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마당 - 감상/비평
이 감상에서는 일부 내용에 있어서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링크를 따라 해당 작품을 먼저 감상하시어서, 서로 다른 주관을 살피며 감상과 비평을 나눌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공상과학 판타지’ by 히로웽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3
누구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는 상상 자체는 기발했지만 이야기가 지나치리만치 짧군요. 이만한 발상이라면 좀 더 형식을 갖춘 이야기였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빌 게이츠라는 실존인물이 언급되기도 했던 만큼) 모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겠고, (차명호라는 인물에 접근했기도 했던 만큼) 특정 인물 혹은 인물군을 추적하며 소설과 같은 형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다보면 이 발상 및 소재가 담을 수 있는 주제나 이야기의 맥락이 더 심화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문단 형식도 그렇고 글 자체는 기발한 발상과 실험적인 단상의 정리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취할 수 있는 건 상상의 여지겠군요.
‘유아 투기자’, ‘로이드 가의 피’ by 나는야 외계인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4 (유아 투기자)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27 (로이드 가의 피)
‘유아 투기자’에서 ‘나’라는 인물은 결혼, 가족, 출산 등의 개념을 어떤 사회 도덕적인 관념이라든가 감정적 접근 대상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우수한 유전 형질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에게 ‘열등아’는 합리적으로 별다른 기대 효용 가치가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투기해야 할 쓰레기인 것입니다.
사교육비 문제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자식이란 양육에 있어 상당한 부담이 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사회화 과정 및 복잡화된 문명사회에서 필수적인 제반 지식을 쌓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요되는 인간에게 있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단지 혈육의 정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유아 투기란 자신이 양육을 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도덕률의 관점, 그리고 자식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규율하는 법과 같은 오늘날의 사회적인 계약의 요구에 비추면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행위는 전체, 부분적으로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 그리고 어찌 보면 그것은 부모의 독단이자 이기심일 수 있는 것입니다.
‘유아 투기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양육 포기에 애절함이 없습니다. 화자의 사고는 사실 비현실적입니다. 감정이 거세된 사이코패스여야 가능한 사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양육 포기의 일면을 비틀어 확대한 것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나’의 사고는 독자에게 씁쓸한 블랙 코미디로 다가서게 되는 듯합니다.
작품 내적으로는 중간 중간 퇴고가 필요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작품의 대사와 상황의 연출은 현대의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근대 말 즈음에 쓰인 러시아 작가의 단편을 보는 듯 어색함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몇몇 가지 소품(이를테면 글 말미에서 손수건으로 빗자국을 닦는 따위의 행위)을 이용해 화자의 감정과 상황을 농밀하게 묘사해내는 시도가 엿보이는데 어찌보면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인터넷 습작가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시도였고 효과 역시 인상적이었다 생각합니다.
‘로이드 가의 피’ 같은 작품은 분량이 상당한 단편인데, 퇴폐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 구조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지 않아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 취향대로라면 이런 식의 이야기는 좀 더 현실감 있게 풀어내는 편이 공포적인 요소들을 한층 강화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독자의 몰입을 도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유아 투기자’와 비교할 때, 2차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로이드 가의 피’는 그 자체로 어떤 한계가 있겠지만, 보다 긴 분량과 복잡한 이야기 구조로 작가의 정성이 요구됨을 생각하면, 또, 작품의 현실감이라는 것이 꼭 배경을 현실로 하는 가 가상 세계로 하는 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로이드 가의 피’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특히 인물의 행동과 성격들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나치게 만화적인 색채가 드러나는데, 좋은 작품은 작품의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조화되는 작품이라 생각하는 바, ‘로이드 가의 피’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분위기나 구조, 특징들에 있어 굳이 캐릭터들의 만화적인 특색이 필요했는가는 의문입니다.
또한, 인물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한 감정의 설명과 달리 그 이전까지의 행동은 지나치게 담담하게 묘사되어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인물 행위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실프’ by 여중딩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5
대단히 짧군요. 엽편이라기는 모하고 감상적인 시작(詩作)이라야 하겠는데, 느낌은 제법 좋습니다. 다만, 제가 신화에 무지하긴 하여도 오레아스와 팔라스 같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이 작품에서 정확하게 인용되었는가를 잘 모르겠군요.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여중딩 님께서 따로 설정하신 고유명사였을까요.
‘이스턴 박사의 사고’, ‘기억’, ‘고백’, ‘스팸’ by 레디오스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6 (이스턴 박사의 사고)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7 (기억)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18 (고백)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20 (스팸)
총 네 편의 단편을 읽었습니다. 각각의 단편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매력적인 작품들이더군요.
우선, ‘이스턴 박사의 사고’는 콩트에 가까운 느낌의 작품으로 외국 작가의 SF 단편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작품이 묘사하는 고도의 과학문명 사회의 모습들이나 희극적인 등장인물들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의 여러 일면들을 우스꽝스럽게 관조해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요. 이것이 여러 장르물, 특히 SF 단편이나 판타지 동화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 즐거움인 듯 한데요.
‘이스턴 박사의 사고’에서 의학분야의 권위자들이 모여 별 것 아닌 사고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어느 한편으로 대단한 기술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외곬이 되어버린 인물들을 보노라면 우리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갈등과 다툼을 보는 듯하여 살며시 입맛이 쓴 것도 사실입니다.
‘스팸’은 네 편의 단편 중 ‘이스턴 박사의 사고’와 가장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인데, 네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 역시 ‘스팸’입니다. 당장 우리 현실에서도 스팸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고 누구나가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미래 공간의 스팸은 몇몇 작품에서도 다룬 바 있는데, 이를테면 인기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타나토노스에서는 심지어 사후 세계에까지 광고물을 설치하는 광경이 묘사되기도 하지요.
사실, 광고가 흥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내지 시장 경제가 갖는 하나의 일면일 것입니다. 물론, 경제학에서는 종종 광고가 비가격경쟁의 하나로 시장 원리를 왜곡할 수 있는 몇몇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품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의 창구로서의 특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런 광고가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노출되는 경우입니다. 지금 당장에도 정보홍수 속의 스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레디오스 님의 작품에서는 미래 세계의 스팸 문제를 상당히 현실감 있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SF 특유의 정밀한 상상과 결합하며 이야기의 소재를 잘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스팸 문제 및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간 경쟁 심리를 풍자하면서 SF 특유의 분위기를 잡아내는가 하면,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등장 인물간의 긴장을 적절히 조율함으로써 파국적인 (그러나 동시에 블랙 코미디의 코드가 숨어있는) 결말을 끌어내는 데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위 두 편의 SF 작품은 모두 서구식 SF의 향취가 강했다는 점인데. 이것이 단점이나 장점 등으로 구분될 수 있는 문제인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좀 호의적인 편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편, ‘기억’은 쉽게 말하자면 미스테리 스릴러입니다.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인물이 몹시 짧은 시간을 배경으로 혹시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하나둘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관계가 재밌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것이 역시 만만치 않은가봅니다.
기억에 구멍이 있다보니 이야기는 다소 복잡하지만, 그마만큼 플롯은 정밀합니다. 중간 중간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나타나는 몇몇 가지 반전들이 긴장을 유지시키네요. 인물이 갖고 있던 죄책감이 이야기의 핵인 셈인데, 정작 결말의 내용은 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고백’은 어찌보면 상당히 정석적인 이야기입니다. 읽다보니 양귀자의 ‘모순’이 떠오르는데, ‘고백’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기에 분량이 너무 짧았던 걸까요. 다른 세 단편에 비한다면 긴장의 조율도 썩 훌륭하진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동정마법사’ by 악실명
http://www.fangal.org/zb41pl8/bbs/zboard.php?id=dshort&no=1122
이능 배틀물입니다. (맞지요?) 이능력에 대한 설정에서 개그 코드를 삽입했는데, 사실 썩 개인 취향에 맞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정 마법사로서 동정 마법사라는 인터넷의 인기 소재가 사용된 것은 호기심을 가질 법했지만, 작품에 쓰인 개그 코드 자체도 너무 피상적일 뿐더러 편하게 즐기기에는 중간 중간 조악한 느낌도 드는 점을 지적해보고 싶군요.
사실, 만화적이고 유치해보일 수 있는 코드를 컨셉으로 한 작품일터라, 제 취향에 근거한 이런 비판이 부당할 수 있겠다는 점은 십분 이해합니다. 아마 이능배틀물과 열혈물이라는 것 자체가 제겐 썩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드래곤볼이라든가 헌터X헌터, 원피스 같은 건 저 역시 재밌게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악(惡)의 여신(女神) (진노의 날 외전) by 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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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님의 작품도 늘 작품의 특징이 비슷하기 때문에, 감상을 적는 것도 일종의 동어반복이 될 듯합니다. 기본적인 감상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문제들은 이전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같습니다.
물론, 모든 작품이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광’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리신 작품에 대해서는 동일한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전 차라리 서광님께서 이런 식으로 프로파간다적인 작품을 쓰시기보다는 예전의 ‘기계장치의 신’이라든가 ‘잠수함 7호’ 같은 작품 쪽으로 선회하시고, 몇 가지 특징들을 개선해나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충실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정밀한 고증과 ‘라이벌과 소품적인 여성, 상투적인 키스 씬’이라는 매너리즘을 벗어난 좀 더 복잡한 인물 관계와 플롯을 갖추는 식으로요.
냠냠// 에구, 감사합니다.
저도 감상쓰는게 소설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걸 알고 있습니다. 뭐, 징징 거리는 걸로 받아 들이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정색하시다니.
장난이었습니다만;
이번에 냈던 글은 이전의 글들에 비해 qui-gon 님께 약간 어두운 비판을 받은 편이지 싶은데, 그만큼 그 글에 문제가 있었단 뜻이겠지요? 지적하신 바와 같이 자잘한 소품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내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불어 뒤틀리지 않게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을 써낸다는 것은, 이제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저의 발목을 붙잡을 것 같군요. 사실 이렇듯 통쾌하게 평을 적어주실 줄 짐작하지 못해서 (좋은 의미로)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눈먼 제 앞길을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