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3.
마차는 성벽을 통과하고도 대로를 한참 달렸다. 베르가마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칼레는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가 되곤 했다. 이 도시에 상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중에는 베르가마의 부유층 못지 않은 대상인들도 적지않게 있었다.
칼레의 대상인들은 시 외곽의 고급 주택가에 몰려 살았는데, 그 집 하나하나가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큰 집을 꼽으라면 단연 앙가레즈의 집이라 할 것이다.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인 앙가레즈는 그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칼레의 시 행정에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곤 했다.
앙가레즈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시계에 비유하곤 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매일을 빈틈없이 짜인 일과에 따라 움직였다. 산책을 나가는 모습만으로 동네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던 고대의 철학자처럼 앙가레즈는 촌각의 시간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이런 삶이란 강요당하는 사람에겐 견딜 수 없이 괴롭겠지만, 앙가레즈는 엄청난 활력과 지배욕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한 것이었기에 오히려 즐거웠다. 그는 이 치밀한 일과 안에서 남다른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만족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러던 것이 몇 달 전부터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시의 큰 일이 결정되는 곳에서는 항상 볼 수 있던 앙가레즈를 이젠 한 집의 하인들조차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몇몇 중요한 회의에는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허실을 감시하며 매섭게 번득이던 눈이 지루함으로 짜증스럽게 반쯤 감겨 있을 뿐이었다. 간혹 누가 질문을 해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젓기만 하였다. 회의가 어느정도 중요한 고비를 넘기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이런 앙가레즈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하지만 무엇하나도 칼레 최고의 정력가가 염세주의자로 변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앙가레즈는 저택의 높은 벽으로 사람들의 의혹이 담긴 시선을 차단한 채 숨어 지냈다.
실제로 앙가레즈의 저택은 하나의 요새와 다름 없었다. 광대한 토지를 높은 벽으로 두른 그의 저택은 각 문에도 몇 명의 경비가 군대를 방불케 하는 무기를 들고 지키곤 했다. 제국의 법에 의하면 국가의 병력이 아니고서는 날이 선 무기를 들 수 없었지만, 항상 권력자와 부자들 위한 예외조항은 존재하는 법이다. 앙가레즈의 사병들은 얇은 헝겊을 하나 뒤집어씌운 무기들을 들고 앙가레즈의 저택을 지켰다.
마로를 태운 마차는 앙가레즈 저택의 높은 벽 옆을 한참을 달리더니 결국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 앞에 멈추었다.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마차의 창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더운 마차 안의 공기로 비오듯 땀을 흘리는 중년 사내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급하다는 듯 소리쳤다.
“자 빨리 문을 열어라.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병사들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 황급히 문을 열었다. 사내는 앙가레즈의 집에서 제법 높은 위치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문을 통과한 마차는 다시 저택 안의 작은 숲길을 달렸다. 마차는 본채로 가지 않고 숲 한켠에 따로 떨어진 작은 별채에 앞에 가서 멈추어 섰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종자들이 달려 들어가서는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마차 안에 있던 마로를 끌고 나갔다. 마로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 종자 중 한 명이 놀라며 나직하게 외쳤다.
“어? 이 자식 깨어 있잖아?”
“네 녀석이 제대로 수건을 대지 않아서 그렇지!”
중년사내의 책망에 종자는 억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작업을 할까요?”
“그래. 빨리 처리해서 이층 그 방으로 데려와.”
종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에게 마로를 지하실로 끌고 가도록 지시했다. 이윽고 마로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넓은 나무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음침한 지하실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마로를 나무 침대 위에 내려 놓았다.
마로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서 누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봐, 이 녀석은 지금 깨어있어. 움직이지 않게 꽉 붙들고 있어.”
그러자 사람들의 손이 마로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로는 잠시 버둥거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죽지는 않을테니. 차라리 일단 잠시 두고 보자.’
순간 손 하나가 마로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
순간 왼쪽 귀를 무언가 간질이는 것 같더니 무언가 축축하고 미끈한 것이 귀로 들어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섬뜩한 느낌에 마로는 소스라치며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을 틀어막은 천으로 인해 답답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 짓도 이젠 이력이 나는구만.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더니.”
“그러게 말이야. 이젠 단번에 제자리를 찾아가네 그려.”
이상하게 하인들의 대화가 왼쪽 귀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귀에 들어온 무언가가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곧 오른쪽 귓볼을 잡아 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왼쪽 귀와 똑같이 그 이상한 물질을 귀로 들어왔다. 그 후로 마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기묘한 작업을 마친 사내들은 마로를 다시 나무 침대에서 들어 어딘가로 옮겨 갔다. 몸이 기울어지며 덜컹거리는 것으로 보아 계단을 오르는 듯 했다. 어느덧 차가운 냉기가 사라지고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사내들은 마로를 들고 한참이나 걸었다. 어느 문을 열고는 바닥에 내려놓더니 입을 틀어막은 천만 풀어주었다.
마로가 내려앉은 방에는 마로를 끌고 왔던 중년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내는 둥근 돌이 묶인 대나무 집게를 입에 대더니 말했다.
“내 말이 들리나?”
마로는 그동안 아무 것도 들리지 않던 귀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마로가 어리둥절하여 있는 동안 사내가 다시 말했다.
“겪어서 대충 짐작하겠지만, 지금 네 녀석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네 귀에 구레를 집어 넣어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공명석도 담아 넣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쉽게 설명하면 너는 이제부터 어떤 도구에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겠나?”
공명석이라는 것은 매우 희귀하고 값비싼 돌이었다. 이 돌의 신기한 점은 가까이 있는 공명석끼리는 서로 반응하여 함께 울린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방에는 사내가 들고 있는 공명석 조각과 거품 괴물 구레 속에 담아 마로의 귀에 집어 넣은 공명석 조각이 있었다.
“네 행색을 보아하니 비루한 출신임에 틀림없구나.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설명해줄 테니 잘 들어라. 너는 지금부터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네가 열심히 잘 한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사내는 계속 마로의 뒤를 지키고 서 있던 건장한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하인들이 마로의 몸을 누르더니 목을 강제로 젖혀 올렸다. 그동안 사내는 허리춤에서 원통모양의 작은 물건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뒤 쪽 끝을 잡아 빼더니 재빨리 다시 밀어넣었다. 그러자 원통 속에 불이 붙으며 뚜껑이 열린 윗부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내는 마로에게 다가와 그 코앞에 통을 들이대었다. 연기는 자연스럽게 마로의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컥! 컥!”
마로는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내들이 워낙 강하게 붙들고 있는지라 달리 연기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연기의 냄새는 어디선가 맡아 본 일이 있는 것이었다.
사내는 연기가 마로의 코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건 지검초라고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법의 풀이지. 세상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한꺼번에 날려줄 것이다. 한 번 음미, 아니 즐겨 보아라.”
베르가마의 뒷골목에서 생활하던 마로가 지검초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은 지독한 마약으로 한 번 중독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로가 일하던 조합에도 지검초의 중독자들이 적잖이 있어서, 지금 마로가 맡고 있는 것과 같은 묘한 냄새가 풍기곤 했다.
‘젠장!’
연기의 정체를 깨달은 마로는 숨을 참으며 들이마시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콧속의 점막을 통해 흡수된 약효가 발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노랗고 빨간 빛무리가 피어나더니 정신이 황홀해지며 몸이 노곤해졌다.
사내는 억세게 버티던 마로의 목이 힘없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코에 들이대었던 통을 치웠다. 그리고는 부드럽지만 간교한 목소리로 마로에게 말했다.
“어떠냐? 굉장하지? 네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때마다 이 멋진 것을 주겠다.”
하지만 사내는 마로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힘이 지검초의 독성을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로의 환각은 사내가 통을 떼자마자 급격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마로는 그런 사정을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자신이 지검초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아차린다면 다른 방법으로 통제하려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마로는 팔다리에 느슨하게 힘을 풀고는 몸을 흐느적거렸다. 배꼽거리에 있을 때 지검초 중독자들을 물리도록 본 터라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사내는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여 마로를 방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도록 했다. 그러자 미리 대기 하고 있던 하녀들이 달려들어 마로의 옷을 벗기고는 목욕통에 담가 씻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벗기자 마로는 당황하였지만, 지검초에 취한 연기를 하고 있던 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마로를 씻겼다.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과 머리까지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손질해 준 뒤 상쾌한 향기가 나는 새 옷을 입혀주었다. 마로는 도대체 이들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마로가 옷에서 구두까지 모두 차려 입자 중년 사내는 하인들을 시켜 마로를 방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사내가 벽의 어느 한 구석을 몇 번 어루만지자 벽 속에서 무언가 덜컥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하인 몇몇이 벽을 밀자 벽이 소리도 없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인들과 함께 벽에 난 구멍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매우 넓은 방이 하나 나타났다.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출입 방법과는 달리 방은 매우 호화로웠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덥기는커녕 서늘한 공기가 감돌아 방금 목욕한 마로로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게다가 벽에 달린 많은 발광석들이 햇빛 대신에 방을 밝혀주고 있어 어둡지도 않았다.
방 한가운데는 화려한 차림을 한 사내가 하나 서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창백하고 하관이 빠른 얼굴 한가운데에는 날카로운 눈이 빛을 내고 있었다. 왠지 모를 귀기가 감도는 풍경이었다.
하인들이 마로를 사내의 앞에 데리고 오자 사내가 인상과 어울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데리고 온 녀석인가?”
중년 사내는 공손하다 못해 두려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인들 역시 이 방에 들어온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마로조차 자신을 붙들고 있는 그들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약에 취해 있는 모양이지?”
“네. 처음이라서 좀 늘어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조금 밖에 주지 않았으니, 금방 깨어날 겁니다. 더 빨리 깨어나게 하려면 여기 있는 각성제를 녀석의 코에…….”
하지만 사내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드러내며 손을 내저었다.
“마츠, 그런 건 나도 알아. 이제 나가 봐라.”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츠를 비롯한 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물러갔다. 냉혹한 눈으로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던 사내는 문이 닫히자마자 벽에 있던 큰 문을 열어젖혔다.
이미 넓다고 생각했던 방에는 또 다른 방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마로와 같은 차림을 한 맹인들 네댓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는 탁자 위에서 중년 사내가 놔두고 간 공명석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공명석에 대고 말했다.
“이봐, 옆 방 가운데 자리로 와서 이 녀석을 데리고 가거라.”
순간 맹인들은 사내의 말에 따라 허겁지겁 마로에게 달려 들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그들이었지만, 오랜 기간 한 곳에서 있어 자리를 이미 외우고 있는데다가, 바닥에는 길을 알 수 있도록 둥근 돌기가 솟은 석판들이 깔려 있었으므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로를 데리고 가는 맹인들의 뒤를 따라 사내도 옆방으로 들어섰다. 이 방은 앞 선 두 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건물 안에 이토록 큰 방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기묘한 것은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새장이 놓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새장은 웬만한 방하나 만한 크기 여서 사람이 들어가 살 수도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새장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마차는 성벽을 통과하고도 대로를 한참 달렸다. 베르가마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칼레는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가 되곤 했다. 이 도시에 상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중에는 베르가마의 부유층 못지 않은 대상인들도 적지않게 있었다.
칼레의 대상인들은 시 외곽의 고급 주택가에 몰려 살았는데, 그 집 하나하나가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큰 집을 꼽으라면 단연 앙가레즈의 집이라 할 것이다.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인 앙가레즈는 그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칼레의 시 행정에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곤 했다.
앙가레즈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시계에 비유하곤 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매일을 빈틈없이 짜인 일과에 따라 움직였다. 산책을 나가는 모습만으로 동네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던 고대의 철학자처럼 앙가레즈는 촌각의 시간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이런 삶이란 강요당하는 사람에겐 견딜 수 없이 괴롭겠지만, 앙가레즈는 엄청난 활력과 지배욕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한 것이었기에 오히려 즐거웠다. 그는 이 치밀한 일과 안에서 남다른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만족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러던 것이 몇 달 전부터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시의 큰 일이 결정되는 곳에서는 항상 볼 수 있던 앙가레즈를 이젠 한 집의 하인들조차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몇몇 중요한 회의에는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허실을 감시하며 매섭게 번득이던 눈이 지루함으로 짜증스럽게 반쯤 감겨 있을 뿐이었다. 간혹 누가 질문을 해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젓기만 하였다. 회의가 어느정도 중요한 고비를 넘기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이런 앙가레즈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하지만 무엇하나도 칼레 최고의 정력가가 염세주의자로 변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앙가레즈는 저택의 높은 벽으로 사람들의 의혹이 담긴 시선을 차단한 채 숨어 지냈다.
실제로 앙가레즈의 저택은 하나의 요새와 다름 없었다. 광대한 토지를 높은 벽으로 두른 그의 저택은 각 문에도 몇 명의 경비가 군대를 방불케 하는 무기를 들고 지키곤 했다. 제국의 법에 의하면 국가의 병력이 아니고서는 날이 선 무기를 들 수 없었지만, 항상 권력자와 부자들 위한 예외조항은 존재하는 법이다. 앙가레즈의 사병들은 얇은 헝겊을 하나 뒤집어씌운 무기들을 들고 앙가레즈의 저택을 지켰다.
마로를 태운 마차는 앙가레즈 저택의 높은 벽 옆을 한참을 달리더니 결국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 앞에 멈추었다.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마차의 창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더운 마차 안의 공기로 비오듯 땀을 흘리는 중년 사내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급하다는 듯 소리쳤다.
“자 빨리 문을 열어라.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병사들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 황급히 문을 열었다. 사내는 앙가레즈의 집에서 제법 높은 위치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문을 통과한 마차는 다시 저택 안의 작은 숲길을 달렸다. 마차는 본채로 가지 않고 숲 한켠에 따로 떨어진 작은 별채에 앞에 가서 멈추어 섰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종자들이 달려 들어가서는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마차 안에 있던 마로를 끌고 나갔다. 마로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 종자 중 한 명이 놀라며 나직하게 외쳤다.
“어? 이 자식 깨어 있잖아?”
“네 녀석이 제대로 수건을 대지 않아서 그렇지!”
중년사내의 책망에 종자는 억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작업을 할까요?”
“그래. 빨리 처리해서 이층 그 방으로 데려와.”
종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에게 마로를 지하실로 끌고 가도록 지시했다. 이윽고 마로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넓은 나무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음침한 지하실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마로를 나무 침대 위에 내려 놓았다.
마로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서 누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봐, 이 녀석은 지금 깨어있어. 움직이지 않게 꽉 붙들고 있어.”
그러자 사람들의 손이 마로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로는 잠시 버둥거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죽지는 않을테니. 차라리 일단 잠시 두고 보자.’
순간 손 하나가 마로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
순간 왼쪽 귀를 무언가 간질이는 것 같더니 무언가 축축하고 미끈한 것이 귀로 들어왔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섬뜩한 느낌에 마로는 소스라치며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을 틀어막은 천으로 인해 답답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이 짓도 이젠 이력이 나는구만.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더니.”
“그러게 말이야. 이젠 단번에 제자리를 찾아가네 그려.”
이상하게 하인들의 대화가 왼쪽 귀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귀에 들어온 무언가가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곧 오른쪽 귓볼을 잡아 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왼쪽 귀와 똑같이 그 이상한 물질을 귀로 들어왔다. 그 후로 마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기묘한 작업을 마친 사내들은 마로를 다시 나무 침대에서 들어 어딘가로 옮겨 갔다. 몸이 기울어지며 덜컹거리는 것으로 보아 계단을 오르는 듯 했다. 어느덧 차가운 냉기가 사라지고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사내들은 마로를 들고 한참이나 걸었다. 어느 문을 열고는 바닥에 내려놓더니 입을 틀어막은 천만 풀어주었다.
마로가 내려앉은 방에는 마로를 끌고 왔던 중년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내는 둥근 돌이 묶인 대나무 집게를 입에 대더니 말했다.
“내 말이 들리나?”
마로는 그동안 아무 것도 들리지 않던 귀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마로가 어리둥절하여 있는 동안 사내가 다시 말했다.
“겪어서 대충 짐작하겠지만, 지금 네 녀석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네 귀에 구레를 집어 넣어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공명석도 담아 넣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쉽게 설명하면 너는 이제부터 어떤 도구에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겠나?”
공명석이라는 것은 매우 희귀하고 값비싼 돌이었다. 이 돌의 신기한 점은 가까이 있는 공명석끼리는 서로 반응하여 함께 울린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방에는 사내가 들고 있는 공명석 조각과 거품 괴물 구레 속에 담아 마로의 귀에 집어 넣은 공명석 조각이 있었다.
“네 행색을 보아하니 비루한 출신임에 틀림없구나. 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설명해줄 테니 잘 들어라. 너는 지금부터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네가 열심히 잘 한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사내는 계속 마로의 뒤를 지키고 서 있던 건장한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하인들이 마로의 몸을 누르더니 목을 강제로 젖혀 올렸다. 그동안 사내는 허리춤에서 원통모양의 작은 물건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뒤 쪽 끝을 잡아 빼더니 재빨리 다시 밀어넣었다. 그러자 원통 속에 불이 붙으며 뚜껑이 열린 윗부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내는 마로에게 다가와 그 코앞에 통을 들이대었다. 연기는 자연스럽게 마로의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컥! 컥!”
마로는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내들이 워낙 강하게 붙들고 있는지라 달리 연기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연기의 냄새는 어디선가 맡아 본 일이 있는 것이었다.
사내는 연기가 마로의 코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건 지검초라고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법의 풀이지. 세상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한꺼번에 날려줄 것이다. 한 번 음미, 아니 즐겨 보아라.”
베르가마의 뒷골목에서 생활하던 마로가 지검초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은 지독한 마약으로 한 번 중독되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로가 일하던 조합에도 지검초의 중독자들이 적잖이 있어서, 지금 마로가 맡고 있는 것과 같은 묘한 냄새가 풍기곤 했다.
‘젠장!’
연기의 정체를 깨달은 마로는 숨을 참으며 들이마시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콧속의 점막을 통해 흡수된 약효가 발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노랗고 빨간 빛무리가 피어나더니 정신이 황홀해지며 몸이 노곤해졌다.
사내는 억세게 버티던 마로의 목이 힘없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코에 들이대었던 통을 치웠다. 그리고는 부드럽지만 간교한 목소리로 마로에게 말했다.
“어떠냐? 굉장하지? 네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때마다 이 멋진 것을 주겠다.”
하지만 사내는 마로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힘이 지검초의 독성을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로의 환각은 사내가 통을 떼자마자 급격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마로는 그런 사정을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자신이 지검초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아차린다면 다른 방법으로 통제하려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마로는 팔다리에 느슨하게 힘을 풀고는 몸을 흐느적거렸다. 배꼽거리에 있을 때 지검초 중독자들을 물리도록 본 터라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사내는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여 마로를 방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도록 했다. 그러자 미리 대기 하고 있던 하녀들이 달려들어 마로의 옷을 벗기고는 목욕통에 담가 씻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벗기자 마로는 당황하였지만, 지검초에 취한 연기를 하고 있던 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마로를 씻겼다.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과 머리까지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손질해 준 뒤 상쾌한 향기가 나는 새 옷을 입혀주었다. 마로는 도대체 이들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마로가 옷에서 구두까지 모두 차려 입자 중년 사내는 하인들을 시켜 마로를 방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사내가 벽의 어느 한 구석을 몇 번 어루만지자 벽 속에서 무언가 덜컥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하인 몇몇이 벽을 밀자 벽이 소리도 없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인들과 함께 벽에 난 구멍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매우 넓은 방이 하나 나타났다.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출입 방법과는 달리 방은 매우 호화로웠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덥기는커녕 서늘한 공기가 감돌아 방금 목욕한 마로로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게다가 벽에 달린 많은 발광석들이 햇빛 대신에 방을 밝혀주고 있어 어둡지도 않았다.
방 한가운데는 화려한 차림을 한 사내가 하나 서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창백하고 하관이 빠른 얼굴 한가운데에는 날카로운 눈이 빛을 내고 있었다. 왠지 모를 귀기가 감도는 풍경이었다.
하인들이 마로를 사내의 앞에 데리고 오자 사내가 인상과 어울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 데리고 온 녀석인가?”
중년 사내는 공손하다 못해 두려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인들 역시 이 방에 들어온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마로조차 자신을 붙들고 있는 그들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약에 취해 있는 모양이지?”
“네. 처음이라서 좀 늘어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조금 밖에 주지 않았으니, 금방 깨어날 겁니다. 더 빨리 깨어나게 하려면 여기 있는 각성제를 녀석의 코에…….”
하지만 사내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드러내며 손을 내저었다.
“마츠, 그런 건 나도 알아. 이제 나가 봐라.”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츠를 비롯한 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물러갔다. 냉혹한 눈으로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던 사내는 문이 닫히자마자 벽에 있던 큰 문을 열어젖혔다.
이미 넓다고 생각했던 방에는 또 다른 방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마로와 같은 차림을 한 맹인들 네댓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는 탁자 위에서 중년 사내가 놔두고 간 공명석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공명석에 대고 말했다.
“이봐, 옆 방 가운데 자리로 와서 이 녀석을 데리고 가거라.”
순간 맹인들은 사내의 말에 따라 허겁지겁 마로에게 달려 들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그들이었지만, 오랜 기간 한 곳에서 있어 자리를 이미 외우고 있는데다가, 바닥에는 길을 알 수 있도록 둥근 돌기가 솟은 석판들이 깔려 있었으므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마로를 데리고 가는 맹인들의 뒤를 따라 사내도 옆방으로 들어섰다. 이 방은 앞 선 두 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건물 안에 이토록 큰 방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기묘한 것은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새장이 놓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새장은 웬만한 방하나 만한 크기 여서 사람이 들어가 살 수도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새장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