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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날드 르웰 톨킨 (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 - 1973
J.R.R. 톨킨의 생애
존 로날드 르웰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오렌지 프리 주(州), 블롬폰타인(Blomfontein)에서 태어났으며, 네 살 무렵 그의 어머니에 의해 형제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의 이름 중 '존'은 그의 조부로부터 따왔다. 가족들은 대개 그를 로널드라 불렀고 절친한 유년기 학교 친구들은 존 로널드라 불렀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톨킨이라는 성 혹은 톨러스라는 별칭으로 불렀는데 그의 인생 후반에는 그리 절친하지 않은 이들이 J.R.R.T 라는 약자를 이용했다.
부친이 죽은 후, 그의 가족들은 다소간의 생활고를 겪었다. 버밍햄 홀 그린 지역의 세어홀(Sarehole) 이라는 마을로 이주한다. 톨킨은 시골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고, 이 당시 전원의 풍경에 대한 그의 감각은 그의 작품과 사진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가 그의 풍부한 상상력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는 모친 쪽 가계의 사람들과 어울려 자라났기 때문에 스스로도 "비록 이름은 톨킨이지만, 취향에서나 재능에서나 훈육된 방식에서나 나는 서필드 사람이다."라 말했다.
그의 모친은 톨킨이 12세가 될 무렵 세상을 떠났고, 그와 그의 형제는 지역의 성직자 프랜시스 사비어 모건의 후견으로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학교에 보내졌다. 프랜시스 모건은 쾌활한 스페인 혈통의 사람이었으며 톨킨 형제를 위해 자신의 돈을 쓰는 것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 또한 그는 톨킨의 양가 친척이 신교도임을 들어 그가 종교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킹 에드워드 학교에서 톨킨은 그의 고전에 대한 공부로 명성을 얻었고, 언어학에 관심과 재능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고등학생으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언어학적 교양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디스 브랫과의 결혼은 그의 하숙집에서 시작되었다. 이디스는 하숙집의 아래층에 기거하는 소녀였고, 톨킨보다는 3살이 연상이었으나 톨킨이 나이보다 성숙해보였고 이디스가 나이보다 앳되보여 좋은 짝을 이루었다. 두 사람은 하숙집 주인인 포크너 부인을 비난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후견인이 톨킨의 학업 등을 염려하여 교제를 금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톨킨이 옥스퍼드에서 21세를 맞이한 후에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톨킨에 관한 일화에서 보다 자세히 다룬다.)
그는 또한 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랭커셔 퓨질리어 보병 연대의 장교로 솜므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대부분의 기간을 참호열에 시달렸다. 이 솜므 전투에서 그는 고등학교 시절 그의 언어학적, 문학적 관심과 재능을 공유하던 T.C.B.S의 소중한 친구 네 사람 중 두 사람을 잃었다.
1917년에는 첫 아들이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톨킨은 New English Dictionary에서 직위를 얻었고, 실마릴리온(Silmarillion)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The Book of Lost Tales’에 관한 신화와 전설적 서사시들의 저작을 시작했다. 특히 뉴 잉글리쉬 딕셔너리에서 근무를 한 것은 그 스스로 대단히 가치있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실제 이 작업은 언어학 및 비교언어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재능이 없이는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일례로 한 단어는 고대 색슨어, 중세 네덜란드어, 현대 네덜란드어, 고 고지 독일어, 중저지 독일어, 중고지 독일어, 현대 독일어, 고대 게르만어, 원시 게르만어, 리투아니아어, 고대 슬라브어, 러시아어, 라틴어등 다양한 언어적 지식을 요구했고, 톨킨은 이에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1920년 톨킨은 리즈(Leeds) 대학의 영어학 강사로 임명되었는데, 후에 옥스퍼드의 앵글로-색슨어의 롤린슨과 보스워스에 관한 교수직을 맡으면서 그의 교육자로서의 경력은 정점을 이루게 된다. 이 사이 톨킨은 그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호빗’(The Hobbit)을 집필하였다. 그의 작품을 출간한 스탠리 언윈(Stanley Unwin)이라는 출판업자는 호빗의 속편을 요청하였고, 톨킨은 결국 12년에 걸쳐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출판이 되지 않았다.)
1924년 셋째 아들인 크리스토퍼 톨킨 탄생. 크리스토퍼는 그의 T.C.B.S 동료이자 친우인 크리스토퍼 와이즈먼을 기려 지은 이름이었다.
1929년에는 딸 프리실라 메리 루얼 톨킨이 탄생했다.
은퇴를 한 톨킨은 그의 아내와 함께 옥스퍼드 인근에 거주하다가 본머스(Bournmouth)로 이주했고, 1971년 아내가 죽은 후에는 옥스퍼드로 돌아와 살았다. 그는 1972년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상급훈작사 작위를 받았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옥스퍼드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도 받게 되었다. (순수하게 언어학적 성취에 의거한 학위였다.)
실마릴리온의 출판과 편집을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맡기고 1973년 9월 2일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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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h Mary Tolkien |
(베렌과 루시엔은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연인이다.)
톨킨의 작품 세계에 관하여
톨킨의 작품은 꼼꼼하고 방대한 세계관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톨킨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자로서보다는 관찰자로서 대했던 듯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는 언어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재능을 통해 언어만을 창조했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그의 일생에 거쳐 노력하고 헌신했다.
그는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을 보인다. 반지의 제왕은 출판업자가 호빗의 출간 2주년 기념일에 맞춰 출간할 것을 예상했지만 결국 1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한편 그의 작업은 더디고 느렸는데, 호빗의 경우에는 그 끝부분이 완성되기 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다. 실제 그가 초반에 작업한 동화들은 도입부가 훌륭하지만 끝이 흐지부지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톰 봄바딜의 모험도 처음 글을 쓴 것은 제법 이른 시기였지만, 그 것이 완성된 것은 그의 말년, 그의 이모인 제인이 '우리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톰 봄바딜의 모험을 완성해주지 않겠니?'라는 청을 받은 후에야 이뤄졌다.
그는 작품에 대해 (잉클링스의 낭독회 등을 통해) 비평을 받을 경우, 그 비평을 아예 무시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루이스는 "그는 비평에 대해 두가지 반응만을 보였다. 처음부터 작품 전체를 다시 쓰든지, 아니면 아예 한마디도 받아들이지 않든지."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팬레터의 답장을 보낼 때도 답장의 초안 쓴 뒤, 두 세번에 걸쳐 퇴고하기도 했다.
- 위대함과 경이로움, 이 두마디 말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에게 실망한 점도 적잖이 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고귀한 혈통을 가진 자들은 오로지 다른 고귀한 혈통을 가진 자와 사랑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라고른과 아르웬, 베렌과 루시엔) 하라드림을 비롯한 동쪽의 인간들의 외양을 묘사한 것이 동양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조금 실망스럽다. (Mr.Jones)
- 판타지 계의 최초의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칭호가 가장 걸맞는 것 같다. 원래 존재하고 있던 이야기나, 설정등을 따왔다고는 하지만, 아무나 그것을 따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시에 아무나 톨킨과 같이 집대성해낼 수 없다. 그 누구도 톨킨의 업적을 무시할 순 없다. 누가 뭐라 할지라도, 톨킨은 판타지 문학 계의 첫 번째 마에스트로이다. (L. 제이글라카)
- 톨킨 자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창조된 신세계-중간계-는 현실세계라는 거울의 파편정도는 되는 정치적 함의를 품지 않고 있다고는 할수 없다. 하지만, 하이 팬터지라는 총체성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 이 위대한 거장에게 바쳐질 찬사는 어느하나 아깝지 않다. (재건)
톨킨과 관련된 일화들
- 톨킨은 킹 에드워드 학교 재학 시절에 셰익스피어를 몹시 싫어했다.
"셰익스피어의 '거대한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움직여 오는' 것 같은 표현을 배우는 학창 시절은 정말 실망스럽고 혐오스러웠다. 나는 진짜로 나무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행진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를 오래도록 염원했다."
이런 열망은 그의 작품에서 엔트라는 나무인간들로 나타나기에 이른다.
- 톨킨은 중간계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 내부에서 사용되는 여러 언어체계를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톨킨의 언어와 관련한 유명 사이트로는 Helge Kåre Fauskanger가 운영하는 사이트 Ardalambion (http://www.uib.no/People/hnohf/)이 있으며, 이 중 퀘냐 관련 강의는 Fangal.org에도 번역본이 게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퀘냐는 1911년 즈음에 시작되었다. 1917년까지 중요한 작업들이 이뤄졌는데 핀란드 어에 관심을 갖던 시기 핀란드 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린의 경우에는 웨일스 방언이 모델이 되었다.
- 톨킨과 부인 이디스(Edith) 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6살때, 톨킨은 3살 연상인 이디스 메리 브렛을 만났다. 둘은 찻집에서 만나면서 1년간 사랑을 키웠는데, 톨킨의 후견인인 프란시스 모간 신부는 이디스를 만나는 게 톨킨의 공부에 방해가 될 뿐더러 그녀가 신교도인 점을 들어 21세까지 만나지 말 것을 명령했으며 이 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대학교 지원을 중단하겠다 위협했다. 그러나 열렬한 사랑과 우연 등이 겹치며 두 사람은 종종 만남과 연락을 취했고 프랜시스 모건 신부는 이에 큰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톨킨은 실제 모건 신부의 염려대로 옥스퍼드의 장학금 시험에 낙방했으나 그 것은 이디스와의 연애만이 문제는 아니었고 좀더 복잡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 후의 시험에 합격하여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 입학하였다.
그가 성인이 되어 이디스에게 청혼편지를 썼으나, 이 때 이디스는 이미 친구의 오빠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톨킨은 그녀를 만나 설득했고 사랑을 재확인하였다.
그런 후에 이디스는 톨킨의 요구대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1916년에 결혼을 한다. 그런데 이디스는 개종에 거부감은 없었으나 처음에는 다소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녀는 성공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던 탓이었다.
톨킨은 비교적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으며, 처음 불가지론자였던 루이스가 교인이 된 후에도 그가 성공회 교도라는 점을 자주 안타깝게 여기곤 했다.
T.C.B.S
- T.C.B.S는 톨킨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종의 사교 클럽이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의 티 클럽(T.C.)에서 시작되었고, 후에는 코퍼레이션 가의 배로 가게로 옮기면서 T.C.B.S(티 클럽 배로이언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클럽은 친목 모임이었지만 문학적, 언어학적 논의를 펼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T.C.B.S의 멤버는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퍼 와이즈먼: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광심을 공유했다. 자연과학과 음악에 정통해 후에 수학자이자 아마추어 작곡가가 되었다. 럭비 친구였으며 톨킨의 라이벌이자 단짝이었다. 와이즈먼은 철저한 감리교 신자였으나 감정 없이 종교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R.Q. 길슨 : 그림과 디자인을 좋아했고 조근조근한 말투에 재치가 있었다. 르네상스와 18세기 그림을 좋아했다.
G.B. 스미스 : 고전주의자는 아니었고 현대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영문학 특히 시에 박식했는데 스스로도 재능있는 아마추어 시인이었고 T.C.B.S의 멤버들에게 시의 중요성에 눈뜨게 했다.
이들은 모두들 재능있고 박식한 젊은이들이었다. G.B 스미스는 톨킨과 함께 옥스퍼드에 진학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에 진학해 수학했다. 이들의 우정어린 교류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1차 세계대전의 솜므 전투에서 길슨과 스미스가 목숨을 잃으며 T.C.B.S의 중요 멤버 두 사람을 잃게 되었다. (이 때 톨킨도 솜므 전투에 참가했으며 전투 중 참호열에 걸려 후방으로 이송되었다.) 이 당시 톨킨의 상실감은 대단히 컸다.
잉클링스(Inklings)
- 톨킨은 the Inklings의 초기 멤버이기도 했다.
The Inklings는 비공식적인 문학토론 그룹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J.R.R 톨킨은 이 모임에 가장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일원 중 하나였다.
J.R.R. 톨킨은 이 모임의 다른 일원 중 C.S. 루이스(C.S. Lewis)와 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C.S 루이스는 기사도 문학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루이스의 ‘우주 삼부작’에서는 이런 교류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영어/영문학 교수로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오웬 바필드는 J.R.R. 톨킨의 시작(詩作)들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미쳤고, 초자연적 스릴러물을 써온 신학자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나 전기와 동화 작가인 로저 랭클린 그린(Roger Lancelyn Green), 아담 폭스(Adam Fox),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휴고 다이슨(Hugo Dyson) 등이 이 모임의 주요 일원으로 톨킨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모임의 일원이었던 C.S 루이스의 형 워렌 루이스(Warren Lewis)는 “the Inklings는 비록 사교 모임이나 문학 단체 양측의 특징을 갖고 있긴 했지만 엄밀히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규칙도, 임원도, 안건도, 공식적인 투표 과정도 없었다.”고 말하는데, The Inklings는 소설의 내러티브적 가치에 열광하는 이들이었고 서로의 판타지 저작을 격려했다. 여러 구성원들의 저작을 살펴보면 기독교적 가치가 명백히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무신론자들도 있었다.
이 중 C.S. 루이스와의 관계는 대단히 주목할만하다. 두 사람은 매우 친밀했고, 갈등도 있었지만 항상 서로를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톨킨의 말년에 다소 불편한 관계는 찰스 윌리엄스와의 관계, 루이스의 결혼, 종교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겹쳐 이뤄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톨킨에 대해 지속적으로 애정을 보냈다.
루이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톨킨은 그의 별고 기사 요청을 거절하고, 장례식 초대도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인 서간을 통해 루이스를 잃게 된데 대한 깊은 상실감을 토로했다.
구성원의 미완성 저작을 읽고 논의하는 것은 모임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였으며, J.R.R 톨킨이나 C.S 루이스, 윌리엄스의 저작은 이 모임에서 처음 읽혀지기도 했다. 이런 논의 과정은 톨킨 작품의 형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톨킨의 작품에 등장하는 노션 클럽(Notion Club)은 이 모임을 모티브로 설정된 것이다.
- 그가 옥스퍼드에 합격하고 여름방학 때 스위스 알프스 여행을 다녀오며 구입한 그림 엽서가 있다. 마들렌네라는 독일 화가의 이 그림에는 흰 수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길게 늘어진 옷차림으로 흰 새끼 사슴과 이야기하는 노인이 있었는데, 톨킨은 훗날 이 엽서에 '갠달프의 모델'이라고 적어놓았다.
- 처음 호빗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달랐다. 용의 이름은 프리프탄, 난쟁이들의 대장은 간달프, 마법사는 블라도르신이었다. 후에 용은 '몸을 쥐어짜서 구멍 따위를 간신히 빠져나간다'는 뜻의 독일어 동사 smugan을 이용해 '스마우그'로. 블라도르신은 유지되다가 난쟁이 대장의 이름처럼 참나무방패 소린이 되었고, 간달프는 마법사 요정, 마법사라는 뜻을 가진 아이슬란드어에 걸맞게 마법사로 탈바꿈했다.
- 참고로 그의 작품 세계에 등장하는 난쟁이들의 이름은 대개 <구 에다>에서 따온 것들이다.
-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실마릴리온>을 함께 출간했으면 하는 바램탓에 출판과 관련해 복잡한 일화들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호빗>을 출간했던 어윈과 콜린스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으며 결국 문제가 복잡해지자 어윈에게로 돌아섰다.
- 미국에서 페이퍼백 판은 정식 라이센스 된 것 보다 에이스 출판사의 해적판이 먼저 출간되어 인기를 누렸다. 그로부터 더 늦게 내용이 개정된 정식 라이센스 판 페이퍼백이 출간되었으나 20센트 가량 더 비싼 가격으로 해적판의 인기가 더욱 좋았다.
이것을 해결한 것은 별다른 사업적 수완이 아닌, 톨킨의 꼼꼼한 팬레터 답장이었다. 그는 팬레터에서 해적판에 관한 얘기를 당부했고 톨킨의 팬레터로 형성된 미국의 팬덤은 서점에 해적판 철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에이스 북스는 톨킨에게 판매한 인세를 주고 재고가 소진된 후에는 재판을 찍지 않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이 것은 또한 반지의 제왕에 대한 분명한 홍보효과가 되었다.
- <반지의 제왕>의 영화화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 한가지는, 톨킨이 당시의 기술로는 영화의 제작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귀찮게 굴던 영화제작자들에게 겨우 1만 파운드에 영화 제작 관련 권리를 넘겼다는 사실이다.
2000년 이후,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제작된 3편의 영화는 큰 흥행을 거뒀지만, J.R.R 톨킨의 아들이자 그의 유작 작업을 정리해온 크리스토퍼 톨킨은 자신의 돈을 내고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톨킨의 저작과 유작들
《A Middle English Vocabulary》(1922)
《Beowulf:The Monsters and the Critics》(1937)
: 베오울프는 J.R.R. 톨킨의 첫 전문 저작물로, 서사시인 베오울프에 대한 연구물로 베오울프와 관련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
《Mr. Bliss》(1937)(1982) (블리스 씨 이야기) 37년은 옥스퍼드에서 출간.
: J.R.R. 톨킨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집필한 동화책. 블리스 씨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다루고 있다. 톨킨이 손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The Silmarillion》(1937)(1977) (실마릴리온) ; 37년은 옥스퍼드에서 출간.
: 실마릴리온은 미들어쓰와 관련된 최초 저작물에 해당한다. 미들어쓰의 여러 이야기들과 언어, 신화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37년에 출간되기는 하였으나, 정식으로 공개되고 출간된 것은 그가 죽은 후인 77년의 일이다.
《The Hobbit》(1937) (호빗)
: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집필한 일종의 동화, <
《Farmer Giles of Ham》(1949)
《The Lord of the Rings》(1954) (반지 전쟁, 반지의 제왕)
: 톨킨의 대표작으로 호빗 이후 출판업자의 권유로 이어 쓴 후속판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출간 당시에 이미 큰 반향을 이끌었고, 1978년 랄프 박시에 의해 애니메이션화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2002년 이후 제작된, 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작업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국내에는 <반지 전쟁>, <반지의 제왕> 등의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를 통해 소개되었다.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2007년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The Adventure of Tom Bombadil》(1962)
《Tree and Leaf》(1964) (‘니글의 이파리’가 판타스틱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Smith of Wootton Major》(1964)
《Bilbo's Last Song》(1974)
《Sir Gawain & the Green Knight, Pearl, Sir Orfeo》(1975) 톨킨의 번역물.
《The Father Christmas Letters》(1976) (북극에서 온 편지)
《Unfinished Tales 》(1980)
《Oliphaunt》(1989)
《Roverandom》(1998) (2008년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저작물 가이드
반지의 제왕은 국내의 여러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예문판에서 나온 <반지 전쟁> (전 3권짜리)은 김번, 김보원, 이미애 3인 공역이다. 후일 이 책은 5권으로 재구성되었는데 정식 라이센스판은 아닌 듯 싶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출간된 정식본에서는 이 세 사람의 공역이 사용되었다.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반지의 제왕> (전 6권)은 존 호우의 일러스트를 표지로 사용하였으며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맺고 출간되었다. 그러나 저작권자의 바람과 달리 황금가지가 <반지의 제왕> 이후 톨킨의 저작에 대한 출판에 이견을 보이면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황금가지를 이어 판권을 얻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톨킨의 지침에 따라 번역을 하였고, 기본적인 번역은 예문판의 3인 공역을 따랐다.(실제 역자는 예문판과 동일하다.) 톨킨 작품 속 세계를 전문적으로 그려온 앨런 리의 일러스트를 사용하였다. 소장본과 7권짜리 보급판의 두가지 판본을 준비했다. 이후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는 톨킨의 다른 저작물들을 출간할 예정이며,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가 앞서 출간되었다.

그 외에 동서문화사에서 역시 라이센스 없이 출간된 <완역-반지 제왕>이 있으며, 일본어판의 중역으로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동서문화사에서는 이에 앞서 1988년, ACE88문고를 통해 반지의 제왕을 이미 국내에 첫 소개한 바 있다. <반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번역자는 강영운 씨이다. 당시 각 권의 제목은 <머나먼 길> 16권, <머나먼 숲> 17권, <머나먼 산> 33권, <머나먼 강> 34권, <머나먼 별>35권, <머나먼 땅> 36권 이었다.
한편 이 출판사의 동 시리즈에서는 《the Hobbit》이 <호비트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역자는 공덕용 씨. 권수는 15권이었다.
비슷한 시기 성바오로 출판사에서는 '마술반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번역자는 외교관 출신 번역가인 이동진 씨였다.
한편 <실마릴리온>은 2002년 다솜 미디어에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번역상의 몇 가지 실수들을 지적 받고 있다. 2004년에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실마릴리온>이 정식 출간되었고, 2007년에는 같은 회사에서 2권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반지의 제왕>의 전신을 이루는 동화 <호빗> 역시 이 회사에서 2002년에 출간되었다. <호빗>의 경우 1988년 창비아동문고를 통해 <호빗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앞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동서문화사도 동일)



<블리스 씨>는 98년 자유문학사에서 양장으로 출간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2008년에는 <후린의 아이들>과 <로버랜덤>이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 의해 출간되었다.
톨킨 관련 저작물 소개
황금가지에서 2002년 출간된 카렌 윈 폰스테드의 <지도로 보는 반지의 제왕>은 작품 속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002년에 해나무에서 출간한 데이비드 데이의 <톨킨 백과사전>은 톨킨의 작품과 관련된 500여개 이상의 표제어를 수록하며 톨킨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톨킨 개인을 살펴볼 수 있는 책들도 있다.
콜린 듀리에즈의 <루이스와 톨킨>은 2005년 홍성사에서 펴낸 책이다. C.S 루이스와 J.R.R. 톨킨 간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30분에 읽는 J.R.R. 톨킨>에서는 톨킨의 작품 세계를 통해 톨킨이라는 인물의 사상을 조망한다.
2001년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한 <톨킨 : 인간과 신화>나 2004년 해나무에서 출간된 <톨킨전기>는 각각 카톨릭 신부인 조지프 피어스와 톨킨 전문가이자 전기 작가인 험프리 카펜터를 통해 톨킨이라는 인물의 면면을 살펴본다. 2003년 작가 정신에서 출간한 <톨킨 : 판타지의 제왕> 역시, 전기 전문작가인 마이클 화이트에 의해 집필된 톨킨에 관한 평전이다.
참고 자료
http://www.tolkienlibrary.com/ (여기는 작품 목록 정리할 때 참고)
http://store.tolkien.co.uk/ (여기는 바이오그래피 부분)
Wikipedia (영문판/한글판: 자료 보충 및 the Inkling 관련 자료)
http://www.angelhalo.org/wiki/index.php?url=angel&no=8372 (톨킨 관련 일화 中)
주간조선 관련 기사
<톨킨전기>, 험프리 카펜터, 해나무, 2004.
미스트 님의 자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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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gon, 미스트, Less☆, Mr.Jones, L.제이글라카, 재건, 까꽁폭풍, Frey, Peel lemon, 자하, 큐팁, 개념없음, 유로스, Wishsong, 바잙, Asuka_불의넋, dlraud, 초이
최종업데이트
2009년 1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