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출품작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테디베어

by 옥스타

 

 그가 자주 입에 대던 술은 수분으로 증발되어 부엌 한 편에 고여 있는 주전자 속 물웅덩이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수백 년 전 모차르트가 숨 쉬던 공기를 대륙 반대편에 있는 내가 마실 확률은, 꽤 확실한 전문가의 고견에 따르면 100%에 가깝다.

 내 앞을 부유하고 있는 이 먼지는, 모차르트가 입던 연미복 중 일부가 마감실로 쓰인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쓸데없는 망상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 없이도 이 만큼 까지 생각을 발전시키는 내가 위대해 보인다. 아마도 티끌만큼 남아있는 집착 때문일 가능성은, 고명하신 심리학 박사에 따르면 89.73%. 90%에 0.27% 부족한 그 어이없는 수치 덕분에 나는 일어나자마자 호르몬진정제를 입안에 정체시킨다.

 이것은 순전히 얼마 전 사랑하던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테디베어 같은 여자였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아마 '테디베어'일 것이다.

 그녀의 생일날, 카페에서 내가 준 테디베어 인형을 꼭 안고 있는 모습은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녀의 미소가 상쾌한 청량감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기까지 하루 종일 전단지를 돌려야 했지만 그것은 작은 노력에 불과하다. 그것은 일한 뒤의 허무함 과는 극과 극에 달한 성취감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없다.

 모차르트의 플롯 4중주곡 작품71중 제1악장은 나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내 자취방에 있는 주전자의 물은 입 안에 있는 텁텁한 알약을 식도너머로 잘 넘어가게 해 준다. 이 두 가지는 나에게 육체적 안정감과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이 역시 국가에서 인정한 심리치료사가 나에게 조언해준 처방이다.

 내가 약과 함께 마시는 물은 모차르트가 즐겨 마시던 싸구려 럼주였을까?

 아니, 모르겠다.

 그저께 그녀의 장례식에 가서 어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영정 앞에 향을 하나 꽂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절을 하기 좋은 공간을 만든 다음, 우리나라의 예법에 따라 절한다.

 첫 번째 절은 그냥 무덤덤하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영정이 내 눈앞에서 잠깐 사라진다. 바닥이 내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리다가, 다시 그녀의 영정과 화환이 완전히 드러난다. 하지만 두 번째 절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엎드려서 울었기 때문에 한 동안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한다. 그것이 또 다시 나를 슬프게 한다.

 눈물을 대충 닦고 식탁에 가서 출출한 배를 달랜다. 그녀의 친척으로 보이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육개장을 내준다. 국밥집에서 미원을 넣어 만든 싸구려 육개장과는 그 정성에서부터 차원이 다르다. 구수한 숙주나물과 매콤한 맛을 더하는 고추는 조문객들에 대한 작은 정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친구들이 내 앞과 옆에 앉아서 말없이 술잔을 준다. 나는 사양치 않고 조용히 술잔을 기울인다. 코가 삐뚤어 질 때까지 마시고 싶지만 내일도 학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딱 석잔 만 했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거리면서

 “오늘까지만 생각해라. 내일 부터는 산사람의 삶을 살아야지."

라며 위로한다. 나는 그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거부한다.

 그녀의 친구들이 술기운으로 인해 숨이 가빠진다. 아니 내가 가빠진 걸까? 어디선 가 8화음의 구형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온다. '아, 어머니. 당신께 말씀 드리지요.'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짝반짝 작은 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벨소리가 원인이 되어 잠시 이런 망상을 해 보았다. 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차르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모르겠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자취방에서 한 참을 울었다. 내가 흘린 것이 눈물인지 콧물인지도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여자들은 자주 울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병에 덜 걸린다는 싸구려 정보를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오래 살기 전에 수분부족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상상과 함께 집을 나선다.

 그런데 그 날 오전은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수업이 남았지만 무시하고 정신과에 찾아가서 약을 타왔다. 그 때 의사 선생님 말씀은 이러하다.

 “아직 여자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실 겁니다. 이 약은 슬픈 호르몬을 진정시키는 약입니다. 이 이상 방치해두면 정말 우울증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데 초기에 잘 오셨어요."

 그 의사의 말은 틀렸다. 지난 이틀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우울증 말기증상 이다. 그 의사는 기간이 우울증을 결정한다는 의학적 고정관념에 휩싸여 나의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다. 우습다. 내 병은 내가 잘 진단 할 수 있는 것을 괜히 병원에 가버렸다.

 병원의 복도 한 켠 에는 모차르트의 초상화가 걸려져 있었다.

 갑자기 생각 난 것이지만, 모차르트의 마지막은 이러하다. 그는 한 여름에 가면을 쓰고 회색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50두카덴의 레퀴엠(진혼곡)을 의뢰 받는다. 오페라 한 편의 작곡료가 100두카덴 인 것을 감안하면 꽤 수지맞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승낙한다.

 하지만 의뢰인은 아버지가 가면무도회에서 자주 쓰시던 괴기스러운 문양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는데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빨리 작곡하지 않자 곡을 독촉한다. 결국 희대의 작곡가는 자신에게 아버지의 가면을 쓴 저승사자가 온다는 환상, 독살 당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어 스트레스로 죽게 된다.

 모차르트의 여러 가지 확실치 않은 최후설 중 하나이다. 물론 사람들이 모차르트의 평범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예술가다운 비극적 결말 아닌가? 나는 이 이야기가 꽤 마음에 든다.

 인터넷에서 심리치료사의 조언을 요청한다. 그는 조용한 음악과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을 먹고 편한 마음을 갖기를 추천한다. 그 날 저녁은 하루 종일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밥도 안 먹고 약을 복용한 다음, 기운을 차리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식욕이 없는 것과 눈물을 쏟은 양에 비례해서 힘이 없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 날 하루는 썩 괜찮게 보냈다.

 그리고 오늘 저녁, 그녀의 어머니가 오셨다.

 “아, A학생. 이건 내 딸이 남긴 유품인데, 소중하게 보관돼 있는 게 왠지 학생하고 관련 있는 건가 싶어서……."

 그리고 눈물을 쓱 훔치시더니 곧바로 돌아가신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잃은 슬플 때문인지 무척 수척해 지셨다. 상대방에게는 내가 그렇게 보일까?

 상자 안에는 커플링, 목걸이, 내가 사준 작은 지갑, 몰래 바닷가에 가서 찍은 사진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모두 비싼 건 아니지만 그녀가 좋다면서 가지고 다닌 물건들과 사진. 그리고,

 “테디베어."

 지난여름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산 테디베어가 곱게 누워있다. 나는 왠지 또 다시 우울해져서 그 원인을 없애려고 라이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옥상에는 밤하늘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자취하기 전, 서울에서 꽤 떨어진 집에 살 때만 해도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못 내 아쉽다. 이래서야 초혼을 하고 싶어도 그녀가 갈 길이 어두울 까봐 겁이 난다.

 어디 선가 작게 자장가가 들려온다. 이번엔 모차르트와 상관없는 한국의 자장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해변을 배경으로 그녀가 브이자를 귀엽게 그리고, 내가 멋쩍게 어깨를 두른 사진을 먼저 든다. 그리고 라이터를 들고 사진부터 태워버린다. 자장가가 내 귓가를 맴돌면서 슬프게 춤춘다.

 사진을 통 안에 넣고 다른 것들도 불붙기를 기다린다. 그대로 꺼질 듯 하다가 매정하게 다른 사진들에 불이 옮겨 붙었다. 이윽고 천지갑과 테디베어에도 불이 옮겨 붙는다.

 18세기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입었던 연미복이 수 백 년을 걸쳐 재 가공되면서 테디베어의 실밥 한 뼘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시나브로 작게 타 들어가는 실밥은 밤바람에 날아가 먼지가 된다. 그것은 말라버린 줄 알았던 내 눈물과 함께 하늘로 귀천 한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은 모차르트 이었을까?"

 아니,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찾고 싶은 것이 그녀의 작은 흔적인지, 아니면 모차르트의 위대한 음악적 업적을 제외한 작은 파편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확실한 사실은 난 세 번을 들었고, 세 번을 알 수 없었으며, 그녀가 죽은 뒤 그녀를 세 번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보았다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맞을 것 이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 말처럼 살아있기에 죽은 사람을 추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죽은 그녀에게 아멘.