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의 역사 로마 침입 이전 북부의 배들 (1) written by qui-gon

* 이 글은 http://quigon.egloos.com의 출처와 이 글이 참고한 문헌 목록을 함께 밝힌다는 전제 하에 글의 복사 및 변형 게제를 허락하며, 상업적 용도로의 이용을 금지합니다. 다른 곳에 게시하실 때는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미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암각화 그림으로, http://freepages.history.rootsweb.ancestry.com/~catshaman/ 에서 옮겨온 그림입니다.

 배들의 일부 부분들은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는 실제 남아있는 북부 지방의 조선술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과거의 상황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 18세기의 유명한 전열함, 빅토리 호로부터 바이킹 시대 사이에 있는 배들 중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배는 극히 드물고, 한 손으로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있다. - 바이킹 시대까지 포함할 경우 두 손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배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아무래도 복잡한 구조를 가진 배들은 쉽게 훼손되지만, 통나무를 깎아 만든 통짜배는 자연의 변화 앞에서도 깊이 묻힌 채 보존될 수 있는 까닭이다.


 원시적인 배의 유형들은 대충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갈대를 다발로 묶어 만든 보트 (reed bundle boat)와 코러클(coracle *역주: 버들가지로 바구니처럼 만들어 가죽을 입힌 배), 뗏목(raft), 덕아웃 카누(Dugout Canoe)가 바로 그 것이다.

 (이 갈대 보트는 중남미 티티카 호수에서 촬영된 것이다. 이집트와 중남미의 목재가 흔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처럼 갈대를 엮어 보트를 만들어 사용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지방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국 전통방식의 코러클)

 (덕아웃 카누. http://www.primitiveways.com/dugout-canoe.html 를 방문해보면 덕아웃 카누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번역한 자료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첨부할 예정.)

 이런 배들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제작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갈대 보트의 경우에는 북부 지역에서 그리 넓게 사용되지 않았지만, 덧아웃 카누나 코러클은 로마의 침입 이전까지도 널리 사용되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덕아웃 카누는 자연적으로 보존되기가 쉽다. 아마 처음에는 통나무를 물에 띄워 이용했을 것이고, 시행착오 끝에 속이 빈 물체가 더 잘 뜬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나무 안쪽을 파내는 덕아웃 카누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북유럽의 덕아웃 카누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을 고르라면, 1886년 린컨샤이어(Lincolnshire)의 브리그(Brigg)에서 발견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보트가 발견되었을 때는 나무가 말라비틀어지거나 오그라들기 전이었는데, 길이는 약 48피트였고 너비는 4피트 6인치였다. 이 것이 만들어진 지역의 떡갈나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가지까지 6피트 두께에 50피트 가량의 높이로 자라는데, 브리그 보트에 사용된 목재는 십중팔구 벌레가 먹어 부분적으로 속이 비어있던 나무였을 것이다.

 이 보트는 뿌리에 거의 근접한 줄기의 아래쪽 끝 부분을 배의 뒷부분으로 삼았고, 첫 두 가지가 뻗어 나오는 부근 너머를 뱃머리로 삼았다. 이들 두 가지는 옹이를 남겼는데, 이 것을 떼어내고 구멍이 나도록 잘라두었다.

 그리하여 선미는 나무의 원형 형태를 갖고 있는 데 반하여, 뱃머리는 분리된 갑판으로 마감이 되어있었고 시간이 흐르며 홈통의 단면을 따라 주변부가 썩게 되었다.

 한편, 접합부의 틈은 이끼 등의 뱃밥을 채워 막았는데, 돌출된 배 양 측면으로 뚫어놓은 구멍은 강한 물살에서도 뱃머리를 유지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측면을 따라 다른 구멍들이 나있는 것은 안과 밖 어느 한쪽으로의 침수를 막기 위함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나무로 된 몸체가 사고나 자연적 충돌로 갈라질 경우 이를 수리하는 방법이다. 당시에는 못이나 볼트가 없었지만,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재치있게 문제를 해결했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이 것은 검은 갈대 덤불의 목재 따위로 만든 것인데, 세 개의 손잡이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손잡이 부분을 균열된 틈새를 통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어 넣었고, 이끼와 맞물어놓은 뒤 나무 핀을 박아 안쪽에서 단단히 고정을 시켰다. 마지막으로 작은 구멍에 가죽끈을 넣어 묶었는데, 보트와 덧댄 부분의 가장자리를 전부 고정시켰다.
 이 수준의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더 나은 수리 방법을 생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카누는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글래스고우나 독일 브레멘 지방에서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런 카누들 대부분은 브리그 보트보다는 크기가 작아 10~15피트의 길이의 수준이지만, 1878년 독일 슐레스비히-홀스타인(Schleswig-Holstein)의 발러무어 마쉬(Valermoor Marsh)에서 발견된 보트나 1876년 덤프리 부근의 록 아서에서 발견된 보트는 브리그 보트와 크기가 비슷한 편이다.
 록 아서나 보다 작은 크기의 보트들은 대개 브리그 보트와 유사한 형태의 선미를 갖고 있는 한편, 발러무어의 보트는 브리그 보트처럼 균열을 수선하는 그림 26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고 보트의 안쪽에 선체를 강화하기 위한 늑재를 보강해두고 있다.

(*늑재와 용골을 설명하기 위한 참고 이미지. 
 위 사진은 배의 프레임의 단면인데, 가운데 아래 쪽의 등줄기를 이루는 부분을 용골이라 부르고, 그 등줄기로부터 갈비뼈처럼 양쪽으로 뻗어나온 나무를 늑재라 한다. 현대의 배들은 용골에 늑재를 덧대어 골격을 만드는데, 이 곳에서 다루는 배들의 늑재는 단순히 선체 안쪽으로 보강하듯 대어 붙인 경우에 해당하여 차이가 있다.)

 덧아웃 보트의 끄는 힘은 그리 대단치 않다. 나무에 홈통을 파 만든 형태는 깊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고, 선체의 두께에 있어서도 전반적 크기에 비해 배를 너무 무겁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호수나 바다 같이 물이 많은 곳에서나 항해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나무 조각을 양 옆에 끝으로 묶거나 덧대는 것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 것은 그저 두 번째 나무 조각을 더하는 간단한 절차일 뿐이다.

 이후에 도구가 발달하며 나무를 쪼개거나 자르기가 쉬워지고, 널빤지와 같은 형태의 목재를 만들 수 있게 되자 덕아웃 보트같이 선체 자체가 용골을 이루는 무거운 배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널빤지를 이용해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요크샤이어(Yorkshire)의 기글스윅(Giggleswick)이나 독일의 단지크(Danzig) 지방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다음의 그림은 19세기 초 중국의 배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덕아웃 보트가 물 위를 떠다니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브리그 보트가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색다른 뗏목(raft)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뗏목은 다섯 개의 목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이는 40피트, 중앙의 너비는 9피트에 달했다. 각 목재마다 덕아웃 보트에서처럼 열 개의 손잡이가 있고, 이런 손잡이의 얇은 빗장으로 단단하게 박혀 있다. 뗏목의 경우 목재 사이의 접합부 사이를 이끼로 채우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대신에 가늘고 얇은 나무 조각들을 가장자리에 따라 있는 구멍들의 열을 통해 꿰어 덮고 있었다.
 이 뗏목이 제작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다음에 살펴볼 것은 코러클이라 부르는 것이다. 가죽을 이용한 이 보트는 로마인들이 당도하기 전까지 영국의 남부지방 등에서 사용되어 왔다. 코러클은 옛 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없지만 라틴 지역의 작가들을 통해 구전이 되고 있는데, 웨일즈에서는 여전히 이 배를 사용하고 있다. 웨일즈의 것은 접시모양을 한 코러클로 한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의 매우 작은 크기인데 강 낚시에 사용되곤 한다. 현대의 코러클은 고리버들이나 사초 나무로 짠 골격을 가죽 대신 범포로 싸고 있긴 하지만, 2천년 전의 코러클의 모양이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편, 아일랜드에서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배를  '커럭스(curragh)'라 부른다. 커럭스의 경우에는 크기가 좀더 크고 접시보다는 보트에 더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코러클을 이고 있는 두 남자. 1900년대)


 물론, 지금까지 본 배들은 로마인들이 기록한 배에 비해 크기도 작고 바다를 항해하는 데도 그리 적합해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로마인들이 기록한 북부 유럽의 배는 해협 횡단에 사용될 수 있는 수준인데, 시저는 스페인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부하에게 “브리튼 사람들의 보트처럼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했으며, 묘사하기를 용골과 늑재로 이뤄진 가벼운 목재의 배로서 선체의 나머지 부분은 고리버들로 짜고 그 위에 가죽을 덮었다고 말했다.
 언뜻 코러클과 유사해보여도, 군대가 이동하기 위한 배로 코러클은 형편없이 작다. (병사의 수만큼 만들거나 여러 대의 코러클을 묶어 왕복함으로써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줄리우스 시저의 브리튼 정복을 그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화가 에드워드 아미티지의 1843년 작품. 시저는 로마의 정복 전쟁을 지휘하여 브리튼과 갈리아 지방을 로마의 세력권에 포함시켰다.)

 여하튼 이런 유형의 배는 에스키모 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까지도 초기 브리튼인들의 문명 수준에 이르러 있는 에스키모인들은 고래 뼈(구할 수 있다면 나무)로 만든 배의 골격에 팽팽히 당긴 바다 표범 등의 가죽으로 감싸 배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 배는 두 종류로 하나는 한 사람이 탑승해 사냥과 낚시에 사용하는 카약(Kayak), 다른 하나는 다수의 사람들을 수송할 때 사용하는 우미액(Umiak)이다.

(카약)



(우미액. 카약보다 월등히 크며 다수가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헌데, 과연 브리튼 사람들도 에스키모들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데 적합한 소형 선박을 보유하고 있었을까?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
http://www.traditionalkayaks.com/otherprojects/VintageSkinboats.html
http://www.co-operative-woodlands.co.uk/oxbow/coracle.html
http://www.flickr.com/photos/mark_fischer/494490278
http://freepages.history.rootsweb.ancestry.com/~catshaman/ 
(서적) A Short History of The Sailing 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