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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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
어쩌면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등이 곧게 펴져 뒤척인 흔적도 없이 그녀는 까끌까끌한 담요 속에 깊숙이 파묻혀있었고, 정밀한 고요와 아늑한 불빛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견딜 수 없이 추워서 그녀는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파랗게 변한 입술 안에서 턱이 덜덜 떨렸고, 몸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했지만, 생각나는 것은 그 애의 얼굴 뿐.
인간은 당신 애완동물 따위한테나 먹이는 사료같은 게 아니야! 라고, 처음에 대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반항하는 모습을, 왜 귀엽다고 느낀 건지…
사람을 밀쳐버리는 듯한 은빛 눈동자가…
‘…이름이란 건……그렇게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는 물건 같은 게 아니에요. 숲처녀들은 인간과 생각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후… 그럼 이렇게 하죠. 사막의 세 도시를 지나는 동안 남매처럼 행동한 적이 있으니까 당신을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그러면 되겠죠? ………누나.’
언제나 날 가르치려고 들었지. 정말 어처구니없는 녀석… 후후…
‘………내 일행들에게 무슨 용무요?’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흐릿한 몽환에 잠겨있었다. 천장을 더듬고 있는 주홍색 불빛이 어둠과 뒤섞여 두근두근 맥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봐왔지. 영생을 갖지 못한 세 종족 중에서도 인간은 너무 빨리 변해. 마음에 들어서 얼굴을 익혀두면 다음 번 만남 때는 그의 무덤 앞에 서있어야 했다. 늙고 병들고 추악한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있거나 겉은 멀쩡해도 속사람이 변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그들의 시간은 그녀에게 섬광과도 같았다.
왜였을까………
그런 게 두려워서 다른 종족들한테는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 자매들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는데, 너만은…
너만은, 변한 네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른이 된 네 얼굴을. 다 자란 그 모습을.
세월에 다져져있을 네 형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상했었는데…
………
키가…… 나보다 컸더군.
하지만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녀석.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당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까지 들려줄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따지고 드는 거죠? ……이 얘긴 이제 안 했으면 좋겠네요.’
아니, 넌 분명히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하빈 크라이시스.
잠에서 깨어나던 저녁에… 우리가 함께 한해를 보낸 들벗의 티파에서… 거기에 처음 들어갔던 날… 네가 깨어나기만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우리는 그런 말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무한테도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정말 뭐가 묻었으니까 묻었다고 한 거요. 확인도 해보지 않고 괜한 사람 잡지 마시오.’
‘…글쎄, 먼저 거짓말을 한 쪽은 누구였을까. 검술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을 번번이 깨버린 사람은 누구였지?’
아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 능청스러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
입술에 와 닿던 그 뜨거운 감촉…
남자의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불투명해서,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사실과 망상의 갈피 사이를 남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비로소, 그의 숨결이 자신의 콧잔등에 훅 끼쳐왔을 때 그녀는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골수까지 꽝꽝 얼어붙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의 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덜 마른 머리를 부드럽게 부여잡았다. 그의 은색 눈이 자기 속눈썹에 닿으려고 할 때 그녀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두 개의 이마가 맞닿았다.
눈을 감은 채, 여자는 신음하며 떨고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 바라봤다.
다른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이 이렇게 바로 지척에 붙어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숨을 쉬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입술에 내려앉고 있는 그의 호흡은 편안했고 거침없었으며, 덥고 청렬한 냄새가 났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다시 살며시 눈을 떴다. 남자가 상의를 탈의한 상태라는 것을 그녀는 그제야 알아챘다. 가슴에 내려온 청록색 목걸이가 불빛에 번들거렸다. 그는 어두운 천장을 등진 채 그녀를 자기 다리 사이에 두고 꿇어앉아 있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비키더니, 그녀의 다리 쪽으로 손을 가져가 담요를 걷어붙였다. 그녀는 벗고 있었다. 놀라서 움찔대며, 웅크리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남자는 무릎걸음으로 이동해 그녀의 밑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가지런히 모아진 양발이 탄탄한 가슴팍에 올려졌다. 남자는 그녀의 두 발을 들어 올려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 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벗은 가슴은 난로같이 뜨거웠다.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머릿속을 깨우는 기분이었다.
다리가 들려지자, 젖은 속옷 한줌만으로 가려진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의 싸늘함이 그녀의 수치심을 일깨웠다. 하지만 그녀는 반항할 수 없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붉어진 얼굴을 그에게 숨기는 정도였다. 담요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더 꼭 끌어안았다.
남자는 그러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발을 덥힌 후에, 그의 손이 여자의 발뒤꿈치와 종아리를 사르르 타고 올라왔다. 다시, 그녀가 움찔했지만 남자는 놔주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발을 땅에 내려놓고 그녀의 무릎을 세우더니 거기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손으론 은어처럼 매끄러운 종아리를 쓸어내렸다. 몸이 식어서 그랬는지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화끈거리고 있었다. 그의 숨이 둥근 무릎을 내려가 윤기 나는 장딴지를 지나 발목까지 도달했다. 그의 손이 딱 한번 종아리 위로 올라와 허벅지 안쪽의 접힌 속살을 건드렸을 때, 그녀는 흑… 숨을 삼키며 작은 입을 앙다물었다.
그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담요로 덮어주고 그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등을 붙이고 누운 주제에, 자기 얼굴을 바닥에 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남자의 손이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핏대가 선 붉은 목선을 매만져 풀어주고, 젖고 헝클어진 황금색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그런 후에, 가을 낙엽 같이 날렵하고 앙증맞게 생긴 그 귀를 한손으로 애무하듯이 조물락거렸다.
그녀는 감은 눈을 바르르 떨었다. 이걸 감히 누가 만진다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럽고,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왜 그 갈피사이로 목마른 갈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신들의 새 시대가 시작되기 전의 첫해에 첫 번째 조물로 탄생해, 그로부터 쭉 달의 선민들을 이끌며 살아온 그녀는 성(性)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성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두 번째 달의 영면 이후, 제사장 족속의 혈통은 창조신이 거대수의 모태 내에 심어놓은 수정란의 발아와 분열을 통해서만 이어졌고, 성이 결정되는 염색체는 오직 하나였다. 자신도 그 나무에서 태어났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오래 전 일이고, 자신은 첫 번째 딸이니까. 그보다 더 오래 산 딸들은 용들처럼 아예 성별자체가 없었다. 시간에 퇴화되어, 그녀들은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어갔다.
다른 종족의 여자들처럼 달거리도 치르고 남자와 맺어지면 임신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신이 그의 사자들에게 여성성을 선사한 이유는 오직 하나. 나무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남자와 달리, 여성의 몸은 달이 차고 기움과 같이 주기적인 변화가 체내에 일어난다. 그 변화가, 식물에서 태어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가져야하는 반향인자의 활성화 가능성을 대폭 감소시켜 준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신들은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천사들은 날개를 잃은 대신 신체적으로 인간의 여성에 한없이 가까워졌다. 인간과 그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이래야 봤자, 그들이 옛날에 하늘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비행형의 두 귀와, 신의 걸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만물을 현혹시킬 만한 화려한 용모를 갖추게 한 것 그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성은 생존을 위해 신체에 각인된 거추장스런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단지 식물화 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것 뿐.
애초에 번식을 통해 종의 명맥을 유지시켜나갈 필요도 없었고, 다른 성별이 존재하지 않으니 성애를 누리려면 타락은 필연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을 단죄해왔던가. 나이만 먹었지 철이 없는 자매들은 심지어 숲의 짐승이나 환수들에게 자기 몸을 내주기도 했다.
신대시절부터 받들어온 계시에 따라 신관종족으로서 영적순결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나 다른 종족과의 접촉도 엄하게 다스렸다.
숲에서 그녀가 하는 일들이란 주로 그런 것이었다.
하늘섬의 추락과 신들의 몰락 이후, 인간들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신은 직접적으로 세상에 개입하는 일을 멈추고 있었다. 그의 사자들은 어머니나무를 모신 달숲에 모여 두 번째 달의 부활을 기다리며 다시 신의 뜻에 따라 하늘을 날아오를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가장 오래 산 사도로서 겨레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성지를 지키는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오래도록 수행해왔다. 거기엔 겨레의 보금자리인 달숲 뿐만 아니라 세계에 숨겨진 일곱 개의 신전 모두가 해당된다.
그 긴 수호의 역사에 불순물은 없었다. 간혹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강적이 나타나긴 해도, 그녀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겨레가 아닌 자들은 쉽게 적과 아군으로 구분되곤 했으니까. 친구라 부를 수 있을만한 자들은 남자라도 자신에게 항상 정중함을 잊지 않는 자들이었다. 창조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과 특질에 대한 종족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간혹 그들의 눈 속에서 발가벗겨지는 자신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들의 진심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번식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그 욕망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영겁을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그는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런 후에, 밑에 깔린 그녀를 감싸고 있던 담요를 풀어헤쳤다. 담요를 배꼽 밑으로 벗겨내자 자기 젖무덤을 꼭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이미 육신에 침범해있던 한기에 찬 공기가 닿자 뼈가 저리는 오한이 그녀를 엄습해왔다. 괴로운 듯이 조금 몸을 뒤트는 그녀를, 그의 두 손이 잡아 눌렀다. 어깨의 맨살을 움켜쥔 그의 손은 뜨거워서 그녀에게 불덩이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그녀의 두 팔을 쓰다듬고 주물러주었다. 그녀의 속살은 꽃잎처럼 투명했다. 만져보면, 그녀의 살결은 차갑고 보드라워서 물고기처럼 매끈거렸다. 그는 그녀의 위로 머리를 숙여 어깨에서 쇄골까지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의 호흡이 닿을 때마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목걸이를 등 뒤로 넘긴 남자의 손이 마침내 그녀의 두 팔목을 붙잡았다.
여자는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을 끌어안은 두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추위 때문인지, 자기 어깨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고 한동안 가만있었다. 옆에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고요 속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고뇌하는 표정의 그는 가능한 밑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남자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여자는 고개를 반대로 돌리며 으흑… 애원하는 듯한 흐느낌을 내었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 완력의 차이는 그녀의 마지막 빗장을 쉽게 허물어뜨렸다. 가느다란 팔이 치워지자 그 아래 감춰진 여자의 상징이 봉긋 솟아올랐다. 그녀의 가슴은 예뻐서 모양도 빛깔도 복숭아 같았다.
남자는 주먹을 쥐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펴서 자기 입에 넣고 빨았다. 그녀는 불에 데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얼어있던 손끝이 녹기 시작하면서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뒤에, 그는 여자의 팔목과 팔 안쪽에도 입김을 불었다.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바닥에 붙이며 여자의 흰 몸 위로 엎드렸다. 두 개의 유두 끝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을 찔렀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문질렀다. 여자는 그의 품 아래서 무력하게 짓눌려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들러붙어 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의 체온으로 몸이 덥혀지면서 여자는 점점 자기로부터 아득해져갔다. 살과 살이 비벼지는 곳마다 현기증 같은 미열이 피어났다. 아지랑이처럼 파고들어 몸의 중심을 열어놓으려 하는 이 생소한 감각이 그녀는 두려웠다. 두려우면서도 따뜻했고, 거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손목을 놔주고 그만 일어나려는 그를, 그녀는 그 두려움으로 껴안았다. 크고 작은 근육으로 둘러쳐진 그의 목 주변을, 오열을 터뜨리듯이 끌어안고 그를 자신에게 더욱 밀착시켰다.
남자는 당황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핥듯 그녀는 그의 귀와 볼에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남자는 등근육을 긴장시키며 약간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를 밀어붙이며 여자는 돌아누웠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응해주었다. 그를 덮어 누를 때 담요가 벗겨져서 다시 여자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연두색 속옷은 끈에다 달아놓은 나뭇잎처럼 아슬아슬하게, 은밀한 부분들만을 가리고 있었다. 물에 젖은 얇은 막 한 장이 하얀 엉덩이 사이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입을 꾹 다물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아직 눈도 못 뜬 상태였다.
그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이 모닥불보다 더 뜨겁게 주변의 공기를 달궈놓았다. 여자는 갈급하게 그에게 매달렸다. 남자는 그녀를 달래주듯이 그녀의 차가운 어깨를 매만지다가 등 쪽으로 손이 넘어갔다.
여자의 머리칼을 헤집던 그의 손이, 아름다운 선을 이룬 등골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손이 가는 허리를 지나 둔덕을 넘어, 젖은 팬티 속으로 손끝이 밀려들어갈 때, 여자는 다시 흐흑… 울음을 참으며 그의 목을 부서뜨릴 듯이 끌어안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호흡도 멈춘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짓눌린 젖무덤 사이로 쿵, 쿵, 서로의 맥박만을 느끼고 있었다. 어둠을 헤집는 불꽃이 흥분해서 탁탁 터지는 소리를 내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자가 걸친 얇은 속옷 한 장이었다. 밀려들어온 우주의 시간이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 틈새에 덧쌓였다. 그 비좁은 틈새에 걸린 조그마한 시간이, 여자는 그녀가 살아온 지난 일만 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자의 옆얼굴과 살을 맞대고 있는 자신의 귀청 너머로 깨드득-하고 혀 깨무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가졌다.
남자가 막힌 숨을 토해내면서, 물꼬가 터진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팬티 속으로 침범한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희고 고운 피부를 잡아 뜯을 것처럼 그녀의 허리 위에서 서서히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여자를 안아 들어 그녀를 조심스럽게 모포에 눕혔다. 여자는 그를 놔주고 다시 자기 가슴을 안으며 모로 돌아누웠다. 남자는 그 위에 담요를 덮어줬다.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잡아당겨준 그 손을 여자가 덥석 잡더니 놔주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다가 그녀의 뒤에 누웠다. 그녀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등에 와 닿는 탄탄하고 따뜻한 감촉과 함께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꿈결 속에 그녀는 몇 해 전, 자연인들의 티파에서 매일 들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좀처럼 웃지 않던 그 소년은 아주 환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걸로 내가 그때 진 빚은 갚은 셈이에요………
………이상한 누나.
라크로니시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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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씬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화도 필요해서 넣은 장면입니다;
>>어쨌든 단은 죽일 넘;;
#몽환
어쩌면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등이 곧게 펴져 뒤척인 흔적도 없이 그녀는 까끌까끌한 담요 속에 깊숙이 파묻혀있었고, 정밀한 고요와 아늑한 불빛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견딜 수 없이 추워서 그녀는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파랗게 변한 입술 안에서 턱이 덜덜 떨렸고, 몸은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했지만, 생각나는 것은 그 애의 얼굴 뿐.
인간은 당신 애완동물 따위한테나 먹이는 사료같은 게 아니야! 라고, 처음에 대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반항하는 모습을, 왜 귀엽다고 느낀 건지…
사람을 밀쳐버리는 듯한 은빛 눈동자가…
‘…이름이란 건……그렇게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는 물건 같은 게 아니에요. 숲처녀들은 인간과 생각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후… 그럼 이렇게 하죠. 사막의 세 도시를 지나는 동안 남매처럼 행동한 적이 있으니까 당신을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를게요. 그러면 되겠죠? ………누나.’
언제나 날 가르치려고 들었지. 정말 어처구니없는 녀석… 후후…
‘………내 일행들에게 무슨 용무요?’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흐릿한 몽환에 잠겨있었다. 천장을 더듬고 있는 주홍색 불빛이 어둠과 뒤섞여 두근두근 맥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봐왔지. 영생을 갖지 못한 세 종족 중에서도 인간은 너무 빨리 변해. 마음에 들어서 얼굴을 익혀두면 다음 번 만남 때는 그의 무덤 앞에 서있어야 했다. 늙고 병들고 추악한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있거나 겉은 멀쩡해도 속사람이 변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그들의 시간은 그녀에게 섬광과도 같았다.
왜였을까………
그런 게 두려워서 다른 종족들한테는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 자매들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는데, 너만은…
너만은, 변한 네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른이 된 네 얼굴을. 다 자란 그 모습을.
세월에 다져져있을 네 형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상상했었는데…
………
키가…… 나보다 컸더군.
하지만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녀석.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당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까지 들려줄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따지고 드는 거죠? ……이 얘긴 이제 안 했으면 좋겠네요.’
아니, 넌 분명히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하빈 크라이시스.
잠에서 깨어나던 저녁에… 우리가 함께 한해를 보낸 들벗의 티파에서… 거기에 처음 들어갔던 날… 네가 깨어나기만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우리는 그런 말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무한테도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정말 뭐가 묻었으니까 묻었다고 한 거요. 확인도 해보지 않고 괜한 사람 잡지 마시오.’
‘…글쎄, 먼저 거짓말을 한 쪽은 누구였을까. 검술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을 번번이 깨버린 사람은 누구였지?’
아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 능청스러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
입술에 와 닿던 그 뜨거운 감촉…
남자의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불투명해서,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사실과 망상의 갈피 사이를 남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비로소, 그의 숨결이 자신의 콧잔등에 훅 끼쳐왔을 때 그녀는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골수까지 꽝꽝 얼어붙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의 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덜 마른 머리를 부드럽게 부여잡았다. 그의 은색 눈이 자기 속눈썹에 닿으려고 할 때 그녀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두 개의 이마가 맞닿았다.
눈을 감은 채, 여자는 신음하며 떨고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 바라봤다.
다른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이 이렇게 바로 지척에 붙어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숨을 쉬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입술에 내려앉고 있는 그의 호흡은 편안했고 거침없었으며, 덥고 청렬한 냄새가 났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다시 살며시 눈을 떴다. 남자가 상의를 탈의한 상태라는 것을 그녀는 그제야 알아챘다. 가슴에 내려온 청록색 목걸이가 불빛에 번들거렸다. 그는 어두운 천장을 등진 채 그녀를 자기 다리 사이에 두고 꿇어앉아 있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비키더니, 그녀의 다리 쪽으로 손을 가져가 담요를 걷어붙였다. 그녀는 벗고 있었다. 놀라서 움찔대며, 웅크리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남자는 무릎걸음으로 이동해 그녀의 밑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가지런히 모아진 양발이 탄탄한 가슴팍에 올려졌다. 남자는 그녀의 두 발을 들어 올려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 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벗은 가슴은 난로같이 뜨거웠다.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머릿속을 깨우는 기분이었다.
다리가 들려지자, 젖은 속옷 한줌만으로 가려진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의 싸늘함이 그녀의 수치심을 일깨웠다. 하지만 그녀는 반항할 수 없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붉어진 얼굴을 그에게 숨기는 정도였다. 담요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더 꼭 끌어안았다.
남자는 그러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발을 덥힌 후에, 그의 손이 여자의 발뒤꿈치와 종아리를 사르르 타고 올라왔다. 다시, 그녀가 움찔했지만 남자는 놔주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발을 땅에 내려놓고 그녀의 무릎을 세우더니 거기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손으론 은어처럼 매끄러운 종아리를 쓸어내렸다. 몸이 식어서 그랬는지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화끈거리고 있었다. 그의 숨이 둥근 무릎을 내려가 윤기 나는 장딴지를 지나 발목까지 도달했다. 그의 손이 딱 한번 종아리 위로 올라와 허벅지 안쪽의 접힌 속살을 건드렸을 때, 그녀는 흑… 숨을 삼키며 작은 입을 앙다물었다.
그는 여자의 아랫도리를 담요로 덮어주고 그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등을 붙이고 누운 주제에, 자기 얼굴을 바닥에 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남자의 손이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핏대가 선 붉은 목선을 매만져 풀어주고, 젖고 헝클어진 황금색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그런 후에, 가을 낙엽 같이 날렵하고 앙증맞게 생긴 그 귀를 한손으로 애무하듯이 조물락거렸다.
그녀는 감은 눈을 바르르 떨었다. 이걸 감히 누가 만진다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럽고,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왜 그 갈피사이로 목마른 갈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신들의 새 시대가 시작되기 전의 첫해에 첫 번째 조물로 탄생해, 그로부터 쭉 달의 선민들을 이끌며 살아온 그녀는 성(性)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성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두 번째 달의 영면 이후, 제사장 족속의 혈통은 창조신이 거대수의 모태 내에 심어놓은 수정란의 발아와 분열을 통해서만 이어졌고, 성이 결정되는 염색체는 오직 하나였다. 자신도 그 나무에서 태어났는지 어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오래 전 일이고, 자신은 첫 번째 딸이니까. 그보다 더 오래 산 딸들은 용들처럼 아예 성별자체가 없었다. 시간에 퇴화되어, 그녀들은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어갔다.
다른 종족의 여자들처럼 달거리도 치르고 남자와 맺어지면 임신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신이 그의 사자들에게 여성성을 선사한 이유는 오직 하나. 나무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남자와 달리, 여성의 몸은 달이 차고 기움과 같이 주기적인 변화가 체내에 일어난다. 그 변화가, 식물에서 태어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가져야하는 반향인자의 활성화 가능성을 대폭 감소시켜 준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신들은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천사들은 날개를 잃은 대신 신체적으로 인간의 여성에 한없이 가까워졌다. 인간과 그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이래야 봤자, 그들이 옛날에 하늘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비행형의 두 귀와, 신의 걸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만물을 현혹시킬 만한 화려한 용모를 갖추게 한 것 그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성은 생존을 위해 신체에 각인된 거추장스런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단지 식물화 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것 뿐.
애초에 번식을 통해 종의 명맥을 유지시켜나갈 필요도 없었고, 다른 성별이 존재하지 않으니 성애를 누리려면 타락은 필연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을 단죄해왔던가. 나이만 먹었지 철이 없는 자매들은 심지어 숲의 짐승이나 환수들에게 자기 몸을 내주기도 했다.
신대시절부터 받들어온 계시에 따라 신관종족으로서 영적순결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나 다른 종족과의 접촉도 엄하게 다스렸다.
숲에서 그녀가 하는 일들이란 주로 그런 것이었다.
하늘섬의 추락과 신들의 몰락 이후, 인간들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신은 직접적으로 세상에 개입하는 일을 멈추고 있었다. 그의 사자들은 어머니나무를 모신 달숲에 모여 두 번째 달의 부활을 기다리며 다시 신의 뜻에 따라 하늘을 날아오를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가장 오래 산 사도로서 겨레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성지를 지키는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오래도록 수행해왔다. 거기엔 겨레의 보금자리인 달숲 뿐만 아니라 세계에 숨겨진 일곱 개의 신전 모두가 해당된다.
그 긴 수호의 역사에 불순물은 없었다. 간혹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강적이 나타나긴 해도, 그녀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겨레가 아닌 자들은 쉽게 적과 아군으로 구분되곤 했으니까. 친구라 부를 수 있을만한 자들은 남자라도 자신에게 항상 정중함을 잊지 않는 자들이었다. 창조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과 특질에 대한 종족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간혹 그들의 눈 속에서 발가벗겨지는 자신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들의 진심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번식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그 욕망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영겁을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그는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런 후에, 밑에 깔린 그녀를 감싸고 있던 담요를 풀어헤쳤다. 담요를 배꼽 밑으로 벗겨내자 자기 젖무덤을 꼭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이미 육신에 침범해있던 한기에 찬 공기가 닿자 뼈가 저리는 오한이 그녀를 엄습해왔다. 괴로운 듯이 조금 몸을 뒤트는 그녀를, 그의 두 손이 잡아 눌렀다. 어깨의 맨살을 움켜쥔 그의 손은 뜨거워서 그녀에게 불덩이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그녀의 두 팔을 쓰다듬고 주물러주었다. 그녀의 속살은 꽃잎처럼 투명했다. 만져보면, 그녀의 살결은 차갑고 보드라워서 물고기처럼 매끈거렸다. 그는 그녀의 위로 머리를 숙여 어깨에서 쇄골까지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의 호흡이 닿을 때마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목걸이를 등 뒤로 넘긴 남자의 손이 마침내 그녀의 두 팔목을 붙잡았다.
여자는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을 끌어안은 두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추위 때문인지, 자기 어깨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고 한동안 가만있었다. 옆에선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고요 속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고뇌하는 표정의 그는 가능한 밑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남자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여자는 고개를 반대로 돌리며 으흑… 애원하는 듯한 흐느낌을 내었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 완력의 차이는 그녀의 마지막 빗장을 쉽게 허물어뜨렸다. 가느다란 팔이 치워지자 그 아래 감춰진 여자의 상징이 봉긋 솟아올랐다. 그녀의 가슴은 예뻐서 모양도 빛깔도 복숭아 같았다.
남자는 주먹을 쥐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펴서 자기 입에 넣고 빨았다. 그녀는 불에 데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얼어있던 손끝이 녹기 시작하면서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뒤에, 그는 여자의 팔목과 팔 안쪽에도 입김을 불었다.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바닥에 붙이며 여자의 흰 몸 위로 엎드렸다. 두 개의 유두 끝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을 찔렀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문질렀다. 여자는 그의 품 아래서 무력하게 짓눌려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들러붙어 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의 체온으로 몸이 덥혀지면서 여자는 점점 자기로부터 아득해져갔다. 살과 살이 비벼지는 곳마다 현기증 같은 미열이 피어났다. 아지랑이처럼 파고들어 몸의 중심을 열어놓으려 하는 이 생소한 감각이 그녀는 두려웠다. 두려우면서도 따뜻했고, 거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손목을 놔주고 그만 일어나려는 그를, 그녀는 그 두려움으로 껴안았다. 크고 작은 근육으로 둘러쳐진 그의 목 주변을, 오열을 터뜨리듯이 끌어안고 그를 자신에게 더욱 밀착시켰다.
남자는 당황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핥듯 그녀는 그의 귀와 볼에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남자는 등근육을 긴장시키며 약간 움츠러들었다. 그런 그를 밀어붙이며 여자는 돌아누웠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응해주었다. 그를 덮어 누를 때 담요가 벗겨져서 다시 여자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연두색 속옷은 끈에다 달아놓은 나뭇잎처럼 아슬아슬하게, 은밀한 부분들만을 가리고 있었다. 물에 젖은 얇은 막 한 장이 하얀 엉덩이 사이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입을 꾹 다물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아직 눈도 못 뜬 상태였다.
그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이 모닥불보다 더 뜨겁게 주변의 공기를 달궈놓았다. 여자는 갈급하게 그에게 매달렸다. 남자는 그녀를 달래주듯이 그녀의 차가운 어깨를 매만지다가 등 쪽으로 손이 넘어갔다.
여자의 머리칼을 헤집던 그의 손이, 아름다운 선을 이룬 등골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손이 가는 허리를 지나 둔덕을 넘어, 젖은 팬티 속으로 손끝이 밀려들어갈 때, 여자는 다시 흐흑… 울음을 참으며 그의 목을 부서뜨릴 듯이 끌어안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간은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호흡도 멈춘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짓눌린 젖무덤 사이로 쿵, 쿵, 서로의 맥박만을 느끼고 있었다. 어둠을 헤집는 불꽃이 흥분해서 탁탁 터지는 소리를 내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자가 걸친 얇은 속옷 한 장이었다. 밀려들어온 우주의 시간이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 틈새에 덧쌓였다. 그 비좁은 틈새에 걸린 조그마한 시간이, 여자는 그녀가 살아온 지난 일만 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자의 옆얼굴과 살을 맞대고 있는 자신의 귀청 너머로 깨드득-하고 혀 깨무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가졌다.
남자가 막힌 숨을 토해내면서, 물꼬가 터진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팬티 속으로 침범한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희고 고운 피부를 잡아 뜯을 것처럼 그녀의 허리 위에서 서서히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여자를 안아 들어 그녀를 조심스럽게 모포에 눕혔다. 여자는 그를 놔주고 다시 자기 가슴을 안으며 모로 돌아누웠다. 남자는 그 위에 담요를 덮어줬다.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잡아당겨준 그 손을 여자가 덥석 잡더니 놔주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다가 그녀의 뒤에 누웠다. 그녀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등에 와 닿는 탄탄하고 따뜻한 감촉과 함께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꿈결 속에 그녀는 몇 해 전, 자연인들의 티파에서 매일 들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좀처럼 웃지 않던 그 소년은 아주 환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걸로 내가 그때 진 빚은 갚은 셈이에요………
………이상한 누나.
라크로니시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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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씬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화도 필요해서 넣은 장면입니다;
>>어쨌든 단은 죽일 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