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이글에 장점은 2가지정도 이다.

첫째는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면서도 읽기 쉽다는 점이다.

지구에 남아있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고 타락해가는 나비인 들을 통해 변질되어가는 초심을 보면서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글과 드래곤라자를 비교해보자.

드래곤라자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철학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보니 글을 읽기 힘들다. 그리고 이이유로 이글을 읽다가 접은 사람도 많다. 이글에서 이 철학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마이너스일 뿐이다.

둘째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다.

만약 어떤 소설의 결말이 누구나 예상하는 것이라면 그 글의 재미는 줄어들 것이다.

파피용에도 그러한 반전이 있다.(그러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이야기 하지는 않겠다.) 그 치밀한 구성을 위해 깔아둔 복선도 여러 개 있다.

다만 한가지만을 알려주자면 2개의 ‘지구’를 유심히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용이야기를 해보자.

과연 그들은 나비가 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처음에는 나비였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악이 생기고서 부터는 그들은 인간으로 돌아왔고, 처음의 실수는 다음 실수를 만들어낸다. 나비에서 나비‘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들은 구속을 만든다. 나비를 상자 안에 넣었으니 나비는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바로 자식들 이다.

자식이 부모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구속된 세계에서 그들은 완전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로인해 그들은 인간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종족이 번영한 게 아니라 종족이 망해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방주에탄 인간으로써 타지 못한 인간들을 비웃는 것으로 자신들을 이어 놓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아마 사틴이 사람들을 이끌고 가버린 것은 이것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돌아갈 자들을 모았을 것이고 돌아가 버린 것이다.

아마도 나비로 죽은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