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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笑傲江湖)
나의 아버지는 소싯적에 무협소설을 삼천 권 읽었다고 한다. 물론 과장섞인 ‘구라’였음이 나중에 판명되었지만, 어쨌건 많이 읽기는 읽었던 듯 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이 그러했기에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판타지소설이나 무협소설을 읽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내가 옛날에 무협지를 삼천 권 읽었지만 지금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라면서. (어쩌면 나도 20년쯤 후에 ‘내가 옛날에 양판소를 삼천 권 읽었지만 지금 남는 게 하나도 없다’라는 설교를 아들에게 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런 아버지와 나, 그리고 무협소설에 대해서는 상관없었던 어머니마저도 끌어들여 온 가족이 무협소설에 몰두했던 때가 있다. 김용(金庸,1924~)의 소설을 읽을 때였다. 아버지가 <영웅문>3부작, <영웅도>시리즈, 천룡팔부, 소오강호를 빌려오길 기다리며, 곽정과 황용에 대해 어머니와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의문이었던 우리 가족의 김용 붐 시절이었다.
무협소설가들 중에서도 김용을 최고로 뽑는 김용빠인 아버지가 (아버지는 좌백이나 설봉을 모른다. 아버지에게 한국무협이란 중국무협에게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80년대의 질낮은 양산형 무협을 뜻한다.) 김용의 소설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소설이 있다. 바로 <소오강호>다.
사실 나는 <소오강호>보다는 <사조영웅전>이 더 재미있었다. 그렇기에 도대체 <소오강호>의 어디가 그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족의 김용붐이 지나고 나서 4년이 지난 지금,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너무 어렸다.
<소오강호>는 다른 무협소설들과 달리 정파와 사파의 경계가 애매하다. 정파의 장문인들에도 위선자가 가득 하고, ‘마교’의 고수들 중에서도 호걸들이 있다. 숭산파의 장문인 좌냉선이나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 마교의 교주 임아행과 동방불패는 강호를 통일하기 위해 음모와 협잡을 마다치 않는다.
화산파의 제자였던 영호충은 그런 정파와 사파사이를 오가며 강호의 모험을 즐긴다. 화산파의 옛 장로 풍청양에게서 오악파의 검법을 전수받고, 어느정도 실력을 갖춰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면서 정파와 마교의 중요한 인물이 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가면 영호충은 오악파중 유일하게 온전한 항산파의 장문인이자, 마교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아가씨 임영영의 애인으로, 소림사와 무당파의 장문인등을 비롯한 정파와 사파의 무림인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만약 영호충이 원한다면 강호를 통일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은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부귀도, 공명도, 권력도, 무공도, 정의도 그의 관심을 끌지 못 했다. 그는 결국 일개인으로 강호에서 은퇴하여 연인인 임영영과 함께 소오강호곡을 연주하며 여생을 보내는 길을 선택했다.
험난한 세상사를 강호에 비유하던 아버지는 그런 영호충의 삶에 공감했을 것이다. 중학교때 직장에서 돌아오던 아버지는 언제나 지쳐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자기 본분을 잊고 편가르기에 급급하여 권력욕을 내비추던 동료들을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버지는 정치를 싫어했다. 중학교때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내 학비만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진작에 직장을 관뒀을 지도 모른다. 편가르기에도, 승진에도 초연했던 아버지는 소오강호에서의 강호처럼 음모와 협잡이 가득했던 직장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호충처럼 초야에 은거해 노후를 즐기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소오강호>보다는 <사조영웅전>이, 영호충보다는 곽정이 더 좋다. 그렇지만 언젠가 사회에 나가 직장에 취직하고,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 다시한번 <소오강호>를 손에 들지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는 소싯적에 무협소설을 삼천 권 읽었다고 한다. 물론 과장섞인 ‘구라’였음이 나중에 판명되었지만, 어쨌건 많이 읽기는 읽었던 듯 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이 그러했기에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판타지소설이나 무협소설을 읽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내가 옛날에 무협지를 삼천 권 읽었지만 지금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라면서. (어쩌면 나도 20년쯤 후에 ‘내가 옛날에 양판소를 삼천 권 읽었지만 지금 남는 게 하나도 없다’라는 설교를 아들에게 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런 아버지와 나, 그리고 무협소설에 대해서는 상관없었던 어머니마저도 끌어들여 온 가족이 무협소설에 몰두했던 때가 있다. 김용(金庸,1924~)의 소설을 읽을 때였다. 아버지가 <영웅문>3부작, <영웅도>시리즈, 천룡팔부, 소오강호를 빌려오길 기다리며, 곽정과 황용에 대해 어머니와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의문이었던 우리 가족의 김용 붐 시절이었다.
무협소설가들 중에서도 김용을 최고로 뽑는 김용빠인 아버지가 (아버지는 좌백이나 설봉을 모른다. 아버지에게 한국무협이란 중국무협에게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80년대의 질낮은 양산형 무협을 뜻한다.) 김용의 소설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소설이 있다. 바로 <소오강호>다.
사실 나는 <소오강호>보다는 <사조영웅전>이 더 재미있었다. 그렇기에 도대체 <소오강호>의 어디가 그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족의 김용붐이 지나고 나서 4년이 지난 지금,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너무 어렸다.
<소오강호>는 다른 무협소설들과 달리 정파와 사파의 경계가 애매하다. 정파의 장문인들에도 위선자가 가득 하고, ‘마교’의 고수들 중에서도 호걸들이 있다. 숭산파의 장문인 좌냉선이나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 마교의 교주 임아행과 동방불패는 강호를 통일하기 위해 음모와 협잡을 마다치 않는다.
화산파의 제자였던 영호충은 그런 정파와 사파사이를 오가며 강호의 모험을 즐긴다. 화산파의 옛 장로 풍청양에게서 오악파의 검법을 전수받고, 어느정도 실력을 갖춰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면서 정파와 마교의 중요한 인물이 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가면 영호충은 오악파중 유일하게 온전한 항산파의 장문인이자, 마교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아가씨 임영영의 애인으로, 소림사와 무당파의 장문인등을 비롯한 정파와 사파의 무림인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만약 영호충이 원한다면 강호를 통일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은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부귀도, 공명도, 권력도, 무공도, 정의도 그의 관심을 끌지 못 했다. 그는 결국 일개인으로 강호에서 은퇴하여 연인인 임영영과 함께 소오강호곡을 연주하며 여생을 보내는 길을 선택했다.
험난한 세상사를 강호에 비유하던 아버지는 그런 영호충의 삶에 공감했을 것이다. 중학교때 직장에서 돌아오던 아버지는 언제나 지쳐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자기 본분을 잊고 편가르기에 급급하여 권력욕을 내비추던 동료들을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버지는 정치를 싫어했다. 중학교때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내 학비만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진작에 직장을 관뒀을 지도 모른다. 편가르기에도, 승진에도 초연했던 아버지는 소오강호에서의 강호처럼 음모와 협잡이 가득했던 직장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호충처럼 초야에 은거해 노후를 즐기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소오강호>를 제일 좋아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소오강호>보다는 <사조영웅전>이, 영호충보다는 곽정이 더 좋다. 그렇지만 언젠가 사회에 나가 직장에 취직하고, 세상사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 다시한번 <소오강호>를 손에 들지 모르겠다.

이 책을 탐독했던 때는 고2~고3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이렇게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다시 읽는다면 작품이 담고 있는 느낌들이 보다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는 기분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