해가 생기기 딱 좋아.”
 “저의 苦를 돌려주십시오.”
 “그대의 苦? 나는 그대의 苦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苦의 형태와 苦의 성질을 연구하고 수집한다. 나는 苦를 실험하고 苦의 반응을 본다. 나에게는 전 우주에서 모인 苦의 샘플이 있다. 시간 차원에 사는 의식 체들의 苦도 있고 0차원의 苦도 있다. 눈멀고 어리석은 우주의 중심이 중얼거리는 미친 소리의 표본도 있다. 이 모든 苦가 나에게는 그저 苦일뿐이다. 다만 나는 이 자(그는 바론 삼디를 말하는 것이었다.)가 최근 나에게 준 苦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그 안에 저의 苦가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바론 삼디가 말했다.
 “이분이 말하고 있는 최근을 당신의 시간 감각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분에게 제가 넘긴 苦는 당신의 감각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가능태와 현실태를 모두 포함한 ‘최근’입니다. 즉 그 곳에는 당신의 苦가 있을 수 도 있고 없을 수 도 있으며 동시에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맹목적이었다. 나는 내 苦를 찾고 싶었다.
 “당신들 인간이 전자나 광자 하나 하나를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분에게는 苦란 단지 苦일 뿐 그 하나하나를 구분하실 수 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이분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요. 평생 걸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苦를 되찾고 싶다고.
 거대한 시리우스의 의식체 고래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뿌리 채 뽑혀나가는 것 같은 두려움과 환희를 참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유연히 헤엄치며 지구에서 최근에 구한 苦의 목록이 저장되어있는 창고로 우리를 데려갔다. 나는 그 중 하나에 손을 대었다.
 공룡들의 멸망, 원시인의 추위, 지각 변동, 기아, 냉해, 가뭄, 외계인의 출현, 권력싸움, 전쟁, 폭풍, 메뚜기 떼, 돌연사, 새로운 예언자의 출현, 짝사랑, 애증, 삼각관계, 불의의 사고, 뺑소니, 우발적 살인, 연쇄살인마, 이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 현대인들의 고독, 사건 사고, 아일랜드 대기근, 전쟁, 아프리카의 에이즈,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그 곳에 있었다.
 “멋진 표본이지. 내 실험의 결과물이야.”
 “다, 당신 때문에 ‘우리’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당신은 압니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내 아내를 돌려줘! 내 아내를!”
 “이 버러지 같은 놈!”
 “제발 노여움을 푸십시오. 제발.” 바론 삼디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의식체인 주제에 땀을 흘리다니.
 “네 놈의 작디 작은 민감성으로 어찌 苦의 거대함을 알겠는가! 그대가 만일 ‘우리’가 겪는 苦를 조금이라도 맛본다면 그대는 이 우주에서 그대를 빼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대는 완전히 무기력해져 바보천치가 될 것이다. 지금 보다 더! 그대들은 광물질이나 원자, 분자, 소립자의 苦를 배려하고 이해하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이 먹는 가축들의 苦를 고려하는가? 그들은 그대들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다. 그대들은 온 우주에서 가장 싸구려고 가장 저급하다. 그대들이 아직도 살아남아있는 이유는 그대들이 알아서 苦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놔두면 알아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쓸모 있는 가축일 뿐이야! 그대들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미개한 분자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그대들에게는 그런 ‘사치’를 누릴만한 자격이 없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 苦임을 모르는 듯 하군! 그대에게 내 苦를 맛보여주지! 어리석은 자여!”
 그는 바론 삼디에게 눈짓을 했다. 그것만으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듯 했다. 바론 삼디는 자신의 입술을 길게 늘였다. 입술이 촉수처럼 변했다. 그 입술을 내 머리에 씌웠다. 나는 움직일 수 도 없었고 말할 수 도 없었고 저항할 수 도 없었다. 오직 관찰만 할 수 있었다.
 “버러지에게 최고의 사치를 제공하는 것을 감사히 여겨라.”
 내 작은 의식 속에 온 우주의 우주의 우주의 우주가 무한히 생성되고 깨져나갔다.
 작은 컵에 온 바다를 다 쏟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우주의 모든 측면에서 모든 변화를 모든 상호작용으로 모든 상보작용으로 경험했다. 나는 모든 측면에서 우주를 경험했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우주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우리는 우주에 유폐되어 있었다.
 우주 한 가운데, 무수히 많은 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그는 눈멀고 귀먹은 존재였다. 그는 어리석었다.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나머지 그 어떤 존재라도 그가 어리석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가 중얼거릴 때 마다 우주는 거품처럼 생성되었고 모든 존재가 태어났다.
 그를 감싸고 있는 바깥에는 무의 침범을 막는 거대한 막이 있었다.
 이 막 안에 유폐된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음을 두려워해야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苦을 생산해내야 했다. 우리는 발전기 속에 전자였고 끊임없어 부딪히고 깨져야했다. 안락은 없었다. 안식은 없었다.
 빠져나가려 했던 자들은 완전히 정지된 공간에 유폐되어 있었다. 그들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평생 동안. 그들이 맛보는 즐거움, 지복이, 환희가, 사실은 고통임을 모른 채. 그들은 계속해서 척추를 통해 빠져나가는 즐거움을 우주에 뿌렸고 희석된 즐거움은 마취제처럼 온 존재를 마취시켰다.
 그 중 우리 인간은 우주에서는 일종의 건전지 속의 전자 같은 존재고 우리가 깨지건 부서지건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표본, 전자, 분자, 입자, 쿼크, 샘플일 뿐이었다. 전기분해를 해서 분자를 원자로 분리하듯이 우리를 억지로 삶에서 분리하고 괴롭게 만든다. 우리를 동정하는 이는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동정하기에도 바쁘다. 우리는 우주의 다른 생물체들을 위해 속죄양처럼 괴로워하는 종합비타민이였다.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존재근거도 없었다. 우리의 苦조차 우리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아내의 기억이니 苦이니 인간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은 의미를 잃었다. 나는 바론 삼디에게 돌아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시리우스 의식 체에게는 바쁜 시간을 방해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론 삼디에게 내 모든 苦를 뽑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신체의 생명유지까지는 가져갈 수 없도록 제한되어있음을 알렸다.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 암흑 속에 유폐되어있다. 나는 더 이상 감정이나 사고나 감각으로 괴롭지 않다. 나는 나의 과거의 육체를 본다. 식물인간으로 변한 나. 사람들은 내가 아내를 잃은 괴로움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감을 눈이 없긴 했지만.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는 길가의 잡초로 변해있었다.
 나는 모든 생물이 경험하는 무의미에서 도망치기 위해 하는 무의미한 발악을 포기했다. 예초기가 내 몸을 두 동강 내고 어린 아이들이 나를 뽑아 버렸다. 나는 뿌리를 잃고 천천히 죽어갔다. 나는 무, 어둠과 동화되었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終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