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환상회랑 작품
글 수 59
대회엔 조루작을 냈는데 완성시켜 보았습니다..
대회글을 읽으신 분은 여기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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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가빠왔다. 아까 무리를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달린 탓이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놈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끝장난다. 놈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기 전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이미 눈치 챈 건 아닐까. 제발 놈이 잠들었기를. 놈이 다른 데 신경 쓰느라 정신없기를, 그 짧은 순간에 빌고 또 빌었다. 아직까지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일행이 걱정되었다. 슬쩍 뒤돌아보니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처음 뛰기 시작할 때보다 벌어져 있었다. 그들은 나만큼 절박하지 않다. 영문도 모르고 뛰기 시작했지만 별 이상이 없자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이제는 거의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이대로 그들은 놔두고 갈 순 없었다. 또 다시 그때처럼 다른 이들을 희생삼아 나 혼자 살아날 순 없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손은 그냥 가라고 말했다. 잠시 주저하느라 멈춰 있는 사이 그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가지 않는 걸 보고 천천히 가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틀림없다. 나는 팔을 들어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숨이 가빠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빨리 뛰어 와! 꾸물대지 말고.”
그들은 못 들었는지 느릿느릿 걸었다. 답답했지만 꾹 참고 더 크게 외쳤다.
“여긴 괴물의 서식처야. 빨리!”
몇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소리치는 중에도 놈이 어느 어디에선가 내 목소리를 듣고 튀어나오진 않을까 두려웠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들 때문에 애간장이 탔다. 잠시 후 다시 그들이 뛰기 시작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달려 나갔다. 일일이 모든 사실을 설명할 틈이 없었다. 그들도 대충은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게다. 이만하면 나로선 최선을 다했다.
뛰었다. 또 뛰었다. 계속해서 뛰었다. 몸이 부서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뛰었다. 놈을 떠올리기만 해도 손발이 덜덜 거리는데 놈을 실제로 보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명도 기척도 없다. 단지 가쁜 숨소리와 풀줄기들이 몸을 스쳐가는 소리만 귀에 들어온다. 놈은 우리가 여깄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그 사이 죽어버린 건 아닐까. 작게나마 희망을 가져본다. 그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불현듯 일행이 생각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달려와 버렸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 이미 놈에게 당한 건 아닐까. 연속해서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무리를 했던 몸이 반응했다. 사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욕지기가 올라오기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조금 몸이 회복됐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난 기다렸다. 어설프게 찾으러 나섰다간 길을 잃을 게 뻔했다. 몸을 움직일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이상 기다리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그들은 다른 경로로 갔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더 있으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지만 난 길을 재촉했다. 어쩌면 일행을 만나기 어렵단 핑계를 대고 호수를 빠져나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놈이 두려웠다.
쉬어서 그나마 체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기에 다시 뛸 엄두를 못 냈다. 그저 빠르게 걸을 뿐이었다. 어느새 사방이 거뭇거뭇해져 갔다. 밤에 피곤을 안고 홀로 걷는 건 위험했다. 허나 야영을 하는 건 배는 위태로웠다. 로셰아 호수엔 무수한 괴물이 있다. 여기까지 어떤 괴물과도 마주치지 않고 온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호수에서 빠져나가야했다. 그것만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몸이 무거워졌다. 바닥에 눕고 싶을 때면 놈을 생각했다. 두려움은 피곤마저 잊게 했다. 해 뜰 무렵이 되서야 호수를 빠져나왔다. 그 사이 나는 어떤 괴물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무사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이 이상 생각하기 싫었다. 호수는 남서쪽으로 쭉 흘러 구도자의 강과 합류한다. 강은 걸어서 이틀 정도 걸리는 데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강이 나눠지는 곳 부근에 도시가 하나 있다. 도시 부슈렝은 신성 대산맥에서 채집하는 광물을 모아서 남부 지방으로 운송한다. 내가 가려고 했던 데가 바로 부슈렝이었다.
부슈렝까지 가는 덴 삼 일이 걸렸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몸에 부담되지 않게 걸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조직의 거점을 찾았다. 나 외엔 도착한 사람이 없었다. 조직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여서.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줄 알았다면 조직의 규칙 따위엔 얽매이지 말고 밤새 술이라도 마실 걸.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교국으로 돌아갈 순 없었기에 일을 찾았다. 갖고 온 돈은 몇 푼 안 됐고 조직은 날 먹여 살릴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난 남부지방 언어를 자연스레 구사했기에 쉽사리 일자리를 구했다. 썩 좋지 않은 일이었다. 식사와 잠자리가 제공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새 일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날 찾아왔다. 마르였다. 난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길 바랐나 봐?”
마르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응수했다. 반가운 맘에 그를 살짝 껴안았다.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근데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을 줄이야. 번듯한 일자리까지 얻고서.”
겸연쩍어 말을 다른 데로 돌렸다.
“어떻게 된 거야?”
“뭐긴 뭐야.”
마르는 그 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내가 사라진 뒤 그들은 길을 잃었다. 호숫가를 헤매던 그들은 외곽의 경계판을 따라 가기로 결정했다. 호수를 똑바로 가로지른 나와 달리 그들은 외곽으로 돌아왔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이상한 일은 없었어?”
“조용하기만 하던데. 로셰아 호수의 명성도 다 허명이었나 봐.”
그들이 무사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찜찜했다. 그 많던 괴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난 일행이 잡아먹힌 덕에 안전하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같이 돌아갈 거지?”
“응?”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르가 말을 걸어왔다.
“이건 임시로 하고 있는 일 맞지?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잖아.”
“어, 그래.”
맞는 얘기다. 모두가 무사한데 임무를 진행시키지 않을, 교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은 대우도 나쁘며 몸을 혹사시킨다. 그에 비해 조직의 일은 손쉽다. 허나 호수를 다시 지나가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야.”
“준비는 다 됐어? 이번엔 인원이 좀 많을 것 같은데.”
내심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았다.
“그 사람들은 말만 하면 떠날 기세야.”
“모두 몇 명이지?”
“쉰 둘.”
우리 일행까지 합치면 모두 57명이다. 다섯 명이서 쉰둘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래도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조직이 바빴을 때도 이 정도 비율은 아니었다.
“안 되겠어. 그 사람들 수를 줄이든지 우리 측 인원을 보충해야 돼. 이대로는 위험해.”
“왜? 올 때도 무사했잖아.”
“아무튼.”
“예전에 있었다던 일 때문이야? 며칠 전에도 넌 위험하다고만 하고 달아나버렸어.”
“젠장. 더는 묻지 말아줘. 떠올리는 것조차 힘드니까.”
“말을 해야 우리가 납득을 할 거 아냐. 이번 일이 더 없이 좋은 기회란 걸 직접 보니 알겠더라고. 교국으로 가려는 사람은 줄지어 서 있고 요금은 세 배로 늘었어. 한 번만 일을 해도 전에 다서 여섯 번 일한 것과 맞먹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너도 사람 목숨을 돈으로 생각하는 거냐. 이 말이 나오려다 말았다. 냉정하게 볼 때 마르 같이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다들 호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단 한 번의 쾌거가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했다. 오히려 교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하게 보이기까지 하겠지.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재물에 눈이 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들 어디 있지? 모두가 있는 데서 할 얘기가 있어.”
“여어, 무사했네.”
건들거리며 인사하는 라그나프를 무시한 채 말했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겠습니까?”
난 잊고 있었던 9년 전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들과 같이 뮐 교국으로 가던 중이었다. 아버지 친구 분의 가족도 함께였다. 우린 브로커를 이용하거나 국경 수비대를 매수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로셰아 호수였다. 호수를 통하면 빠르게 국경을 넘을 수 있을뿐더러 돈도 들지 않았다. 좋지 않은 얘기가 들리긴 했지만 막상 가봤다는 사람도 없었고 풍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고민 끝에 호수로 향했다. 헌데 그게 실수였다.
호수 절반가량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안심했다. 소문이 과장되었구나 하고는. 교국에 도착하면 무슨 일을 할까. 교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상상하며 걸었다. 다들 기대에 부풀어 있는 순간 놈이 나타났다. 놈을 보자마 나는 압도당해 아무 것도 못했다. 달아나야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기껏해야 내가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건 놈의 눈 정도였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놈은 컸다. 놈의 눈은 노랗고 투명하며 아무 감정 없었다. 사람을 입 안에 삼킬 때도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놈에 비하면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사람이 줄지어 죽어갔지만 난 멍하니 있기만 했다.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신을 차린 건 내 옆에 서 있던 누나가 놈의 이빨에 씹혀 피투성이가 된 뒤였다. 뜨거운 피가 내 옷자락에 튀고 나서야 의식이 돌아왔다. 손발이 떨렸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너만은 살아야 한다고 등을 떠밀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 또한 죽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못 들은 척 하고 뛰었다. 그리고 며칠 전 호수를 지날 때까지 모든 사실을 잊고 살았다. 기억이 되살아난 지금도 놈에 대해선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놈의 다리가 몇 개였는지 이빨은 얼마나 컸는지 모르겠다. 단지 놈이 길고 커다랬다는 것. 그리고 무서웠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여기까지입니다.”
그 날을 떠올리자 한 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슬펐다. 내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했는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다들 얼마쯤은 날 동정하는 눈치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잘 들었어. 네가 호수를 꺼리는 이유도 납득이 가. 하지만 우린 여기서 일을 관둘 수 없어.”
“조장!”
내 말이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몽은 최초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네가 겪은 일은 9년 전 일이야. 며칠 전 호수를 지나면서 놈을 보았나?”
“못 봤습니다. 하지만 놈은 분명히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군. 그저 추측일 뿐이야. 그 사이 놈이 죽었을 수도 있어.”
“그 정도 괴물이 고작 9년 사이에 늙어죽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네가 지금 몇 살이지?”
“스물 네 살입니다.”
“그때는 15살이었겠군. 15살이면 충분히 어려. 어렸을 때 겪은 일은 크게 보이는 법이지. 네 기억은 과장되어 있어.”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라 나조차 제대로 된 기억인지 불확실했다.
“괜한 얘기를 해서 두려움을 전염시키지 말고 내 말에 따라.”
몽이 강압적으로 얘기했다. 그의 태도에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습니까? 사람 목숨을 팔아서까지.”
“너! 그딴 식으로 얘기 하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몽이 날 삿대질 했다.
“너도 사람을 팔고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교국이 절대 낙원이 아니란 건 너도 나도 알아. 오히려 남부에서 온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런데 넌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이었잖아? 이날 이때까지. 이제 와서 목숨 운운하면서 발을 빼겠다니 우습군.”
“적어도 저는 생명은 팔지 않았습니다.”
반박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위가 쓰렸다. 내가 교국으로 데려온 이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교단에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벙어리인 척 행동하며 어둠 속에 숨어살았다. 거칠고 투박하며 교국 사람들은 천시하는,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만을 하며 살았다. 그들이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란 걸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난 계속해서 사람들을 옮겨왔다. 나 자신이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단지 운반책일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일그러진 나의 표정을 달리 해석했는지 몽이 말을 꺼냈다.
“이건 얘기하지 않으려 했는데 할 수 없군. 얼마 전 야합이 체포됐어. 그를 빼내려면 돈이 필요해.”
“처음 듣는 얘기군요. 야합 같은 거물이 잡혔는데 아무도 모른다니.”
“교단은 비밀리에 그를 처형하길 원해. 사람들의 반발이 두려웠던 게지. 그를 죽인 뒤에야 공표할 작정이야. 그러면 분란이 일어나봐야 금방 가라앉겠지.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순 없으니까.”
“젠장.”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아. 오십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을 저울질 하고 있겠지. 하지만 때론 한 목숨이 수십 명보다 소중할 때가 있어. 잘 모르는 수십의 목숨을 구할 바에는 내게 소중한 한 사람을 살리겠어. 너도 야합에게 빚진 게 있을 텐데.”
사실이었다. 야합은 상처 입은 채 오갈 데 없었던 날 구해줬다. 그가 없었다면 9년 전에 죽었을 거다. 그가 없었다면 교국에 적응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누가 죽는다는 보장도 없어. 올 때도 겨우 한 마리의 괴물을 만났을 뿐이야. 물론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 내가 볼 땐 위험에 빠지기보단 무사히 교국까지 갈 확률이 훨씬 커. 그래도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이 일에서 빠져. 하지만 우리는 네가 없어도 갈 거야. 네가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출발은 내일 아침이야. 그때까지 결정하도록 해.”
밤새 고민한 끝에 결국 집합 장소로 나갔다. 어찌됐든 몽은 사람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고 기왕 그렇다면 가능성 있는 쪽을 택하는 게 낫다. 저번처럼 무탈하게 호수를 지나갈 지 누가 알겠는가. 교국으로 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게 될지 지금으로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왔네.”
마르가 날 보고 씨익 웃었다. 몽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던 대로 이민자들의 수는 많았다. 모두 쉰 둘. 그들의 복장은 남루하고 초라했지만 눈빛만은 빛났다. 신천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품은 그들을 보자 그동안 무시해왔던 양심이 되살아났다. 허나 이제 와서 되돌리기엔 늦었다. 적어도 괴물에게 잡아먹힐 위협이 없다는 점에선 남부 지방보다는 교국이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맘이 편해졌다.
호수 초입까지는 삼일이 걸렸다. 어린 아이까지 달린 일행 치곤 빠른 속도다. 이대로 외곽을 따라가면 사 일이면 호수를 빠져나갈 것이다. 조금 걸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 느껴 몽에게 물었다.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외곽으로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호수를 가로 지른다.”
“처음 한 얘기와 다르지 않습니까?”
“계획이 바뀌었어. 언제 야합이 처형당할지 몰라.”
“그건 괴물들도 마찬가집니다. 괴물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저 사람들에게도 미리 말해두었어. 이곳은 위험하고 몇 사람쯤은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좋다면 따라 오라 그랬지. 결과는 네가 보는 데로고.”
“저들은 한 번도 실제 괴물을 본 적이 없어요. 위험을 과소평가 하고 있다구요. 지금이라도 제가 겪은 일을 얘기해야겠습니다.”
“너 미쳤어? 사람들이 들으면 당장 돌아가겠다고 할 거야.”
“오히려 그게 좋지요. 호수를 가로지르지 않아도 되니까.”
“돌아가게 되면 배상금을 지불해야 돼. 우리에게 그럴 여력이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렇다면 호수 외곽으로 갑시다. 그것만이 살 길이에요.”
“원점이로군.”
“...........”
“네가 뭐라 하든지 나는 이대로 갈 거야. 우리에겐 시간과 돈 모두가 필요해. 하지만 너도 네 뜻을 꺾지 않겠지. 그럴 바에는 타협을 하지 않겠어?”
“타협?”
“누군가 위험을 좀 더 감수하는 거야.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만큼 안전해지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요컨대 미끼가 되라는 거야. 누군가 앞서서 주변의 동태를 파악하면 대응도 빨리 할 수 있을 거고 최악의 경우 그 사람만 희생되고 끝이겠지.”
알아들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미끼가 될 사람이겠지. 어때 할 수 있겠어?”
몽은 얘기를 꺼낼 때부터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대만 하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좋은 건 없겠지. 허나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해도 그는 절대 호수를 돌아서 가진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엔 확고한 의지와 결의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까짓 거 해보죠.”
나름 발은 빠른 편이었다. 죽어라 도망간다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
“혼자 갔다 죽어버리면 곤란하니 한 명 더 붙여야겠군. 겨우 셋이서 이 많은 사람들을 통솔해야 되다니 갈수록 태산이군.”
몽이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잠시 쉬었다 가죠. 너희들은 이리로 와 봐.”
사람들은 그새 지쳤는지 휴식을 반가워했다. 조직원들이 모이자 몽이 말했다.
“아무래도 위험한 곳이다 보니 먼저 가서 정탐할 사람을 뽑아야겠어. 일단 장이 가기로 했으니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는데, 누구 자원할 사람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 너는? 장과 친하잖아. 둘이 하면 잘 맞을 것 같은데.”
“저는 썩 내키지 않네요.”
마르의 태도에 좀 실망했지만 이해했다. 그도 살아야하니깐.
“라그나프, 너는? 사나이는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잖아.”
“그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이럴 경우 신입이 일을 떠맡기 마련이다. 결국 신입과 내가 앞장서게 되었다.
“뭔가와 마주치게 되거든 신호탄을 쏴. 쏠 틈이 없으면 소리라도 질러.”
고개를 끄덕인 뒤 걸어 나갔다. 호수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다시금 긴장이 됐다. 달아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지만 뒤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참았다. 차라리 대화라도 하며 생각을 돌리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허나 옆에 있는 신입은 좀처럼 말이 없는 과묵한 성격이었다. 먼저 말을 걸어도 소용없을 듯 싶어 그저 걷기만 했다. 이미 일행들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점으로만 보였다. 소리를 질러도 닿을 것 같지 않았다.
불안해하며 걷고 있는데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묻고 싶은 게 있소.”
신입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긴 처음이었다. 굵고 텁텁한 음색으로 적지 않은 나이가 느껴졌다.
“말씀하세요.”
여태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남자가 물으려는 건 뭘까. 내심 궁금했다.
“갑작스레 인원을 떼 정탐을 시키게 한 이유가 뭐요?”
“조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호수를 가로지를 작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정탐조를 만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죠.”
“그랬군. 근데 나야 떠밀려서한다 쳐도 당신은 어째서 위험한 일에 자원한 거요? 좋게 봐줘도 미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을.”
몽이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땐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실수로 한 선택은 아니었다. 다시 물어도 나는 이 일을 택할 것이다. 허나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포라서 그랬소?”
그건 아니다. 여태까지 나는 무수한 동포들을 팔아먹어 왔다. 이제 와서 민족애를 느껴 도와주려 했다고? 웃기는 얘기다.
“아닙니다.”
“그럼 돈 때문에? 저들이 안전하게 가면 갈수록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돈이라. 많진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요. 대체. 당신은 호수만 봐도 벌벌 떨지 않소?”
곰곰이 생각해봐도 좀처럼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쭙잖은 영웅 심리라도 있는 거요?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싶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간신히 생각을 끄집어냈다.
“어쩌면 저는 단지 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체는 충분히 봤어요. 더는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실 어떤 논리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한 게 아니에요.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에 와 있더군요.”
“그것도 좋겠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도통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와 두서없는 대화를 한 덕분일까. 조금은 긴장이 풀렸고 잠시나마 두려움을 잊었다. 호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풀숲이 우거져 시야가 제한되었기에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가면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일행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더 가야되나 일행과의 거리를 좁힌 뒤 가야되나 고민했다. 그러다 너무 가까우면 사람들이 도망갈 틈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걸었다.
무심결에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또 다시 그 장소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선입견 없이 봤다면 천연의 싱그러움을 보고 연신 감탄했을 것이다. 허나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위를 확인하기 위해 더 빨리 걸었다. 있는 것은 쭉 뻗은 가지들과 목까지 자라난 풀들뿐이었다. 정말로 이젠 놈이 사라져버렸나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일행이 얼마쯤 왔나 확인하려 뒤를 돌아본 순간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졌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무 것도 없었다. 착각이었나 싶어 신입을 보았다. 그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느꼈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엔 분명히 뭔가가 있다. 그것이 놈인지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좋지 않은 것인 건 틀림없다. 신호탄을 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 짧은 망설임 끝에 신호탄을 쐈다. 쏠 틈이 없어지고 나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하늘을 메우는 펑 소리 때문이었을까. 마치 기다렸던 마냥 거대한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한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랬다.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서야 그것의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일순간 머리가 텅 비었다.
나는 압도당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샛노랗고 투명하며 감정이 없이 공허한 눈은 또 다시 날 지배했다.
“정신 차려!”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다. 용케도 신입은 넋을 잃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소리쳤다.
“뛰어!”
그리고는 달렸다. 놈이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면이 흔들린다. 놈은 크고 또 빠르다. 이번에도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힘들 것 같다. 놈의 괴이한 울음소리가 사방을 쩌렁쩌렁 울린다. 소름이 돋았지만 한편으론 뒤에 있는 일행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리란 생각에 안심이 됐다. 점점 지면의 흔들림이 거세졌다. 뛰면서도 몸을 휘청휘청 거렸다. 쾅. 쾅. 결국 나는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젠장, 이런 때에.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놈은 날 먹어치우기에 충분할 만큼 가까이 와 있었다. 더는 도망가 봐야 소용없다. 몇 발 뛰기도 전에 잡히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는 저항이라도 해보자. 나는 뒤돌아서 놈과 마주했다. 놈은 여전히 거대했지만 의외로 두렵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깨에 메고 있던 화약총을 꺼내 놈을 겨누었다. 딱 두 발. 위력도 변변치 않다. 운이 좋아 급소라도 맞추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놈이 최대한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그리곤 생애 마지막 총알을 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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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가빠왔다. 아까 무리를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달린 탓이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놈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모두 끝장난다. 놈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기 전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이미 눈치 챈 건 아닐까. 제발 놈이 잠들었기를. 놈이 다른 데 신경 쓰느라 정신없기를, 그 짧은 순간에 빌고 또 빌었다. 아직까지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일행이 걱정되었다. 슬쩍 뒤돌아보니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처음 뛰기 시작할 때보다 벌어져 있었다. 그들은 나만큼 절박하지 않다. 영문도 모르고 뛰기 시작했지만 별 이상이 없자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이제는 거의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이대로 그들은 놔두고 갈 순 없었다. 또 다시 그때처럼 다른 이들을 희생삼아 나 혼자 살아날 순 없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손은 그냥 가라고 말했다. 잠시 주저하느라 멈춰 있는 사이 그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가지 않는 걸 보고 천천히 가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틀림없다. 나는 팔을 들어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숨이 가빠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빨리 뛰어 와! 꾸물대지 말고.”
그들은 못 들었는지 느릿느릿 걸었다. 답답했지만 꾹 참고 더 크게 외쳤다.
“여긴 괴물의 서식처야. 빨리!”
몇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소리치는 중에도 놈이 어느 어디에선가 내 목소리를 듣고 튀어나오진 않을까 두려웠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들 때문에 애간장이 탔다. 잠시 후 다시 그들이 뛰기 시작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달려 나갔다. 일일이 모든 사실을 설명할 틈이 없었다. 그들도 대충은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게다. 이만하면 나로선 최선을 다했다.
뛰었다. 또 뛰었다. 계속해서 뛰었다. 몸이 부서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뛰었다. 놈을 떠올리기만 해도 손발이 덜덜 거리는데 놈을 실제로 보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명도 기척도 없다. 단지 가쁜 숨소리와 풀줄기들이 몸을 스쳐가는 소리만 귀에 들어온다. 놈은 우리가 여깄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그 사이 죽어버린 건 아닐까. 작게나마 희망을 가져본다. 그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불현듯 일행이 생각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달려와 버렸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걸까. 이미 놈에게 당한 건 아닐까. 연속해서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무리를 했던 몸이 반응했다. 사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욕지기가 올라오기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조금 몸이 회복됐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난 기다렸다. 어설프게 찾으러 나섰다간 길을 잃을 게 뻔했다. 몸을 움직일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이상 기다리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그들은 다른 경로로 갔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더 있으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지만 난 길을 재촉했다. 어쩌면 일행을 만나기 어렵단 핑계를 대고 호수를 빠져나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놈이 두려웠다.
쉬어서 그나마 체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기에 다시 뛸 엄두를 못 냈다. 그저 빠르게 걸을 뿐이었다. 어느새 사방이 거뭇거뭇해져 갔다. 밤에 피곤을 안고 홀로 걷는 건 위험했다. 허나 야영을 하는 건 배는 위태로웠다. 로셰아 호수엔 무수한 괴물이 있다. 여기까지 어떤 괴물과도 마주치지 않고 온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호수에서 빠져나가야했다. 그것만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몸이 무거워졌다. 바닥에 눕고 싶을 때면 놈을 생각했다. 두려움은 피곤마저 잊게 했다. 해 뜰 무렵이 되서야 호수를 빠져나왔다. 그 사이 나는 어떤 괴물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무사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이 이상 생각하기 싫었다. 호수는 남서쪽으로 쭉 흘러 구도자의 강과 합류한다. 강은 걸어서 이틀 정도 걸리는 데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강이 나눠지는 곳 부근에 도시가 하나 있다. 도시 부슈렝은 신성 대산맥에서 채집하는 광물을 모아서 남부 지방으로 운송한다. 내가 가려고 했던 데가 바로 부슈렝이었다.
부슈렝까지 가는 덴 삼 일이 걸렸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몸에 부담되지 않게 걸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조직의 거점을 찾았다. 나 외엔 도착한 사람이 없었다. 조직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여서.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줄 알았다면 조직의 규칙 따위엔 얽매이지 말고 밤새 술이라도 마실 걸.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교국으로 돌아갈 순 없었기에 일을 찾았다. 갖고 온 돈은 몇 푼 안 됐고 조직은 날 먹여 살릴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난 남부지방 언어를 자연스레 구사했기에 쉽사리 일자리를 구했다. 썩 좋지 않은 일이었다. 식사와 잠자리가 제공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새 일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혼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날 찾아왔다. 마르였다. 난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길 바랐나 봐?”
마르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응수했다. 반가운 맘에 그를 살짝 껴안았다.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근데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을 줄이야. 번듯한 일자리까지 얻고서.”
겸연쩍어 말을 다른 데로 돌렸다.
“어떻게 된 거야?”
“뭐긴 뭐야.”
마르는 그 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내가 사라진 뒤 그들은 길을 잃었다. 호숫가를 헤매던 그들은 외곽의 경계판을 따라 가기로 결정했다. 호수를 똑바로 가로지른 나와 달리 그들은 외곽으로 돌아왔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이상한 일은 없었어?”
“조용하기만 하던데. 로셰아 호수의 명성도 다 허명이었나 봐.”
그들이 무사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찜찜했다. 그 많던 괴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난 일행이 잡아먹힌 덕에 안전하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같이 돌아갈 거지?”
“응?”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르가 말을 걸어왔다.
“이건 임시로 하고 있는 일 맞지?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잖아.”
“어, 그래.”
맞는 얘기다. 모두가 무사한데 임무를 진행시키지 않을, 교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은 대우도 나쁘며 몸을 혹사시킨다. 그에 비해 조직의 일은 손쉽다. 허나 호수를 다시 지나가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야.”
“준비는 다 됐어? 이번엔 인원이 좀 많을 것 같은데.”
내심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았다.
“그 사람들은 말만 하면 떠날 기세야.”
“모두 몇 명이지?”
“쉰 둘.”
우리 일행까지 합치면 모두 57명이다. 다섯 명이서 쉰둘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래도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조직이 바빴을 때도 이 정도 비율은 아니었다.
“안 되겠어. 그 사람들 수를 줄이든지 우리 측 인원을 보충해야 돼. 이대로는 위험해.”
“왜? 올 때도 무사했잖아.”
“아무튼.”
“예전에 있었다던 일 때문이야? 며칠 전에도 넌 위험하다고만 하고 달아나버렸어.”
“젠장. 더는 묻지 말아줘. 떠올리는 것조차 힘드니까.”
“말을 해야 우리가 납득을 할 거 아냐. 이번 일이 더 없이 좋은 기회란 걸 직접 보니 알겠더라고. 교국으로 가려는 사람은 줄지어 서 있고 요금은 세 배로 늘었어. 한 번만 일을 해도 전에 다서 여섯 번 일한 것과 맞먹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너도 사람 목숨을 돈으로 생각하는 거냐. 이 말이 나오려다 말았다. 냉정하게 볼 때 마르 같이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다들 호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단 한 번의 쾌거가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했다. 오히려 교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하게 보이기까지 하겠지.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재물에 눈이 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들 어디 있지? 모두가 있는 데서 할 얘기가 있어.”
“여어, 무사했네.”
건들거리며 인사하는 라그나프를 무시한 채 말했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겠습니까?”
난 잊고 있었던 9년 전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들과 같이 뮐 교국으로 가던 중이었다. 아버지 친구 분의 가족도 함께였다. 우린 브로커를 이용하거나 국경 수비대를 매수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로셰아 호수였다. 호수를 통하면 빠르게 국경을 넘을 수 있을뿐더러 돈도 들지 않았다. 좋지 않은 얘기가 들리긴 했지만 막상 가봤다는 사람도 없었고 풍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고민 끝에 호수로 향했다. 헌데 그게 실수였다.
호수 절반가량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안심했다. 소문이 과장되었구나 하고는. 교국에 도착하면 무슨 일을 할까. 교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상상하며 걸었다. 다들 기대에 부풀어 있는 순간 놈이 나타났다. 놈을 보자마 나는 압도당해 아무 것도 못했다. 달아나야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기껏해야 내가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건 놈의 눈 정도였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놈은 컸다. 놈의 눈은 노랗고 투명하며 아무 감정 없었다. 사람을 입 안에 삼킬 때도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놈에 비하면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사람이 줄지어 죽어갔지만 난 멍하니 있기만 했다. 지켜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신을 차린 건 내 옆에 서 있던 누나가 놈의 이빨에 씹혀 피투성이가 된 뒤였다. 뜨거운 피가 내 옷자락에 튀고 나서야 의식이 돌아왔다. 손발이 떨렸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너만은 살아야 한다고 등을 떠밀던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 또한 죽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못 들은 척 하고 뛰었다. 그리고 며칠 전 호수를 지날 때까지 모든 사실을 잊고 살았다. 기억이 되살아난 지금도 놈에 대해선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놈의 다리가 몇 개였는지 이빨은 얼마나 컸는지 모르겠다. 단지 놈이 길고 커다랬다는 것. 그리고 무서웠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여기까지입니다.”
그 날을 떠올리자 한 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슬펐다. 내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했는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다들 얼마쯤은 날 동정하는 눈치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잘 들었어. 네가 호수를 꺼리는 이유도 납득이 가. 하지만 우린 여기서 일을 관둘 수 없어.”
“조장!”
내 말이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몽은 최초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네가 겪은 일은 9년 전 일이야. 며칠 전 호수를 지나면서 놈을 보았나?”
“못 봤습니다. 하지만 놈은 분명히 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군. 그저 추측일 뿐이야. 그 사이 놈이 죽었을 수도 있어.”
“그 정도 괴물이 고작 9년 사이에 늙어죽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네가 지금 몇 살이지?”
“스물 네 살입니다.”
“그때는 15살이었겠군. 15살이면 충분히 어려. 어렸을 때 겪은 일은 크게 보이는 법이지. 네 기억은 과장되어 있어.”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라 나조차 제대로 된 기억인지 불확실했다.
“괜한 얘기를 해서 두려움을 전염시키지 말고 내 말에 따라.”
몽이 강압적으로 얘기했다. 그의 태도에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습니까? 사람 목숨을 팔아서까지.”
“너! 그딴 식으로 얘기 하지 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몽이 날 삿대질 했다.
“너도 사람을 팔고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교국이 절대 낙원이 아니란 건 너도 나도 알아. 오히려 남부에서 온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런데 넌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이었잖아? 이날 이때까지. 이제 와서 목숨 운운하면서 발을 빼겠다니 우습군.”
“적어도 저는 생명은 팔지 않았습니다.”
반박하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위가 쓰렸다. 내가 교국으로 데려온 이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교단에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벙어리인 척 행동하며 어둠 속에 숨어살았다. 거칠고 투박하며 교국 사람들은 천시하는,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만을 하며 살았다. 그들이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란 걸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난 계속해서 사람들을 옮겨왔다. 나 자신이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단지 운반책일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일그러진 나의 표정을 달리 해석했는지 몽이 말을 꺼냈다.
“이건 얘기하지 않으려 했는데 할 수 없군. 얼마 전 야합이 체포됐어. 그를 빼내려면 돈이 필요해.”
“처음 듣는 얘기군요. 야합 같은 거물이 잡혔는데 아무도 모른다니.”
“교단은 비밀리에 그를 처형하길 원해. 사람들의 반발이 두려웠던 게지. 그를 죽인 뒤에야 공표할 작정이야. 그러면 분란이 일어나봐야 금방 가라앉겠지.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순 없으니까.”
“젠장.”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아. 오십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을 저울질 하고 있겠지. 하지만 때론 한 목숨이 수십 명보다 소중할 때가 있어. 잘 모르는 수십의 목숨을 구할 바에는 내게 소중한 한 사람을 살리겠어. 너도 야합에게 빚진 게 있을 텐데.”
사실이었다. 야합은 상처 입은 채 오갈 데 없었던 날 구해줬다. 그가 없었다면 9년 전에 죽었을 거다. 그가 없었다면 교국에 적응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누가 죽는다는 보장도 없어. 올 때도 겨우 한 마리의 괴물을 만났을 뿐이야. 물론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 내가 볼 땐 위험에 빠지기보단 무사히 교국까지 갈 확률이 훨씬 커. 그래도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이 일에서 빠져. 하지만 우리는 네가 없어도 갈 거야. 네가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출발은 내일 아침이야. 그때까지 결정하도록 해.”
밤새 고민한 끝에 결국 집합 장소로 나갔다. 어찌됐든 몽은 사람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고 기왕 그렇다면 가능성 있는 쪽을 택하는 게 낫다. 저번처럼 무탈하게 호수를 지나갈 지 누가 알겠는가. 교국으로 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게 될지 지금으로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왔네.”
마르가 날 보고 씨익 웃었다. 몽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던 대로 이민자들의 수는 많았다. 모두 쉰 둘. 그들의 복장은 남루하고 초라했지만 눈빛만은 빛났다. 신천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품은 그들을 보자 그동안 무시해왔던 양심이 되살아났다. 허나 이제 와서 되돌리기엔 늦었다. 적어도 괴물에게 잡아먹힐 위협이 없다는 점에선 남부 지방보다는 교국이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맘이 편해졌다.
호수 초입까지는 삼일이 걸렸다. 어린 아이까지 달린 일행 치곤 빠른 속도다. 이대로 외곽을 따라가면 사 일이면 호수를 빠져나갈 것이다. 조금 걸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 느껴 몽에게 물었다.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외곽으로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호수를 가로 지른다.”
“처음 한 얘기와 다르지 않습니까?”
“계획이 바뀌었어. 언제 야합이 처형당할지 몰라.”
“그건 괴물들도 마찬가집니다. 괴물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저 사람들에게도 미리 말해두었어. 이곳은 위험하고 몇 사람쯤은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좋다면 따라 오라 그랬지. 결과는 네가 보는 데로고.”
“저들은 한 번도 실제 괴물을 본 적이 없어요. 위험을 과소평가 하고 있다구요. 지금이라도 제가 겪은 일을 얘기해야겠습니다.”
“너 미쳤어? 사람들이 들으면 당장 돌아가겠다고 할 거야.”
“오히려 그게 좋지요. 호수를 가로지르지 않아도 되니까.”
“돌아가게 되면 배상금을 지불해야 돼. 우리에게 그럴 여력이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렇다면 호수 외곽으로 갑시다. 그것만이 살 길이에요.”
“원점이로군.”
“...........”
“네가 뭐라 하든지 나는 이대로 갈 거야. 우리에겐 시간과 돈 모두가 필요해. 하지만 너도 네 뜻을 꺾지 않겠지. 그럴 바에는 타협을 하지 않겠어?”
“타협?”
“누군가 위험을 좀 더 감수하는 거야.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만큼 안전해지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요컨대 미끼가 되라는 거야. 누군가 앞서서 주변의 동태를 파악하면 대응도 빨리 할 수 있을 거고 최악의 경우 그 사람만 희생되고 끝이겠지.”
알아들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미끼가 될 사람이겠지. 어때 할 수 있겠어?”
몽은 얘기를 꺼낼 때부터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대만 하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좋은 건 없겠지. 허나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해도 그는 절대 호수를 돌아서 가진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엔 확고한 의지와 결의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까짓 거 해보죠.”
나름 발은 빠른 편이었다. 죽어라 도망간다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
“혼자 갔다 죽어버리면 곤란하니 한 명 더 붙여야겠군. 겨우 셋이서 이 많은 사람들을 통솔해야 되다니 갈수록 태산이군.”
몽이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잠시 쉬었다 가죠. 너희들은 이리로 와 봐.”
사람들은 그새 지쳤는지 휴식을 반가워했다. 조직원들이 모이자 몽이 말했다.
“아무래도 위험한 곳이다 보니 먼저 가서 정탐할 사람을 뽑아야겠어. 일단 장이 가기로 했으니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는데, 누구 자원할 사람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 너는? 장과 친하잖아. 둘이 하면 잘 맞을 것 같은데.”
“저는 썩 내키지 않네요.”
마르의 태도에 좀 실망했지만 이해했다. 그도 살아야하니깐.
“라그나프, 너는? 사나이는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잖아.”
“그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이럴 경우 신입이 일을 떠맡기 마련이다. 결국 신입과 내가 앞장서게 되었다.
“뭔가와 마주치게 되거든 신호탄을 쏴. 쏠 틈이 없으면 소리라도 질러.”
고개를 끄덕인 뒤 걸어 나갔다. 호수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다시금 긴장이 됐다. 달아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지만 뒤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참았다. 차라리 대화라도 하며 생각을 돌리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허나 옆에 있는 신입은 좀처럼 말이 없는 과묵한 성격이었다. 먼저 말을 걸어도 소용없을 듯 싶어 그저 걷기만 했다. 이미 일행들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점으로만 보였다. 소리를 질러도 닿을 것 같지 않았다.
불안해하며 걷고 있는데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묻고 싶은 게 있소.”
신입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긴 처음이었다. 굵고 텁텁한 음색으로 적지 않은 나이가 느껴졌다.
“말씀하세요.”
여태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남자가 물으려는 건 뭘까. 내심 궁금했다.
“갑작스레 인원을 떼 정탐을 시키게 한 이유가 뭐요?”
“조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호수를 가로지를 작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정탐조를 만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죠.”
“그랬군. 근데 나야 떠밀려서한다 쳐도 당신은 어째서 위험한 일에 자원한 거요? 좋게 봐줘도 미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을.”
몽이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땐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실수로 한 선택은 아니었다. 다시 물어도 나는 이 일을 택할 것이다. 허나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포라서 그랬소?”
그건 아니다. 여태까지 나는 무수한 동포들을 팔아먹어 왔다. 이제 와서 민족애를 느껴 도와주려 했다고? 웃기는 얘기다.
“아닙니다.”
“그럼 돈 때문에? 저들이 안전하게 가면 갈수록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돈이라. 많진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요. 대체. 당신은 호수만 봐도 벌벌 떨지 않소?”
곰곰이 생각해봐도 좀처럼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쭙잖은 영웅 심리라도 있는 거요?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싶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간신히 생각을 끄집어냈다.
“어쩌면 저는 단지 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체는 충분히 봤어요. 더는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실 어떤 논리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한 게 아니에요.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에 와 있더군요.”
“그것도 좋겠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도통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와 두서없는 대화를 한 덕분일까. 조금은 긴장이 풀렸고 잠시나마 두려움을 잊었다. 호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풀숲이 우거져 시야가 제한되었기에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가면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일행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더 가야되나 일행과의 거리를 좁힌 뒤 가야되나 고민했다. 그러다 너무 가까우면 사람들이 도망갈 틈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걸었다.
무심결에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또 다시 그 장소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선입견 없이 봤다면 천연의 싱그러움을 보고 연신 감탄했을 것이다. 허나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위를 확인하기 위해 더 빨리 걸었다. 있는 것은 쭉 뻗은 가지들과 목까지 자라난 풀들뿐이었다. 정말로 이젠 놈이 사라져버렸나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일행이 얼마쯤 왔나 확인하려 뒤를 돌아본 순간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졌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무 것도 없었다. 착각이었나 싶어 신입을 보았다. 그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느꼈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엔 분명히 뭔가가 있다. 그것이 놈인지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좋지 않은 것인 건 틀림없다. 신호탄을 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 짧은 망설임 끝에 신호탄을 쐈다. 쏠 틈이 없어지고 나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하늘을 메우는 펑 소리 때문이었을까. 마치 기다렸던 마냥 거대한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한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랬다.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서야 그것의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일순간 머리가 텅 비었다.
나는 압도당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샛노랗고 투명하며 감정이 없이 공허한 눈은 또 다시 날 지배했다.
“정신 차려!”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다. 용케도 신입은 넋을 잃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소리쳤다.
“뛰어!”
그리고는 달렸다. 놈이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면이 흔들린다. 놈은 크고 또 빠르다. 이번에도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힘들 것 같다. 놈의 괴이한 울음소리가 사방을 쩌렁쩌렁 울린다. 소름이 돋았지만 한편으론 뒤에 있는 일행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리란 생각에 안심이 됐다. 점점 지면의 흔들림이 거세졌다. 뛰면서도 몸을 휘청휘청 거렸다. 쾅. 쾅. 결국 나는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젠장, 이런 때에.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놈은 날 먹어치우기에 충분할 만큼 가까이 와 있었다. 더는 도망가 봐야 소용없다. 몇 발 뛰기도 전에 잡히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는 저항이라도 해보자. 나는 뒤돌아서 놈과 마주했다. 놈은 여전히 거대했지만 의외로 두렵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깨에 메고 있던 화약총을 꺼내 놈을 겨누었다. 딱 두 발. 위력도 변변치 않다. 운이 좋아 급소라도 맞추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놈이 최대한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그리곤 생애 마지막 총알을 쐈다.
탕!

하지만 흥미진진하고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