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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결 - 김용
김용은 상당히 단점이 많은 작가다. 읽는 사람의 낯이 뜨거울 정도인 중화사상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미루어 두고라도. 사건의 전개나 상황 설정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은리가 잠꼬대로 한참이나 사설을 늘어놓는다던가, 의림의 기억력이 좋다는 구실 하나로 영호충과 전백광의 대결을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태연스럽게 펼쳐 낸다. 무협의 일반적인 수준을 두고 비교하여 그 정도면 무난하다거나, 허구성이 강한 무협의 특징을 들어 감싸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 혹독한 말인지 몰라도 김용의 소설은 ‘장화신은 고양이’만도 못한 개연성을 종종 보여준다. 난 가끔 김용의 소설을 무려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김학에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그럼에도 난 김용의 작품을 무척 좋아한다. 반복해서 몇 번이나 읽을 정도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우매하고 천박한 중생들이라며 깔보기에는 김용에 열광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 그건 김용이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많은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장점이 워낙 뚜렷하고 대중적인지라, 사람들의 눈을 홀려 단점에 시선이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그 매혹적인 인물과 이야기에 중독 시켜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용 작품의 특징이라면, 뚜렷한 캐릭터, 무협 보다는 영화와 비슷한 전개 방식, 방파 사이의 정치적(?)인 암투보다 개인적인 갈등과 욕망에 치중하는 사건들, 그리고 강호의 탐욕, 은원과 결별하여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결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용은 일부 단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귀거래의 결말을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가 연성결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성결의 결말은 주인공이 속세에 대한 환멸을 느껴 그야말로 은둔과 고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해피 엔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연성결은 극단적인 처절함과 우울함으로 김용의 다른 작품들과 거리를 둔다. 소설 내내 주인공 적운은 억울하고 비참한 꼴을 당하며, 강력한 무공을 얻은 뒤에도 그 비통함과 불행은 그칠 줄 모른다. 소설 내내 호쾌하고 후련한 맛이란 전혀 없다. 결말에 이르러도 주인공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서장의 황량한 계곡에 숨어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알다시피 모든 주인공에는 글쓴이가 반영되어 있다. 글쓴이 그대로의 모습이건, 비튼 모습이건 말이다. 이는 각 작품 주인공들의 공통되는 부분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김용 소설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성격을 뽑아보자면, 첫째, 강력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유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고, 둘째, 세속적인 가치에는 무관심하며, 셋째, 여자들에게 흔들리는 수동적인 남성상을 갖고 있다. (김용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능동적이고 영악한데, 이는 김용 개인의 성적 환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완전히 예외적인 인물인 위소보도 있지만, 이는 어찌 보면 김용이 자신의 전형적인 인물상을 의도적으로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연성결의 주인공 적운은 김용식 주인공들의 전형성에서 조금 빗긴 인물이다. 위소보처럼 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히려 그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 까닭에는 실제의 인물에서 비롯되었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실제의 인물 화생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자연스럽게 김용의 전형적인 주인공 상에 새로운 성격이 첨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성격은 글의 전개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으로 꽤 눈여겨 볼만하다.
그 다른 점이란 적운에겐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협객행의 주인공 개잡종처럼 아무 생각 없이 상황이 이끄는 대로 행복하게 나부끼는 바보스러운 인물은 논외로 치겠다.) 사매 척방을 찾고, 복수를 하고자 마음을 먹긴 하지만, 머릿속에서 항상 머무는 세속에 대한 환멸과 피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연성결이란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간다.
결국 적운은 마음먹은 것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적운은 세상에 견줄 자가 없는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이지만, 다른 무협소설과는 달리 그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강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흉한 일과 그 추악한 동기들을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풀거나, 제대로 된 복수도 하지 못하였으며,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처만 받은 채 속세를 등져야 했다. 주인공이 시종 외부의 침해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다 상처만 입고 쫓겨나는 이야기. 무협소설에서는 상당히 드문 경우일 것이다.
김용은 적운에게 부모를 잃은 공심채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수생을 그나마 위로로 제공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쓸쓸하고 서글프기만 하다. 이미 삶에서 막대한 절망을 느낀 그들이 황량한 서장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 글 역시 김용의 고질적인 단점들은 여전하다. 척장발이 무공을 속이면서까지 굳이 제자를 키워야 했던 이유라던가, 화철간이 겁쟁이가 되는 상황,(사실 별 것 아닌 일에 지레 귀신이라 짐작하여 도망간다는 것은 어설픈 방식임에도 김용은 너무 많이 써먹는다.), 척장발이 벽속에서 살아 도망칠 수 있었던 사정 등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악인과 소인배가 판을 치는 우울한 강호를 그린 작품으로 독특한 맛이 있어 읽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보태기 : 척장발, 만진산, 벽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포우의 소설에 따온 것이 아닐까?
김용은 상당히 단점이 많은 작가다. 읽는 사람의 낯이 뜨거울 정도인 중화사상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미루어 두고라도. 사건의 전개나 상황 설정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은리가 잠꼬대로 한참이나 사설을 늘어놓는다던가, 의림의 기억력이 좋다는 구실 하나로 영호충과 전백광의 대결을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태연스럽게 펼쳐 낸다. 무협의 일반적인 수준을 두고 비교하여 그 정도면 무난하다거나, 허구성이 강한 무협의 특징을 들어 감싸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 혹독한 말인지 몰라도 김용의 소설은 ‘장화신은 고양이’만도 못한 개연성을 종종 보여준다. 난 가끔 김용의 소설을 무려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김학에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그럼에도 난 김용의 작품을 무척 좋아한다. 반복해서 몇 번이나 읽을 정도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우매하고 천박한 중생들이라며 깔보기에는 김용에 열광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 그건 김용이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많은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장점이 워낙 뚜렷하고 대중적인지라, 사람들의 눈을 홀려 단점에 시선이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그 매혹적인 인물과 이야기에 중독 시켜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용 작품의 특징이라면, 뚜렷한 캐릭터, 무협 보다는 영화와 비슷한 전개 방식, 방파 사이의 정치적(?)인 암투보다 개인적인 갈등과 욕망에 치중하는 사건들, 그리고 강호의 탐욕, 은원과 결별하여 자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결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용은 일부 단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귀거래의 결말을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예가 연성결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성결의 결말은 주인공이 속세에 대한 환멸을 느껴 그야말로 은둔과 고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해피 엔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연성결은 극단적인 처절함과 우울함으로 김용의 다른 작품들과 거리를 둔다. 소설 내내 주인공 적운은 억울하고 비참한 꼴을 당하며, 강력한 무공을 얻은 뒤에도 그 비통함과 불행은 그칠 줄 모른다. 소설 내내 호쾌하고 후련한 맛이란 전혀 없다. 결말에 이르러도 주인공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서장의 황량한 계곡에 숨어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알다시피 모든 주인공에는 글쓴이가 반영되어 있다. 글쓴이 그대로의 모습이건, 비튼 모습이건 말이다. 이는 각 작품 주인공들의 공통되는 부분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김용 소설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성격을 뽑아보자면, 첫째, 강력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유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고, 둘째, 세속적인 가치에는 무관심하며, 셋째, 여자들에게 흔들리는 수동적인 남성상을 갖고 있다. (김용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능동적이고 영악한데, 이는 김용 개인의 성적 환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완전히 예외적인 인물인 위소보도 있지만, 이는 어찌 보면 김용이 자신의 전형적인 인물상을 의도적으로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연성결의 주인공 적운은 김용식 주인공들의 전형성에서 조금 빗긴 인물이다. 위소보처럼 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히려 그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 까닭에는 실제의 인물에서 비롯되었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실제의 인물 화생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자연스럽게 김용의 전형적인 주인공 상에 새로운 성격이 첨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 성격은 글의 전개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으로 꽤 눈여겨 볼만하다.
그 다른 점이란 적운에겐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협객행의 주인공 개잡종처럼 아무 생각 없이 상황이 이끄는 대로 행복하게 나부끼는 바보스러운 인물은 논외로 치겠다.) 사매 척방을 찾고, 복수를 하고자 마음을 먹긴 하지만, 머릿속에서 항상 머무는 세속에 대한 환멸과 피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연성결이란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간다.
결국 적운은 마음먹은 것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적운은 세상에 견줄 자가 없는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이지만, 다른 무협소설과는 달리 그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강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흉한 일과 그 추악한 동기들을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풀거나, 제대로 된 복수도 하지 못하였으며,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처만 받은 채 속세를 등져야 했다. 주인공이 시종 외부의 침해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다 상처만 입고 쫓겨나는 이야기. 무협소설에서는 상당히 드문 경우일 것이다.
김용은 적운에게 부모를 잃은 공심채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수생을 그나마 위로로 제공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쓸쓸하고 서글프기만 하다. 이미 삶에서 막대한 절망을 느낀 그들이 황량한 서장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 글 역시 김용의 고질적인 단점들은 여전하다. 척장발이 무공을 속이면서까지 굳이 제자를 키워야 했던 이유라던가, 화철간이 겁쟁이가 되는 상황,(사실 별 것 아닌 일에 지레 귀신이라 짐작하여 도망간다는 것은 어설픈 방식임에도 김용은 너무 많이 써먹는다.), 척장발이 벽속에서 살아 도망칠 수 있었던 사정 등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악인과 소인배가 판을 치는 우울한 강호를 그린 작품으로 독특한 맛이 있어 읽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보태기 : 척장발, 만진산, 벽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포우의 소설에 따온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