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장르 리뷰

0. 序說
리베르와 이반을 구입한 이래, 2권의 마지막 장 (엄밀히는 ‘더 레이피어러’가 시작하기 전까지)을 덮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해야겠다. 일차적인 이유는 본인의 게으름, 이차적인 이유는 반납기한이 다가오던 대책 없이 대출한 책들에 원인이 있었다. - 만약, 도서관 전산 시스템에서 연장신청 일을 넘기지 않았다면 리베르와 이반을 읽는 데는 더 적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면 ‘진짜 재미있는 책이었다면, 첫 권을 시작한 이래 바로 완독을 했을 것이다.’ 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언급한대로 그 것은 ‘오해’이다. 내 방만하며 산만한 독서 습관의 결과물일 뿐. 실제로 대출 도서들을 반납하기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2권은 완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리베르와 이반은 이런 유형의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적어도 본인에게는 문장과 표현이 편안하고, 내용에는 흥미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본래, 1권을 다 읽은 시점에서 적으려 했던 감상은 몇 줄을 써내려가다가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2권을 마저 읽고 쓰는 것이 옳다고 여긴 까닭이다. 좀더 바르게 가자면 완결이 난 후에 감상을 적는 것이 옳겠지만, 앞으로 계속하여 이어질 글에 대해 짤막한 감상조차 미루는 일도 예의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1, 2권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본다.
1. 리베르와 이반, 흡혈귀와 늑대. 여성과 남성. 은발과 금안.
장르 문학에 대한 다소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성품과 일말의 시간적 안배, 그리고 취향의 문제는 내 장르 문학에 대한 독서의 절대량 부족에 더하여 그 성향마저 편협하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서당 개 3년이면 주워들은 풍월도 어찌어찌 읊을 수 있듯, 판갤 2.5년에 대여점을 대상으로 한 장르 문학 작품들의 독서 경험과 판갤러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대강의 맥락을 짐작해볼 수는 있을 듯싶다.
이렇듯 잡설이 길어지는 것은, 리베르와 이반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들을 얘기해보기 위함인데, 대여점을 대상으로 한 장르문학 시장 (타자를 취기가 귀찮은 관계로 맥락은 다소 안 맞지만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이후 ‘양판소’로 정의하여 용어를 사용하겠다. 이 점에 오해 없기를 빈다.)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활용된 사례를 접하고 있고, ‘이계진입 고딩’, ‘소드마스터’와 같은 비교적 평범해진 소재로부터 ‘시골 마을의 초장이’, ‘실드 마스터’, ‘스켈레톤’에까지 소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종종은 그 글의 특성과 흐름, 내용에 대한 고려로서 선정된 경우도 있겠으나, 대다수의 경우 비슷비슷한 소재와 유형, 배경을 다루는 글들에서 보다 특징적인 직업, 특징적인 종족을 활용함으로써 글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메워 보려는 시도처럼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리베르와 이반은 어떨까?
답부터 말하자면 ‘서로 간에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는 독특한 캐릭터들’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리베르는 은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미녀이며, 마법을 사용할 때에 (책의 설명에 따르면 마력 방출에 의한 영향으로) 눈동자가 루비빛으로 물드는 외양적 특징을 갖고 있다. 한편, 이반은 갈색의 짙은 피부와 금색의 독특한 눈동자를 갖고 있는, 몸이 잘 발달된 사내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독특한 외양은 앞서, ‘특정한 직업, 특징적인 종족을 활용하여 글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메워 보려는 시도’처럼, 독특한 외양을 통해 캐릭터의 독특함을 살리려는 시도로 활용되곤 한다. 특히,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컨텐츠의 영향으로 보이는 몇몇 개성적 설정들은 작품의 현실성을 저해하는 한편으로, 여러 작품에서 지나치게 활용된 탓에 오히려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리베르와 이반에서 활용된 은발과 금안, 흡혈귀와 늑대인간 역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리베르와 이반이 전반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것은, 이들의 특징적인 외양이 단순히 피상적인 활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리베르와 이반은 모두가 아스트랄 사이드에 실체를 두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성격(침착하고 신중한 성격 대 장난스러운 성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 성격은 작가의 유머를 살려내고, 사건 전개를 유쾌히 해결해나가는데 있어 좋은 기재가 되곤 있다.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의 독특한 외양이 단순히 ‘캐릭터를 특성있게 정의하기 위한 간편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한다면, 리베르와 이반의 독특한 외양은 이들에게 각각 부여된 침착한 성격과 장난스러운 성격. 그리고 이성적 인물과 감성적 인물이라는 성격적 대조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되어있는 것이다. (색이 주는 느낌은 물론, 늑대와 뱀에 있어서도 맥락이 통한다.)
물론, 독특한 캐릭터 설정에의 포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2. 글을 관통하는 ‘유머’라는 코드.
리베르와 이반이 보다 신화적인 코드로서의 대립체(이를테면 새와 뱀)를 이루지 않고, 늑대와 뱀의 관계를 이룬 것은 이들이 갖는 서로간의 동질성을 강화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질성이 전제된 연후의 여러 갈등은 그저 애정 어린 장난이자 작가의 유머를 활용하기 위한 소도구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이 소도구는 리베르와 이반에 독특한 향취를 자아내고 있다.
‘리베르와 이반’에서 유머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한 페이지가 아쉽도록 작가는 다양한 유머를 시도한다. 리베르와 이반의 티격태격은 이반이 탐사를 위해 잠시 헤어지는 순간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이어지며 이를 통해 독자는 웃음과 약간의 긴장을 선물 받는다.
이러한 유머는 그 외의 비현실적인 기타 캐릭터들 - 얼빠진 신성기사 ‘휴워드’, 호탕한 무골 ‘무카차파’, ‘야동과 직원’들과 ‘버섯 드래곤’, ‘피퀴드’ 호의 승조원들 -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유머를 중요한 축으로 삼는 작품은 많다. “작품에 담긴 철학과 중요한 은유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처사.”라고 발끈하지만 않는다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나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언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캐릭터의 우스꽝스러운 말꼬기와 풍자적 상황 비유를 통해 유머에 집중하고 있다.
‘리베르와 이반’도 은유를 제쳐둔다면 위의 작품들과 비슷하게 유머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리베르와 이반’에서의 유머는 단순히 작품 내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확장되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외부에 있는 독자의 선험적 지식에 기대기도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우선, 다음의 인용된 부분을 살펴보자.
「...(전략)
“여신께서도 너희가 저 소녀와 같이 순진하고 천진하지 않으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죄를 씻고 마을의 걱정이 사라지는 자리에 저처럼 귀엽고 착한 소녀가 있다면 오히려 기쁜 일이겠죠.”
...(중략)...
“그래요? 그런데 그게 정령여신의 말씀 그대로인가요?”
...(중략)...
“물론이죠. 약간의 주관적인 해석은 들어가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원래 말씀은요?”
...(중략)...
“음, 그건…. 본래 정령여신이 말씀은 로리와 누님이야말로 영원한 양대 대세라고 하셨습니다.” ...(후략)」
이뿐만이 아니다. 촌장의 딸을 사랑한 가난한(?) 화가 소년과 그의 개 파트라. (파트라슈가 아니다.) 화가 소년이 사랑한 여성의 이름은 ‘메리제인’, 산림청 야생동물과의 약어 ‘야동’ 등의 차용에서도 왕왕 드러나곤 한다.
여기에 대한 나의 호불호의 가치 판단은?
글쎄, 난 여기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내릴 생각이 없다. 이 것은 단점이 있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살핀다면, 여기에 담긴 유머를 즐기는 것으로 끝내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에 걸맞게 ‘리베르와 이반’은 비교적 (부정적 의미로서가 아닌) 가벼운 글이며, 유머가 글을 관통하는 중요한 코드로 활용되고 있다.
부담이 없이 유머를 즐겨야 할 글이자 재미를 추구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어떤 주제나 사건에 대한 독자의 갈등과 고민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이렇나 ‘유머’와 ‘재미’는 결국 출판된 책에게 있어서는, 양판소 시장의 독자와의 ‘코드 맞추기’가 관건이 된다. ‘리베르와 이반’은 코드 맞추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또한 유머라는 것이 결국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식상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리베르와 이반’에는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앞서 비근한 예로 들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경우에도 1권에서 깔깔대며 웃던 그 글의 활력은 5권에 다다를 무렵에는 익숙해지고 식상하는 감이 있다. ‘리베르와 이반’ 역시 1권 초반의 그 괴이한 상황과 거기에 녹아든 유머의 독특함이 2권 말미에는 좀더 정형화된, 양판소적인 느낌만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양자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질 것이다.)
3. 글의 다양한 사건 전개 구조.
그러나 ‘리베르와 이반’이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달리 향후 다양한 사건 전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유머에 치중하는 글이라 하여 그 사건의 전개마저 단순하고 가벼울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것은 감히 오해라 단언할 수 있다. 유머로 점철되어 유쾌하게 진행되는 사건들일망정. 사건과 인물들은 복잡다단하게 꼬여있고, 주인공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진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모른 채, ‘수도’로 가서 실마리가 풀리길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들조차 자신들이 천성목에 대해 새로이 형성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적의 적은 친구가 되는 건가?’라 의문을 던질 정도로 어떻게 인물들과 관계가 형성될지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친구라 생각한 비셔스가 ‘제국의 신민과 친구가 되려하다니!’라며 일갈을 하고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향후의 다양한 사건을 예고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천성목은 왜 그들을 부활시켰는가?
비셔스의 목적은 무엇이며, 화염지옥마도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해리와 야동과 직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휴워드는 향후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스왈도는 조국 롬바르기니와 친우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리베르와 이반’은 무사히 완결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리베르와 이반’은 2권이 마무리될 때까지 점점 더 많은 의문을 던져놓고 있었던 것이다.
4. 탄탄한 문장, 어설픈 편집 실수.
2권 말미에 실린 ‘더 레이피어러’는 문장(http://www.munjang.org)에서 장르문학부문 연간우수작으로 꼽힌 작품이며, ‘더 레이피어러’와 같은 수상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가의 블로그나 FanGaL.org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그들은 여신을 꿈꾸고, 아마조네스는 눈물을 흘린다’, ‘번개돌이’, ‘무협 연작’과 같은 단편들을 통해서도 작가의 (이른바) 필력을 확인할 수 있다.
‘리베르와 이반’은 그간 접해왔던 작가의 몇몇 단편과는 색이 다소 다르고(‘더 레이피어러’와 동일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다.), 단편과 장편은 아예 성격이 다른 별개의 글이라는 점에서 어떤 한계가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마는.
기본적인 문장 능력과 글 곳곳에 녹아들던 재치 있는 플롯과 표현, 구상의 능력들이 단편에서 장편으로 이사갔다하여 밖에 내다버릴 이삿짐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러나 뜻 밖에도 ‘리베르와 이반’의 기본적인 소양 점수는 어설픈 편집 실수에서 감점이 되고야 말았다. 1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던 실수들이 2권에서는 일관성 있게 이뤄졌는데. 모든 ……이 …?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판갤에서도 종종 언급했던 혼블로워의 국내 번역본 1권에서 ‘불어오는’이 모두 ‘프랑스어오는’이 편집 실수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처음 …… 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부분에서 처음 …? 이 되었을 때, 한창 ‘리베르와 이반’의 유머에 심취해 있던 나는 그 것이 작가의 의도적 표현이라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만큼 유머감각이 있는 작품이란 얘기도 된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며 오타란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웃지 못할 일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야 무시하고 읽었으나 의외로 이 실수는 잠자리를 방해하는 모기마냥 작품에의 몰입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기는 잡으면 되지만, 오타를 찾아 미리 화이트를 칠하고 수정해두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또, (3권에 계속)은 2권 말미의 부록 끝이 아닌, 2권 본문의 말미에 붙었어야 옳았던 것 같다. 재판이 나올 일이 요원할 수도 있겠지만, 향후 3권~4권의 대흥행으로 재판에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독자와 작가를 위해 출판사가 다소간에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5. 끝나지 않은 감상.
이래저래 ‘리베르와 이반’에 대해 호의적으로 글을 쓴 것은, 작가의 기본적인 글 솜씨와 전작들로 인한 선입견, 판갤러로서의 소속감(이런게 있는지 의문이지만?)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리베르와 이반’이 의도한 목적. 즉, 양판소의 출판 시장을 대상으로 했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논한 까닭이다.
물론, ‘리베르와 이반’은 뚜렷하지 않은 주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주제를 다루는 척하는 작품들에 비한다면, 리베르와 이반은 이런 한계를 안고 있을지언정, 자신이 해야 할 바에 충실한 작품인 셈이다. (게다가 아직 이야기는 본격화되지 않았으므로 향후 주제가 어떤 모습을 갖추며 드러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작가는 자기 작품의 향취를 뚜렷하게 정의했다. ‘유머’. 그 것이 애피타이저건, 디저트건, 메인 디쉬이건 분명히 ‘유머’는 ‘리베르와 이반’에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러한 유머를 빛내는 재치 있는 감각과 특징있는 캐릭터들. 그런 캐릭터들이 유머를 재생산하고 재생산된 유머가 다시 캐릭터를 특징짓는 선순환구조, 그리고 그 것이 원동력이 되어 사건을 재치 있게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전체적인 그림을 잘 짜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직 ‘리베르와 이반’은 현재진행형의 작품이며, ‘리베르와 이반’의 주요 전력공급원인 ‘유머’는 필요한 전압을 유지하기에 만만찮은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감상 역시 이 작품은 무엇이다!라고 단정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리베르와 이반’은 향후 회를 거듭해도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 웃음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복잡하게 얽혀진 사건들을 지금까지처럼 명쾌하고 재치 있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신선함. 신선함. 개그맨들이 끊임없는 웃음을 위해 연구해야하는 스트레스와 다름 없다. 그렇기에 ‘리베르와 이반’의 완결까지, 독자들은 작가의 역량과 행보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