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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나 남았다.
Arkady and Boris Strugatsky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Za Milliard Let do Kontsa Sveta
“2백 년 만에 처음이라는 찌는 듯한 6월의 더위가 도시를 집어삼켰다. 달아오른 지붕 위에선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활짝 열린 채였다. 기진맥진한 나무들의 흐느적거리는 그늘 밑 작은 벤치 위에는 노파들이 땀을 쏟으며 녹아 내렸다.”
이 작품에는 초인, 인공지능, 우주선, 강력한 무기, 기이한 미래상등은 존재 하지 않는다. 단지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더위, 숨 막힐 것 같은 더위가 존재한다.
...밀랴노프는 늘 그렇듯 여전히 창문을 두 짝 다 열고 무거운 노란색 블라인드로 빈틈없이 막아 놓았다.
숨 막힐 정도의 더위. 그것은 개인의 역량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여름의 더위는 블라인드를 꼭꼭 막아 놓는 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를 둘러 싼 보이지 않는 힘, 우리가 인식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를 내리누르는 거대한 힘이 블라인드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더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억압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우화이며, 유토피아라고 믿었던 디스토피아, 소련의 한 지식인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며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내리누르는 권력에 대한 풍자이다.
국내에 소개된 스뜨루가츠끼 형제의 작품이 이것이 유일하지만, 스뜨루가츠끼 형제의 작품은 러시아 문학의 반유토피아적 흐름에 속해 있으니,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자.
유토피아 문학이 당대사회의 풍자적 목적으로 많이 쓰여 졌고, 19세기에 들어서는 과학의 주제를 도입한 미래의 사회상의 투사를 통한 작품들이 많이 쓰여 졌다. 러시아적 전통이라 할수 있는 서유럽에 대한 불신과 엄격한 검열 제도, 전반적인 리얼리즘의 성향 덕택에 그다지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체르니셰프스끼Nikolay Gavrilovich Chernyshevsky의 낭만적 동경에 공상적 사회주의와 유물 사관이 어수선하게 혼합된 유토피아문학 '무엇을 할것인가Chto delat'-*1등 몇 가지가 존재해 있었다.
반면 반-유토피아 진영에는 도스또예프스끼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가 있었다.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당시의 공상적이고 물질적인 유토피아론을 공격한다. 예를 들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Brat'ia Karamazovy'의 대심문관의 장에서 나타난 세계는 개인의 의식과 자유의지가 말살되는 광경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전형은 그대로 혹은 변형된 모습으로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
한편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며 러시아 혁명을 거치게 되며 나타난 반유토피아적 전통은 자먀찐Yevgeny Ivanovich Zamyatin의 '우리들We'에서 그 꽃을 활짝 피우게 되나 획일화된 사회에서의 개인의 상상력과 자유의 말살을 정확하게 지적한 소설로서, 풍자의 신랄함 덕택에 소련에서는 출판이 금지되게 이른다.*2 1차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올더스 헉슬리의Aldous Huxley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조지오웰George Orwell의 '1984'등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룬 반-유토피아문학의 걸작들이 탄생하는 동안 혁명 이후의 소련의 미래소설들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그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혁명은 지상낙원을 약속하지만, 그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념성을 배제한다 할지라도 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회의에서 공식용어로 채택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창작원칙*3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에 해빙무드가 조성되기 전까지 소련의 반-유토피아 문학은 거의 명맥을 상실하고 있었다.
60년대 예프레모프Ivan Yefremov의 ‘안드로메다의 성운Tunmannost' Andromedy'로부터 시작된 소련 SF문학의 부흥에, 스뜨루가츠끼 형제를 비롯한 수준 높은 소설가들의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SF문학의 결국 70년대 말에 소련 정부의 압력으로 약화되기에 이르는데 일련의 작가들이 소련 정부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공격, 나아가서는 맑시즘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을 위해 SF의 형식을 빈 것을 더 이상 소련정부가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스뜨루가츠끼 형제의 작품세계가 도스또예프스끼, 자먀찐등으로 이어져온 반-유토피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련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자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풍자하기도 한다.
다시 작품 속으로 돌아가 보자.
‘말랴노프는 뛰어난 과학자로서, 현재 대단한 과학적 연구의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성과의 끝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주위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엉뚱한 전화가 괴롭히고, 이상한 방문객들이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간다. 이웃집의 물리학자는 시체로 발견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다른 동료 과학자들과 만나게 되는 말랴노프는 자신을 비롯한 과학자 모두 의문의 방문자들로부터 연구를 중지하라는 협박을 받게 되고, 그 방문자들의 정체에 두려워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냐, 혹은 연구를 포기하고 영광과 행복을 누리겠느냐 라는 갈등에 직면한다.’
이상이 이 작품의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내내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기괴하다 싶으면 기괴한, 약간은 특이한 성격들 간의 충돌, 그리고 레닌그라드라는 공간과 200년만의 폭서가 주는 암시,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은 명백히 당시(1976-1977)의 암울한 소련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항상성이론*4과 외계에의 위협은 명백히 권력에 의한 개인의 말살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가, 당시대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 우의寓意만으로 보는 것은 작품의 가치를 너무 떨어 뜨리는 게 아닐까? 더위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는 러시아 문학의 전통처럼, 그 완급을 조절하면서 적절히 파고들고 있고, 주인공들 개개인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긴 대화체는 소설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이 내포한 인간과 비인간, 개인과 전체, 힘과 힘, 갈등과 갈등에서 유도되는 긴장감이라는 구조로 파악해 보면, 작품이 단순한 우의소설이 아니라 좌절에 굴하지 않고 역경에 맞서는 영웅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외부의 압력에 의한 내적갈등으로 인해 좌절이냐, 극복이냐의 양자택일이란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모두 지식인만이 당면하게 되는 갈등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맞닥뜨리게 되는 보편적인 문제이며, 영원한 숙제인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에 이르도록 스뜨루가츠끼 형제는 어떤 해답도 교훈도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인간 어느 누구 라도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며, 이 갈등과 투쟁은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반복되고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이고 영웅적인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 우리는 서로의 눈을 응시 했다. 두꺼운 렌즈의 이면에는 긴장감도, 위장된 대담함도, 가짜 순교자의 표정도 더 이상 안 보였다. 차분하고 불그스름한, 확신, 모든 것은 순리대로 되어야만 한다는, 그리고 그 밖에는 아무 다른 해결책도 없다는 확신.
그는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계속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둘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의 세월이 있다고 그가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10억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촛불 아래서 마지막 말들을 휘갈겨 썼도다! 그리고 죽음의 강에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도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나 남아 있고, 우리 앞엔 무수한 도전과 갈등이 남아 있다. 특히, 자유와 행복의 문제-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는 언제고 우리 앞을 막아서서 괴롭힐 것이다. 행복해 질것인가? 혹은 10억년을 기대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2007년 12월 31일.
재건(zaegun@gmail.com)
*1레닌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과 관련이 있다. 레닌은 체르니셰프스끼를 마르크스 이전의 위대한 사상가라고 칭송했다.
*2온통 수학적으로 조직되고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 가득 찬 한 국가에서 d-503이라는 인물의 저항활동에 대해 다룬 작품. 이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은 d-503, 0-90, r-13같은 수학적 이름을 부여 받는다. 이것은 엄연한 중앙집중적이고 계획화된 국가의 통제와 개인성의 말살을 의미한다. 한편, 주인공의 레지스탕스그룹 메피스토펠레스는 악마의 이름으로서 완벽한 사탄을 상징하며, 이것은 ‘한 국가’처럼 체계화된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하고 있는, 도스또예프스키의 명백한 암시이다.
*31932년 소련에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수립된 문학창작의 이론 및 방법.
1934 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회의에서 공식용어로 채택되어 기본 창작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수년 간의 논쟁을 통해 정의되고 재해석된 나머지 막연하게 사용되었고, 공산주의에 충성하는 많은 작가들도 부지중에 그 원칙을 어기곤 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인생의 충실하고 객관적인 거울이 되려 한다는 점에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사실주의, 즉 비판적 리얼리즘과 구별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지표는 ① 노동자계급 세계관, ② 예술창작의 철학적 바탕으로서의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 ③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입장에 따른 예술창작의 정신적·이념적 전제로서의 당파성 등이 가치평가 태도이다.
사 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사회를 묘사함에 있어 불완전함을 인정하기는 해도 보다 폭넓은 역사와의 연관을 염두에 두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취해야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필수적 요건은 온갖 장애와 난관에 맞서 분투하는 적극적·긍정적인 주인공이다(→ 영웅). 대중의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인물 및 사건을 고상하고 이상적으로 만들기를 장려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소련 작가들은 수백 명의 긍정적인 주인공들(대개는 기술자·발명가·과학자 등)을 만들어냈는데, 이들은 현실적인 인물 같지 않다는 점에서 놀라우리만큼 한결같다. 때로 작가의 체험이 공식적 주장과 일치할 때는 성공작이 나오기도 한다. 32세에 요절한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가 쓴 〈강 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Kak zakalyalas stal〉(1932~34)는 대표적인 예이다.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은 10월혁명 때 부상을 당한 뒤 자신의 신체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작가가 되어 재건운동의 노동자들을 고취시킨다는 내용이다. 젊은 작가의 열정적인 진지함과 자전적 체험은 파벨 코르차긴에게 대부분의 소비에트 주인공들이 갖지 못한 통렬한 신념을 부여하고 있다.
사 회주의 리얼리즘은 또한 시각예술에 있어서도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전적이고 이념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이 경향에 입각한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은 적극적이고 용감한 노동자들과 농부들을 자연주의적으로 이상화하여 그렸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미학이었으나, 20세기말에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주도한 사회적 변혁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모든 러시아어는 영어식으로 표기했다.(출처:브리태니커 백과사전)
*4 ...그는 계속 설명을 했다. [에너지와 물질의 보존 법칙이란 구조 보존 법칙의 불연속적 표현일 뿐이야. 비점감 엔트로피의 법칙은 지구의 항상성에 위배돼. 그러므로 보편원칙은 될 수 없고 국부적인 원칙의 선에 머무는 거야. 그걸 보충하기 위해 있는 것이 이성의 부단한 자기 재생산의 원칙이야. 이 두가지 국부적인 원칙의 결합과 대립이 즉 구조 보존이라는 보편율의 표현인 셈이지.... 이상이 본문중에서 발췌한 항상성恒常性에 대한 설명으로 체제유지를 위한 변화에 대한 탄압을 상징한다.
*형인 아르까지 스뜨루가츠끼는 1991년 사망하였다.
*텍스트로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석영중 옮김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사용했으며, Wikipedia -dystopian fiction와 텍스트 부록을 참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