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1. 棟梁(3)
지난 전투를 천천히 되새기며 진성은 현청 주위를 한 바퀴 소요하였다.
죽은 몸뚱이들을 실은 수레가 아직도 도처에 널려있었다. 곧 부패할 시신들을 계속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으므로 진성은 성 내의 시신들을 실어다가 벌판에 버리도록 명하였다. 통곡할 이 하나 남지 않은 그들의 장례는 바람과 새와 온갖 물것들에 의하여 성대히 치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시신 중에는 목이 없는 것들도 있다. 그들의 머리는 버린 몸뚱이보다는 조금 더 가치를 가진 것들이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진성은 현청 앞에 세운 희고 높은 단 위에 섰다. 그의 옆에는 황옥빛 맹금을 어깨에 얹은 지효가 시율허주의 이름으로 서 있었다.
곧 십여명의 청장년들이 단 앞으로 끌려나왔다. 산 자도 있었고 이미 숨 멎은 자도 있었으며 그 사이에 놓인 자도 있었다. 그들 중 아직 입을 놀릴 수 있을 만큼 몸이 덜 상한 이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무도한 반적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그 중에는 황옥의 새를 부리는 술사를 알아 본 이도 있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시율허주를 향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참담한 욕설들이 쏟아졌다.
시율허 지효는 싸늘히 표정을 굳힌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당당히 천명국 수밀의 -한님의 위엄을 말하며 곧 뒤이을 천벌을 믿고 있는, 어리석으나 올곧은 목숨들을.
진성은 그자들이 외치는 말들을 굳이 소리 높여 부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의 피 묻은 육신은 오라에 묶였고 사람의 목을 능히 벨 날붙이가 그의 손에 있었으므로. 또한 정연히 늘어선 삼천 예주군의 야유는 그들의 소리를 묻어버리기에 충분하였다.
지효가 말했다.
―우리 하늘은 오래 전에 무너졌어야 할 하늘이다. 천명이 이미 떠났음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핏발 선 눈알을 부라리며 그들은 저마다 채 말이 되지 못한 욕설을 쏟았다.
―무도한 것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구나. 기르는 개도 은혜를 아는 법이거늘 개만도 못한 어린 년이 제 하늘을 등지려 들어. 네 어미가 어찌 죽은 줄 아느냐. 네년 역시 하늘 아래 사지를 찢기리라……!
지효는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파리하게 굳은 낯빛이 큰 주법 이후의 피로 때문인지 아래에 무릎꿇린 자들의 가열찬 성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진성은 천천히 단 아래로 내려섰다. 오른손을 검 손잡이에 얹은 채였다.
예고도 없이, 사람의 머리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부릅뜬 눈이 채 감기지도 않은 채 뒤집혀 하늘을 향하였다. 현청 마당의 반듯한 포석 사이로 붉은 격자를 그리며 서서히 피가 스몄다. 무릎꿇은 자들의 경악한 시선이 그 참상에 고정되었다. 자결의 기회도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에 명예롭게 두 발로 땅을 디디는 것 따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죄인으로 무릎 꿇고 오라에 묶인 채로 목을 잘렸다. 거칠게 피가 튀었다. 그 자리에 그들이 믿는 하늘의 비호 따위는 없었다.
예주군 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로잡히고도 항복하지 않는 적의 수뇌를 참수하는 것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그것은 후께서 나서서 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참수령 집행을 위해 날 세운 월도를 들고 명을 기다리던 몇몇 예주군 병사들은 직접 나서서 손을 더럽히는 상공을 보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진성은 무심한 얼굴로 피 묻은 칼을 휘둘렀다. 차례차례 수개의 머리들이 바닥으로 굴렀다. 늘어진 시신의 목을 베기 위해서는 그 몸뚱이를 짓밟고 검을 그어야 했다. 굳어가는 피가 칼날을 따라 흘러 흰 돌바닥에 검붉고 질척한 선을 그었다. 잔혹하달 수 있는 광경이었으나 진성의 얼굴에 광기 따위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피와 기름에 상한 무딘 날이 목뼈를 부수며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진성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시신의 목까지 베어 떨구었다.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해져 있었다.
고개를 들고, 진성은 분명히 말 하였다.
―여기, 새 하늘이 있다.
도열한 예주군은 기꺼운 환성을 올렸다.
피와 살점이 엉겨붙은 칼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진성은 효수를 명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지효는 등을 돌려 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황옥빛 맹금이 잠시 그 머리 언저리를 떠돌다가 점차 흐릿해졌다. 단 아래 섰던 술사들이 그들의 어린 주인을 맞아들였다. 그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지효의 어깨를 감싸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린 시율허주와 꼭 같은 새카만 머리카락을 반나마 틀어올려 간소한 백옥 꽂이를 세운 여인이었다.
시율허 지윤. 전 시율허주의 장녀이며 지효의 자매되는 이다. 그가 진성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윤은 곧바로 시선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하지 않았다. 먼 거리였으나 분명 똑바로 마주쳐 오는 시선이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힐난하는 듯 암암한 그 눈빛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낄 즈음에야 여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지효와 함께 다른 술사들을 이끌며 멀어져 갔다. 그때 진성은 여전히 자신과 그들 사이에 거대한 벽 하나가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숨 다할 때 까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간극인 것을. 그러므로 진성은 그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는 현청 삼문 밖에서 있었으므로 현청 자체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원 쪽에서 곱게 숨 끊긴 어린아이들과 자결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들, 그리고 비복들의 시신이 몇 나왔을 뿐이다. 그것은 끌어내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현청의 푸른 기와지붕은 오전의 햇살 아래서 흠결없이 찬란하였다.
패배가 자명한 전투에서는 본진에 불을 놓는 일이 흔하다. 적에게 승리 이외의 그 무엇도 넘겨주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곳 정안현의 현승은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 전쟁에 익숙한 자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혹은 패배를 전연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거나. 그리하여 예주군은 잃은 것 하나 없이 승리하고도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현청의 넓은 앞마당에는 곧 천막이 수없이 들어섰다. 지대는 평탄하고 우물이 가까워 병사들이 쉬기에 좋았다. 부고에는 가득한 양곡과 재보가 그대로였고 삼문 내의 건물들 또한 기둥하나 벽감하나 상한 것이 없었다.
예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첫 번째 전투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 천명국 수밀의 땅을 침범하는 것에 우려의 뜻을 보이는 장수는 더 이상 없었다. 있다 해도 감히 앞으로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늘의 뜻이 여기 있다고 모두가 믿었으므로. 시율허가의 술사들이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한 이번 전투의 의의는 그것이었다.
현청을 정리한 후 진성은 내원 안에서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측근과 장수들에게도 내원의 방이 쉴 곳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내원으로 든 주요인물들 중에 시율허의 술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수밀의 푸른 지붕 아래로 드는 일을 꺼리는 듯 하였다. 그들 자신들이 싸워 얻어낸 당연한 그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율허주를 비롯하여 모든 술사들이 그대로 삼문 밖 막사에 머무는 일은 진성의 심기를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시율허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리고 작은 계집아이. 한 거풀 덮어씌운 듯 표정 적은 얼굴을 한 그 시율허 지효의, 스스로 부수는 하늘에 대한 가없는 연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는 하되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오느니 쓴웃음이다. 그 자신이 하려는 일 또한 이해받을 수 없을 테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나 함께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또한 같은 길을 가면서도 결코 같은 곳을 바라볼 수는 없을 때도 있다. 어느 쪽이나 똑같이 허망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보냈던 병사가 역시 첫 번째와 같이 답신도 없이 빈 손으로 돌아왔을 때 진성은 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다만 세 번째를 보내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처지에 함께 가는 시늉만이라도 해주면 안 되는 것인가.
그 말은 차마 소리내어 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진성은 그때까지 걸치고 있던 갑옷을 벗어 거칠게 떨구었다. 팽개치는 것으로 보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바닥에 부딪는 갑편들이 비릿하고도 둔탁한 쇳소리를 내었다. 검대를 풀어 다시 내던지려던 진성은 그자리에 빈 검집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멈칫한 손에서도 피냄새가 짙었다. 갑옷 사이로 스며든 피가 말라붙어 몸에 감긴 전포가 묵직했다.
지금 가고있는 길은, 피로 긋는 길이거니 결국은 죄의 무게로구나.
그때 병졸이 가져온 더운 물에 피묻은 손을 씻어내며 진성을 그렇게 생각했다. 굳은 피로 버석거리는 전포를 벗고 새 포의로 갈아입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 피비린내가 온 사방에 떠돌고 있었다. 그에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길지 않을 이 생의 마지막까지.
진성은 그후 하오에 있을 회의 준비를 명했고 다른 전령을 시켜 그에 시율허주의 참석을 바란다는 전언을 보냈다. 전령이 읍하고 나간 후 진성은 마침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걸음으로 침상에 다가가 몸을 던졌다.
사방이 피투성이. 온 천하가 피투성이. 그럼에도 높은 이상. 그리고, 결코 돌아보지 않아야 할 많은 것들. 그에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말아야 할것이다.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정오도 지나지 않은 시각인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진성은 눈을 감아버렸다. 감은 눈꺼풀 속 천지없는 암흑이 눈 뜬 현실보다는 아늑하였다. 그대로 영원히 눈 감을 일을 생각하게 하는 그 안락, 그리고 평안. 아직은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성은 부릅뜬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보려 하였다.
좀전에 보내었던 전령이 급히 돌아와 진성을 찾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진성은 즉시 일어나 몸을 추슬렀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목깃과 허리띠와 포의의 끈매듭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처음부터 단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진성은 직접 걸음을 옮겨 예정에 없었던 방문자를 맞았다.
지효는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그 앞에 섰다. 장식없이 풀어내린 새카만 머리칼에 흰 옷자락. 낮달처럼 곧 스러질 듯 창백한 얼굴에 두 눈만은 선명히 검었다. 한점의 빛도 되비쳐내지 않는 선명한 나락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처음 마주하였을 때 진성은 지효가 단지 열 여섯의 어린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눈을 바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엇나가는 시선을 항시 허공에 던져두고.
그리하여 다시, 지효는 그저 열 여섯의 어린 계집아이였다. 단지 가엾은. 세상에 흔하여 그가 손 뻗을 일 없을 그런.
진성은 그저 무연히 미소띤 얼굴을 하고서 지효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그리고 그 역시 탁상 주위에 놓인 여러개의 교상 중 하나에 앉았다. 진성이 선택한 자리는 지효에게 권한 자리와는 마주보지 않는 위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한 면이 완전히 개방된 문 밖으로 정원을 내다보았다. 물과 돌과 느리게 자라는 초목으로 이루어진 수밀의 정원이었다. 여름 끝자락의, 정오로 치달아가는 햇살이 무정하게도 쏟아지고 있었다. 침탈자의 시선 아래에서 수밀의 풍경은 빛나는 것이 오히려 처연하였고 백열하는 빛 만큼 구석지거나 패인 곳의 그림자는 더욱 짙었다.
진성은 지효의 시선 역시 자신과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효가 자신이 권한 자리를 보지도 않은 채 덩그라니 서 있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바라보지 않았고 왜 앉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고 다시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 모든 시간동안 그러한 행동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였으나 그럼에도.
곧 등 뒤로부터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들이 죄인이었소.
굳은 목소리에 억양마저 잦아들어 있었으나 진성은 그 말이 선언이 아니라 질문인 것을 알았다. 저 성문 밖에 내어걸린 목들에 대하여 묻는 말인 것 역시 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성은 여전히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지효에게 보이지 않을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간 침묵만이 스며들었다.
―나에게 부러 잔인한 취미는 없어.
침묵 끝에 내뱉은, 오래 고른 첫 마디가 그저 변명같아서 진성은 다시 한번 쓰게 웃었다.
―그러나, 하늘이 항시 그러하듯이 새 하늘에도 자비가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
정말로 그것 뿐인 것이냐고, 그때 지효는 따져 묻지 않았다. 진성은 등 뒤에서 흐르는 낮은 한숨소리를 들었다. 한숨자락에 나지막히 말소리가 묻어 흘렀다.
―시율허의 업은 단지 파천의 업이오만, 예후께서는 새 하늘을 품으시었소.
―거짓 하늘이 부서지면, 그 위에는 필시 더 높은 창천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살아서 이을 하늘이 아닐지라도.
그 말을, 진성은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사이사이에 긴 침묵을 흩어둔 채 둘은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한개의 하늘, 하나의 세상을 부수며 흘러야 할 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에 관여하는 모두가 죄인이며 동시에 그 누구의 죄도 아닌 것을. ―그러한 사실들을.
또한 필시 죽을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의 원혼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였으나 눈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죄인의 눈물이란 흘려내는 것 또한 죄가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곧 속으로 삼켜야만 한다. 그 사실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기댈 것도 기대할 것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
그 대화의 끝이 어떠하였는지 진성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었다.
바람소리가 나도록 돌아서던 싸늘한 뒷모습과 그때 엷은 호선을 그리며 살풋 떠올랐다가 내려앉던 그 길고 새까만 머리채라거나, 발걸음 소리도 없이 흔들리며 멀어지던 흰 치맛자락 같은 것.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이미 알 수 있었기에 진성은 웃지 않았다.
지난 전투를 천천히 되새기며 진성은 현청 주위를 한 바퀴 소요하였다.
죽은 몸뚱이들을 실은 수레가 아직도 도처에 널려있었다. 곧 부패할 시신들을 계속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으므로 진성은 성 내의 시신들을 실어다가 벌판에 버리도록 명하였다. 통곡할 이 하나 남지 않은 그들의 장례는 바람과 새와 온갖 물것들에 의하여 성대히 치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시신 중에는 목이 없는 것들도 있다. 그들의 머리는 버린 몸뚱이보다는 조금 더 가치를 가진 것들이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진성은 현청 앞에 세운 희고 높은 단 위에 섰다. 그의 옆에는 황옥빛 맹금을 어깨에 얹은 지효가 시율허주의 이름으로 서 있었다.
곧 십여명의 청장년들이 단 앞으로 끌려나왔다. 산 자도 있었고 이미 숨 멎은 자도 있었으며 그 사이에 놓인 자도 있었다. 그들 중 아직 입을 놀릴 수 있을 만큼 몸이 덜 상한 이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무도한 반적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그 중에는 황옥의 새를 부리는 술사를 알아 본 이도 있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시율허주를 향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참담한 욕설들이 쏟아졌다.
시율허 지효는 싸늘히 표정을 굳힌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당당히 천명국 수밀의 -한님의 위엄을 말하며 곧 뒤이을 천벌을 믿고 있는, 어리석으나 올곧은 목숨들을.
진성은 그자들이 외치는 말들을 굳이 소리 높여 부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의 피 묻은 육신은 오라에 묶였고 사람의 목을 능히 벨 날붙이가 그의 손에 있었으므로. 또한 정연히 늘어선 삼천 예주군의 야유는 그들의 소리를 묻어버리기에 충분하였다.
지효가 말했다.
―우리 하늘은 오래 전에 무너졌어야 할 하늘이다. 천명이 이미 떠났음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핏발 선 눈알을 부라리며 그들은 저마다 채 말이 되지 못한 욕설을 쏟았다.
―무도한 것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구나. 기르는 개도 은혜를 아는 법이거늘 개만도 못한 어린 년이 제 하늘을 등지려 들어. 네 어미가 어찌 죽은 줄 아느냐. 네년 역시 하늘 아래 사지를 찢기리라……!
지효는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파리하게 굳은 낯빛이 큰 주법 이후의 피로 때문인지 아래에 무릎꿇린 자들의 가열찬 성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진성은 천천히 단 아래로 내려섰다. 오른손을 검 손잡이에 얹은 채였다.
예고도 없이, 사람의 머리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부릅뜬 눈이 채 감기지도 않은 채 뒤집혀 하늘을 향하였다. 현청 마당의 반듯한 포석 사이로 붉은 격자를 그리며 서서히 피가 스몄다. 무릎꿇은 자들의 경악한 시선이 그 참상에 고정되었다. 자결의 기회도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에 명예롭게 두 발로 땅을 디디는 것 따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죄인으로 무릎 꿇고 오라에 묶인 채로 목을 잘렸다. 거칠게 피가 튀었다. 그 자리에 그들이 믿는 하늘의 비호 따위는 없었다.
예주군 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로잡히고도 항복하지 않는 적의 수뇌를 참수하는 것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그것은 후께서 나서서 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참수령 집행을 위해 날 세운 월도를 들고 명을 기다리던 몇몇 예주군 병사들은 직접 나서서 손을 더럽히는 상공을 보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진성은 무심한 얼굴로 피 묻은 칼을 휘둘렀다. 차례차례 수개의 머리들이 바닥으로 굴렀다. 늘어진 시신의 목을 베기 위해서는 그 몸뚱이를 짓밟고 검을 그어야 했다. 굳어가는 피가 칼날을 따라 흘러 흰 돌바닥에 검붉고 질척한 선을 그었다. 잔혹하달 수 있는 광경이었으나 진성의 얼굴에 광기 따위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피와 기름에 상한 무딘 날이 목뼈를 부수며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진성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시신의 목까지 베어 떨구었다.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해져 있었다.
고개를 들고, 진성은 분명히 말 하였다.
―여기, 새 하늘이 있다.
도열한 예주군은 기꺼운 환성을 올렸다.
피와 살점이 엉겨붙은 칼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진성은 효수를 명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지효는 등을 돌려 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황옥빛 맹금이 잠시 그 머리 언저리를 떠돌다가 점차 흐릿해졌다. 단 아래 섰던 술사들이 그들의 어린 주인을 맞아들였다. 그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지효의 어깨를 감싸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린 시율허주와 꼭 같은 새카만 머리카락을 반나마 틀어올려 간소한 백옥 꽂이를 세운 여인이었다.
시율허 지윤. 전 시율허주의 장녀이며 지효의 자매되는 이다. 그가 진성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윤은 곧바로 시선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하지 않았다. 먼 거리였으나 분명 똑바로 마주쳐 오는 시선이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힐난하는 듯 암암한 그 눈빛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낄 즈음에야 여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지효와 함께 다른 술사들을 이끌며 멀어져 갔다. 그때 진성은 여전히 자신과 그들 사이에 거대한 벽 하나가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숨 다할 때 까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간극인 것을. 그러므로 진성은 그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는 현청 삼문 밖에서 있었으므로 현청 자체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내원 쪽에서 곱게 숨 끊긴 어린아이들과 자결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들, 그리고 비복들의 시신이 몇 나왔을 뿐이다. 그것은 끌어내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현청의 푸른 기와지붕은 오전의 햇살 아래서 흠결없이 찬란하였다.
패배가 자명한 전투에서는 본진에 불을 놓는 일이 흔하다. 적에게 승리 이외의 그 무엇도 넘겨주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곳 정안현의 현승은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 전쟁에 익숙한 자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혹은 패배를 전연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거나. 그리하여 예주군은 잃은 것 하나 없이 승리하고도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현청의 넓은 앞마당에는 곧 천막이 수없이 들어섰다. 지대는 평탄하고 우물이 가까워 병사들이 쉬기에 좋았다. 부고에는 가득한 양곡과 재보가 그대로였고 삼문 내의 건물들 또한 기둥하나 벽감하나 상한 것이 없었다.
예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첫 번째 전투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 천명국 수밀의 땅을 침범하는 것에 우려의 뜻을 보이는 장수는 더 이상 없었다. 있다 해도 감히 앞으로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늘의 뜻이 여기 있다고 모두가 믿었으므로. 시율허가의 술사들이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한 이번 전투의 의의는 그것이었다.
현청을 정리한 후 진성은 내원 안에서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측근과 장수들에게도 내원의 방이 쉴 곳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내원으로 든 주요인물들 중에 시율허의 술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수밀의 푸른 지붕 아래로 드는 일을 꺼리는 듯 하였다. 그들 자신들이 싸워 얻어낸 당연한 그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율허주를 비롯하여 모든 술사들이 그대로 삼문 밖 막사에 머무는 일은 진성의 심기를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시율허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리고 작은 계집아이. 한 거풀 덮어씌운 듯 표정 적은 얼굴을 한 그 시율허 지효의, 스스로 부수는 하늘에 대한 가없는 연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는 하되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오느니 쓴웃음이다. 그 자신이 하려는 일 또한 이해받을 수 없을 테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나 함께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또한 같은 길을 가면서도 결코 같은 곳을 바라볼 수는 없을 때도 있다. 어느 쪽이나 똑같이 허망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보냈던 병사가 역시 첫 번째와 같이 답신도 없이 빈 손으로 돌아왔을 때 진성은 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다만 세 번째를 보내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처지에 함께 가는 시늉만이라도 해주면 안 되는 것인가.
그 말은 차마 소리내어 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진성은 그때까지 걸치고 있던 갑옷을 벗어 거칠게 떨구었다. 팽개치는 것으로 보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바닥에 부딪는 갑편들이 비릿하고도 둔탁한 쇳소리를 내었다. 검대를 풀어 다시 내던지려던 진성은 그자리에 빈 검집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멈칫한 손에서도 피냄새가 짙었다. 갑옷 사이로 스며든 피가 말라붙어 몸에 감긴 전포가 묵직했다.
지금 가고있는 길은, 피로 긋는 길이거니 결국은 죄의 무게로구나.
그때 병졸이 가져온 더운 물에 피묻은 손을 씻어내며 진성을 그렇게 생각했다. 굳은 피로 버석거리는 전포를 벗고 새 포의로 갈아입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 피비린내가 온 사방에 떠돌고 있었다. 그에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길지 않을 이 생의 마지막까지.
진성은 그후 하오에 있을 회의 준비를 명했고 다른 전령을 시켜 그에 시율허주의 참석을 바란다는 전언을 보냈다. 전령이 읍하고 나간 후 진성은 마침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걸음으로 침상에 다가가 몸을 던졌다.
사방이 피투성이. 온 천하가 피투성이. 그럼에도 높은 이상. 그리고, 결코 돌아보지 않아야 할 많은 것들. 그에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말아야 할것이다. 지치지도, 미혹되지도……
정오도 지나지 않은 시각인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진성은 눈을 감아버렸다. 감은 눈꺼풀 속 천지없는 암흑이 눈 뜬 현실보다는 아늑하였다. 그대로 영원히 눈 감을 일을 생각하게 하는 그 안락, 그리고 평안. 아직은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성은 부릅뜬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보려 하였다.
좀전에 보내었던 전령이 급히 돌아와 진성을 찾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진성은 즉시 일어나 몸을 추슬렀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목깃과 허리띠와 포의의 끈매듭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처음부터 단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진성은 직접 걸음을 옮겨 예정에 없었던 방문자를 맞았다.
지효는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그 앞에 섰다. 장식없이 풀어내린 새카만 머리칼에 흰 옷자락. 낮달처럼 곧 스러질 듯 창백한 얼굴에 두 눈만은 선명히 검었다. 한점의 빛도 되비쳐내지 않는 선명한 나락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처음 마주하였을 때 진성은 지효가 단지 열 여섯의 어린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눈을 바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엇나가는 시선을 항시 허공에 던져두고.
그리하여 다시, 지효는 그저 열 여섯의 어린 계집아이였다. 단지 가엾은. 세상에 흔하여 그가 손 뻗을 일 없을 그런.
진성은 그저 무연히 미소띤 얼굴을 하고서 지효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그리고 그 역시 탁상 주위에 놓인 여러개의 교상 중 하나에 앉았다. 진성이 선택한 자리는 지효에게 권한 자리와는 마주보지 않는 위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한 면이 완전히 개방된 문 밖으로 정원을 내다보았다. 물과 돌과 느리게 자라는 초목으로 이루어진 수밀의 정원이었다. 여름 끝자락의, 정오로 치달아가는 햇살이 무정하게도 쏟아지고 있었다. 침탈자의 시선 아래에서 수밀의 풍경은 빛나는 것이 오히려 처연하였고 백열하는 빛 만큼 구석지거나 패인 곳의 그림자는 더욱 짙었다.
진성은 지효의 시선 역시 자신과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효가 자신이 권한 자리를 보지도 않은 채 덩그라니 서 있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바라보지 않았고 왜 앉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고 다시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 모든 시간동안 그러한 행동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였으나 그럼에도.
곧 등 뒤로부터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들이 죄인이었소.
굳은 목소리에 억양마저 잦아들어 있었으나 진성은 그 말이 선언이 아니라 질문인 것을 알았다. 저 성문 밖에 내어걸린 목들에 대하여 묻는 말인 것 역시 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성은 여전히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지효에게 보이지 않을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간 침묵만이 스며들었다.
―나에게 부러 잔인한 취미는 없어.
침묵 끝에 내뱉은, 오래 고른 첫 마디가 그저 변명같아서 진성은 다시 한번 쓰게 웃었다.
―그러나, 하늘이 항시 그러하듯이 새 하늘에도 자비가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
정말로 그것 뿐인 것이냐고, 그때 지효는 따져 묻지 않았다. 진성은 등 뒤에서 흐르는 낮은 한숨소리를 들었다. 한숨자락에 나지막히 말소리가 묻어 흘렀다.
―시율허의 업은 단지 파천의 업이오만, 예후께서는 새 하늘을 품으시었소.
―거짓 하늘이 부서지면, 그 위에는 필시 더 높은 창천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살아서 이을 하늘이 아닐지라도.
그 말을, 진성은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사이사이에 긴 침묵을 흩어둔 채 둘은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한개의 하늘, 하나의 세상을 부수며 흘러야 할 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에 관여하는 모두가 죄인이며 동시에 그 누구의 죄도 아닌 것을. ―그러한 사실들을.
또한 필시 죽을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의 원혼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였으나 눈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죄인의 눈물이란 흘려내는 것 또한 죄가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곧 속으로 삼켜야만 한다. 그 사실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기댈 것도 기대할 것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
그 대화의 끝이 어떠하였는지 진성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었다.
바람소리가 나도록 돌아서던 싸늘한 뒷모습과 그때 엷은 호선을 그리며 살풋 떠올랐다가 내려앉던 그 길고 새까만 머리채라거나, 발걸음 소리도 없이 흔들리며 멀어지던 흰 치맛자락 같은 것.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이미 알 수 있었기에 진성은 웃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