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의 횡포가 극심해지자 어떤 사람들은 눈 덮인 산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길잡
이도 없이 사라진 그들은 필경 아르비콘의 밥이 되었을 거라고, 이웃주민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겨울의 마녀라고도 불리는 아르비콘은 바람에서 바람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얼어붙은 산간의 오
래된 요괴였습니다. 아기를 안고 얼어 죽은 한 여인의 원혼이 밤만 되면 눈보라와 함께 부활해
온 산맥을 헤집고 다니다가, 산에서 길을 잃은 불쌍한 여행자들을 발견하는 족족 꽁꽁 얼려서
산 채로 씹어 먹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해가 짧은 산간마을의 아이들은 꼭 해가 질 때까지 단단한 호수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눈밭에
발이 빠진 산짐승들을 찾아 산으로 들로 쏘아 다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어른들
은 자신의 아이를 혼내며 곧잘 이런 말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제이엘, 너 그러다 시집도 가기 전에 아르비콘이 잡아가 버린다. 이제 좀 있으면 다 큰 처녀가
언제까지 그렇게 남자애들이랑 어울려 다닐 셈이니?”

“피… 아르비콘은 아빠 같은 남자만 잡아먹는다고요. 그리고 난 아르비콘이 나타나도 싸워서 이
길 자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여기는 내 고향땅이에요.

                            ……그 병신들은 좋으나 싫으나 여기 정규군이고요.

                                       내가 떠나긴 어디로 떠날 수 있다는 거죠?

                                                               -제이엘, 바람의 추적자 아스킨의 손녀-




산에서 아르비콘을 봤다는 사람들의 제보는 옛날부터 끝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밤 벽난로 앞에 모여 길잡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거나 마녀의 속옷을 훔쳐 그것을 아내
에게 선물했다는 아빠들의 짓궂은 농담을 사실처럼 믿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아르비콘을 잡
겠노라고 결사대를 결성해 머리엔 철냄비를 쓰고 목검과 나무방패를 만들어 산으로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찾기 위해 마을을 벗어난 어른들 역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설을 사실이라고 믿는 순간, 전설은 전설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설
이 사실이 된 건지 사실이 전설을 만든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 재앙은 기분 나쁜 동화
처럼 우리를 찾아왔고 이제는 아무도 전설은 그냥 전설일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 없게 된 무렵부
터 산맥의 밤은 더 깊고 차가워졌습니다.

오빠를 잃은 어린 공주는 몸져누웠고 그녀의 병에 쓸 약을 찾기 위해 온 산의 길잡이들이 총동
원되었습니다. 왕에게 잘 보이고 싶은 영주는 주민들의 행방엔 관심도 없었지만, 길잡이들은 자
신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금기의 땅까지 헤매고 다니며 약을 찾기보단 자신의 이웃들을 보
기 원했습니다.



나는 그때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죽었고 나만 혼자 살아남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나를 인도해 준 것은 은
색 눈의 소년이었습니다. 아이작이 간헐천에서 봤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마녀가 데리고 다닌
다는 몸종이었습니다.

소년은 나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에 새까만 괴물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나는 그저 무서
워서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싸움이 끝나자, 소년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나
는 우는 것도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소년은 피에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그 자신의 것인지 흉측한 괴물들의 것인지 나는 걱정스러웠
습니다.

파랗게 빛이 나는 눈 덮인 산맥의 밤을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소년보다 먼저 지친 것은
나였습니다. 나는 눈 위에 꿇어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소년이 나에게 다가오자 나는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애들을 꼬드겼어……

소년이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아 주었을 때 그의 몸에 배인 향기로운 숲의 풀꽃냄새가 나를 아늑
하게 만들었습니다. 집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날 만큼 그 냄새가 낯설지 않아 나는 이상했습니
다.

소년은 그때 나를 안고 처음으로 무슨 말인가를 했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소년은 한손으
로 자기 가슴팍을 누른 채 그냥 희미하게 웃기만 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소년이 가슴에 큰 상처
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다가가려 하자, 소년은 그대로 등을 돌려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
에 남은 것이라곤 발자국과, 눈 위에 스며든 핏자국뿐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메마르고 낯선 황무지에…






그녀는 새벽이 거의 다 되서야 돌아왔다.

하얗게 얼어붙은 숲들의 머리 위로 일각수는 밤을 불사지르는 순백의 나래를 펴고 차가운 허공
을 활강하여 코볼트들의 땅에 내려섰다. 내려서는 순간 거친 돌풍으로 화한 일각수의 거대한 몸
집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남은 백색의 지팡이를 낚아 챈 그녀는 다소 지친 듯한 모습으로
야영지를 향해 걸어갔다.

사박사박- 그녀가 눈밭 위에 남긴 작은 발자국들 속에서 새싹이 피고 줄기가 돋아나더니 아지랑
이처럼 순식간에 자라나 꽃망울을 틔웠다. 그러나 상상을 불허하는 추운 날씨 속에 꽃들은 피어
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땡땡 얼어붙어 무거워진 얼굴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별이 쏟아지
는 밤하늘에 충만한 보름달이 뎅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후드 밑으로 숙인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은 채 어두운 숲속을 걸어갔다. 그녀의 손에 쥐
어진 지팡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주인의 표정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달빛처럼 하얀 얼굴이었지만 봄 햇살 같은 따뜻함이 언제나 배어있던 그곳에 지금은 심려와 수
심만이 가득했다. 낯선 모습이었고 그것이 일각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성하, 허락하신다면 이번엔 제가 혼자 산을 뒤져 그 녀석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걸었다.

‘……많이 힘드셨나보군요. 제 불찰입니다. 처음부터 성하를 티파에 모셔두고 제가 직접 나섰어
야…’

“그만 둬, 마루. 그러다 도중에 일출이 시작되기라도 하면 넌 그대로 사라지고 말아.”

‘그 전에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물론 성하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그 녀석과 함께요. 저 혼자라
면 비행도 훨씬 빠르니…’

“잠깐, 마루. 내가 걔를 보고 싶어 한다니 그건 무슨 뜻이야?”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곤 지팡이의 뿔 달린 두상을 자기 코앞까지 들어올렸다. 주인의 엄
한 눈초리가 자신을 향하자 일각수는 일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 ……무슨 뜻이라니요. 전 그저…’

“마루. 이걸 알아 둬. 내가 보고 싶은 존재는 어머니 숲과 내 사랑스런 자매들뿐이야. 그녀들은
나와 함께 영원을 살아왔지.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하지만 인간은 안 그래. 고작해야 1
00년도 못 사는 존재들에게 정을 붙이는 건 정말정말 철이 없는 애들이나 저지르는 실수야. ……
너 설마 내가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는 거니?”

‘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성하께서 그 녀석을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지팡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흠-하고, 체념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오
른손에 지팡이를 쥔 채 두 손을 허리 뒤에 갖다 붙였다. 덕분에 일각수는 이제 그녀의 왼쪽 어
깨 위에서 주인을 내려다보게 됐다.

아이를 업고 가듯이, 그녀는 다시 눈 위를 걸으며 발자국마다 풀과 꽃을 만들어냈다. 야영지까
지의 거리는 아직 한참 남았다.

“마루야, 너 겨울의 마녀에 대해 들어봤어?”

그녀가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지팡이가 곧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눈보라 속에 아기를 안고 얼어 죽었다는 여행자 말
입니까? 물론입니다. 몇 십 년 전에 그 얘기를 들으실 때도 저는 성하와 함께 있었잖습니까. 그
때 그 셰르파의 이름이…… 음……’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야박할까?”

지팡이의 눈이 다시 주인을 향했다. 그녀는 딴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혼자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봐왔는데도, 나는 잘 모르겠어. 인간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종족이야.”

지팡이는 입을 다물었다. 주인의 옆모습이 우울해보였다. 그 우울함이 지팡이에겐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지어내기 좋아하는 종족들이 만들어낸 그냥 전설일 뿐입니다. 그 녀석은…… 틀림
없이 안전할 겁니다.’

그녀는 말없이 걸었다.

사박사박-

앙상한 나무들 사이를 조심해서 걸어가는 그녀의 등 뒤로 기다란 꽃밭이 생겨났다. 그것을 내려
다보다가, 일각수가 말했다.

‘녀석이 저걸 보고 성하를 찾아올까요?’

“……다행이다.”

‘……예?’

“……요즘이 절기상으론 여름인 거 맞지?”

‘………’

그녀는 계속 자기 발끝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일각수는 후드가 가리고 있는 주인의 얼굴
을 말없이 바라봤다.

“다행이야…… 눈보라가 올 것 같진 않으니까……”

사박사박-

눈 속에 핀 꽃들의 얼굴이 싸늘한 바람에 스쳤다. 그 위로, 메마른 숲이 간구하듯 손을 뻗은 광
활한 하늘에 별들의 운하가 어딘가로 흐르고 있었다.



                                                                                        
                                                 Wind Tale (바람 동화)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