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2.
가깝다던 야니의 말과는 달리 둘은 한참을 걸었다. 마로는 조바심이 일었다. 마로는 눈이 먼 이후로 오로지 광산에만 있었을 뿐 바깥 길을 다녀본 일이 없어 아직 걸음만으로 거리나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방향감각도 아직 흐린 상태였다. 매 걸음마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마로는 결국 아이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참고 참았던 질문을 내뱉고 말았다.
“얘야, 우리가 가고 있는 도시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칼레요.”
한 번도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베르가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고가의 장님 새우를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 했다. 덕분에 칼레에는 부유한 상인들이 잔뜩 살고 있었다.
‘칼레에 도착하면 머뭇거리지 말고 베르가마로 가는 방법이나 알아봐야 겠다.’
어차피 지금의 마로는 먹거나 자지 않아도 되었다. 길만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며칠이 걸리던 걸어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풋내기 맹인인 그로서는 열 걸음을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베르가마에서 보았던 장님들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디디며 잘도 걷던데. 막상 내가 이 꼴이 되고 보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군.’
마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때 야니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 바람에 마로는 쥐고 있던 막대기에 배를 찔릴 뻔하였다. 야니가 말했다.
“다 왔어요.”
과연 귀를 기울이니 멀리서 도시 특유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뒤 편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소리, 말발굽 소리, 마차의 바퀴가 땅위에서 튕기는 소리들이 빠르게 가까워오고 있었다.
“비켜!”
마차 위의 마부가 거칠게 소리치고 있었다. 무언가 대단히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연신 고삐를 휘두르며 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야니는 마차가 달려오는 난폭한 기세에 질려 길섶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막대기를 놓아버린 마로는 어디가 길 가장자리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오히려 길 한가운데로 들어설 뿐이었다. 깜짝 놀란 야니는 소리를 치며 마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저씨! 거기로 가면 안 돼요!”
야니의 고함에 마로는 놀라 멈추어 섰다.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 때문에 발을 헛디디며 비틀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이미 마차는 가까이 접근해 있었고, 흥분한 말들이 워낙 빨리 달리고 있던 지라, 마부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제동기를 건다고 해도 마차에 치이고 말 것이었다. 마로 역시 가까이 다가온 소리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이거 또 한 번 죽었다 깨어나겠군.’
마로는 어금니를 질끈 물으며 곧 있을 고통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그 때 무언가 작은 몸뚱이가 마로를 힘껏 밀쳤다.
‘뭐지?’
다름아닌 야니였다. 마로가 불사신임을 알지 못하는 야니로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마로는 길옆으로 나뒹굴며 마차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니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말발굽에 오른 다리를 걷어 차이고 말았다.
“아악!”
야니는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 비명소리에 놀란 마로가 벌떡 일어서서 야니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야니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다리를 움켜잡고 뒹굴고 있었다.
“얘야, 얘야. 어딜 다쳤니? 조금만 참고 말해봐!”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마로는 야니가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야니는 뼈가 부러진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자신이 다친 곳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고통을 못이겨 엉엉 울며 바닥에 몸을 비빌 뿐이었다. 마로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마차를 세운 마부가 거친 욕을 하며 다가왔다.
“이런 미친 새끼들아!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뒈지려고 환장했나? 말 다리가 상할 뻔 했잖아!”
마부는 화가 나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다가오더니 옷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헤어진 마로의 차림을 보고는 알만하다는 듯 외쳤다.
“허허! 이제 알겠구만. 거지새끼들이 마차에 치이고 돈이나 좀 벌어보려고 이런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한참 잘못 생각했다. 내가 네 녀석들을 금청으로 끌고 가서 남은 다리마저 부러뜨리게 만들어 줄테니까.”
가뜩이나 야니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스러움으로 어쩔 줄 모르던 마로였다. 마부의 말을 듣자 당혹스러움이 울화로 변해 정수리로 바짝 치밀어 올랐다. 마로는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뭐, 이 개자식아? 지금 이 아이가 다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그저 꾸민 행동으로 밖에 안 보인단 말이냐?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가란 말이다.”
마부는 마로의 사나운 기세에 잠시 주춤하였으나, 하찮은 거지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이내 얼굴을 다시 붉히며 소리쳤다.
“이 거지새끼가 어디서 감히!”
마부는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말채찍으로 마로를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 때 마차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한 시가 급하다는 것을 모르나!”
순간 마부는 지금까지의 흉폭한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놀랍도록 비굴한 자세로 마차를 향해 돌아섰다. 그곳에는 무더위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중년 사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마차의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니, 어떤 거지새끼 둘이 일부러 마차에 부딪혀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기에…….”
“됐어! 그냥 이 돈 몇 푼 던져주고 빨리 이리 와!”
중년 사내는 창 밖으로 금화 몇 닢을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이 땅에서 뒹굴었다. 마부는 고개를 조아리더니 다시 마로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이 눈먼 거지새끼야. 너 오늘 크게 횡재했구나. 하지만 한 번 재미보았다고 또 이런 짓을 하려다가는 언제고 된통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로는 마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울부짖는 야니를 살피며 무언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정작 마부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마로가 아니라, 마차 안의 사내였다.
“뭐? 그 거지가 눈이 멀었다고?”
사내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마차에서 내려 뛰어왔다. 그리고는 야니의 몸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하는 마로의 얼굴을 살폈다. 마로의 눌어붙은 눈꺼풀을 확인하자 사내는 껄껄 웃으며 외쳤다.
“이런 절묘할 데가 있나. 신이 돌보시는 모양이로군.”
그리고는 마차의 뒤편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마차에 매달려 앉아 있던 종자 두 명이 뛰어 내려 나가왔다. 이미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사내는 슬그머니 주위를 한 번 더 살폈다. 그리고는 종자들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이 녀석을 묶어서 마차에 처넣어.”
마차 근처에서 사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야니의 울부짖음이 그쳤다. 고통을 못이겨 쩔쩔 매며 울던 아이가 어느순간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마로는 그런 야니를 살피며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부가 계속 욕을 하며 시끄럽게 굴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부를 향해 씹어뱉듯 말했다.
“이 돼지 새끼야. 저 어린 아이가 다쳐서 울며 뒹구는데 일부러 꾸민 수작이라고? 네 다리를 작살을 낸 후에 너도 수작을 부릴 수 있는가 한 번 볼까?”
마부로서는 앞도 안 보이는 거지가 위협적으로 말을 하자 오히려 기가 막히기만 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니…….”
마로를 향해 욕을 하려던 마부는 마로의 뒤로 살그머니 다가드는 두 명의 종자를 보고는 어리둥절하여 말을 멈추었다. 마로 역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몸을 움찔하려는 순간 종자 중 한 명이 팔로 마로의 어깨를 휘감아 잡아 당기면서 약을 적신 수건으로 마로의 얼굴을 내리눌렀다. 마로는 잠시 발버둥 쳤지만, 결국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알싸한 냄새에 취하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봐, 너무 오래대고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뒤에서 조심스럽게 마로가 기절하는 장면을 보고 있던 중년 사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종자들이 마로의 얼굴에서 수건을 떼어내자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며 나직하게 외쳤다.
“우선 마차로 실어. 그 안에서 묶으란 말이야.”
종자들은 마로를 번쩍 들더니 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동안 중년 사내는 놀라서 머뭇거리는 마부를 보며 말했다.
“이봐, 뭐하는 거야. 얼른 마차 몰아. 나리께서 기다리신다.”
“네? 네.”
마부가 허겁지겁 마부석으로 올라서는 동안 중년 사내도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 안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비좁고 더웠지만, 중년 사내는 뭐가 좋은지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하하, 이거 정말로 운이 좋군. 아무리 살펴도 구할 방도가 없어 난감하던 터에 길에서 이렇게 쉽게 건지게 되다니.”
종자들은 마로를 꽁꽁 묶은 후에 다시 마차 밖으로 나갔다. 폭염의 날씨에 마차 안은 지옥처럼 더웠지만, 사내는 오히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창문을 닫아걸기 시작했다.
사내가 창문을 닫는 동안 마로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마로는 특유의 회복력으로 벌써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잠시 멍한 상태에서 중년 사내가 창문을 닫느라고 일으키는 부산스러운 소리를 듣던 마로는 자신의 팔다리가 묶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마로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마로의 말소리에 중년 사내는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수건에 적신 약은 아무리 건장한 사내라도 하루는 꼬박 잠들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수건을 너무 빨리 떼었나?’
중년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끈 조각을 집어 들어서는 다짜고짜 마로의 입에 쑤셔 넣고는 남은 끈으로 칭칭 동여매었다. 입이 막힌 마로는 윽윽거렸지만, 그 정도는 마차 밖에서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 깜짝 놀랐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마로를 내려 보던 중년 사내는 주인에게 받을 상을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음 지었다.
가깝다던 야니의 말과는 달리 둘은 한참을 걸었다. 마로는 조바심이 일었다. 마로는 눈이 먼 이후로 오로지 광산에만 있었을 뿐 바깥 길을 다녀본 일이 없어 아직 걸음만으로 거리나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방향감각도 아직 흐린 상태였다. 매 걸음마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마로는 결국 아이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참고 참았던 질문을 내뱉고 말았다.
“얘야, 우리가 가고 있는 도시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칼레요.”
한 번도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베르가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고가의 장님 새우를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 했다. 덕분에 칼레에는 부유한 상인들이 잔뜩 살고 있었다.
‘칼레에 도착하면 머뭇거리지 말고 베르가마로 가는 방법이나 알아봐야 겠다.’
어차피 지금의 마로는 먹거나 자지 않아도 되었다. 길만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며칠이 걸리던 걸어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풋내기 맹인인 그로서는 열 걸음을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베르가마에서 보았던 장님들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디디며 잘도 걷던데. 막상 내가 이 꼴이 되고 보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군.’
마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때 야니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 바람에 마로는 쥐고 있던 막대기에 배를 찔릴 뻔하였다. 야니가 말했다.
“다 왔어요.”
과연 귀를 기울이니 멀리서 도시 특유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뒤 편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소리, 말발굽 소리, 마차의 바퀴가 땅위에서 튕기는 소리들이 빠르게 가까워오고 있었다.
“비켜!”
마차 위의 마부가 거칠게 소리치고 있었다. 무언가 대단히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연신 고삐를 휘두르며 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야니는 마차가 달려오는 난폭한 기세에 질려 길섶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막대기를 놓아버린 마로는 어디가 길 가장자리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오히려 길 한가운데로 들어설 뿐이었다. 깜짝 놀란 야니는 소리를 치며 마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저씨! 거기로 가면 안 돼요!”
야니의 고함에 마로는 놀라 멈추어 섰다.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 때문에 발을 헛디디며 비틀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이미 마차는 가까이 접근해 있었고, 흥분한 말들이 워낙 빨리 달리고 있던 지라, 마부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제동기를 건다고 해도 마차에 치이고 말 것이었다. 마로 역시 가까이 다가온 소리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이거 또 한 번 죽었다 깨어나겠군.’
마로는 어금니를 질끈 물으며 곧 있을 고통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그 때 무언가 작은 몸뚱이가 마로를 힘껏 밀쳤다.
‘뭐지?’
다름아닌 야니였다. 마로가 불사신임을 알지 못하는 야니로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마로는 길옆으로 나뒹굴며 마차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니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말발굽에 오른 다리를 걷어 차이고 말았다.
“아악!”
야니는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 비명소리에 놀란 마로가 벌떡 일어서서 야니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야니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다리를 움켜잡고 뒹굴고 있었다.
“얘야, 얘야. 어딜 다쳤니? 조금만 참고 말해봐!”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마로는 야니가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야니는 뼈가 부러진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자신이 다친 곳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고통을 못이겨 엉엉 울며 바닥에 몸을 비빌 뿐이었다. 마로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마차를 세운 마부가 거친 욕을 하며 다가왔다.
“이런 미친 새끼들아!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뒈지려고 환장했나? 말 다리가 상할 뻔 했잖아!”
마부는 화가 나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다가오더니 옷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헤어진 마로의 차림을 보고는 알만하다는 듯 외쳤다.
“허허! 이제 알겠구만. 거지새끼들이 마차에 치이고 돈이나 좀 벌어보려고 이런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한참 잘못 생각했다. 내가 네 녀석들을 금청으로 끌고 가서 남은 다리마저 부러뜨리게 만들어 줄테니까.”
가뜩이나 야니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스러움으로 어쩔 줄 모르던 마로였다. 마부의 말을 듣자 당혹스러움이 울화로 변해 정수리로 바짝 치밀어 올랐다. 마로는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뭐, 이 개자식아? 지금 이 아이가 다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그저 꾸민 행동으로 밖에 안 보인단 말이냐?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가란 말이다.”
마부는 마로의 사나운 기세에 잠시 주춤하였으나, 하찮은 거지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이내 얼굴을 다시 붉히며 소리쳤다.
“이 거지새끼가 어디서 감히!”
마부는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말채찍으로 마로를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 때 마차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한 시가 급하다는 것을 모르나!”
순간 마부는 지금까지의 흉폭한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놀랍도록 비굴한 자세로 마차를 향해 돌아섰다. 그곳에는 무더위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중년 사내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마차의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니, 어떤 거지새끼 둘이 일부러 마차에 부딪혀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기에…….”
“됐어! 그냥 이 돈 몇 푼 던져주고 빨리 이리 와!”
중년 사내는 창 밖으로 금화 몇 닢을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이 땅에서 뒹굴었다. 마부는 고개를 조아리더니 다시 마로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이 눈먼 거지새끼야. 너 오늘 크게 횡재했구나. 하지만 한 번 재미보았다고 또 이런 짓을 하려다가는 언제고 된통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로는 마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울부짖는 야니를 살피며 무언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정작 마부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마로가 아니라, 마차 안의 사내였다.
“뭐? 그 거지가 눈이 멀었다고?”
사내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더니 마차에서 내려 뛰어왔다. 그리고는 야니의 몸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하는 마로의 얼굴을 살폈다. 마로의 눌어붙은 눈꺼풀을 확인하자 사내는 껄껄 웃으며 외쳤다.
“이런 절묘할 데가 있나. 신이 돌보시는 모양이로군.”
그리고는 마차의 뒤편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마차에 매달려 앉아 있던 종자 두 명이 뛰어 내려 나가왔다. 이미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사내는 슬그머니 주위를 한 번 더 살폈다. 그리고는 종자들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이 녀석을 묶어서 마차에 처넣어.”
마차 근처에서 사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야니의 울부짖음이 그쳤다. 고통을 못이겨 쩔쩔 매며 울던 아이가 어느순간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마로는 그런 야니를 살피며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부가 계속 욕을 하며 시끄럽게 굴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부를 향해 씹어뱉듯 말했다.
“이 돼지 새끼야. 저 어린 아이가 다쳐서 울며 뒹구는데 일부러 꾸민 수작이라고? 네 다리를 작살을 낸 후에 너도 수작을 부릴 수 있는가 한 번 볼까?”
마부로서는 앞도 안 보이는 거지가 위협적으로 말을 하자 오히려 기가 막히기만 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니…….”
마로를 향해 욕을 하려던 마부는 마로의 뒤로 살그머니 다가드는 두 명의 종자를 보고는 어리둥절하여 말을 멈추었다. 마로 역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몸을 움찔하려는 순간 종자 중 한 명이 팔로 마로의 어깨를 휘감아 잡아 당기면서 약을 적신 수건으로 마로의 얼굴을 내리눌렀다. 마로는 잠시 발버둥 쳤지만, 결국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알싸한 냄새에 취하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봐, 너무 오래대고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뒤에서 조심스럽게 마로가 기절하는 장면을 보고 있던 중년 사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종자들이 마로의 얼굴에서 수건을 떼어내자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며 나직하게 외쳤다.
“우선 마차로 실어. 그 안에서 묶으란 말이야.”
종자들은 마로를 번쩍 들더니 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동안 중년 사내는 놀라서 머뭇거리는 마부를 보며 말했다.
“이봐, 뭐하는 거야. 얼른 마차 몰아. 나리께서 기다리신다.”
“네? 네.”
마부가 허겁지겁 마부석으로 올라서는 동안 중년 사내도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 안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비좁고 더웠지만, 중년 사내는 뭐가 좋은지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하하, 이거 정말로 운이 좋군. 아무리 살펴도 구할 방도가 없어 난감하던 터에 길에서 이렇게 쉽게 건지게 되다니.”
종자들은 마로를 꽁꽁 묶은 후에 다시 마차 밖으로 나갔다. 폭염의 날씨에 마차 안은 지옥처럼 더웠지만, 사내는 오히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창문을 닫아걸기 시작했다.
사내가 창문을 닫는 동안 마로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마로는 특유의 회복력으로 벌써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잠시 멍한 상태에서 중년 사내가 창문을 닫느라고 일으키는 부산스러운 소리를 듣던 마로는 자신의 팔다리가 묶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마로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마로의 말소리에 중년 사내는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수건에 적신 약은 아무리 건장한 사내라도 하루는 꼬박 잠들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수건을 너무 빨리 떼었나?’
중년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끈 조각을 집어 들어서는 다짜고짜 마로의 입에 쑤셔 넣고는 남은 끈으로 칭칭 동여매었다. 입이 막힌 마로는 윽윽거렸지만, 그 정도는 마차 밖에서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 깜짝 놀랐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마로를 내려 보던 중년 사내는 주인에게 받을 상을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