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3.
병사는 술에 취해 흐릿해진 눈으로 배꼽거리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인적이 사라져 음산하기까지한 그곳을 보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개새끼들.”
시암제국의 군대는 그 군기가 엄격하여 근무 중에 술을 먹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장교조차도 근무 중에 술을 먹다가 발각되면 혹독한 처벌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베르가마의 빈민가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종일 독한 술을 머금고 있었다. 술이 적사병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병사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기 일쑤였지만, 장교들은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장교들 역시 병사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일지 알고 있었고, 그 막다른 마음에 무리한 압박을 더한다면 자칫 자포자기의 폭동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문을 지키는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 중에 한 명은 인사불성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깨어있는 병사도 술기운으로 혀가 잘 놀려지지 않았지만,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뭘 지키라는 거야? 누가 저런 곳에 들어가려고 하겠어?”
그러자 다른 병사 한 명이 대꾸했다.
“몰라서 하는 소리야? 우린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아니야. 저 안에서 누군가 나오지 못하도록, 귀족들의 거처로 병을 옮기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그나마 술이 덜 취한 듯 조리 있게 말하던 병사의 말이 꾸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거리를 지켜보던 병사는 동료가 말을 멈추자 휘청거리며 뒤돌아섰다.
“이런, 너도 잠들면 어떻게 해? 너는 꽤 술이 센 줄 알았는데…….”
하지만 병사가 뒤돌아서서 목격한 것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병사는 술이 취한 와중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닥쳤음을 깨달았다. 창을 든 손을 끌어올리려는데, 무언가 달콤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눈알이 고통스럽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병사는 자신의 눈, 코, 입, 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마지막으로 병사는 의식을 잃으며 뒤로 쓰러졌다. 쓰러진 병사의 시체 위로 아이지와 마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지는 온통 피범벅이 된 병사들의 시체를 보며 비웃었다.
“술을 마신다고 적사병에 걸리지 않을 줄 알아? 멍청한 녀석들.”
뒤에 서 있던 마로가 말했다.
“이봐, 시체들을 치워야 하지 않을까? 다른 병사들이 본다면, 누군가 안으로 들어간 것을 알아차리게 되잖아.”
“아니, 오히려 시체를 이렇게 놔두어야 해. 지금 내가 이 녀석들을 처리한 방법은 별 다른 것이 아니라, 적사병의 균을 침투시킨 후에 상대의 신체를 조정해서 즉시 발병시킨 것이거든. 다른 병사들이 이 시체를 보면 여기까지 병이 퍼졌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라 오히려 더 멀리 물러나겠지.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침입자 따위를 잡으러 적사병의 소굴로 들어설 멍청이도 없겠지만…….”
“넌 적사병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단 말이야?”
아이지는 마로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멍청이들이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병의 본질을 이해하고 요령만 확실히 알면, 이제 갓 생령계열에 입문한 풋내기 마법사들이라도 다룰 수 있어. 내가 다루는 다른 독이나 병에 비하면 적사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적사병은 미리 예방도 가능할 뿐더러, 병에 걸린 후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죽지 않을 수 있어. 물론 남은 인생이 좀 힘들어지겠지만.”
“남은 인생이 힘들어지다니?”
“적사병의 치료는 다른 병과는 달리 적사병의 균을 죽이거나 내쫒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환자의 몸에서 계속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지. 쉽게 설명하자면 병과 환자를 서로 적응시킨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되면 적사병으로 죽지는 않아. 하지만 평생 적사병에 감염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거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걸핏하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피부가 허물어지는 통증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야. 이런 치료를 받은 상당수가 상처가 곪아서 죽기도 하는데, 그래도 적사병으로 죽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둘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적이 사라진 황량한 배꼽 거리를 걸었다. 새삼 몸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해 온갖 소음과 악취를 만들어내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변해 있었다. 간혹 식초나 술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감싼 사람들이 지나가긴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먼저 몸을 피하였다. 적사병의 감염을 걱정한 나머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드물게 된 거리 곳곳에는 어느새 쥐가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마로 역시 생명력의 감지를 통해 쥐떼들을 느끼고 있었다.
“이 비참한 곳에서 도대체 쥐들은 무얼 먹고 이리도 번창하는 걸까?”
“그걸 몰라서 물어? 조그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쥐는 적사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그에 반해서 인간은 적사병에 걸리면 며칠 만에 죽어버리고. 자 답은 아주 간단하지? 가만, 저기 보이네. 구부러진 피뢰침이 달린 집 맞지? 자, 다 왔어. 이제 어떻게 가지?”
아이지의 시선 끝에는 저 멀리 마로가 설명했던 기와가 벗겨진 집이 있었다.
“그 집 주변에 회색 벽돌로 지어진 공동주택이 하나 보일 거야. 그 집의 3층에 바로 내가 살던 방이 있어.”
마로의 설명에 따라 아이지는 마로의 옛집으로 마로를 데려다 주었다. 마로는 움켜쥔 문의 손잡이에서 익숙한 감촉을 느꼈다. 마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젖히고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이지에게 물었다.
“혹시 누가 있나?”
“그 정도는 네 감지력으로도 알 수 있……. 아차. 그렇군..”
아이지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마로가 왜 자신에게 누가 있는지 물었는지 깨달았다. 마로가 찾은 것은 산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지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침대 위에…….”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침대 위에, 뭐?”
“침대 위에 시체가 하나 누워 있어.”
아이지는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마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침대에 다가가서는 떨리는 손으로 시체를 어루만졌다. 이미 쥐가 뜯은 데다 부패하기까지 한 시체에서는 얼굴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다만,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매번 마로가 직접 빨아서 르로이에게 갈아 입혀주던 옷이었기에 때문이다.
잠시 시체를 어루만지던 마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 마로를 잠시 바라보던 아이지는 고개를 젓고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창문이 꼭꼭 닫힌 방안은 악취와 함께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웠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아이지 역시 친족을 잃으면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기에 마로에게 시간을 주기 위하여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슬픔을 납득하는 것이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최소한 아이지에게는 그러했다. 아이지는 후텁지근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이지는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아이지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마로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 이봐. 정신 차려. 이제 뭐 할 거야?
마로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지의 말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이후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이봐, 너에게 시간은 영원하다고. 겨우 이제 그 무한의 시작인데, 벌써부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마로는 아직 자신의 삶 전체를 영원에 바탕을 두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식하지 않는 평소에는 잊기가 일쑤였다. 그저 인간의 수명을 가지고 있을 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아이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앞에 무한한 시간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마로는 길이 없는 평야에 홀로 선 것처럼 막막함을 느꼈다. 망연한 말투로 아이지에게 되물었다.
“그럼 뭘 해야 좋을까?”
“난 오히려 너무 당연한 일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네가 이상한데? 보통 이쯤 되면 네 눈을 멀게 만들어 보석광산으로 보내고, 네 아버지를 홀로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를 생각하지 않아?”
아이지의 말을 듣자 멍하던 마로의 머릿속에 몇 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말라르디, 도미. 씨그도 한 몫 거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갑자기 분노가 폭발적으로 밀려왔다. 마로는 버럭 고함질렀다.
“그래. 그 자식들에게 복수를 할 거야. 내가 겪은 고통을 몇 배로 돌려 줘야지.”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열정. 그 분노. 이제야 좀 쓸 만해 지는구나. 지금의 넌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만한 힘이 있어. 불멸의 능력이 있고, 내가 있어. 아주 좋아.”
우선 가장 가까운 곳은 물배달 조합의 건물이었다. 마로는 아이지에게 말했다.
“나를 지금부터 설명하는 곳으로 데려가 줘.”
“잠깐,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언제까지 내가 너를 질질 끌고 다닐 수는 없잖아. 네 설명만 듣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내가 어제 밤부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 도시 안에서라면 네가 그럭저럭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떠올랐거든. 그래서 지금 밖에 나가서 그에 필요한 재로를 몇 가지 구해왔지.”
아이지는 들고 들어왔던 것을 가지고 마로에게 다가섰다.
“이봐, 지금부터 내가 할 것은 아픈 것은 그만두고라도 너에겐 조금 역겨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넌 네가 갈 길 정도는 찾아갈 수 있어. 물론 그 효력은 몇 시간 밖에 안 갈 것이고, 그나마도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허술하겠지만 아예 없는 것보단 낫잖아? 어때?”
마로는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지는 마로를 엎드리게 하더니 주머니에서 살아있는 쥐를 꺼내어 들었다. 이 거리에선 적사병에 걸리지 않는 쥐들만이 유일하게 활력이 넘쳐 있었다. 지금 아이지의 손에서도 쥐는 힘차게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지는 쥐의 생명력이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쥐의 머리를 잘라내더니 배까지 갈랐다. 쥐의 가죽을 벗겨 바닥에 엷게 펴더니, 쥐의 뇌와 내장을 꺼내어 가죽위에 놓고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이지가 기묘한 말을 웅얼거리자 칼 아래서 그 역겨운 반죽이 지글지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린내와 비린내가 금세 방안에 가득 찼다. 아이지는 그 고약한 연기를 마로의 코로 몰아넣었다. 참다못한 마로가 캑캑 거리자 아이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기다란 바늘을 바로의 뒤통수에 교묘한 방향으로 찔러 넣었다.
마로는 자신의 뒤통수에 닿는 섬뜩한 고통에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하지만 아이지가 턱을 단단히 붙들고 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고약한 쥐의 냄새만이 느껴졌다. 아이지는 마로의 기침소리가 잦아들자, 천천히 바늘을 빼어냈다.
잠시 후 마로는 코를 찡그리며 아이지에게 사정을 물어보려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지의 질문이 더 빨랐다.
“이봐, 무언가 느껴지지 않아?”
갑자기 마로는 허둥지둥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다 무슨 냄새야?”
묘한 느낌이 코를 통해 머릿속으로 파고들더니 정신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너무도 산만한 신호들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지는 당황하는 마로를 보며 웃었다.
“넌 지금 주변 쥐들의 후각을 공유하는 거야. 하나 하나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좀 폭넓게 그림을 그리듯이 생각해 봐.”
마로는 아이지의 말에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점차 그 느낌에 익숙해지면서 주변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모르거나 무심코 넘겼던 벽의 냄새, 마루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강약에 따라 멀고 가까움까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하자 주변 윤곽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그래. 스무 시간 남짓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또 네가 약간 힘든 일을 견딜 용기만 있다면, 인간의 두 눈보다 더 예민하고 신비로운 감각을 찾아줄 수 있어. 지금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감각을 말이지. 물론 그건 이 도시에서 나가 아주 먼 곳으로 간 후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이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깔이 달린 외투와 입가리개를 두르더니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녀석들이 네 다리에 울며 불며 매달리도록 만들러 가보자고.”
---------------
적사병... 흠...
병사는 술에 취해 흐릿해진 눈으로 배꼽거리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인적이 사라져 음산하기까지한 그곳을 보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개새끼들.”
시암제국의 군대는 그 군기가 엄격하여 근무 중에 술을 먹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장교조차도 근무 중에 술을 먹다가 발각되면 혹독한 처벌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베르가마의 빈민가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종일 독한 술을 머금고 있었다. 술이 적사병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병사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기 일쑤였지만, 장교들은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장교들 역시 병사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일지 알고 있었고, 그 막다른 마음에 무리한 압박을 더한다면 자칫 자포자기의 폭동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문을 지키는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 중에 한 명은 인사불성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깨어있는 병사도 술기운으로 혀가 잘 놀려지지 않았지만,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뭘 지키라는 거야? 누가 저런 곳에 들어가려고 하겠어?”
그러자 다른 병사 한 명이 대꾸했다.
“몰라서 하는 소리야? 우린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아니야. 저 안에서 누군가 나오지 못하도록, 귀족들의 거처로 병을 옮기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그나마 술이 덜 취한 듯 조리 있게 말하던 병사의 말이 꾸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거리를 지켜보던 병사는 동료가 말을 멈추자 휘청거리며 뒤돌아섰다.
“이런, 너도 잠들면 어떻게 해? 너는 꽤 술이 센 줄 알았는데…….”
하지만 병사가 뒤돌아서서 목격한 것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병사는 술이 취한 와중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닥쳤음을 깨달았다. 창을 든 손을 끌어올리려는데, 무언가 달콤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눈알이 고통스럽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병사는 자신의 눈, 코, 입, 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마지막으로 병사는 의식을 잃으며 뒤로 쓰러졌다. 쓰러진 병사의 시체 위로 아이지와 마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지는 온통 피범벅이 된 병사들의 시체를 보며 비웃었다.
“술을 마신다고 적사병에 걸리지 않을 줄 알아? 멍청한 녀석들.”
뒤에 서 있던 마로가 말했다.
“이봐, 시체들을 치워야 하지 않을까? 다른 병사들이 본다면, 누군가 안으로 들어간 것을 알아차리게 되잖아.”
“아니, 오히려 시체를 이렇게 놔두어야 해. 지금 내가 이 녀석들을 처리한 방법은 별 다른 것이 아니라, 적사병의 균을 침투시킨 후에 상대의 신체를 조정해서 즉시 발병시킨 것이거든. 다른 병사들이 이 시체를 보면 여기까지 병이 퍼졌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라 오히려 더 멀리 물러나겠지.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침입자 따위를 잡으러 적사병의 소굴로 들어설 멍청이도 없겠지만…….”
“넌 적사병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단 말이야?”
아이지는 마로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멍청이들이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병의 본질을 이해하고 요령만 확실히 알면, 이제 갓 생령계열에 입문한 풋내기 마법사들이라도 다룰 수 있어. 내가 다루는 다른 독이나 병에 비하면 적사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적사병은 미리 예방도 가능할 뿐더러, 병에 걸린 후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죽지 않을 수 있어. 물론 남은 인생이 좀 힘들어지겠지만.”
“남은 인생이 힘들어지다니?”
“적사병의 치료는 다른 병과는 달리 적사병의 균을 죽이거나 내쫒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환자의 몸에서 계속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지. 쉽게 설명하자면 병과 환자를 서로 적응시킨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되면 적사병으로 죽지는 않아. 하지만 평생 적사병에 감염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거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걸핏하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피부가 허물어지는 통증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야. 이런 치료를 받은 상당수가 상처가 곪아서 죽기도 하는데, 그래도 적사병으로 죽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둘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적이 사라진 황량한 배꼽 거리를 걸었다. 새삼 몸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해 온갖 소음과 악취를 만들어내던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변해 있었다. 간혹 식초나 술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감싼 사람들이 지나가긴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먼저 몸을 피하였다. 적사병의 감염을 걱정한 나머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드물게 된 거리 곳곳에는 어느새 쥐가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마로 역시 생명력의 감지를 통해 쥐떼들을 느끼고 있었다.
“이 비참한 곳에서 도대체 쥐들은 무얼 먹고 이리도 번창하는 걸까?”
“그걸 몰라서 물어? 조그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쥐는 적사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그에 반해서 인간은 적사병에 걸리면 며칠 만에 죽어버리고. 자 답은 아주 간단하지? 가만, 저기 보이네. 구부러진 피뢰침이 달린 집 맞지? 자, 다 왔어. 이제 어떻게 가지?”
아이지의 시선 끝에는 저 멀리 마로가 설명했던 기와가 벗겨진 집이 있었다.
“그 집 주변에 회색 벽돌로 지어진 공동주택이 하나 보일 거야. 그 집의 3층에 바로 내가 살던 방이 있어.”
마로의 설명에 따라 아이지는 마로의 옛집으로 마로를 데려다 주었다. 마로는 움켜쥔 문의 손잡이에서 익숙한 감촉을 느꼈다. 마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젖히고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아이지에게 물었다.
“혹시 누가 있나?”
“그 정도는 네 감지력으로도 알 수 있……. 아차. 그렇군..”
아이지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마로가 왜 자신에게 누가 있는지 물었는지 깨달았다. 마로가 찾은 것은 산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지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침대 위에…….”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침대 위에, 뭐?”
“침대 위에 시체가 하나 누워 있어.”
아이지는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마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침대에 다가가서는 떨리는 손으로 시체를 어루만졌다. 이미 쥐가 뜯은 데다 부패하기까지 한 시체에서는 얼굴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다만,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매번 마로가 직접 빨아서 르로이에게 갈아 입혀주던 옷이었기에 때문이다.
잠시 시체를 어루만지던 마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런 마로를 잠시 바라보던 아이지는 고개를 젓고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창문이 꼭꼭 닫힌 방안은 악취와 함께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웠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아이지 역시 친족을 잃으면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기에 마로에게 시간을 주기 위하여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슬픔을 납득하는 것이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최소한 아이지에게는 그러했다. 아이지는 후텁지근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이지는 해가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아이지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마로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 이봐. 정신 차려. 이제 뭐 할 거야?
마로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지의 말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이후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이봐, 너에게 시간은 영원하다고. 겨우 이제 그 무한의 시작인데, 벌써부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마로는 아직 자신의 삶 전체를 영원에 바탕을 두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식하지 않는 평소에는 잊기가 일쑤였다. 그저 인간의 수명을 가지고 있을 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아이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앞에 무한한 시간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마로는 길이 없는 평야에 홀로 선 것처럼 막막함을 느꼈다. 망연한 말투로 아이지에게 되물었다.
“그럼 뭘 해야 좋을까?”
“난 오히려 너무 당연한 일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네가 이상한데? 보통 이쯤 되면 네 눈을 멀게 만들어 보석광산으로 보내고, 네 아버지를 홀로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를 생각하지 않아?”
아이지의 말을 듣자 멍하던 마로의 머릿속에 몇 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말라르디, 도미. 씨그도 한 몫 거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갑자기 분노가 폭발적으로 밀려왔다. 마로는 버럭 고함질렀다.
“그래. 그 자식들에게 복수를 할 거야. 내가 겪은 고통을 몇 배로 돌려 줘야지.”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열정. 그 분노. 이제야 좀 쓸 만해 지는구나. 지금의 넌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만한 힘이 있어. 불멸의 능력이 있고, 내가 있어. 아주 좋아.”
우선 가장 가까운 곳은 물배달 조합의 건물이었다. 마로는 아이지에게 말했다.
“나를 지금부터 설명하는 곳으로 데려가 줘.”
“잠깐,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언제까지 내가 너를 질질 끌고 다닐 수는 없잖아. 네 설명만 듣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내가 어제 밤부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 도시 안에서라면 네가 그럭저럭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떠올랐거든. 그래서 지금 밖에 나가서 그에 필요한 재로를 몇 가지 구해왔지.”
아이지는 들고 들어왔던 것을 가지고 마로에게 다가섰다.
“이봐, 지금부터 내가 할 것은 아픈 것은 그만두고라도 너에겐 조금 역겨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넌 네가 갈 길 정도는 찾아갈 수 있어. 물론 그 효력은 몇 시간 밖에 안 갈 것이고, 그나마도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허술하겠지만 아예 없는 것보단 낫잖아? 어때?”
마로는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지는 마로를 엎드리게 하더니 주머니에서 살아있는 쥐를 꺼내어 들었다. 이 거리에선 적사병에 걸리지 않는 쥐들만이 유일하게 활력이 넘쳐 있었다. 지금 아이지의 손에서도 쥐는 힘차게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지는 쥐의 생명력이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쥐의 머리를 잘라내더니 배까지 갈랐다. 쥐의 가죽을 벗겨 바닥에 엷게 펴더니, 쥐의 뇌와 내장을 꺼내어 가죽위에 놓고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이지가 기묘한 말을 웅얼거리자 칼 아래서 그 역겨운 반죽이 지글지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린내와 비린내가 금세 방안에 가득 찼다. 아이지는 그 고약한 연기를 마로의 코로 몰아넣었다. 참다못한 마로가 캑캑 거리자 아이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기다란 바늘을 바로의 뒤통수에 교묘한 방향으로 찔러 넣었다.
마로는 자신의 뒤통수에 닿는 섬뜩한 고통에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하지만 아이지가 턱을 단단히 붙들고 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고약한 쥐의 냄새만이 느껴졌다. 아이지는 마로의 기침소리가 잦아들자, 천천히 바늘을 빼어냈다.
잠시 후 마로는 코를 찡그리며 아이지에게 사정을 물어보려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지의 질문이 더 빨랐다.
“이봐, 무언가 느껴지지 않아?”
갑자기 마로는 허둥지둥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다 무슨 냄새야?”
묘한 느낌이 코를 통해 머릿속으로 파고들더니 정신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너무도 산만한 신호들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지는 당황하는 마로를 보며 웃었다.
“넌 지금 주변 쥐들의 후각을 공유하는 거야. 하나 하나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좀 폭넓게 그림을 그리듯이 생각해 봐.”
마로는 아이지의 말에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점차 그 느낌에 익숙해지면서 주변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모르거나 무심코 넘겼던 벽의 냄새, 마루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의 강약에 따라 멀고 가까움까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하자 주변 윤곽을 얼추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그래. 스무 시간 남짓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또 네가 약간 힘든 일을 견딜 용기만 있다면, 인간의 두 눈보다 더 예민하고 신비로운 감각을 찾아줄 수 있어. 지금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감각을 말이지. 물론 그건 이 도시에서 나가 아주 먼 곳으로 간 후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이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고깔이 달린 외투와 입가리개를 두르더니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녀석들이 네 다리에 울며 불며 매달리도록 만들러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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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사병...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