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광산

1.

병사들에게 모진 구타를 당하여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감옥에 내던져진 마로는 멍한 눈으로 천장만 올려보았다. 그와 같은 방에 있는 죄수가 무언가 물어보았지만, 마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도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말라르디는 어떻게 된 거지?’

말라르디를 생각하니 돌연 말라르디와 대화를 할 때 머리를 스쳤던 흐릿한 의심이 다시 떠올랐다.

‘무언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뭐가 이상한 것일까?’

순간 머릿속에서 흐릿한 안개가 겉히면서 의혹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그들이 먼저 와 있던 거지?”

뭐라고 말을 걸어도 아무 말 없이 누워 있던 마로가 돌연 고함을 지르자 곁에 있던 죄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슨 소리야? 먼저 와 있다니?”

하지만 마로는 죄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생각에 몰두했다.

‘내가 샘터 관리관을 때려 눕히고 집으로 도망쳤을 때 이미 병사들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무리 그들이 발이 빠르다고 해도, 지름길로 바로 왔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우리 집이 어딘지 미리 알고 있기 전에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의 아귀가 들어맞고 있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뇌물을 전달하라던 도미의 부탁도,  뇌물을 거절한 관리관의 행동, 샘터의 그 많은 건달을 두고 마로의 일꾼을 잡아간 것, 그리고 오늘 재판에서의 도미의 거짓 증언까지.

마로는 눈을 크게 뜨며 이를 악물었다.

‘이 개자식들, 모든 것이 미리 계획했던 일이로구나.’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로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라고 하던 말라르디의 이야기와 죄수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설마 말라르디도 한 패일까?’

마로는 벌떡 일어섰다. 상처들이 욱신거렸지만, 마로는 개의치 않고 죄수를 향해 다급하게 물었다.

“이봐요! 판관이 매수되는 일도 있나요?”

죄수는 갑작스러운 마로의 행동에 놀란 듯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빙글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이 자식, 봐라. 뒤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더니 어째 일이 꼬인 모양이지? 아이고 이런 애석할…….”

마로는 벌떡 일어서며 사내를 힘껏 걷어찼다. 뒤로 넘어진 사내의 목을 무릎으로 힘껏 누르며 소리쳤다.

“이 새끼야!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난 지금 참수형을 받고 오는 길이야. 어차피 죽을 몸 네 녀석 하나 죽인다고 해도 달리질 것 없어!”

어리둥절했던 사내의 표정은 마로의 눈에 떠오른 광기를 확인하면서 두려움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컥컥거리며 대답했다.

“왜, 왜 그래. 그냥 장난 좀 친 것 같고.”

“또 한 번만 허튼 소리하면 네 녀석 이빨을 모조리 박살내서 삼키게 할 테다. 똑바로 대답해! 판관이 매수되는 일도 있나?”

“당연히 이, 있지. 베르가마에서 돈과 권력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

마로는 이를 악물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잠시 마로의 눈치를 보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봐, 이거 자세 좀 편하게 바꾸고 생각하면 안 될까?”

마로가 사내의 목을 누르던 무릎을 떼어서 물러가자 사내는 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목을 쓰다듬으며 숨을 고르는 것 같던 사내는 갑자기 달려들며 마로에게 발길질을 했다.

“이 자식이, 어디서 지랄이야!”

사내는 연신 욕을 내뱉으며 거칠게 마로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움판에서 뼈가 굵은 마로가 가만히 얻어맞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곧 목에 찬 형틀의 모서리를 세워 사내의 명치로 쳐 올렸다.

“커헉!”

사내는 숨이 막히는 지 얼굴이 벌게지더니 배를 틀어쥐고 주저앉았다. 마로가 차가워진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며 일어서자, 사내는 끙끙거리면서도 애써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봐. 미안해. 사람이 화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법이잖아. 그러니까 화내지 말라고. 이제부턴 네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할 테니.”

마로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내는 이미 마로가 쉽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간사하게 목소리를 바꾸어 말했다.

“이봐, 네 일은 참 안 되었다고 생각해. 사실 이 베르가마에서 돈 없어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돈 많은 인간이라면 무고한 사람을 때려 죽여도 증인과 판관에게 몇 푼 쥐어주면 무죄가 되어 풀려나는 마당에?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지. 돈 좀 있고 지위가 제법 높다면 증인과 판관을 매수해서 한 사람 골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사내의 말을 듣던 마로는 자신이 사리사의 시종장이 되어 상당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라르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갑자기 지금까지 몸에 들어갔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겨우 나 하나를 잡기 위해 그 많은 사람이 작당을 했다는 것인가? 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참수형이라니. 얼마 후면, 더 이상 이 세상에 내가 있지 않다니. 아버지는 어떻게 하지?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왜 이런 꼴을 겪어야 돼.’

참을 수 없어진 마로는 벌떡 일어서서는 창살문을 붙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이봐! 말라르디를 불러줘! 아니 판관이고 뭐고 개자식들을 전부 이리 데리고 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죽이려는 거야!”

마로가 소리지르자 그와 동시에 규칙적이고 박력있는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감옥 복도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마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고함을 지를 뿐이었다.

“개자식들아! 내말이 안 들리나! 어서…….”

순간 마로가 매달린 문 앞에 여남은 수의 병사들이 다가와 섰다. 문에 매달린 마로를 창대로 찍어 누르더니 문을 열고 들어와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만히 뒤에서 눈치만 살피던 죄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허허, 오늘은 금청의 일정이 좀 한가한 게로군. 유달리 집행이 빠른데? 이봐, 꼬맹이. 잘 가라고.”

죄수의 말을 듣는 순간 마로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렸다. 다리가 후들거려 땅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병사들은 짐짝 끌듯 끌고 나갈 뿐이었다. 마로의 눈 앞이 아득해 졌다.

마로가 끌려 나간 곳은 해가 지는 넓은 공터 한가운데였다. 공터에는 음침한 표정의 대머리 사내가 피가 말라 붙어 얼룩이 생긴 더러운 앞치마를 두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를 보는 순간 마로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 안 돼. 제, 제발.”

하지만 병사들은 사정없이 끌고 가 마로를 대머리 사내 앞에 무릎 꿇렸다. 한 명이 마로의 목과 팔에 걸린 형구를 위로 당겨 올리자, 다른 두 명이 양 어깨 위로 창대를 꿰더니 뒤로 힘껏 젖혔다. 그러자 마로의 등이 펴지면서 고개가 하늘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마로는 두려움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목을 어떻게 베려고 하기에 이러는 거지? 설마 목젖부터 베기 시작하는 것인가?’

대머리 사내는 마로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그의 손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길고 뾰족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사내는 허리춤에 있던 나무병을 끌러 들더니 안에 담긴 액체를 칼에 부었다. 액체가 증발되어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알싸한 술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사내는 식은 칼날을 어루만지며 날카로움을 가늠하더니 어느새 마로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다음 순간 마로는 얼얼한 느낌과 함께 시야의 반쪽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마로는 고통과 함께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깨닫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마로는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병사들의 억센 손에 붙잡혀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처절한 비명에도 불구하고, 대머리 사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칼을 고쳐 들더니 마로의 남은 눈마저 단숨에 도려내었다. 그리고는 피가 흐르는 마로의 두 눈 위를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지졌다. 살타는 냄새가 마로의 코에도 풍겨올 지경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통증과 두려움이 몸을 휘감았다. 마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비틀었다.

대머리 사내가 대충 마로의 눈을 처매자, 병사들은 다시 마로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병사들은 마로의 목과 팔을 죄고 있던 형틀을 풀더니 나무로 사방이 막힌 수레에 내던졌다. 기진맥진해진 마로는 더 이상 몸부림칠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수레가 흔들거리며 몇 명이 더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어느덧 덜컹거리더니 수레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로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어둠 속에서 의식을 놓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